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18화 (218/422)

218화 개화 (2)

무척이나 궁금하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아이가 들어왔을까 싶어서.

팀의 구단주라면 당연히 새로 들어온 유소년 유망주를 확인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나처럼 유망주의 재능을 숫자로 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면?

솔직히 못 참지.

그런 내 속내를 눈치챘는지, 페르난데스가 미소를 지었다.

“보러 가시겠습니까?”

“보러 가도 됩니까?”

“구단주님이 팀 유소년 보러 간다는데, 안 될 이유가 없죠. 그런데 선글라스는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오늘은 새로 선발된 아이들 부모님이 참관하는 날이거든요.”

“참관이요?”

처음 듣는 이야기라 되물었더니, 이번엔 벤자민이 옆에서 대신 대답했다.

“아무래도 소중한 자식을 맡기는 거니까 부모로서는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겠죠. 설비는 어떤지, 훈련 과정은 어떤지··· 물론 나름대로 알아보고 우리를 선택한 거겠지만, 그래도 한번 안내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좋은 제도군요.”

내가 아카데미에서 뛸 땐 저런 제도가 없었던 것 같은데, 새로 마련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유소년 육성 책임자 페르난데스가 애 키우는 부모다 보니, 이런 부분에서의 섬세한 배려는 고맙게 느껴진다.

“그건 좋은데··· 왜 선글라스를 쓰라는 겁니까?”

“그야 구단주님은 유명하시니까요.”

“선글라스 쓰면 선수 얼굴 보기 불편한데···.”

정확히는, 이마의 숫자를 알아보기 불편해서 좀 그렇단 말이지.

최종적으로는 조금 연한 색 선글라스에, 모자와 마스크를 덧붙이기로 했는데, 아무리 봐도 연예인들이 사석에서 얼굴 가리려고 할 때의 복장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희주는 아주 좋다고 난리였지만.

“완벽해! 오빠인지 못 알아보겠어. 멋있어!”

“이게 멋있다고? 너 지금, 가릴수록 잘생겨 보인다는 소리 하고 싶은 거지?”

“정답!”

고오맙다.

보답 삼아 희주도 평소보다 미녀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지난번 카타르 월드컵때 구해 온 이슬람 전통 복장으로 아주 칭칭 싸매서.

“아니, 오빠. 나까지 가릴 필요는 없지 않아?”

“필요하지. 너는 구단 유튜브에도 종종 나가고 그러잖아.”

* * *

이번 아카데미 참관 과정은 페르난데스가 손수 안내했다.

아이들을 우리 아카데미에 들여보낸 부모들의 표정에는 다양한 감정이 혼재되어 있었다. 호기심과 긴장, 걱정과 기대 같은 것들이.

예전, 내가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우리 부모님도 아마 저런 얼굴을 하고 계셨겠지. 축구 유학을 떠나는 아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혹시라도 타국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컸을 것이다.

이번 참관을 통해, 부모들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는 과정이 된다면 좋겠다.

잠시 후 페르난데스가 친절한 미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안내를 시작했다.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는 선덜랜드의 1군 훈련장이자, 유소년 육성 시설을 겸하고 있습니다. 이 훈련장에서, 유소년들은 프리미어리거가 어떻게 뛰고 훈련하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눈으로 보고 배우게 됩니다.”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설이 정말 좋군요.”

“감사합니다.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는 오래전부터 유에파의 최고 등급 육성 시설 인증을 받았고, 대대적 리모델링을 거쳤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설비를 갖췄다고 자부합니다.”

시설에 대해서라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표현조차 겸손할 것이다. 이제 라마시아나 에티하드 캠퍼스조차, 순수하게 설비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 낫다고 볼 수 없으니까.

훈련장 설비에는 처음 구단을 인수한 3부 리그 시절부터 돈을 아껴본 적이 없다. FFP 제약이 안 걸리거든.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는 매년 성장하고 있습니다. 축구 유소년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신청 바랍니다.

“그런데 저분들은 누구시죠?”

나와 희주를 향해 호기심과 미심쩍음이 반씩 섞인 시선이 향했다. 하긴, 객관적으로 보면 퍽 수상해 보이긴 할 것이다.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착용한 남자와, 검은색 천을 칭칭 싸맨 여자의 조합이라니.

곤란한 질문을, 노련한 페르난데스는 무척 능숙하게 대처했다.

“보시다시피, 투자자입니다.”

“아, 오일 머니···!”

아니, 사실 우리는 나스닥 머니인데··· 본사가 여의도니까 코리안 머니인가?

아무튼, 그런 과정을 거친 끝에 우리는 마침내 유소년 훈련장 그라운드에 도착했다.

이번에 새로 아카데미에 들어온 소년들이 벤자민의 지시에 따라 뽀르르 훈련장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어머! 귀여워라.”

희주의 감탄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긴, 부모 된 입장에선 감개무량하겠지. 축구 유망주였던 아이가, 마침내 프로 팀의 아카데미에 입성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니까.

페르난데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원래 훈련에서는 트레이닝 킷을 입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은 유니폼을 입고 훈련하게 되었습니다. 크기와 등번호 이외에는 1군 팀과 완벽하게 똑같은 정식 유니폼입니다.”

목에 힘을 주며, 페르난데스는 머리 위로 손을 치켜들어 능숙하게 박수를 유도했다. 잠시 후 뜨거운 갈채가 쏟아졌고, 누군가는 손으로 눈가를 훔치거나 입을 가리기도 했다.

흐뭇한 풍경에, 희주도 눈가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던 나 또한 흐뭇해졌다.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고 배가 불러서.

이마에 세 자릿수 숫자가 선명한 어린 소년들이 한가득이다. 그만큼 우리 팀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증거겠지. 젠장,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아.

동시에, 가슴이 뛰었다. 언젠가 이들이 프로로 데뷔할 순간이 기다려져서.

우리가 잘못 키우지만 않으면, 이 아이들은 장차 맨유의 전성기를 이끈 퍼기의 아이들이나, 메시가 속했던 라마시아 제네라시온 87에 못지않은 세대로 기억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소년이 한 명 있었다.

또래보다 조금 작은 체구인데도 공과 상대 선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개인기가 무척이나 화려했다. 알까기부터 사포까지.

희주가 옆에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오빠, 쟤 진짜 잘한다! 꼭 마르틴 같아.”

“마르틴하고는 조금 다른 타입 같긴 한데··· 잘하네.”

우리 1군 팀의 에이스 마르틴은 화려한 개인기와 스피드를 자랑하는 에이스 드리블러였지만, 이 소년은 그렇게 빠르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직 어리고 몸이 덜 만들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피드는 이 소년의 무기가 아니다.

대신, 소년은 마르틴과는 조금 다른 무기를 가진 것 같았다.

“사포!?”

이미 두 번이나 사포를 얻어맞아 움찔거리는 수비수 앞에서, 소년은 세 번째 사포를 시도했다.

소년의 왼발이 공을 살짝 넘었고, 오른발이 뒤따라 공을 건드렸다. 잠시 후 소년의 등 뒤로 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잘한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다음 장면이었다. 사포에 대응하기 위해 수비수가 무게중심을 뒤로 옮기자마자, 소년의 오른발이 떠오르던 공을 아래로 내려찍은 것이다.

“어!?”

희주의 경악과 동시에,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긴 수비수가 저절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렇게 소년은, 자신에게 붙은 마크를 완벽하게 떨쳐냈다.

사이드라인 밖에서, 나는 그 광경을 줄곧 바라보았다. 이제 가로막을 자 없는 측면을 질주하는 어린 소년, 흩날리는 머리칼, 그 아래 선명하게 드러난 숫자를.

“···찾았다.”

“응? 뭘 찾았다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가 가졌던 최고의 재능은 결국 팀을 떠났다.

이후에도 선덜랜드 유소년 팀은 잭과 요니, 해리슨같이 훌륭한 선수들을 키워냈지만, 그래도 아직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는 15년 전의 헨도를 능가하는 재능을 갖지 못했다.

이젠 아니다.

어릴 때의 친구를 훌쩍 넘어선 숫자, 700이 선명한 소년의 이마를 바라보며 나는 결심했다.

이번엔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거라고, 망가뜨리지 않을 거라고.

저 재능을 모조리 피워내고 말겠다고.

한편, 이 훈련장에는 700짜리 소년 못지않게 내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가 있었다.

오늘 데뷔한 선수가 아니기에 유니폼 대신 트레이닝킷을 입은, 선덜랜드 유소년팀의 주장이.

“괜찮아. 고개 들어. 울지 말고.”

소년 짐은, 세 번이나 농락당한 채 주저앉은 수비수에게 다가가, 그를 위로하는 중이었다.

“도저히 못 막겠어.”

“알아. 그러니까 아카데미에 온 거잖아. 막을 수 있게 될 때까지 훈련하려고.”

“그치만 쟤도 훈련해서 더 잘하게 될 거잖아.”

시무룩해진 수비수를 향해, 짐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수비는 혼자 하는 게 아니야. 팀이 하는 거지. 축구의 신이라도 매번 열한 명을 제치고 넣지는 못하잖아?”

“그럼 앞으로 훈련하면 쟤를 막을 수 있··· 어?”

“될 때까지 해야지. 다 같이.”

짐의 모습은 참관하던 선수 부모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다.

“정말 의젓하네요. 리더십도 있고.”

“우리 애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날 텐데··· 너무 어른스럽다.”

페르난데스가 곧바로 대답했다.

“저 나이에서는 한 살 차이도 큽니다. 무엇보다 저 아이는 아카데미에서 1년간 훈련받았고요.”

“쟤가 짐 하워드죠? 이번에 연령별 대표팀에 갔다던데···.”

“네. 이번에 잉글랜드 U-13에 선발되었고, 거기서도 주장을 맡았습니다.”

“어머. 꼭 페르난데스 단장님 어릴 때 같네요. 뿌듯하시겠어요.”

짐에게 쏟아진 칭찬에, 페르난데스는 조금 슬픈, 하지만 밝고 담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저 아이는, 정말로 제 자랑입니다.”

소년 짐의 숫자는 1년 전과 비교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를 아카데미에 데려올 때부터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그저,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졌을 뿐이다.

40. 프로가 될 수는 있어도, 빛을 보기는 어려울 숫자. 아마 이대로라면 소년 짐은 평생을 세컨, 혹은 서드 키퍼로 보내게 되겠지. 혹은 챔피언십으로 내려가거나.

그렇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 맡겨 주신 여러분의 아이들 또한 제 자랑으로 키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페르난데스의 목소리가 아카데미에 울리는 내내, 나는 계속 그 생각만 했다.

어떻게 해야, 사십억 원의 가치를 가진 골키퍼를 프리미어리거로 키워낼 수 있을지를.

* * *

한편, 사백억 원의 가치를 자랑하는 팀의 유망주 해리슨이 최근 부쩍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에디와 꾸준히 하던 밤 연습이 선수의 성장에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언론에서도 아주 극찬하는 중이었다. 원래 우리와 사이가 좋은 선덜랜드 데일리는 말할 것도 없고, 노스이스트 저널마저 가세했다.

[해리슨 프레이저의 데뷔골이 지니는 의미]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 된다. 해리슨은 그동안 2선에서의 찬스 메이킹에만 주력했는데, 이제 직접 골을 노릴 수 있는 선수임이 밝혀졌으니 앞으로 더욱 막기 까다로울 거라는.

“···최전방의 바스티아노, 크리그, 마르틴에 이어 잭과 요니, 톰슨, 스티븐, 이제 해리슨까지 필드골을 넣을 수 있으니까 상대하는 입장에선 정말로 골치 아플 거래.”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향해, 희주가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다.

“그런데 갑부 오라버님,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뭐가.”

해리슨의 특훈은 에디가 자발적으로 도운 거고, 해리슨의 성장을 써먹은 건 내가 아니라 우리 코칭스태프다. 따라서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노스이스트 저널 말야. 얼마 전까진 에디 스캔들이나 따라다니던 애들이 갑자기 태도가 고분고분해져서··· 요즘 보면 꼭 우리 제휴 언론 같잖아?”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물론 짐작 가는 구석은 있다. 노스이스트 저널 광고주들 사이에 친숙한 업체가 몇 개 보이거든. 그리고 노스이스트 저널의 보도 방향이 바뀐 시기는, 대충 다미가 다녀간 시기와 비슷하다.

요약하면, 리미트리스가 리미트리스한 거지.

한편 해리슨의 성장은 신문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화제를 불러모았다.

[요즘 선덜랜드의 승리 플랜이 무척 다양해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 오늘은 한번 해리슨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어떻게 보나, 게리?]

[고무적이지. 가뜩이나 골을 노릴 수 있는 선수가 많은 팀인데, 해리슨까지 가세했잖아? 원래 패싱 센스가 좋은 선수인데, 직접 슛까지 날리면 이제 막기 힘들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와 희주의 앞에서, 화면 속의 캐러거가 고개를 흔들었다.

[수비가 죄다 얼이 빠져서 그래. 슛이고 패스고, 결국은 킥 아닌가? 돌파력 없는 선수에게 그렇게 농락당해서야.]

[아니, 해리슨에게 돌파력이 필요하다고? 선덜랜드에 기동성 좋은 선수가 얼마나 많은데.]

[쯧쯧, 그러니까 게리 자네는 풀백 노릇이나 하는 거지.]

캐러거는 평소 풀백은 센터백이 되기 실패한 선수라는 견해의 소유자였는데, 아마 캐러거 자신이 센터백 출신이라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현대 축구에서는 풀백의 중요도가 올라갔다는 걸 자신들도 알지만, 요즘은 서로 놀려먹는 용도로 써먹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캐러거가 표정을 고쳤다.

[해리슨은 좋은 선수야. 이대로 잘 커나가면 영국 축구는 또 하나의 재능을 얻는 거겠지. 아직 어린 선수니까 무리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희주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캐러거의 표정이 엄격해졌다.

[다만, 수비 한 명 제칠 수 없는 선수로 끝나면 본인에게도 팀에게도 좋지 않을 거야.]

“아오, 저 아저씨 진짜!”

화면 속의 캐러거를 노려보며, 희주가 이를 박박 갈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선덜랜드 제일가는 건치라 그런지 소리가 심상치 않다.

나는 희주를 슬쩍 달래기 시작했다.

“놔둬. 아직도 비치볼의 한이 풀리지 않아서 저럴 테니.”

지금의 해리슨은 수비 하나 못 제치는 선수는 절대로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마침, 증명하기 위한 적당한 기회도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유로파리그 8강전 일정은, 해리슨의 재능을 펼치기 딱 좋은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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