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37화 (237/422)

237화 헬로, 굿바이 (4)

우리가, 축구를 볼 수 있을까?

선덜랜드의 골수팬, 우드 부부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왜냐면 그들의 아들, 크리스가 눈 붙이는 중이기 때문이다.

원래 어린아이는 사랑스럽고, 부모 눈에는 한층 더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리고 쌕쌕 소리를 내며 잠든 아기는 정말, 정말로 사랑스러운 존재다.

그 사랑스러운 아기가··· 만일 잠에서 깬다면?

부모로서는 참으로 끔찍한 시나리오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육아에 시달리던 초보 부모 마일즈와 수잔에게는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은 상황이 된다.

그래서 마일즈는, 평소보다 25데시벨쯤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축구를 볼 수 있을까?”

수잔 또한 낮게 속삭였다.

“우리만 조용히 하면 가능성은 있어요. 마침 옆집이 둘 다 비었으니까요.”

브렌든은 물론, 빌리 노인마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향했다. 그러니 혹시 선덜랜드가 골을 넣더라도 온 동네가 시끄러워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마일즈와 수잔, 두 사람이 모두 조용히 할 때의 경우지만···.

“소리 안 내고 볼 자신은?”

“없어요.”

시무룩하게 리모컨을 집어 들고 TV를 끄려는 마일즈에게, 이번엔 수잔이 물었다.

“축구 안 보고 버틸 자신은요?”

“없어.”

고뇌하던 수잔이 나름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눈을 빛냈다. 잠시 후 그녀는 살금살금 침실로 다가가, 베개를 들어 올렸다.

‘설마?’

마일즈는 침을 삼켰다.

이곳은 영국, 도일과 크리스티의 나라이자 추리물의 본고장이다. 그리고 베개로 피해자를 짓눌러 소리 못 내게 막는 장면은 고전 추리물에 수없이 등장했다.

‘에이, 아무리 축구가 보고 싶어도 설마 수잔이···.’

[마일즈 자네, 한동안 조심해야 해. 와이프 말 잘 듣고, 기분 풀어주고··· 산후 우울증이라는 단어, 들어봤지?]

브렌든의 이야기가 귓가에 생생하다. 그래서 마일즈는 잔뜩 긴장하며 침실 쪽을 응시했다.

잠시 후, 환한 미소와 함께 수잔이··· 베개 아래에서 슈슈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읍읍읍, 읍읍읍읍?”

뭐라고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축구 보다가 무심코 소리를 지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산후 우울증 같은 소리 하네. 브렌든 이 자식··· 오기만 해 봐라.’

마일즈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고, 반성의 의미를 담아 옷장에서 양말을 꺼내 입에 물었다.

[선덜랜드 대 바르샤, 바르샤 대 선덜랜드의 프리시즌 컵 1차전, 전반은 바르샤의 선축으로 시작하겠습니다!]

* * *

프리시즌이지만, 단순한 친선경기는 아니다. 적어도 잭은 그렇게 생각했다.

죽도록 뛰어야 할 이유는 넘쳤다.

상대 바르샤는, 4년 전 프리시즌에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초토화한 팀이다. 그리고 선수 커리어에 남지는 않을지라도, 이번 경기는 엄연히 상금까지 걸린 대회였다.

게다가 선덜랜드의 새 감독 브라이언의 역량이 시험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눈이 마주치자 메시가 빙긋 웃었다.

“이제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살살 부탁해.”

“프리시즌임다. 서로 다칠 만한 경합은 하지 않을 검다.”

“그거 고마운데.”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는 몇 번이나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땐, 유령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메시의 라 크로케타는 그만큼 날카롭다. 간결한 동작만으로, 순간적으로 수비의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4년 전 프리시즌, 선덜랜드가 바르샤에 완패한 날도 그랬다. 메시가 전반전에만 2골 1어시스트를 뽑아내던 날, 잭은 완벽하게 따돌려졌다.

‘그날은 거의 장난감 취급이었지. 그때와는 다르겠지만··· 나도, 그리고 저 사람도.’

1차전이 결정된 이후, 분석실에 틀어박혀 수도 없이 영상을 돌렸다.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다. 메시의 순발력도, 스피드도, 4년 전과 똑같지는 않다는 걸.

실제로 샐리는 4년 전의 경기 영상과 최근의 메시가 동시에 나오도록 편집해, 속도 차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기도 했었다. 4년 전, 다섯 골 차로 참패했던 선덜랜드 선수들의 사기에는 큰 도움이 되는 영상이었다.

하지만 샐리의 영상은, 현실 인식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예전 같지 않기는 무슨···!’

공을 건네받으니, 전해지는 아우라가 남다르다. 예전 차비 상대로도 한 번 경험했지만, 눈앞의 상대는 그와도 격이 달랐다.

한마디로 빈틈이 없다.

“안 와?”

느긋하게, 마치 산책하듯 다가오는 메시를 바라보며, 잭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설프게 달려드는 순간 곧바로 돌파당할 테지만, 그렇다고 주장이 엉덩이 뒤로 뺀 채 쩔쩔매는 꼴을 보이면, 팀의 사기가 곤두박질친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팀의 사기와 자신의 자존심··· 선덜랜드의 주장에게는 아주 고르기 쉬운 문제였으니.

잭이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블라우그라나의 10번이 가속했다.

* * *

[메시를 90분 내내 침묵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경기를 준비하며, 브라이언은 그렇게 단언했었다. 그리고 평소였다면 틀림없이 한마디 했을 샐리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블라우그라나의 10번이 가진 존재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우선, 약점을 노려야지.]

기본적으로 축구의 신은 활동량이 적은 선수로 알려져 있는데, 나이가 든 요즘은 더욱 심하다. 어태킹 서드에서 보여주는 움직임은 여전히 날카롭지만, 찬스가 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뛰어다니는 주장이 있으니까.]

잭의 개인 기량이 메시를 일대일로 막아낼 정도는 되지 않지만, 특유의 활동량을 살려 경기장을 넓게 쓴다면, 메시에게 향하는 패스루트를 상당 부분 억제할 수 있다는 게 브라이언의 포인트였다.

포백라인과 미드필더는 블록을 만들고, 잭 혼자서 포지션을 무시한 채 자유롭게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메시에게 패스할 바르샤 선수들을 압박하는 식으로.

비록 킥오프 직후엔 메시에게 보기 좋게 뚫렸지만, 잭은 조금도 기죽지 않은 것처럼 활발하게 경기장을 누볐다. 그리고 우리 선덜랜드 또한 점차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브라이언 씨 전술, 잘 먹히나 봐.”

“그러게.”

경기 초반, 바르샤의 공세를 잘 버텨낸 우리는 전반 20분쯤부터는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속된 말로, 상대를 하프라인 안쪽에 가둬 놓고 패는 중이었고, 천하의 바르샤가 수세에 몰려 수비에 급급할 정도였다. 아무리 프리시즌, 주전 일부를 뺀 바르샤라지만··· 이런 장면은 기대도 안 했는데.

심지어 선제골도 우리가 가져왔다. 박스 바로 앞, 바스티아노의 그림 같은 강슛으로.

[선덜랜드 1 - 0 바르샤]

내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떠올랐고, 우리 팬들의 열광 또한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보통 사건은 그럴 때 일어나는 법이다.

바르샤 수비가 길게 걷어낸 공이, 아주 우연히 메시에게 닿았다.

그때까지도 우리 팬들의 함성은 멈추지 않았다. 축구의 신은 전방에 혼자 고립된 상태였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에디와 이고르, 하퍼가 모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고르는 거짓말처럼 슛 코스를 열어 주었다. 마치 제 발로 비켜선 것처럼. 그리고 다음 순간, 공은 우리 골네트 안에 들어와 있었다.

“어?”

흔들리는 네트가, 눈앞의 풍경이 착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중이었다.

[선덜랜드 1 - 1 바르샤]

* * *

“어··· 지금, 뭘 본 거지?”

빌리 노인이 눈을 깜빡였고, 핫도그 사내는 자꾸만 눈을 비볐다. 그리고 브렌든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뭐긴요. 마술쇼죠.”

언더독 출신이던 축구팀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선덜랜드는 수비가 강한 팀이었다. 1부 리그에 올라온 지금도 변함은 없었다.

지난 시즌, 선덜랜드가 멀티골을 내준 경기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심지어 맨시티나 첼시, 리버풀이 상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물며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선덜랜드는, 정말로 철옹성과 같았다.

“관중석에서 내려다보기에도 참 짜임새 있는 수비였는데···.”

“축구의 신의 눈에는 작은 빈틈이 보였던 거겠지. 혹은, 강제로 만들어냈던가.”

“후자일 겁니다. 숄더 페인트 두 번에 이고르가 완전히 속았으니까요.”

한숨짓는 브라더스에게, 빌리 노인이 물었다.

“4년 전의 저 선수에게··· 정말로 2골 1어시스트밖에 안 내준 것 맞나? 그땐 3부 리그 팀이었다며.”

“맞습니다··· 그땐 메시가 45분만 뛰고 갔거든요.”

“오늘은 끝까지 뛴다던데··· 큰일이군.”

걱정이 태산 같은 빌리 노인을 향해, 브렌든이 불쑥 답했다.

“뭐, 눈이 호강한다고 생각해야죠.”

“뭐라고? 눈이 호강해? 너는 대체 어느 팀 팬이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거죠. 축구의 신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뛰겠으며, 하물며 선덜랜드에 언제 또 오겠어요. 챔스에서 딱 만나는 우연은 기대하기 힘든 거 아시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브렌든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빌리 노인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러자 이번엔 옆에서 핫도그 사내와 맥주집 사장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원래, 최고의 눈호강은 항상 접전에서 나와요. 상대 팀도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뜻이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응원하는 팀의 승리로 끝나는 게 축구판에서는 최고의 결말입니다.”

* * *

“읍읍, 으으으읍!”

“읍, 읍읍, 읍!”

선덜랜드의 실점에, 누구보다 선덜랜드를 응원하는 부부는 입을 틀어막은 채 안타깝게 신음했다.

그때였다.

“꺄륵.”

부부의 등 뒤에서, 크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잠에서 깬 모양이다.

이제 곧 빼액, 하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게 뻔해서 부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찔끔한 다음,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눈을 크게 뜬 아들, 크리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안 우는데?”

“그러게요?”

조심스럽게 다시 확인했지만, 크리스의 시선은 아무래도 마일즈의 어깨 너머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뭔가 요구하는 듯, 손으로 매트를 탁탁 쳤다.

혹시나 해서 두 사람이 기저귀를 확인해보니 토일렛 이슈는 아니었고, 젖병에도 반응이 없었다.

“딸랑이, 딸랑이 줄까?”

브렌든이 선물한 선덜랜드 딸랑이를, 크리스는 받자마자 홱, 집어 던졌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던 선덜랜드 티타늄 시즌권 또한 마찬가지 처지가 되었다.

줄기차게 매트를 탁탁 내리치는 크리스를 바라보던 수잔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혹시··· TV 가리지 말고 비키라는 뜻 아닐까요?”

마일즈가 조심스럽게 옆으로 물러나자, 크리스가 방긋거렸다.

“꺄륵.”

“어··· 이러면 양말 안 물어도···.”

“되··· 겠죠?”

세 식구가 혼연일체가 되어 응원을 쏟아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올라가! 더 뛰어! 아기가 보고 있단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응원은, 급기야 부부 둘이 사이좋게 선덜랜드 특유의 챈트를 함께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Sunderland 'til I die.

그 모습을, 응원을, 그리고 경기를···.

태어나면서부터 선덜랜드였던 아기가,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 * *

이후 경기는 접전으로 흘렀다. 메시의 추가골로 바르샤가 역전하는가 싶더니, 선덜랜드가 곧바로 동점골을 넣으며 따라잡는 식으로.

[선덜랜드 2 - 2 바르샤]

그렇게 90분간 팽팽했던 경기는 마침내 승부차기까지 향하고 말았다.

* * *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가득 메운 함성 소리를 들으며, 축구의 신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소문처럼, 선덜랜드는 승부차기에 귀신같이 강했다.

1번 키커였던 선덜랜드 주장은 오늘도 실축하지 않았고, 선덜랜드의 골키퍼는 다섯 번 모두 코스를 맞췄다. 그중 두 번이 선방으로 이어지면서, 프리시즌 컵 결승 티켓은 선덜랜드의 손에 돌아갔다.

다시 말하면, 천하의 바르샤가 1차전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변명거리는 넘치도록 많았다.

유명 빅클럽이 늘 그런 것처럼, 바르샤의 프리시즌 일정은 굉장히 빡빡했다. 스타팅으로 주전 전체를 내보낸 선덜랜드와 달리, 바르샤는 로테이션을 돌려야 했다.

축구의 신 자신도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거취도 고민이고, 소속팀과의 재계약 문제가 한창 이야기 중인 것도 그렇고, 그리고, 그리고···.

‘아니, 그래도 결과는 결과지.’

애초에 4년 전에는 오늘보다 훨씬 더 힘을 뺀 스쿼드로도 가볍게 이겼던 상대였다. 그만큼 자신의 기량은 하락했고, 상대는 강해졌다.

그때였다.

“헬로.”

축구의 신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볼보이 조끼를 입은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소년의 볼은 상기된 채였고, 숨도 가빴다. 그 모습 자체는 딱히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축구의 신을 마주한 축구소년들이 예외 없이 보이는 모습이었기에.

그래서 메시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물었다.

“사인 필요하니?”

특이한 일은 그다음이었다.

“네, 니오, 그러니까··· 사인도 갖고 싶은데, 궁금한 게 있어서요.”

잠시 망설이던 소년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득점하실 때, 그러니까··· 죄송해요.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잠시 소년을 응시하던 축구의 신은, 짧게 물었다.

“니어포스트?”

“네? 네!”

“그렇구나. 너한테도 ‘그게’ 보였구나.”

입가에 저절로 떠오른 미소를 딱히 감추지 않았지만, 자세히 부연하지도 않았다. 그 루트가 보이는 아이라면, 언젠가 다른 것들도 자연스레 보게 될 테니.

그래서 축구의 신은 그냥 그렇게만 대답했다. 니어포스트는, 최선의 루트가 아니었다고.

“감사합니다.”

“천만에··· 선덜랜드 유소년이니?”

“네.”

대답하면서, 소년은 볼보이용 조끼를 벗었다. 그러자 아래에 받쳐 입은 선덜랜드 유니폼이 드러났다. 응원용 레플리카가 아니라, 정식 유소년 유니폼이.

번호는 77번이었다.

‘이 팀은 재미있는 재능이 참 많군. 경기에 뛰었던 99번만 해도 참 좋은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유소년에서는 이런 천재까지 키우고 있었나.’

축구의 신은 낮게 웃었다. 그리고 소년의 유니폼 아래쪽을 잡아당겨, 슥슥 사인했다.

“사인 고맙습니다! 굿바이.”

작별을 알리는 단어에, 축구의 신은 조금 다른 인사로 답했다.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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