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35화 (235/422)

235화 헬로, 굿바이 (2)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아주 근사한 걸 뽑아보면 어떠십니까? 15분 정도로 잘라서 구단 유튜브에 올리고요.”

영상팀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흥미로운 시선을 던졌다.

SNS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계획은 몇 개쯤 갖고 있었지만, 직원도 키울 겸 아이디어를 모았더니 곧바로 이런 의견이 나왔다.

다큐멘터리라···.

“결국 브라이언 감독님 장점은 두 가지죠. 하나. 구단의 성골 유스 출신, 근본 있는 감독.”

근본이야 아주 넘치지. 브라이언보다 더 근본 넘치는 스펙은 축구계에 존재할 수 없다.

유소년 출신 로컬 보이고, 현역 시절엔 선덜랜드에서 데뷔하고 은퇴한 원클럽맨이다. 코칭스태프 커리어조차 오직 선덜랜드에서만 했지.

전력분석관과 코치를 거쳐, 이제는 팀의 감독이다.

선덜랜드 최고 레전드라는 나이얼 어르신을 소환해도 이 정도 근본력까지는 안 나온다. 그분은 유스 출신도, 원클럽맨도 아니거든.

“이보다 더 근본 넘치는 커리어는 세상에 한 명밖에 없죠. 무너지는 구단을 구하러 돌아온···.”

그런 커리어가 있다고?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자, 마침 내 쪽을 흘끗거리던 영상팀원이 자세를 고쳤다.

넘어가자.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으니까.

“두 번째 세일즈 포인트는 뭡니까?”

“그야 구단주님이 직접 선임했다는 거죠. 이보다 더 좋은 세일즈 포인트는 찾기 어려울걸요.”

영상팀원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선덜랜드 출신 스태프라고 하면, 일 잘한다는 의미로 통하거든요. 요즘 헤드헌팅 시장에서 엄청 잘나간다고 하더라고요. 오라는 곳도 많고, 대우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이직하겠다는 소린 아닙니다만···.”

요약하면, ‘그 이희성’이 뽑은 직원들은 일 잘한다는 게 요즘의 상식이니까, 그 점을 해외 팬들에게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의도인 모양이다.

“구단주님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감독님을 발탁했는지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면 이미지가 좋아질 것 같습니다.”

“재밌네요. 추진합시다.”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나는 시선을 비서에게 옮겼다. 그러자 희주가 곧바로 명함 케이스를 내밀었다.

“어··· 저는 명함이 이미 있는데요.”

“디테일이 달라요! 펄 들어간 건데···.”

“디테일은 모르겠고, 직급이 다를 겁니다.”

이런 비전을 가진 직원이면, 당연히 권한을 주고 일을 시켜 봐야지. 마침 이마의 가치도 적당하니, 경험을 쌓으면 무섭게 성장할 것이다.

이번, 브라이언 사태를 계기로 구단 전체를 성장시키는 게 내 계획이란 말이지.

* * *

“빅 사이닝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의견을 낸 사람은, 프레스팀의 유망주로 불리는 청년이었다.

유망주라는 이름값은 한다. 일단 이마의 숫자부터 괜찮았으니까. 비록 애니만큼은 아니지만,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애니의 후계자로 활약할 정도는 된다.

일 처리 솜씨도 나쁘지 않다. 자기 딴에는 꼼꼼하게 시장에 나온 매물들, 이적 루머가 도는 선수 명단을 정리해서 가져왔다.

대충 눈으로만 훑어도 화제성이 될 선수가 넘친다. 독일의 스타 윙어, 네덜란드산 폭격기, 믿고 쓰는 레알산 미드필더··· 아무나 데려와도 그야말로 핫이슈가 되겠네.

그나저나 빅 사이닝이라.

역시 언론인 출신이니, 프리시즌 뉴스 중 뭐가 가장 핫한지 잘 아는 것 같다. 그렇지, 프리시즌엔 빅 사이닝 이슈가 제일 뜨겁지.

사실 빅 사이닝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다.

프리시즌 농사는 결국 선수단을 어떻게 꾸리느냐로 귀결되니까. 그리고 선수단의 퀄리티는 곧 팀의 체급, 그리고 팬들의 기대와도 이어진다.

대형 선수 한 명 데려오면, 경험 없는 초짜 감독 이슈쯤은 바로 묻어버릴 수 있겠지.

안 할 거지만.

나는 애니와 아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애니가 쓴웃음을 지었다.

마치, ‘미안, 앞으로 좀 더 키워야겠네.’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아벨의 반응이 좀 더 노골적이었다.

“멍청아. 감독에게 힘을 실어줄 국면에, 새내기 감독이 다루기 까다로운 선수를 왜 데려오냐?”

“그, 그런가요.”

“올 시즌 빅 사이닝은, 감독한테는 완전히 독약이야. 성적이 나와도 새로 들어온 거물 선수빨 취급일 테고, 반대로 부진하면 감독은 뭐 하는 거냐고 까일 테니까. 그러다 혹시라도 선수 통제에 실패하면···.”

“그땐 가루가 되도록 까이겠군요. 옷 벗어야 할 만큼.”

“맞아. 그게 감독 목숨이 파리목숨 취급인 이유지.”

프레스팀의 기대주는 참담한 표정이었다. 아벨의 신랄한 비판 때문에. 게다가 내가 알기로, 원래 군기는 아벨보다 애니가 훨씬 빡세게 잡는 편이니, 미팅 끝나면 아주 혼쭐이 날 것 같다.

아직 유망주니까, 당근도 좀 던져줄 필요가 있겠지.

“언론을 움직일 방법이라는 관점에서는, 꽤 예리한 의견이라고 봅니다.”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는지 기대주의 표정이 어둡다.

모쪼록, 기대주가 흑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두 글자만 바꾸면 기레기가 될 텐데, 십억짜리 기레기는 정말로 위협적일 테니까.

* * *

“그러니까 내가 잘해야겠지.”

구단주실에 찾아온 스로인 전담코치 델랍은, 가슴을 펴며 그렇게 선언했다.

델랍은 우리 코치진 중 가장 네임밸류가 높은 축에 속했다. 우리가 유소년일 때에도 현역이었고, 코치로서의 경력도 길다. 그리고 특유의 롱 스로인 또한 아주 유명하기에, 현시점에서는 감독 브라이언보다 급이 높은 스태프였다.

그래서 내심 걱정이었다. 혹시라도 그가 불만을 갖지는 않을까. 자기보다 어린 브라이언 밑에서 코치 노릇을 계속하는 건, 델랍에게 꽤 힘든 일이 되지는 않을까 하고.

정작 델랍의 반응은 호쾌했고, 사내다웠다.

“말했잖아. 계약기간 동안은 팀을 옮기지 않겠다고.”

일단 그런 약속을 하긴 했다. 구두 약속이라 딱히 기대는 안 했지만, 델랍 스스로에게는 중요한 의미였던 모양이다.

“게다가··· 1년간 겪어봤는데 모를 리 없지. 브라이언은 틀림없이 전술의 천재야. 감독 경험이 쌓이고, 선수단을 통솔할 관록이 붙으면 굉장해질걸.”

델랍은 턱을 쓸며 덧붙였다.

“문제는, 아직 경력과 관록이 없는 이 시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인데··· 가차 없고 냉혹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대들면 보란듯이 징계를 먹이는 건 어떨까?”

“그건 내부 결속을 다질 때나 써먹는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델랍보다 경력이 딸리는 코치가 브라이언을 무시할 때나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금 같은 시기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역시 감독이 새내기라서, 코치들이 기어오르다 징계를 먹었다는 모양새가 되니까.

“그보다는 한결같이 지지를 보내주시는 정도가 딱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델랍은 가슴을 탕탕 치며 선언했다. 남자는 한 입으로 두말 안 하고, 자신은 새 감독 브라이언의 지시를 충실히 따를 거라고.

뭐, 해외 팬들의 여론 개선에는 썩 도움 될 의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신입 코치 브라이언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될 것 같아서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다.

면담을 마친 델랍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물었다.

“그러고 보니, 로저스 감독님은 잘 지내시나?”

“네. 애들 축구 보시느라 여념이 없으실 거에요.”

* * *

“레, 바, 뮌을 부르는 거야. 첫 번째 프리시즌 때처럼!”

계속해보라는 시선을 던졌더니, 희주가 냉큼 부연했다.

“빅클럽이 모여들면 그것만으로도 이목을 끌잖아? 그 와중에 분투하는 선덜랜드의 모습을 보여주면, 새 감독 브라이언 씨에 대한 평가도 올라가지 않을까?”

나는 슬쩍 희주의 얼굴을 바라보고, 다음은 희주의 폰에 시선을 돌렸다.

“왜?”

“혹시 다미한테 전화했는지 궁금해서.”

희주가 구단주 비서로 꽤 유능해졌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긴, 원래부터 스케줄 조율 같은 사무업무 처리는 끝내주게 했었지만.

이제는 나름 안목도 생기고, 큰 그림도 그릴 줄 알게 된 희주를 바라보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는데, 마침 희주가 기분 좋게 웃고 있다.

“칭찬이지? 칭찬인 거지?”

반쯤은 극찬이지. 리미트리스 부사장과 비교해준 거니까. 그런데 마무리는 어떠려나?

“해외 빅클럽들 일정 확인하고, 미리 조율하는 중이야. 오빠가 고 신호만 주면 바로 추진할 수 있도록.”

역시, 마무리는 아직 조금 아쉽네.

“일단, 조금만 기다려 봐.”

그렇게 말하고, 나는 다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한국, 리미트리스 본사 응접실에서는 최다미가 직접 로저스 감독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원하시는 경기를 편안하게 보실 수 있도록, 공식 스태프 직함을 준비했어요.”

로저스는 최다미가 내민 명함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비록 앞장의 한국어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뒷면에는 영어로 되어 있어서 알아보기 편했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조직위원장이라고 쓰인 것 같은데.”

최다미가 사교적으로 웃었다.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디까지나 대회를 마음껏 둘러보시라는 뜻으로 준비한 거니까요.”

“그러면 그냥 일반 스태프도 괜찮았을 텐데.”

“에이! 저희 사장님의 은사이신데, 다른 사람 밑으로 넣을 수는 없죠.”

로저스는, 최다미가 꽤 강적임을 깨달았다.

태도는 나긋나긋하고 목소리는 상냥하지만, 정작 고집은 무척이나 세다. 하긴, 그녀가 작년 여름 유에파를 상대로 칼춤을 춘 사실은 로저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타입의 한국인은 쉽게 뜻을 꺾지 않는다는 걸, 로저스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로저스는 조직위원장 명함을 조용히 품에 넣었다.

“그나저나 축구화가 아주 많구려.”

“네, 참가자 전원에게 지급할 계획이라서요. 축구화가 없는 아이들도 있을 테니까요.”

“브랜드가 다채로운데.”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이번 대회 한정으로 네 군데 업체에 나눠서 주문했어요. 흙바닥에서도 쓸 수 있는, 튼튼한 축구화가 필요했거든요.”

“하긴, 이번에 보니 한국 학교들은 흙 운동장이 많더구려··· 하지만 대회는 잔디 구장에서 하지 않소?”

“신발을 받은 아이들이 평소에도 쓰길 원하니까요. 그리고··· 대회는 한국에서만 하는 게 아니죠.”

이번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가 열리는 나라들 중에서, 한국은 단연 최고의 선진국에 속한다. 그 외의 다른 나라들은, 경제력에서 한국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재능은 있어도 축구화는 없는 아이들도 적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로저스가 가까스로 깨달은 찰나, 다미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데 흙 운동장용 축구화는, 업계에서는 가장 저가 라인업, 싸구려 취급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단가가 좀 오르더라도, ‘아주 튼튼한 신발’이 필요한 건데.”

의미를 따라잡은 로저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올해만 네 업체를 고르셨군. 가장 평이 좋은 축구화를 골라, 내년부터는 한 곳에게만 발주하겠다고 통보했을 테니까··· 일을 참 잘하시는군.”

“감사합니다.”

“예전엔 썬의 여동생이 제일 수완이 좋은 줄 알았는데.”

“희주 씨도 일 잘하죠. 재능이 있을 거예요. 뭐니뭐니해도 구단주님 동생이라, 같은 피가 흐르니까요.”

“겪어보니 그 둘은 남매치고 성격이 퍽 다르더구려.”

“아, 눈치채셨나요?”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둘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선덜랜드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다. 마침 한국에서는 새 감독 브라이언에 대한 여론이 썩 좋지 않던 참이었다.

문득 흥미를 느낀 로저스가, 불쑥 물었다.

“만일··· 다미 씨가 선덜랜드 구단주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 같소?”

“저라면, 프리시즌 컵 대회를 하나 만들죠.”

최다미는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술술 대답했다.

“리미트리스 컵이 제일 좋겠고, 안 되면 다른 회사 협찬 받아도 그만이죠. 그리고 빅클럽 세 개쯤 초청해서 4강 구도를 맞추고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로저스는 최대한 태연하게 물으려 노력했다.

“컵 대회라고 해도, 공식전은 아니잖소. 그러니 프리시즌 친선 경기와 다를 게 없을 텐데?”

“프리시즌 친선 경기는 서로 힘 빼고 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명분이 필요하다고 봐요. 공식 경기는 아니라도, 나름 힘주고 싸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명분이요.”

“그랬다가 이기지 못하면 역풍이 불 텐데?”

“일단은 프리시즌이니, 접전만 해도 앞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포장할 수 있겠죠. 아니면 네임밸류에 비해 비교적 해볼 만한 상대를 초청하는 것도 방법인데, 구체적으로 어느 팀이 좋을지는 모르겠네요. 축구는 잘 몰라서요.”

“···축구는 잘 모르신단 말이지.”

로저스가 낮게 웃었다. 이희성이 마음 편히 축구단 운영에만 몰두할 수 있는 원동력을 알 것 같아서였다.

축구를 잘 모른다는 최다미의 말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가 열리는 국가를 정할 때, 피파랭킹이나 월드컵 진출횟수 같은 것으로 줄을 세운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잘 모르는 분야인데도 이 정도로 대응할 수 있는 건가. 썬은 좋은 파트너를 가졌군.’

정작 최다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전부 저희 사장님한테 배운 건데요··· 아, 잠시 실례할게요.”

자신의 전화에 떠오른 발신자의 번호를 향해, 최다미는 무척이나 다정한 시선을 건넸고, 잠시 후 달콤한 목소리가 리미트리스 응접실에 울렸다.

“보이스피싱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제 생일을···.”

잠시 후 최다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프리시즌 컵 대회 스폰서요? 네, 즉시 준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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