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47화 (247/422)

247화 다시 뛸 수 있을 때까지 (2)

한참을 머뭇거리던 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정말로 잘한 걸까요?”

유소년팀 주장의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선덜랜드 1군 주장은 곧바로 대답했다.

“잘했어.”

“역시 알고 계셨군요. 혹시나 했는데···.”

“전부 들었지.”

“테오 이 자식···.”

살짝 이를 가는 짐을 바라보며, 잭은 생각했다. 1차 출처가 리지라는 사실은, 절대로 밝히지 말아야겠다고.

대신 잭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선덜랜드는 다이빙하는 팀이 아니야.”

“역시 그렇죠?”

“응. 누군가는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팀의 주장은 항상 올바르게 굴어야 한다고 대답하면 돼. 팀의 다른 선수들은 전부 주장을 보고 배우는 거야.”

그러자 짐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하긴, 단장님이 전에 말씀하셨어요. 우리 선덜랜드가 팬서비스 좋은 팀으로 자리 잡은 건, 다 캡틴 덕분이라고요. 캡틴이 앞장서서 팬들을 챙기니까, 다른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사실 단장님도 캡틴이실 때 팬서비스 잘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짐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하긴, 소년 짐은 아카데미에 오기 전부터 페르난데스의 팬이었다.

“괜히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원정 준비 하셔야 할 텐데.”

짐의 말처럼, 선덜랜드 1군은 슈퍼컵 원정을 코앞에 둔 상태였다.

슈퍼컵은 챔스 우승팀과 유로파 우승팀이 맞붙는 대회로, 유럽의 시즌 시작을 알리는 대회였다. 이번에 선덜랜드는 유로파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한다.

슈퍼컵은 리그 1라운드 직후 열리는 편이었으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올 시즌에는 리그 2라운드 직후에 움직이게 되었다.

잭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괜찮아. 그럼, 우리는 이탈리아의 여자친구를 상대하고 올 테니···.”

‘이탈리아의 여자친구’는, 유벤투스를 가리키는 여러 별명 중 하나다. 이탈리아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축구 클럽이라는 의미가 담긴, 명실상부한 이탈리아 최강자를 부르는 칭호였다.

비록 지난 시즌 리그 우승은 인테르에 내주긴 했지만, 그 대신 챔스 우승을 차지했으니 실로 만만찮은 상대였다.

“네, 힘내세요!”

격려하는 짐을 바라보던 잭의 눈동자에 장난기가 떠올랐다.

“그동안, 너는 네 여친에게 잘하고.”

그러자 그라운드 안에서는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소년 골키퍼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 * *

[유에파 슈퍼컵, 유벤투스 대 선덜랜드]

올 시즌 슈퍼컵은 체코의 에덴 아레나에서 치러졌다.

에덴 아레나는 프라하가 자랑하는 경기장으로, 우리 에이스 마르틴의 고향이기도 하다. 덕분에 오늘 경기장 분위기는 우리에게 퍽 우호적이었다. 대충 절반쯤은 우리 홈이나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희주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여러모로 편안한데?”

그야 편안하겠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만큼의 설비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최고급 귀빈실이니까. 게다가 프라하는 단장이 손수 우리를 익스클루시브 박스에 안내할 정도로 환대해 줬거든.

게다가···.

“슈퍼컵은 대회 특성상 부담 없이 치를 수 있는 경기니까.”

유럽에서, 슈퍼컵은 보통 새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성 대회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잉글랜드 국내 대회로 한정하면, 커뮤니티 실드와 비슷한 느낌이다.

실제로 우리 코치진에게는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다. 혹시라도 우승하면 정말로 기쁘겠지만, 내 진짜 소망은 우리 선수들이 아무도 다치지 않고 슈퍼컵을 마무리하는 거라고.

이제 막 새 시즌이 시작했는데, 트로피에 눈이 멀어 죽기 살기로 뛰다가 누군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올 시즌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런 것치고는 우리 선수들은 꽤 비장해 보이는데.”

“선수들이야 당연히 죽기 살기로 뛰어야지.”

설령 팀 내부적으로는 우선순위가 낮은 대회일지언정, 선수들에게 대충 뛰라고 주문하는 경우는 없다. 차라리 후보를 내면 냈지.

하다못해 연습 경기 하나라도 대충 뛰지 않는 것이, 우리 선덜랜드의 운영 방침이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 이제는 팀을 떠난 로저스 감독이 만들고, 새로 팀을 맡은 브라이언이 이어나갈 선덜랜드의 축구다.

잠시 후 휘슬이 울렸다.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체코식 억양이 섞인 함성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와 똑같은 열기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덜랜드는, 전년도 챔스 우승팀에게 도전을 시작했다.

피차 수비적이지는 않은 경기였다.

유럽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성 매치라는 슈퍼컵의 특성도 있었거니와, 일단 전력상 유리한 유벤투스는 당연히 내려앉을 리가 없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도 득점이 필요했다.

비록 유벤투스의 세트피스에 연달아 두 골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곧바로 마르틴이 한 점을 추가하며 따라붙었다. 박스 바깥쪽에서의 그림 같은 감아차기였다.

[유벤투스 2 - 1 선덜랜드]

마르틴의 득점에, 경기장의 분위기가 단숨에 끓어올랐고, 프라하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Postav Se! Vzpružit se!

그렇게 시작된 경기장의 열기 속에서, 우리는 완전히 분위기를 뒤집었다.

축구의 신이 유벤투스 수비를 흔들었으며, 선덜랜드의 주장이 수시로 페널티 박스에 파고들었고, 바스티아노는 오늘도 이탈리아의 적으로 군림했다.

그 열기의 정점에서, 또다시 마르틴이 왼쪽 측면에 접근했다.

원래부터 마르틴은 탁월한 드리블러였다. 그에 더해, 오늘은 친정 팬의 뜨거운 성원까지 뒤따르는 중이었다.

게다가 우리 공격진에는 메시와 바스티아노, 요니, 해리슨처럼 위협적인 미끼까지 다수 포진된 상태였기에, 유벤투스 수비가 분산되는 효과도 있었다.

잠시 후 마르틴이 대담하게 박스 안쪽에 진입했고···.

“휘슬!? 페널티? 페널티야!?”

···희주의 외침에 호응하듯, 심판이 페널티 스팟을 손으로 찍었다.

경기장은 마치 폭발할 것처럼 뜨거워졌다. 유벤투스의 항의, 프라하 팬들의 함성으로.

그사이 익스클루시브 박스 한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방금 장면의 리플레이가 재생되는 중이었다.

이렇게 다시 보니 살짝 애매한 느낌이 들긴 한다. 만일 VAR을 돌린다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리플레이만 봐서는 아마 발이 걸렸다는 의견은 3할을 넘지 못할 것이다.

절반 정도는 페널티 킥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고, 어쩌면 2할 정도는 악질적이고 고의적인 다이빙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물론 마르틴이 프라하의 영웅으로 불리던 선수임을 고려하면, 팬심으로 1할쯤은 유리하게 판정하겠지.

옆에서 희주가 낮게 속삭였다.

“오빠, 만약에 오심으로 판명되면 어떨 것 같아?”

“그러면 PK 취소되는 거지.”

“하지만 심판 판정이 번복되는 일은 보통 없잖아?”

“없지는 않지. VAR도 있고···.”

파울당한 공격자 본인이 닿지 않았다고 증언할 경우, 페널티 킥은 당연히 취소된다. 그리고 희주도 이제 그 정도는 안다. 따라서 희주가 정말로 물어보는 건···.

만일, 마르틴이 PK를 취소한다면 어떨 것 같느냐는 질문이겠지.

“뭘 뻔한 걸 물어보고 그래.”

선덜랜드는 다이빙하는 팀이 아니다. 그리고, 첫 번째 슈퍼컵 트로피를, 오심으로 땄다는 말을 듣고 싶진 않다.

그러니, 박수를 보낼 것이다. 가장 크게.

잠시 후, 마르틴이 머리 위로 두 손을 교차하며 주심에게 다가갔다.

“VAR 필요 없다. 닿지 않았다. 나 혼자 넘어진 것.”

심판은 곧바로 페널티킥 선언을 취소했고, 스크린은 마르틴의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영웅처럼 당당하게 선 마르틴에게 쏟아지는 열렬한 환호, 프라하 팬들의 박수에 내 갈채를 더했다.

그에 호응하듯, 우리 선수들이 마르틴에게 다가갔다.

“잘했어! 잘 선택한 거야. 괜히 다이버로 낙인찍히면 커리어 내내 힘들어져. 진짜로 파울 당해도 그냥 넘어가는 수가 있거든.”

축구의 신의 조언에 이어, 주장 잭 또한 부드러운 미소를 보냈다.

“맞아. 우리 선덜랜드는···.”

“다이빙 팀 아니다. 풋볼 클럽.”

마르틴의 대답에 우리 선수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유일하게 퉁명스러운 선수는 에디였는데, 그에게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스포츠맨십도 좋긴 한데, 이대로 지면 개망신이지? 그러니까 내 말은···.”

“선덜랜드 한 골 더 넣는다?”

“놉. 팀이 아니라 네가! 한 골 더 넣으란 소리야. 패스할 테니까.”

“어시스트? 기대한다. 센터백 3주장.”

“···나 말고 해리슨이 패스한다는 뜻이었는데.”

이후 20분간 우리는, 지난 시즌 챔스 우승팀 유벤투스 상대로 시종일관 공세를 퍼부었다. 대등한 국면, 어쩌면 누군가는 압도하는 중이라고 평가할지도 모를 의욕 넘치는 공격이 이어졌다.

천하의 유벤투스를 주춤거리게 만든 20분이 지나고, 종료 직전 우리는 또다시 결정적인 찬스를 맞이했다.

바스티아노가 박스 부근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사이, 축구의 신이 페널티 라인을 넘어 침투를 시작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해리슨의 발이 휘둘러졌다.

“7번 마크해!”

유벤투스 수비진의 필사적인 추격에도 불구하고, 해리슨의 패스는, 축구의 신에게 향하지는 않았다.

공은 박스 왼쪽 측면의 마르틴에게 향했다.

“선덜랜드, 약속 지키는 팀, 주장한테 배움.”

마르틴이 히죽 웃으며 또다시 돌격했다. 그리고··· 프라하 단장의 입버릇처럼, 프라하인은 배신하지 않았다.

마르틴의 돌파는, 마치 축구의 신이 전성기에 보여준 모습처럼 위력적이었다. 이미 진영이 무너진 상태로 복귀하던 유벤투스 수비진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잠시 후 유벤투스의 골네트가 흔들렸다. 종료 직전, 마침내 우리는 경기를 원점으로 돌린 것이다.

[유벤투스 2 - 2 선덜랜드]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오늘 경기 중, 가장 큰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 * *

이후 경기는 연장을 지나, 승부차기로 향했다.

우리 선덜랜드가 자신 있어 하는, 11미터의 러시안룰렛으로.

그리고 서로 11번째 키커까지 가는 접전 끝에···.

[ (p) 유벤투스 2 - 2 선덜랜드]

···우리는, 유벤투스에게 슈퍼컵을 내주게 되었다.

* * *

돌아가는 비행기는 고요했다.

속으로는 다들 부글부글 끓었을지언정, 낙담하는 표정을 드러낸 선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 요니는 한창 스마트폰으로 유벤투스 온라인 스토어를 들락거리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에디의 시선을 잡아끈 모양이다.

“뭐 하냐?”

“유베 유니폼 사려고.”

요니의 무덤덤한 대답과 달리, 에디는 곧바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설마···!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하라더니··· 이 배신자!”

“무슨 참신한 헛소리야. 합류할 거면 유니폼을 왜 사? 이적하면 그쪽 팀에서 줄 텐데.”

“어? 그러네.”

에디가 눈을 깜빡거리는 사이, 이번엔 잭이 대신 물었다.

“그래서 유베 유니폼은 어디다 쓰려고?”

“클럽하우스 내 방에 걸어두려고. 현관 바로 옆에다가.”

“어··· 그 자리는···.”

“연습하러 나갈 때마다, 일과를 마치고 쉬러 돌아올 때마다 아주 잘 보이겠지? 그때마다 오늘을 생각할 거야. 나한테는, 갚아야 할 빚이 남아 있다고.”

요니가 차갑게 웃었다.

“더 큰 무대에서 갚아줄 때까지 걸어 두려고.”

그러자 에디가 팔을 뻗어 요니의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왜.”

“야, 그럴 거면 내 것도 같이 사자. 배송비 아끼면 좋잖아.”

에디의 이야기가 신호라도 된 것처럼, 여기저기서 똑같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내 것도.”

“나도 주문 좀.”

심지어 평소 다른 팀 유니폼이라고는 거들떠도 안 보는 잭마저 가세했다.

반드시 갚아줄 것이다. 선덜랜드 선수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했다.

* * *

비행기 안에서, 나는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리는, 다시 뛸 수 있을까?

그렇다. 이미 다들 뛸 준비를 마쳤다. 탈락의 아픔이 정말로 어제 내린 눈처럼 녹아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코칭스태프는 오늘의 기억을 한구석에 치워놓은 채, 주말에 있을 리그 3라운드 경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좌절하거나, 멈춰선 선수는 없었다.

새 시즌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 선덜랜드는 지난 몇 년간, 끝까지 발을 멈추지 않는 축구를 팀 컬러로 삼았다.

우리가 이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을까?

이 자리는, 세상에서 단 두 팀에게만 허락되는 무대다. 챔스 우승팀, 그리고 유로파 우승팀. 클럽 축구에서 가장 치열한 토너먼트 두 곳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승리자 두 팀만이 슈퍼컵에 온다.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챔스에 나가는 올 시즌부터는 특히. 이제 유럽 축구의 정점에 서지 않으면 다음 슈퍼컵에 출전할 자격조차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돌아올 거라고. 더 강해져서, 더 당당하게, 더 높은 위치에서.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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