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천재를 상대하는 법 (2)
코리안 비프 니 수프, 그러니까 도가니탕은 최새벽의 상상보다 훨씬 맛있었다. 한국에서도 이 정도 퀄리티는 쉽게 접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보통은 도가니탕 맛집에서나 맛볼 수준이었다.
“과장 좀 섞자면, 식단만 봐도 이 팀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그때 최새벽의 폰이 살짝 떨렸다. 확인하니 그의 어머니가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밥은 잘 나오니? 영국 요리는 한국 사람 입맛에 안 맞는다던데···.]
최새벽은 곧바로 음식 사진을 보냈고, 가족들의 걱정은 곧바로 사라졌다.
대신 사소한 부작용도 생겼다.
[한국인 구단주가 직접 영입한 한국인 유망주? 대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Araboja]
국뽕 유튜브에 한식 사진이 올라가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범인은 그의 사촌동생 같았다.
[벌써부터 팀이 한식을 따로 준비해줄 정도다? 이거 느낌 오죠?]
“아, 나는 글로벌 식성이라고!”
실제로 최새벽의 식성은 거의 글로벌한 편이었다. 대영제국 음식 몇 개만 빼면, 완벽할 정도로.
* * *
아침 식사 후, 팀 연습은 유소년과 함께 참가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너는 유소년이 아니라 프로 선수로서 훈련받아야 하겠지만, 우리 1군 선수단이 원정을 떠났으니까···.”
당분간 아카데미에서 유소년과 함께 연습해 달라는 지시에, 최새벽은 흔쾌히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스쿼드에 합류하지 못했으니까요.”
워크 퍼밋 문제로 아직 정식 선덜랜드 선수가 아닌 최새벽이 딱 잘라 말하자, 벤자민이 웃었다.
“그런 계약 쪽은 나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제 우리 식구인 건 맞으니까.”
“저는 훈련만 할 수 있으면 됩니다.”
굳이 따지자면 자기보다 어린 아카데미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것이 아주 약간 부끄럽긴 했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훈련 자체는 기량의 유지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었기에.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는 선덜랜드 1군도 함께 사용하는 훈련장으로, 최새벽이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설비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게다가 축구 선진국 잉글랜드에서,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유소년들의 퀄리티 또한 훌륭했다.
‘잉글랜드 청대가 둘이나 있을 정도니까. 심지어 한 명은 청대 주장이고, 다른 한 명은 에이스라고 했지?’
연습 상대로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기에, 최새벽은 천천히 몸을 풀며 물었다.
“어··· 그런데 혹시 봐주면서 해야 합니까?”
곧바로 유스 감독 벤자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봐주면서 상대하기엔 우리 테오가 너무 강해. 실력도, 자존심도.”
“그럼, 제대로 해도 됩니까?”
“다치게 하지만 않으면.”
벤자민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최새벽은 선덜랜드의 77번, 테오에게 파워풀한 슬라이딩 태클을 듬뿍 먹여 주었다.
“이게···!”
테오가 발끈했다. 아카데미와 유소년 리그에서 그동안 거의 무적이던 천재 소년에게, 태클당해 잔디 위를 구르는 경험은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기에.
물론 최새벽은 태연했다.
“구르기 싫으면 제대로 피했어야지.”
“이러다 누가 다치면 어쩌려고···.”
“아무도 안 다쳐. 다치게 하지 않을 기술이 없으면, 슬라이딩 태클을 어떻게 하겠어?”
태연하게 응수하면서, 최새벽은 슬쩍 덧붙였다.
“뭐, 네 실력은 훌륭해. 만일 4년 전의 나였으면, 아마 널 건드리지도 못했을 거야. 솔직히 말하면, 파울조차 하기 힘들었을 거야.”
정직한 감상이었다.
지금의 최새벽은 지금의 테오를 완벽하게 막아낼 자신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테오가 아직 꼬맹이기 때문이었다.
십 대 초중반의 선수라면, 단 한 살 차이도 기량에 큰 영향을 준다. 동갑내기였다면 아마 상대하기 어려웠을 것임을 인정하자, 테오의 눈이 빛났다.
“그 말은 4년 후의 나라면, 널 가지고 놀 수 있다는 뜻이야?”
“내가 지금 상태로 멈춰선다면, 그렇겠지.”
그러자 테오가 씩 웃었다.
“그럼, 많이 노력해야겠다. 따라잡히지 않도록··· 팀메이트는 강할수록 좋으니까.”
테오의 당돌한 소감에, 최새벽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노력하지.”
한국인 유망주가, 이 팀에 오길 잘했다고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 * *
팀 연습을 마친 후, 최새벽은 러닝에 나섰다. 아무래도 유소년 팀의 훈련은, 열일곱 살 최새벽에게는 훈련 강도가 살짝 부족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구단 관계자들은 질색했다. 예전에 구단주가 무릎을 깨먹은 적도 있고, 최새벽은 외지인이라 동네 지리를 잘 모른다는 것도 한몫했다.
몇 가지 타협이 필요했다. 스마트폰을 휴대할 것, 추가로 GPS를 장착할 것, 그리고 신발은 구단에서 준비한 쿠션 좋은 러닝화를 착용할 것.
그렇게 거리로 나선 최새벽을 향해,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선덜랜드 트레이닝복···? 유소년인가?”
이제 유소년은 아닌 나이지만, 아무래도 동아시아인은 서양인 눈에는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모양이다. 호기심 어린 시선 사이에서, 덩치 좋은 아저씨가 최새벽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너, 한국인이야?”
최새벽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인종차별의 빌드업인가 싶어서. 영국도 인종차별이 꽤 심한 나라라는 정보를 입수했기에 자연스러운 예상이었다.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최새벽은 근육질의 운동선수고, 센터백이라 장신이다. 따라서 평생 경기장 밖에서 시비 걸릴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 믿었는데.
“네, 그런데요?”
옐로 몽키를 운운하거나 개고기 먹는 야만인 어쩌고 하면 곧바로 한 방 먹여줄 생각으로 쏘아붙였더니, 중년 사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었다.
“이봐! 다들 들었나? 썬의 나라에서 왔대!”
‘썬의 나라?’
생소한 단어에 최새벽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 상대가 우호적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슬그머니 주먹에 힘을 푸는 사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쩐지, 뛰는 모습이 예전의 썬하고 똑같더라니!”
“무릎 조심해라.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절대 다치지 말고!”
구단주 이희성을 현지에서 ‘썬’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쯤, 최새벽은 완벽하게 동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상태였다. 열렬한 환호에 더해, 꼬치구이며 음료수 캔, 사과 같은 것이 사방에서 내밀어졌다.
“죄송하지만 저, 지금 잔돈이 없는데요.”
“괜찮아. 한국인 축구 소년에게는 공짜야.”
순간, 최새벽은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이들은 브렌트포드와의 경기에서 목청 높여 응원하던 축구 팬이다. 이 사람들에게, 몰락한 구단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구단주 이희성은 너무나 고마운 존재일 것이며, 리미트리스는 도시 곳곳에 투자하는 천사 같은 기업일 것이다.
따라서, 이곳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당할 가능성은 없다.
“나, 이 팀에 오길 정말 잘한 거 같아.”
같은 시각.
글라드바흐 원정을 떠난 선덜랜드 1군 선수단 숙소에서는, 토마스가 똑같은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 * *
경기를 며칠 앞두고, 언제나처럼 코칭스태프들이 다 같이 모여 브리핑을 실시했다. 나와 희주도 함께 자리에 참석했다.
오늘의 브리핑 담당은 토마스였다. 경기 준비에 더해, 신입 분석관의 능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실 샐리는 처음부터 뭐든지 잘하는 편이었고, 그리고 루벤 역시 A급 라이센스 소유자라 별도의 연습이 필요하진 않았다.
물론 토마스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그는 통계 전문가지만, 분석가로서는 아직 초보자다.
“요주의 선수는 노이하우스입니다. 또한 글라드바흐는 공격 전개 시···.”
“잠깐, 간단한 프로필부터.”
샐리의 지적에, 토마스가 눈을 깜빡였다.
“어··· 노이하우스 정도면 유명한 선수니까 이미 다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알지만, 그래도 정보는 필요해요. 선수에 대한 인식을 통일해야 하거든요.”
“알겠습니다. 노이하우스는 독일의 신성으로, 미드필더 전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멀티롤 능력이 인상적인 선수입니다. 발이 빠르고···.”
거의 숨도 안 쉬고 설명을 이어나가던 토마스의 이야기는, 다음 멘트와 함께 잠시 멈췄다.
“···혹시 필요하시면 노이하우스에 대한 실증 자료를 준비하겠습니다.”
토마스가 말하는 실증 자료란, 브렌트포드 분석관 시절 만들었던 잭에 대한 자료 같은 것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데이터였지만, 우리 팀에서 요구하는 자료와는 방향성이 조금 다르다.
곧바로 브라이언과 샐리가 차례로 지시를 내렸다.
“경기만 봐도 아는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 따로 레포트를 만들 필요는 없어. 다만 히트맵과 스프린트 횟수는 따로 정리해 줘.”
“네, 감독님.”
“우리가 내부에서 보고 판단할 용도니까, 굳이 보고서를 예쁘게 만들 필요는 없어.”
“네, 팀장님.”
토마스는 곧바로 요구받은 자료를 정리해서 제시했고, 우리 코칭스태프들이 토론을 시작했다.
“영상을 봤을 땐 경합에 조금 약한 느낌이던데, 기록은 나쁘지 않네요. 기복이 있는 타입인 걸까요··· 토마스. 경기당 편차를 함께.”
“네, 팀장님.”
“일단 속도가 빠르고 탈압박 능력이 있는 선수라, 어설프게 마크를 붙이면 따돌려질 것 같은데···.”
“스프린트 횟수도 의외로 적습니다. 체력에 약점이 있는 선수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는데요.”
“전술적 역할 때문이겠지.”
이야기가 점차 진행되자 델랍이나 루벤은 중간에 떨어져 나갔고, 언제나처럼 우리 전술가 두 사람만 남았다.
브라이언과 샐리의, 약속의 외계인 교신 시간이다.
“이런 다재다능한 선수를 견제하려면.”
“국지전으로 끌고가야죠.”
“그렇지. 이런 타입은 팀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선수니까···.”
“일단 링커 역할은 꿈도 꾸지 못하게 해둬야 하고요.”
“맞아. 따라서 상대로는 요니가 제격이지.”
“톰슨이 아니고요!?”
샐리가 치를 떨었고, 브라이언이 입맛을 다셨지만, 더 이상의 도발은 서로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예전 같으면 서로를 축알못으로 매도할 타이밍이지만, 아무래도 이제는 서로 자제하는 중이었다. 브라이언은 팀의 감독으로 승격했고, 샐리에게는 부하가 생겼기 때문이다.
서로 존중이 필요한 사이가 된 셈이다.
덕분에 희주만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어째서인지 희주에게는 자꾸만 브라이언과 샐리를 엮으려는 습성이 있어서··· 아, 요즘은 리지도 가세하긴 했다.
연애담을 좋아하는 건 여자들 종특인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사이, 옆에서 에이미가 눈을 빛냈다.
“이게 다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거 아니겠어요? 샐리 팀장님이 경쟁자면 여러모로 버거우니까요.”
희주나 리지가 샐리와 경쟁할 일이 있나? 기껏해야 스태프 피규어 판매량 정도일 텐데··· 샐리가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브라이언과 커플이 된다고 해서 분석팀장 피규어 판매량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참고로 희주 씨는, 지난번 리미트리스 부사장님이 오신 다음부터 부쩍 이러는 거··· 구단주님도 아시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으니 매우 가만히 있어야겠다.
그사이 우리 코칭스태프는 분석을 재개했다.
“영상을 보니까, 글라드바흐는 공격 상황에서의 연계도 아주 훌륭한 팀이던데.”
“네. 좋더군요. 제 어림짐작으로는, 박스 정면에서의 슈팅이 대충 75%쯤 나올 정도였어요.”
샐리의 이야기에, 토마스가 곧바로 끼어든다.
“77%입니다.”
“어떻게 확신하죠?”
“데이터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이런 처리는 빠르게 하는 편이라서···.”
머뭇거리는 토마스를 향해, 샐리가 환한 미소를 보냈다.
“좋아요. 부팀장보다도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군요.”
그렇게 얼마간 열띤 분석을 마치고, 마무리로 흘러갈 때쯤 슬쩍 끼어들었다.
“수고했습니다. 토마스.”
“네, 감사합니다. 구단주님.”
“그리고 경기 당일에는 벤치에 합류해주세요.”
“네?”
“보고 싶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만진 데이터가 경기장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요.”
“그야 보고 싶습니다만··· 괜찮을까요?”
어리둥절해 하는 토마스를 향해, 루벤과 브라이언의 권유가 이어졌다.
“도움이 될 거야. 어차피 진짜 정보는 현장에만 존재하는 거니까.”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나가지만 않으면 괜찮아. 아, 물론 입도 다물고 있어야겠지.”
마지막으로 샐리가 결정타를 날렸다.
“나도 신입 때부터 벤치에 자주 들어갔어요. 데이터나 영상, 숫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보라는 의미의 지시였죠.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셨던 구단주님과 감독님께 지금도 감사드리고 있어요.”
말하면서, 샐리는 조금 그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변했고 볼에는 살짝 홍조가 돌았지만, 잠깐이었다.
평소의 침착함을 되찾은 샐리가 새침하게 덧붙였다.
“아, 혹시나 해서 말이지만 지금 감독님 이야기 아니에요. 로저스 감독님!”
토마스에게, 샐리는 직속 상사에 해당한다. 샐리가 그렇게 이야기한 시점에서 사실상 거부권은 사라진 셈이었고, 물론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토마스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저, 이 팀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