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천재를 상대하는 법 (3)
경기 전날 밤, 프랭크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시즌 말부터, 해리슨이 선발로 출전하는 빈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동갑내기로서는 꽤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나이가 같은데도 말이지.’
일반적으로는 수비수인 프랭크에게 다소 불리한 상황이기는 하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인정받는 비중은 전방일수록 높기 때문에.
아무래도 전방은 한순간의 번뜩임과 재빠름이 중시되는 자리이다. 반면 그의 포지션에서는, 순발력보다는 노련함이, 번뜩임보다는 안정감이 요구된다.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분함이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슴속에 치미는 답답함에 숙소 주위를 조금 달리고 싶어졌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곧바로 원정지원팀 스태프에게 제지당했기 때문이다.
“하긴, 경기 전날 밤, 숙소 주위를 뛰겠다는 이야기가 먹힐 리는 없죠. 무슨 달밤에 체조도 아니고.”
프랭크의 푸념에, 선덜랜드 스태프가 미소를 지었다.
“해외 원정만 아니면 허용하겠지만, 아무래도 이곳은 선수분들에게도, 또 저희 스태프에게도 생소한 적지입니다. 일탈 행동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원래 선덜랜드는 이런 관리에는 굉장히 철저한 팀이었기에, 반쯤은 예상한 결말이었다. 쓸쓸하게 돌아서는 프랭크에게 스태프가 다시 제안했다.
“정 그러시면 호텔의 피트니스 센터를 이용하시는 건 어떨까요?”
“그래도 됩니까?”
“어··· 메디컬 팀에서 알면 절 갈아마시려 들겠지만···.”
“안 들키면 되겠군요.”
“뭐, 끓어오르는 피를 적당히 분출하는 정도는 나쁠 거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스태프는, 개인적으로 운동이라도 하는지 몸이 무척 좋아 보였다. 이런 타입은 보통, 운동은 무조건 옳다고 믿기 마련이다.
“쓰시기에 아무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호텔 전체를 팀에서 전세를 낸 상태라서 누구와 마주칠 일도 없을 거고···.”
하지만 프랭크는, 세상일이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피트니스 센터에 들어가자마자 뜻밖의 인물과 마주했기 때문에.
상대는 다름 아닌 팀의 부주장, 요니였다.
“안 주무세요?”
러닝머신 위에서 가볍게 달리던 요니가 프랭크 쪽을 흘끗 돌아보고 눈을 마주쳤지만, 운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잠이 안 오더라고. 모처럼 독일 클럽을 상대하는 거니까.”
“아···.”
프랭크는 가까스로 요니가 독일 출신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요니는 평소 독일 억양이라고는 1그램도 섞이지 않는 완벽한 영어를 썼는데, 심지어 그의 말씨엔 맥켐즈 사투리까지 섞여 있었다.
시티 오브 선덜랜드 곳곳을 제집처럼 누비던 지역 토박이였으며, 구단 유스 출신이기까지 하다. 덕분에 평소에는 당연히 선덜랜드 출신으로 간주되지만, 요니는 엄연히 독일 국적을 가진 독일 축구선수였다.
그리고 내일은 독일인 요나스 뮐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식전에서 독일 팀을 상대하는 자리였다. 그것도 챔스라는 큰 무대에서. 쉽게 잠이 오지 않는 복잡한 심경인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프랭크가 요니를 물끄러미 응시하자, 요니가 무뚝뚝한 목소리를 냈다.
“뭐 해, 운동 안 해?”
“해도 됩니까? 혹시 주장님이나··· 메디컬 팀에서 알면 질색할 텐데요.”
“그래서 권하는 거야. 공범이 생겨야 내가 안전하지.”
요니의 이야기에, 프랭크는 피식 웃으며 러닝머신에 올랐다.
두 사람 모두 가볍게 뛰는 정도의 강도를 유지했기에, 대화를 나누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부주장님도 긴장 같은 걸 하시는 모양이네요. 어린 나이부터 인정받은 분인데도···.”
“인정? 어린 나이에?”
무슨 소릴 하는 거냐는 요니의 반문에, 프랭크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영국으로 축구 유학을 오신 거 아닙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지. 결국 독일에서 성공할 자신이 없어서 영국으로 도망 온 거 아니냐고.”
“에이, 말도 안 되죠. 부주장님 실력은 사람들이 다 아는데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빙긋 미소 지은 다음, 요니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데 너는 왜, 네게는 그런 기준을 적용하지 않지?”
뜻밖의 질문이었지만, 무척 날카로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덕분에 프랭크의 걸음이 잠시 꼬이고 말았다.
“해리슨은 로컬 보이고 너는 외부 영입이지? 그 사실은 축구를 그만둘 때까지 변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그만큼 네가 인정받은 선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구단주님이 일부러 데려오실 만큼.”
“그게··· 이번에 한국인 센터백도 영입하잖아요.”
휘청거리는 걸음을 가까스로 바로잡은 프랭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론 우리 구단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믿지만··· 그래도 한국인 구단주 밑에서 한국인 센터백이 뛰게 되면, 편애받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고··· 동갑내기 해리슨은 쭉쭉 올라가는 것 같고··· 그래서 그렇죠.”
“그럴 때는 뛰는 게 좋지.”
“뛰라고요? 지금처럼요?”
“넘어서고 싶은 상대보다, 딱 한 걸음만 더. 그걸 매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쉽지는 않겠지만.”
순간, 프랭크는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느꼈다. 요니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실감했기 때문에.
아래 세대에서는 해리슨이 치고 올라오는 중이고, 새로 영입된 선수는 무려 그 메시다. 두 선수 모두 요니와 역할, 포지션이 조금씩 겹친다.
심지어 요니에게는 축구를 시작한 이래 줄곧 라이벌인 선수가 있다··· 선덜랜드의 주장, 시티 오브 선덜랜드의 모두가 사랑하는 사냥개가.
그리고 내일 경기에서, 요니는 독일의 신성 노이하우스와 맞대결을 펼치게 될 것이다.
“저, 힘내겠습니다.”
머신 속도를 조금 높이며, 프랭크는 목에 힘을 주어 선언했다. 그러자 요니가 피식 웃었다.
“보통 이럴 땐 나보고 힘내라고 하는 게 정상 아니냐?”
“그야···.”
프랭크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부주장님은 계속 뛰고 계시니까요.”
* * *
[챔피언스리그 조별 1경기, 글라드바흐 대 선덜랜드]
글라드바흐의 홈, 보루시아 파르크에서 경기를 앞둔 선수들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SNS도 슬슬 뜨거워졌다.
[선덜랜드는 공격적인 라인업을 냈어야 했음. 1포트 대 4포트의 경기니까, 당연히 글라드바흐가 라인 내릴 게 뻔하잖음? 쫄보 감독 꼬라지 하고는. @김치_워리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SNS를 체크하던 희주가 혀를 찼다.
“어휴, 얘 아직도 이러네.”
“왜?”
“아니, 분명히 우리 팬이었던 거 같은데··· 프리시즌부터 갑자기 흑화해서 이상한 소리나 하더라고.”
“간혹 있지. 팀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떼쓰는 타입들.”
구단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가장 신경 써야 할 케이스다. 아예 안티 같으면 강경 대응 하면 그만이지만, 이런 ‘흑화한 팬’ 들은 팀에 대한 애정 자체는 분명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야기에 휘둘리면 팀 운영이 산으로 갈 테니, 결국은 팬들의 자정 작용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반응이 왔다. 그것도, 축구를 아주 잘 아는 팬의 반응이.
[두 팀의 성향을 보면 전체적으로 속도전이 될 게 틀림없죠? 빠른 전개와 쉼 없는 공수전환이라는 점에서 오늘 라인업은 훌륭하다고 보는데요. @이상한_나라의_블랙캣츠]
실제로 글라드바흐는 킥오프 직후부터 양쪽 풀백을 전진시키며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그러자 ‘@김치_워리어’가 곧바로 태세전환을 시도했다.
[아니, 감독이 얼마나 핫바지 취급이면 1포트 팀 상대로 겨우 4포트 따위가 풀백을 올리면서 까불어? @김치_워리어]
내 생각에 글라드바흐는 조금도 우리를 우습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게 최대한의 존중을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강함을 인정하기에,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축구를 우직하게 시도했을 것이다.
괜히 라인 내리고 어설픈 두 줄 수비를 시도했다가는, 우리가 곧바로 잡아냈을 테니.
지금의 선덜랜드는 메시와 마르틴이라는 크랙을 보유했고, 힘과 높이를 갖춘 바스티아노와 스티븐을 데리고 있다. 덕분에 라인 내리는 팀 상대로는 천적 같은 팀으로 변모했다.
물론 지금 같은 트랜지션 게임 또한, 우리가 바라는 바였다. 빠른 공수전환과 많이 뛰는 축구는, 우리 선덜랜드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가장 접전이 펼쳐진 지역은, 우리 요니와 독일의 신성 노이하우스가 격돌하는 중원이었다.
이따금 벌어지는 경합 상황은 요니에게 불리해 보였다.
속도 자체는 거의 대등한 수준이긴 하다. 가속은 노이하우스가 나았지만, 요니는 누구보다 먼저 움직여 위치를 선점하는 선수였기에.
다만 노이하우스는 요니보다 체격이 크다. 그리고 서로 대등한 스피드로 충돌하면, 당연히 작은 쪽이 밀려나기 마련이다. 덕분에 경합 상황마다, 요니가 맥없이 어깨싸움에 밀려 나동그라졌다.
“아니, 아무리 저쪽 홈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니야!? 카드는커녕 휘슬도 안 분다고!?”
“진정해. 오심 아니니까.”
상대 선수가 딱히 팔을 쓰지도 않았고,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중의 어깨싸움이었다. 딱히 다칠 정도로 패대기쳐진 것도 아니다. 충격이 없지야 않겠지만.
“그럼 매치업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예를 들면 톰슨 선수나 잭으로!”
“톰슨에게는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기동력이 없고, 잭에게는 다른 역할이 있어.”
“그럼, 그동안 요니는 계속 구르고!?”
“비슷해.”
정확히 말하면, 요니의 역할은 상대를 특정한 위치에서 ‘치워버리는’ 것이었다. 공수전환이 빠른 경기는 수비하던 위치가 곧 공격하는 위치가 될 테니까.
그렇게 요니는 끊임없이 상대를 ‘무의미한 위치’로 유도하는 중이었다. 노이하우스가 공을 많이 만진다는 분석 결과를 참조한 것이었다. 상대의 핵심을 경기의 중심에서 치워버리기로.
11대 11의 게임을 10대 10으로 바꿔놓는 것, 그것이 오늘, 브라이언이 요니에게 요구한 역할이다.
“그리고 중원에 공백이 생기고 나면··· 그때부터는 우리 주장이 공을 쓸어담는 거지.”
멀리 보이는 잭의 모습은 비장할 정도였다. 역습을 시도하는 글라드바흐 선수 상대로, 그야말로 굶주린 사냥개처럼 달려들었다.
아마 자신의 친구가 궂은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요니에게 오늘 경기가 갖는 무게를 짐작했거나.
“뭐, 친구란 항상 저런 거지.”
선수라면 때로는 서로 경쟁할 때도 있다. 유소년 시절, 나와 브라이언, 혹은 나와 헨도가 서로 가벼운 경쟁심을 느꼈던 것처럼.
그래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동료 사이다. 넘어지는 모습을 보면 피가 끓고, 상대에게 당하면 곧바로 되갚아 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더 활약하고 싶어질 거야.”
지금 뭘 당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글라드바흐가 요니에게서 노이하우스를 떼어놓은 직후, 잭이 짧은 패스를 톰슨에게 보냈다. 이윽고 톰슨이 공을 길게 걷어찼다.
수비를 등진 스티븐이 가슴으로 받아낸 패스에, 가장 먼저 도착한 선수는 언제나처럼 요니였다.
“일단 거리를 벌리고 나면, 쉽게 잡힐 리가 없지.”
파이널 서드에 침투하는 요니의 작은 등이 무척이나 늠름해 보였다. 무엇인가를 해줄 것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주먹에 힘을 넣었다.
* * *
‘잭이었다면 쉽게 나동그라지지 않았을 거야.’
비록 체격은 서로 비슷했지만, 잭은 덩치에 비해 몸싸움이 아주 강한 선수다. 타고난 힘이 워낙 좋기 때문에.
그의 친구는 천성적인 강골이었다.
그리고 같은 팀에 합류한 축구의 신 또한 쉽게 넘어지지 않는 선수로 유명했다. 특유의 낮은 중심 때문이다.
잭의 힘도, 메시의 무게중심도 어느 정도는 천부적인 것이었다. 요니 자신은 갖추지 못한 덕목들이기도 하다.
그래도 요니는 알고 있었다. 축구는 발로 공을 차는 스포츠이지, 어깨로 상대를 밀어내는 종목이 아니라는 것을.
달려드는 수비 사이로, 침투하는 바스티아노의 모습이 보였다. 요니는 재빨리 스루 패스를 넣었고, 동시에 눈을 슬쩍 오른쪽으로 돌렸다. 부심이 기다리는 방향이었다.
명백히 오프사이드를 의식하는 행동이었다. 부심을 향하는 시선도, 최종 수비라인 뒤에 떨어뜨리는 패스도. 덕분에 글라드바흐 수비진의 시선 또한 부심에게 쏠렸다.
깃발은 올라오지 않았다. 잠시 후 독일어의 거친 외침이 사방에서 울렸다. 막으라거나, 잡으라는 식의.
요니는 개의치 않고 계속 전방으로 달려나갔다.
잠시 후 바스티아노가 다시 요니에게 패스를 되돌렸다. 컷백 패스. 한 번의 눈짓과 절묘한 타이밍의 2차 침투가 글라드바흐 수비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것이다.
이제 요니와 골라인 사이에 남은 수비는, 각을 좁히러 달려나오는 골키퍼뿐이었다.
골키퍼를 제칠 발재간은 그에게 없었다. 시원하게 네트를 흔드는 강슛도 하지 못한다.
‘그래도, 공을 어떻게 골라인 너머에 밀어넣는지는 알고 있단 말이지.’
요니는 침착하게 왼쪽 어깨를 아래로 살짝 떨어뜨리며 페인트를 시도했고, 동시에 공을 오른쪽으로 슬쩍 걷어찼다.
강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슛이었다. 그저 딱, 반 박자 빨랐을 뿐.
[글라드바흐 0 - 1 선덜랜드]
Raumdeuter···.
이제는 조금 낯설게 들리는 모국어의 탄식 사이로, 친숙한 맥켐즈 억양의 환호가 들렸다.
“요나스 뮐러! 선덜랜드의 보물!”
공간연주자라는, 어쩌면 극찬에 가까운 탄식보다 선덜랜드의 보물이라는 투박한 외침이 더욱 기뻤다.
요니는 벅찬 손길로 엠블럼을 움켜쥐었다.
그 아래에서,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