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36화 (236/422)

236화 헬로, 굿바이 (3)

출근을 앞둔 마일즈의 표정은 어두웠고, 안색은 그와는 대조적일 정도로 창백했으며, 눈 주변은 퀭했다.

‘마른 체형만 아니었으면 딱 판다 같았을 텐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브렌든은 오랜 이웃을 향해 우호적인 미소를 보냈다.

“밤에 힘들었나 봐.”

“어··· 아들놈이 너무 기운차서.”

마일즈가 멍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좋은데, 너무 행복한데··· 근데 잠을 못 자겠어. 인간은 원래 야행성이었던 건가?”

갓난아기는 당연하게도 밤낮의 구분이 없이 울어댄다. 기저귀 이슈부터 젖 달라는 요구까지. 그에 따라 부모의 밤잠도 당연히 없어진다.

덕분에 며칠간 수면 부족에 시달린 마일즈는, 아침부터 아주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그래서, 아서는 건강한가?”

“누가 아서야.”

수잔의 출산 직후, 마일즈는 브렌든의 드립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소식을 전해 들은 핫도그 사내와 맥주집 사장은 사이좋게 실소했다.

이후에도 브렌든의 드립은 계속 이어졌다. 예를 들면, 아들 이름을 ‘아서’로 짓자는 식이었다.

[브리튼 왕족도 아니고 그건 좀···.]

당연하게도 브렌든이 제안한 이름은 곧바로 기각당했다. 그리고, 사연을 알게 된 마일즈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은 덤이었다.

마일즈네 아기의 이름이 이미 크리스토퍼 우드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브렌든은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소식은 못 들었겠군.’

슬쩍 알려주려는 찰나, 마일즈가 먼저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아 맞다. 브렌든. 이거 좀 보게.”

브렌든은 내심 감탄하게 되었다. 역시 마일즈, 선덜랜드 골수팬답게 이런 상황에서도 정보에 빠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3초면 충분했다. 마일즈의 폰 화면에 올라온 건 아기 동영상이었기에.

선덜랜드 유니폼을 모티브로 한 아기 옷을 입고, VIP용 티타늄 시즌권을 기운차게 흔드는 아서··· 아니 크리스의 모습을 바라보며, 브렌든은 낮게 웃었다.

‘벌써 시즌권 계승 들어갔구만.’

잠시 후, 재빠르게 표정을 고친 브렌든이 본론을 꺼냈다.

“프리시즌에 조촐하게 컵 대회를 열겠다던데···.”

“누가?”

“선덜랜드가.”

평소였으면 나오지 않았을 대사였다.

마일즈는 브렌든보다 훨씬 오랫동안 선덜랜드 팬이었고, 구단 소식을 브렌든보다 먼저 접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혹시 뉴스를 늦게 들었더라도, ‘누구’인지 물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당연히 ‘선덜랜드’이기에.

‘이거, 밤에 어지간히 고생한 모양이군.’

한발 늦게 마일즈가 눈을 깜빡였다. 마치 낡은 형광등처럼.

“누구를 데려다가?”

“바, 뮌, 인.”

약 10초 뒤, 마일즈의 환호가 게이츠헤드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 * *

- 그래서, 선덜랜드가 열겠다는 프리시즌 컵 대회 이름이 뭐임?

ㄴ 프리시즌 컵.

ㄴ 장난하지 말고, 이름이 뭐냐니까?

ㄴ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이름이 프리시즌 컵임.

- 한 가지는 확실하네. 투자의 신은, 이름 짓는 데는 진짜 소질 없다는 거.

ㄴ 본업만 봐도 네이밍 센스 견적 나오잖음. 투자사 이름이 리미트리스인데.

- 내가 볼 때는 분명히 처음에 위너 컵 같은 걸로 지으려다가, 위너스 컵하고 겹쳐서 못 했을 거야. 그래서 부랴부랴 프리시즌 컵이라고 지었겠지.

어떻게 알았지? 혹시 스파이인가? 아니면 독심술사?

개인적으로는, 출생의 비밀이 가장 의심스럽긴 한데··· 알고 보니 내 여동생이었다는 식으로.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희주가 펄쩍 뛴다.

“나 아니야. 안 흘렸어! 애초에 나는 테슬라 컵을 밀었잖아?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없고.”

“테슬라 컵은 너무 아우디 컵 의식하는 것 같아서 안 돼. 가뜩이나 대회 포맷도 비슷한데 말이지.”

“그래도 프리시즌 컵은 좀···.”

희주의 눈동자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사춘기 때에도 이런 눈을 하진 않았던 것 같아서, 나는 슬쩍 혀를 찼다.

“시끄러워. 흥행만 잘되면 이름이 무슨 상관이야.”

대회의 흥행에는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썼다. 일단 참가 조건을 선덜랜드 외에는 전부 해외 리그의 우승팀으로 맞췄다. 그래서 바르샤, 뮌헨, 인테르가 참전하게 된 거고.

그런데 이희주, 너는 뭐가 그리 불만이라 여태 볼에 심술딱지를 덕지덕지 매단 거냐? 프리시즌 컵이 뭐 어때서.

“아니, 그게 아니고···.”

희주가 곧바로 자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언제나처럼 SNS의 반응이 가득했다.

* * *

[한편 선덜랜드는, 이번 프리시즌 컵의 중계권료는 전액 우승팀 상금으로 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준우승과 3위 상금은 우승팀 상금을 기준으로 정해지며, 해당 상금은 대회 스폰서 리미트리스가 지급할 계획이다.]

선덜랜드의 발표로, SNS는 이미 폭발 직전의 상태였다.

- 단판 토너먼트에 3위가 있어?

ㄴ 3, 4위전 하겠다는 소리지. 1위부터 4위까지 확실히 줄 세울 거라고.

ㄴ 엄청 세게 나왔네!

- 이렇게 판 키워 놓고, 혹시 선덜랜드가 꼴지 하면 어떻게 되는 거임?

SNS 반응을 살피던 자칭 축구 전문 인플루언서, @김치_워리어가 내뱉듯이 혼잣말을 했다.

“뭐긴 뭐야. 개망신 오브 개망신이지.”

잠시 후 다른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ㄴ 아마 뉴캐슬어폰타인에서 밤새 불꽃놀이 할 듯? 이번에 우승 퍼레이드 때려맞은 뒤통수가 아직 얼얼할 텐데.

상상만으로도 선덜랜드 팬으로서는 치가 떨릴 이야기에, @김치_워리어는 입술을 꾹 깨물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차라리 시원하게 발리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그래야 정신 차리고 지금이라도 감독 바꾸지.

ㄴ 맞아. 어설프게 2, 3위 해버리면 골 아프다.

이후 곧바로 고지전이 펼쳐졌다. 어떻게 팀 서포터가 4위 하라는 소리를 하느냐며 광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로 현지 팬들이었다.

반면 @김치_워리어를 비롯한 해외 팬. 지금이라도 빨리 감독 바꾸는 게 낫고, 그러려면 차라리 4위가 괜찮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때, 슬쩍 새로운 내용이 올라왔다.

- 상금이 걸렸다는 게 고무적이지 않아요? @forever9mysun

또 축알못들이 설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김치_워리어는 천천히 타이핑을 시작했다.

ㄴ 뭐가 고무적이야. 우리 홈에서 남의 팀 잔치 치르고 돈까지 챙겨주게 생겼는데?

ㄴ 우리 구단주 별명 잊어버렸어요? @forever9mysun

“투자의 신이지.”

혼잣말하며, 그는 타이핑을 계속했다.

ㄴ 일단 축구의 신은 아니잖아. 그리고 공은 둥글고, 상대는 너무 강해. 그런데 중계권료까지 상금으로 걸어? 이거 너무 리스키하지 않느냐는 이야기인데. 도박수잖아?

* * *

“오빠, 표정이 꼭 영화배우 같은데···.”

장르는 스릴러, 배역은 살인마 같다는 뜻이겠지. 나도 안다. 참고로 희주 너는 신데렐라에 나올 표정이고. 배역은 당연히 심술 맞은 계모로.

이런 소리를 보고도 웃음이 나오기에는, 우린 이 팀과 너무 깊은 사랑에 빠진 상태였다.

그래도 참을 수는 있다.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긴 해도, 이 정도는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거든.

만일 브라이언의 능력에 해외 팬들이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면 굳이 이런 이벤트를 열 필요는 없었겠지.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나는 애초에 질 생각도 없고, 손해 볼 생각도 없었다.

이번 프리시즌 컵에는 타 리그 우승팀을 불렀다. 바꿔 말해 이 팀들은, 전부 챔스 1포트를 차지한 팀들이다.

그리고 우리도 챔스 1포트고.

시즌 초에 열릴 챔스 조별리그에서는 절대로 만나지 않으니 서로 부담 없는 연습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16강 토너먼트에서는 다시 만날 확률이 높으니, 챔스를 앞두고 우리 팀의 위치를 확인하기에도 적당하다.

이 정도면 돈을 써서라도 데려와야 할 상대인데, 하물며···.

“칠만 석 경기장 입장료는 전부 선덜랜드 수입이라는 게 포인트겠죠, 갑부 오라버님. 그리고 상금을 거는 주체는 리미트리스고··· 사람들은 왜 그걸 모르는 걸까.”

눈치가 꽤 빨라진 희주에게서 시선을 떼며, 나는 그 아래쪽을 흘끗 바라봤다.

ㄴ 맞아요. 축구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상금 같은 건 어디까지나 돈 문제잖아요? 다시 말하지만, 선덜랜드 구단주는 투자의 신이고요. @forever9mysun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도 있는 모양이네.”

내 계산상으로는, 우리가 4등으로 밀려나도 건질 게 있다. 하물며, 한 번만 이기면 최소 2등이 확보되는 조건이다.

도박수는 도박수라도, 무조건 남는 도박이다.

* * *

“세간에선 그렇게 말한다. 이번 프리시즌 컵은, 선덜랜드가 도박수를 던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이 자리를 맞아 너희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주위를 휙휙 둘러보며, 브라이언이 목에 힘을 주었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에휴, 감독 되고도 어째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

샐리의 싸늘한 반응을 시작으로, 스태프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데자뷔마저 느껴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브라이언은 또다시 침통하게 고개를 떨궜다.

기분 탓인지 어째, 카메라도 아래쪽으로 조금 처진 것 같다.

브라이언이 한숨을 내쉬는 사이, 샐리가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감독님, 이래서 장면 건지겠어요? 감독 자리에 어울리는 비범한 멘트를 좀 쳐 봐요.”

- 그냥··· 두 분은 평소대로 하시면 됩니다.

촬영팀의 목소리에서 어쩐지 씁쓸함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평소처럼 그냥 전술 이야기나 하지.”

“그러시죠. 우리는 어차피 다른 걸로는 분량 뽑기 글렀으니까요···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전술 이야기 해도 되나?”

“어차피 이거, 나중에 검토하고 편집 거칠 거야. 그렇죠? 편하게 해도 되죠?”

- 물론입니다, 감독님.

촬영팀의 목소리에서는 살짝 체념까지 느껴졌지만, 브라이언과 샐리는 오히려 안도했다. 아무튼, 두 사람은 축구밖에 모르는 축구광 전술가였으니.

“대진표 나왔던데, 첫 경기가 하필 바르샤던데요.”

“예상은 했어. 우리 브로 대진운은 보통 나쁜 게 아니거든. 가만 보면, 가장 피하고 싶다고 생각한 상대를 만나더라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브라이언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도 지금은, 넘보지 못할 상대는 아니지만.”

4년 전의 프리시즌에 만났을 땐, 무려 5-0으로 참패했다. 심지어 두 팀의 경기력만 봐서는 점수가 더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3부 리그 팀이 천하의 바르샤 상대로 겨우 다섯 골밖에 안 내줬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라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선덜랜드는, 그 당시와는 아주 다른 팀이다.

그러자 샐리가 웃었다.

“방금 표정 되게 좋았어요. 이젠 좀 감독 같은데요?”

- 그러게요. 좋았는데··· 일단 분석팀장님 멘트는 쳐내겠습니다.

* * *

[프리시즌 컵 1차전, 선덜랜드 대 바르샤]

바르샤 선수들과 ‘축구의 신’이 시티 오브 선덜랜드를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 도시는 변함없었다. 물론 완전히 기억 속의 풍경과 똑같았던 것은 아니다. 군데군데 빌딩이 올라오기도 했고, 한창 공사 중인 지역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4년 전보다 훨씬 번화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축구선수의 관심은 그런 부분이 아니다. 도시를 뒤엎은 유니폼의 색, 경기 시작 전부터 거리를 메운 사람들의 함성 같은 것들이 선수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요소였다.

그렇기에, 선덜랜드는 4년 전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축구의 도시였다.

‘드레싱 룸도 마찬가지고···.’

축구계에서 원정 드레싱룸에 장난질하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었다. 선덜랜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4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벽면에는 일부러 오목거울을 썼고, 정중앙에는 가슴 높이까지 올라오는 최고급 대리석 테이블을 놓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전술 보드는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 두었고, 벽면 곳곳에는 레플리카를 걸었으며, 어딘가에선 바르샤 응원가가 은은하게 흘렀다.

이 정도면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환대다.

‘다른 것들은 어떨까?’

하프라인 너머 보이는 선덜랜드 선수들의 얼굴에서, 메시는 4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전반적으로 무기력하던, 딱 3부 리그 수준이던 선수들 속에서, 꿋꿋하게 ‘축구를 하던’ 미드필더가 있었다. 그 선수는 이제, 선덜랜드 주장이다.

실점할 때마다 그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던 골키퍼, 그리고 때때로 재미있는 위치에 나타나던 19번이나, 슛 하나는 날카롭던 22번도 건재했다.

이들은 전부 4년 전의 친선경기에서 뛰던 선수들이었다. 나머지 일곱 명은, 전부 초면이었다.

‘많이··· 달라졌으려나?’

달라진 게 있다는 걸, 안다. 예를 들면 자신의 기량. 전성기에 미치지 못함은 물론, 4년 전의 모습과도 다르다.

[약속합니다. 그리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약속으로부터, 오늘의 재회까지는 딱 4년이 걸렸다.

선덜랜드가 무척 서둘렀음을 안다. 3부 리그 팀이던 그들이, 연속 승격을 거쳐 챔스에 진출하기까지 겨우 4년이 걸렸을 뿐이니 이 정도면 오히려 빠르다고 해도 좋다.

그래도, 4년이라는 세월은, 축구의 신이 가졌던 운동능력을 상당 부분 빼앗아 갔다. 지금의 그는, 슬슬 어떤 모습으로 은퇴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나이가 되었다.

바르샤와의 계약이 끝나면 1, 2년쯤 미국에서 뛰다가, 고국에서 처음 데뷔했던 뉴웰스에서 은퇴하는 게 가장 좋은 모양새일 것이다.

‘그 외의 다른 선택은···.’

그는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4년 전 그랬던 것처럼, 오늘은 진짜 축구를 보여줘야 하는 날이었다. 이곳에 모인 칠만 명 팬들에게.

그리고, TV로 지켜볼 전 세계의 축구팬에게 증명해야 한다. 이제 전성기의 기량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더 뛸 수 있다고. 여전히 블라우그라나의 10번에 어울리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귀를 찢는 함성 속에서 축구의 신이 천천히 센터서클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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