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50화 (250/422)

250화 데이터로는 알 수 없는 것 (1)

<골은 최고의 거짓말이다 - 후안마 리요>

시즌 개막 이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그사이 챔스에서는 예선 플레이오프가 끝나, 본선 조추첨을 치르게 되었다.

조추첨을 맞아 주요 스태프가 브리핑 룸에 모였다.

“무슨 홈 파티야? 다들 간식을 챙겨 오고···.”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내는 희주에게, 샐리가 곧바로 대답했다.

“비서님 때문인데요.”

“그러니까, 널 생각한 거야. 아니면 네가 다과를 준비해야 하잖아.”

재빠른 수습에, 희주는 별다른 의문 없이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스크린에 이번 챔스 조별 1포트 팀의 라인업이 떠올랐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목록이다.

챔스 우승팀 유벤투스. 그리고 유럽 주요리그 우승팀 바르샤, 맨시티, 뮌헨, 인테르, 파리, 그리고 제니트가 나란히 서 있는 사이에 보이는 친숙한 엠블럼이.

1포트 : 유로파 우승팀 선덜랜드.

“이렇게 보니, 새삼 유로파 우승이 고마워지네.”

“우승 못 했어도 챔스는 나갔겠지만, 그럼 3포트 아니면 4포트였겠죠? 그랬으면 유벤투스, 레알, 라이프치히와 같은 조에 들어가는 결과도 산술적으로 가능했겠네요.”

설명만 들어도 끔찍한 라인업이다. 다들 치를 떠는 와중에, 루벤만 홀로 태연했다.

“사실 그 라인업도 괜찮지 않습니까? 솔직히 그 정도 조편성이면 누가 떨어져도 명예로운 죽음이죠.”

곧바로 샐리가 도끼눈을 떴다.

“야, 너는 벌써부터 떨어지는 소리나 하고 있어?”

“결과로부터 눈 돌리지 말라며.”

“어휴, 그냥 말을 말자.”

분통을 터트리는 샐리를 슬쩍 달랬다.

“뭐, 3포트였다면 그런 결과를 맞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유로파 챔피언이고, 당당한 1포트 팀입니다. 다른 1포트 팀과는 조별에서 안 만나고요.”

“네, 사실 2포트가 제일 관건이죠. 2포트에는 스페인 팀이 둘이나 붙어 있으니까요.”

2포트의 스페인 팀이라면 당연히 레알과 아틀레티코를 의미한다. 우리로서는 최악의 상대였다.

더 나쁜 건, 저들을 만날 확률도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조별리그에서 같은 국가 팀끼리는 만나지 않는 원칙 때문에, 스페인 팀들은 바르샤 없는 조에 배정될 것이다··· 그중 하나가 우리 있는 조란 말이지.

마침 옆에서 희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했으나, 아직은 조용하다. 모두의 힘을 모은 핫도그와 소시지들이 열일하는 중이라서.

세상에 저주 같은 미신을 믿고 싶지는 않지만, 희주의 입에는 다년간의 성과가 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인지, 리지가 웃으며 끼어든다.

“아 맞다. 비서님. 혹시 디저트는 안 필요하세요? 특제 롤리팝 캔디 사왔는데···.”

대충 보니 주먹만 한 게 아주 튼실해서, 깨물어 먹기도 힘들겠다. 옆에서 샐리도 거든다.

“비서님? 혹시 마실 게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특제 밀크셰이크를 사왔거든요. 풍부하고 크리미한 단맛과 리치한 텍스쳐가···.”

대충 여성 패션지에서나 쓸 것 같은 단어가 허공을 휘휘 떠다니는 사이, 나는 리지에게 슬쩍 물었다.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음, 대충 맛이 진하고 걸쭉하다는 이야기로 알아들으시면 될 것 같아요.”

“빨아먹기 꽤 힘들다는 뜻이군요. 그럼 충분합니다.”

그렇게 다 같이 합심하여 희주의 저주를 봉쇄한 끝에, 우리 조 2포트는 사흐타르로 정해졌다. 볼이 미어터지게 간식 먹는 누군가를 제외한 모두가 주먹을 움켜쥐고 환호했다.

“그렇지!”

“현실적으로, 2포트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대군요.”

누가 내 대진운 별로라고 했어? 나와 봐. 희주 입만 틀어막으니까 아무 문제 없잖아.

샐리가 웃었다.

“개인적으로는 도르트문트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도르트문트는 아주 강한 상대지만, 그 대신··· 3, 4포트의 귀찮은 친구들을 모조리 치워주는 효과가 있거든요.”

“하긴, 라이프치히나 글라트바흐는 어지간히 귀찮죠. 2포트에 섞여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팀들인데···.”

스태프들이 이야기하는 사이, 추첨은 계속 진행되었다. 우리 조의 남은 두 자리는, 세리에의 아탈란타와 분데스의 글라트바흐로 결정되었다.

[챔피언스리그 B조 : 선덜랜드, 사흐타르, 아탈란타, 글라트바흐]

- B조는 다른 의미로 죽음의 조 아니냐?

ㄴ 천하제일 ㅈ밥대전.

SNS 반응에, 줄곧 잠잠하던 희주가 격분했다. 다 마신 밀크쉐이크 컵을 단숨에 구겨 내던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 보아하니 먹기는 진작에 다 먹었는데, 조추첨 끝날 때까진 입방정을 자제했던 모양이다.

“아니, 유로파 디펜딩 챔피언 보고 뭐? 무슨 밥?”

희주의 항변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커뮤니티에서는 조롱이 이어졌다.

-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 봐. 1포트에서 제일 꿀상대가 누구임? 아, 제니트는 빼주세요.

- 제니트 꼭 빼는 조건임? 그럼 10년 차 맥켐즈가 보기에도 선덜랜드지.

“선덜랜드 분석팀장이 보기에도 우리가 편해 보이긴 할 거예요. 객관적으로 1포트에서는 우리와 제니트가 가장 처지는데, 제니트 뽑으면 러시아 원정 옵션이 따라오잖아요?”

“하긴, 작년 유로파 때 해봐서 아는데, 솔직히 두 번은 안 하고 싶긴 합니다.”

“그리고 1포트 선덜랜드는 리버풀과 첼시를 조추첨에서 쫓아내 주는 효과도 있죠. 솔직히 다른 팀들은 엄청 꿀이라고 생각··· 감독님, 왜 웃으십니까?”

루벤의 질문에, 브라이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1포트치고 만만하니 어쩌니 하는 평가는 신경 안 써. 내 업무는 어차피 상대를 때려잡는 거니까. 게다가 나만 웃는 거 아닌데? 브로도 웃고 있잖아.”

시선이 내게 쏠렸다.

“뭐, 나는 사실 우리랑 같은 조 뽑고 좋아할 사람들 모습이 눈에 선해서 웃은 거야. 그러다가 역으로 우리에게 털리면 얼마나 고소할까 싶어서.”

“오빠는 정말···.”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희주의 입은 찢어질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탄산이 터진다는 것처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리 스태프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로서는 나쁘지 않은 조추첨을 뽑았습니다. 3, 4포트 상대가 좀 빡센 느낌은 있지만, 2포트에 사흐타르를 뽑은 세금이라고 생각합시다. 그리고 우리와 만난 다른 팀들 운세가 어떤지는···.”

잠시 후 샐리와 리지, 그리고 루벤의 얼굴에 차례로 미소가 번지는 것을 확인하며,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곧 알게 해줍시다.”

* * *

내 선언을 알 리 없는 도박사들은 우리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일단 1포트 팀들 중에선 독보적으로 낮은 편이고, 2포트 팀의 절반쯤은 우리보다 높은 확률로 평가받았다.

덕분에 배당률이 꽤 짭짤하다··· 구단주만 아니었으면 선덜랜드에 돈 걸고 싶어졌을 만큼.

물론 모든 도박사들이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선덜랜드에 걸고 싶군요. 명색이 유로파 디펜딩 챔피언이고, 프리시즌에서 바르샤와 뮌헨을 차례로 잡아낸 팀인데··· 솔직히 지금 배당률은 너무 심했습니다.]

TV 화면에서, 말쑥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 열변을 토했다.

벤엄, 유명한 스포츠 겜블러 출신인데, 지금은 겜블에서는 잠시 손을 뗀 상태였다.

[데이터를 조금만 돌려 보면, 선덜랜드가 그렇게 나쁜 팀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게 될 텐데요.]

벤엄의 단언에, 옆에서 캐스터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실제로 베팅하실 의향은 있으신가요?]

[하하, 저는 이제 돈 못 걸죠.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왜? 무슨 입장?”

고개를 갸웃거리는 희주에게, 짧게 대답했다.

“곧 알게 될 거야.”

[아, 물론 그렇죠. 관계자시니까요.]

내가 선덜랜드에 베팅 못 하는 이유와 똑같지.

[벤엄 씨는 독자적인 데이터 분석 기법을 활용해, 스포츠 갬블러로 크게 성공하셨는데요. 그 노하우를 축구단 경영에 활용하는 중이시라면서요?]

벤엄이 미소를 지었다.

[네. 생각보다 간단하더군요. 승률을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은, 팀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별로 특별한 개념은 아닙니다. 다른 스포츠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잖습니까?]

자신만만하게 설명하는 그의 아래에, 간단한 프로필이 표시된다.

- 현 브렌트포트 구단주 -

[한편, 다음 주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매치업이 찾아올 예정입니다! 바로 선덜랜드와 브렌트포트의 경기죠.]

희주가 시무룩해졌다.

“순수하게 우릴 응원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사람들은 TV에 안 나와.”

진짜 선덜랜드 팬들은 풋볼 스퀘어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있다. 응원해줄 사람을 찾고 싶으면 굳이 TV를 기웃거릴 필요는 없다.

[아시다시피 선덜랜드는 투자의 신이 인수한 후 화려하게 부활한 팀입니다. 한편, 브렌트포드 역시 벤엄 구단주의 인수 이후 당당한 프리미어리그 팀으로 거듭났는데요. 한마디로 이번 경기는, 투자자와 갬블러의 싸움이 되겠죠.]

그사이에도 TV에서는 캐스터의 안내 멘트가 한창이었다.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선덜랜드 대 브렌트포드를 기대해주세요!]

* * *

방송을 본 다미가 격분했다.

[방송 잘 봤어요. 지금··· 일개 도박쟁이하고 사장님을 비교하고 앉았네요?]

얼마나 빡쳤는지 늘 하는 인증 절차, 보이스피싱 예방도 없이 곧바로 영상통화로 넘어갔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잖아. 남들이 저평가하는 곳에 돈을 넣어 불린다는 점에서는.”

[아니죠. 투자는 장기적으로 상대를 키우는 건데, 갬블러는 단기적 이득이 끝이잖아요? 축구단 운영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사장님은 사재를 털어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를 만드셨지만, 저 사람은 자기 팀 유소년 아카데미를 폐쇄했다면서요?]

그들 나름의 명분은 있었다. 브렌트포드는 런던 소재 팀이고, 어차피 유소년을 키워도 근처의 다른 빅클럽에 전부 뺏긴다는.

물론 진짜 이유는 자신들의 분석 능력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좋은 선수를 찾아낼 수 있다는.

브렌트포드는 프로 계약을 갓 마친 젊은 선수, 원석들을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팀이었다.

[사장님도 똑같이 하실 수 있죠. 아니, 더 잘하실 거예요. 사장님 사람 보는 눈은 투자업계에선 이미 전설적이니까요. 그렇지만 사장님은 유소년에 투자하시죠. 축구계의 미래를 위해서!]

“어··· 칭찬은 고맙지만 나는 나름 이유가 있어서 유소년에 투자하는 건데.”

브렌트포드의 방식으로는, 진짜 거물 선수를 사올 수 없다. 예컨대 메시는 열여덟에 이미 비매품 취급을 받았고, 서른 중반을 넘어 은퇴를 고려할 시기가 된 다음에야 팀을 옮길 수 있었다.

우리 팀에선 테오 같은 재능이 그렇다. 딱 열여덟만 되면 NFS 딱지가 붙고, 혹시 팔리더라도 이적료는 천문학적으로 뛰어오르는.

[산업 발전에 이바지해온 리미트리스 관계자로서는, 일개 겜블러와 같은 취급인 게 너무 슬프네요. 그냥 간판 내려버리고 카페라도 하나 차릴까요?]

화면 속의 다미는 꽤 슬퍼 보였지만, 속으면 안 된다. 쟤가 그렇게 얌전한 성격이었으면 아무리 똑똑해도 리미트리스의 넘버 투는 맡지 못했을 테니.

“누구 간판을?”

[그야 당연히 방송국이죠?]

다미의 얼굴에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가벼운 미소가 떠올라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어차피 경기 치르면 바로 알게 될 텐데.

[그렇군요. 마침 찾아뵈려던 참이었어요. 전에 말씀드린 축구 유망주, 최새벽 선수 기억하시죠?]

“당연히 기억하지.”

한국인인데도 에디나 이고르에 필적하는 가치를 지녔던, 열일곱 살 센터백. 프리미어리그 1군이 될 수 있음은 물론, 장차 한국 국가대표에서는 레전드 취급받기 충분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잊을 리가 있나.

[해외 진출 제안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거든요. 모처럼이니, 선덜랜드에 데려갈까 하는데요.]

“잘됐네. 온 김에 경기도 보고 가라고 해.”

[리그 5라운드 경기 일정에 맞춰 움직이면 될까요?]

“응. 온 김에 조금 더 오래 머물다 가면 더 좋고. 곧 챔스 조별리그도 시작이니까.”

챔스, 클럽 축구의 정점. 지금까지 그 꿈의 무대에 서본 한국인 선수는, 그야말로 한 줌도 되지 않는다.

챔스권 팀이 자신을 원한다는 것은, 축구 유망주에게는 견디기 힘든 유혹이겠지. A급 선수들조차 챔스에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팀을 정할 정도니까.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화면 너머에서 다미가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아, 영입 대상 앞에서 질 수도 있다는 리스크 생각은 조금도 없으신 거 같아서요.]

“일단 공식적으로는, 승패를 떠나 좋은 경기를 보여줄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다미와 알고 지낸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래서 다미는 내 ‘비공식적인 입장’을 굳이 확인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리스크를 따질 필요가 있긴 하다. 겜블러라면 특히 그럴 것이다. 확률을 계산하고, 승패에 따른 리스크를 따진 다음, 기댓값이 높은 쪽에 베팅하는 게 그들의 일이니까.

적게 잃고, 많이 따는 게 베팅의 원칙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원칙으로 행동한다.

[하긴, 사장님은 손해 보신 적이 아예 없었죠.]

다미가 배시시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