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56화 (256/422)

256화 천재를 상대하는 법 (4)

그때, 시티 오브 선덜랜드의 축구 펍 [죽어도 맥켐즈]에서는 브라더스가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참이었다.

“끝났어. 이제 끝난 거나 마찬가지야!”

브렌든의 환호에, 맥주집 사장과 핫도그 사내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고, 이제 겨우 한 골인데?”

브라더스의 반론에 브렌든이 검지를 세워 보였다.

“중요한 건, 상대팀 감독이 엄청 평범하다는 거야. 우리 팀의 천재 코칭스태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평범··· 한가?”

“이 인간들아, 생각을 해 봐! 자기 제자가 키운 팀에 후임으로 올 정도인데, 별 볼 일 있겠냐고.”

“아, 하긴.”

글라드바흐를 챔스권으로 다시 데려온 전임 감독 마르코는 더 큰 클럽으로 옮겼고, 그 빈자리를 현 감독 휘터가 채웠다.

문제는 현 감독 휘터는 마르코의 스승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휘터가 프로 감독을 맡을 때, 마르코는 그 밑에서 유소년을 지휘했으니.

“우리로 치면 브라이언 감독이 첼시나 맨시티로 옮긴 다음에 로저스 감독이 후임으로 돌아온 느낌이니까··· 모양새가 안 좋긴 하겠네.”

맥주집 사장이 조심스럽게 동의를 표하자, 브렌든이 다시 힘차게 선언했다.

“그렇지. 그러니 전술도 전임 감독과 똑같은 것을 쓰고, 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큰 변화도 없지. 우리가 이긴 거야.”

선제골 직후, 스크린 속의 글라드바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선수 교체도 없었고, 특별히 포메이션을 수정하거나 전술적으로 독특한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축구는 틀리지 않았다는 확고한 의사 표현이었는데, 지는 팀 감독이 부리기에는 다소 무모한 고집처럼 보였다.

덕분에 브렌든의 의견에 설득력이 붙었고, 브라더스뿐 아니라 주위의 선덜랜드 팬들 모두가 환호했다.

늘어나는 매상에 맥주집 사장의 입은 귀에 걸렸고, 주방 쪽에서 들리는 목소리 또한 평소보다 상냥함 함유량이 높아진 것 같았다.

유일하게 표정이 어두운 사람은 핫도그 사내였다.

“한 가지 불안한 점이 있어. 브렌든 자네가 그렇게 단언하면 꼭 고전하더라고.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탓이야. 기분 탓. 축배나 준비하자고. 선덜랜드 기념비적인 챔스 첫 승리를!”

하지만 그들은, 축배를 들기는 너무 이르다는 것을 곧 눈치채게 되었다. 글라드바흐가 굉장한 기세로 반격했기 때문에.

“에라이···.”

주위의 싸늘한 시선에 브렌든의 목이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SNS 알림이다. 요즘 SNS에서 ‘@김치_워리어’를 제압하며 유명해진 ‘@이상한_나라의_블랙캣츠’의 글이었다.

브라더스와는 일전에 경기장에서 같이 응원하며 친해진, 소녀 팬 앨리스의 SNS를, 브렌든은 마치 삼촌팬처럼 흐뭇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선제골 직후에도 글라드바흐는 큰 변화를 주지는 않았네요. 요니에 대한 대책은 마련한 것 같지만요. 아마 자기들이 가장 자신 있는 방식의 축구를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거겠죠.]

브렌든은 살짝 입맛을 다셨다. 이 소녀는 확실히 축구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자신보다도 훨씬 더.

[휘슬이 울릴 때까지는 꺾이지도, 멈추지도 않는··· 이런 타입의 팀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죠?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매주 보니까요! 그러니까 더 크게 응원해요. 독일까지 들리도록!]

브렌든은 미소를 지으며 배에 힘을 넣었다.

“이럴수록 응원하는 게 팬들의 미덕이야. 이 친구들아.”

잠시 후, 독일까지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펍을 뒤엎기엔 충분한 함성이 [죽어도 맥켐즈]에 울려 퍼졌다.

* * *

‘마냥 쉽게 풀리지는 않겠구나.’

모로코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로저스가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옆에서 천진한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경기가 잘 안 풀려요?”

소년의 이름은 타짐 벤 바르카, 올해 열 살이었다.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 모로코 대회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보이며 활약했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소년이다.

로저스가 보기엔, 선덜랜드가 반드시 영입해야 할 재능이었다.

물론 너무 어린 선수의 해외 이적은 피파 규정상 어렵지만, 대신 리미트리스 SM&C에서 에이전트 계약을 통해 선수를 확보할 예정이었다. 이후 선덜랜드와 제휴해, 유소년 아카데미. 모로코에도 추가로 세우는 방향도 검토하는 중이다.

정작 바르카는 자신을 둘러싼 어른들의 사정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듯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였으며, 그저 수시로 로저스가 머무는 숙소를 찾아오는 게 고작이었다.

집에서는 챔스 중계를 볼 수 없다는 이유다.

로저스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내 표정이 그렇게 티가 났나.’

현역 감독이던 시절이었다면, 아무리 상대가 축구 영재라 하더라도 고작 열 살짜리 꼬마에게 표정을 들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현역이 아니다.

“글라드바흐 감독은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요? 라인을 내리지도 않았고”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전술의 색채는 유지했지만, 디테일은 수도 없이 바꿨다.

물론 소년 바르카에게 그런 부분까지는 조금 어려울 테니, 로저스는 경기의 전개에 대해 ‘큰 틀’에서만 설명하기로 했다.

“음··· 지는 팀 감독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인데···.”

그러자 바르카가 활기차게 외쳤다.

“아, 하나는 알아요! 바보인 경우죠. 그런데 다른 하나는 전혀 모르겠어요.”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몇 번이고 검토한 끝에, 그래도 자기들의 축구가 옳다고 믿는 거란다.”

아무래도 글라드바흐 감독, 휘터는 지금의 전술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축구계에서 잔뼈가 굵은 휘터 정도의 베테랑이라면 글라드바흐와 선덜랜드의 전력을 오판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게다가··· 휘터가, 마르코의 후임 감독이라서 더 무섭단 말이지.’

휘터는 이제 오십이 넘었고, 과거 자기 밑에서 유소년을 지도한 사람의 후임 감독이라는 자리가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 않을 만큼의 연륜을 갖췄다.

그런데도 휘터는 선뜻 글라드바흐 감독직을 맡았다.

자기에게 축구를 배웠던, 자신과 유사한 철학을 가진 감독이 키워낸 선수단을 곧바로 써볼 수 있다는 매력에 저항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세간의 비아냥쯤은 신경도 쓰이지 않을 만큼.

“그러니까··· 저 양반도 어지간한 축구 바보라는 거야.”

로저스의 혼잣말에, 뜻밖의 질문이 돌아왔다.

“할아버지처럼요?”

“응?”

순간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로저스를 향해, 축구 소년 바르카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렇잖아요. 할아버지도 엄청 유명한 감독님이죠? 그런데 은퇴한 지금은 이렇게 멀리까지 날아와서 축구 대회를 열고···.”

‘축구 대회는 내가 아니라 썬과 다미 씨가 열었는데.’

“그리고 쉴 때도 계속 축구 경기를 보는 사람이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면 저 사람도 강하겠네요. 할아버지만큼.”

로저스는 무심코 실소했다. 스스로 자신이 뛰어난 감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네 팀, 엄청 큰일 난 거 아닌가요?”

“괜찮을 거다. 우리 애들도 축구 바보들··· 아니, 축구 천재들이거든.”

혹시라도 느슨해질까, 같이 있을 때는 한 번도 해주지 못했던 칭찬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눈앞에서 칭찬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두 사람을 생각하면 로저스의 얼굴에는 자꾸만 미소가 떠오른다.

마치, 귓가에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풀백을 전진시키면, 우리도 당연히 측면에서 맞대응해야겠지?]

[물론이죠. 마르틴을 깊숙이 전진시켜서, 글라드바흐 풀백에게 뒷공간에 대한 부담을 줄 거예요. 그리고···.]

[미드필더에서 요니와 잭이 빈 공간을 후벼팔 거야. 다만 상대도 바보는 아니니까 당연히 대책을 갖고 있겠지.]

[투톱이 넓게 벌려 우리 풀백의 지원을 차단하려 시도하겠죠. 따라서··· 대인마크가 필요하겠네요.]

브라이언과 샐리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렸다. 로저스가 얼마 전까지 매일같이 듣던 목소리였다.

이제 자신은 그 두 사람의 곁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로저스는 무심코 대답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측면 수비를 맡으면서, 유사시에는 센터백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좋겠지.”

잠시 후 사이드라인에서 교체를 알리는 팻말이 올라왔고, 몸을 푸는 프랭크의 모습이 화면에 잡혀서, 로저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경기는 선제골 이후에도 줄곧 치열했고, 사람들의 섣부른 예상과 달리 한 골이 그대로 승부를 가르지는 않았다.

글라드바흐가 그만큼 처절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글라드바흐는 빠른 공수전환을 무기로, 많이 달리는 축구를 한다. 팀 특유의 전술적 컬러는 끝까지 유지했지만, 디테일 측면에선 다양한 변화를 보였다.

우리도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라이트백으로 프랭크를 내세워 글라드바흐 포워드를 대인 마크했다.

글라드바흐의 공격 전술을 시작부터 원천 봉쇄하기 위한 의도였고, 잭과 요니가 측면 수비를 신경 쓰지 않고 상대 풀백에게 역으로 위협을 가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

그러자 이번엔 글라드바흐 투톱이 서로 스위칭 플레이로 대응하며, 우리의 수비 조직을 무너트리려 시도했다.

그렇게 경기는 90분 내내 뜨거웠고, 두 감독의 수싸움 또한 점차 치열해졌다. 경기만큼 빠른 템포로.

마치 둘이서 서로 맨주먹으로 치고받는 것 같다.

80분, 우리는 요니를 아예 측면 윙어처럼 사용하면서 글라드바흐 진영에 생긴 순간적인 빈틈을 활용했다. 마침내 측면에서 올라간 크로스를 바스티아노가 다이나믹한 헤더로 밀어 넣으며, 추가골을 올렸다.

[글라드바흐 0 - 2 선덜랜드]

그리고 딱 5분 뒤, 글라드바흐는 중원에서의 짧은 패스로 수비를 잘게 부수는 듯한 공세 끝에 만회골을 가져갔다.

[글라드바흐 1 - 2 선덜랜드]

측면 공격에는 중원 장악으로 맞서고, 다시 전방압박과 숏카운터로 이어진 치열한 경기는, 90분하고도 5분간 더 이어졌다.

그리고 종료 직전, 상대 풀백의 전진을 틈타 안으로 침투한 마르틴이 그대로 쐐기골을 넣으며 경기를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글라드바흐 1 - 3 선덜랜드]

휘슬이 길게 세 번 울린 순간, 희주가 옆에서 숨을 깊게 내쉬었다.

“후, 죽는 줄 알았네! 무호흡 응원 하느라고···.”

“그냥 숨 쉬는 걸 잊었다고 하지.”

게다가 숨 참으면서는 목소리를 못 내니까··· 방금 건 무응원 호흡 아니었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구단을 인수한 이래··· 아니, 선덜랜드 창단 이래 챔스에서 거둔 첫 번째 승리를 눈에 새기기 위해서.

승리를 따낸 브라이언이, 글라드바흐 감독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 * *

경기가 끝난 직후, 감독들이 서로 악수하는 것은 축구계의 오랜 관례였다.

선덜랜드 또한 그 원칙을 충실히 지켰다. 지금까지의 유일한 예외는, 챔피언십에서의 마지막 경기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라일 파커와 악수할 마음은 들지 않았기에.

심지어 타인위어 더비에서조차 감독끼리는 서로 악수로 경기를 끝낼 정도였으니, 좋은 경기를 치른 글라드바흐 감독 상대로는 당연히 악수를 청해야 마땅했다.

브라이언은 천천히 글라드바흐의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향했고, 마침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휘터와 손을 맞잡았다.

악수는 짧았지만, 예상보다 이야기는 조금 길어졌다. 글라드바흐 감독, 휘터가 느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승리한 브라이언으로서는 이야기를 끊기 곤란했기에, 휘터의 이야기가 차분하게 이어졌다.

“그동안 수많은 천재들을 봐 왔어. 그동안 독일 축구에도 이름난 감독들이 여럿 지나갔으니까.”

최근 유럽 축구를 호령하는 명장 클롭과 투헬은 물론, 젊은 천재로 이름난 나겔스만 또한 독일이 낳은 감독이다.

그리고 비록 독일인은 아니지만, 펩 또한 맨시티를 맡기 전까지는 독일에서 감독 생활을 했었다. 베테랑 휘터는, 이들 대부분과 직접 맞상대해본 경험이 있었다.

“의외로 천재들의 발밑이 허술한 경우를 많이 봤었지. 아마 승승장구했기 때문일 거야.”

“그렇겠네요.”

“그래서 나는, 버티고 버티려고 했었어. 끝까지 내 축구를 하겠다고. 그게 천재가 아닌 나 같은 사람이, 천재를 상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네. 비록 오늘은 한 걸음이 모자랐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군.”

“오늘은 정말 좋은 경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천만에. 자네는 딱히 방심하는 타입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항상···.”

“네, 항상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겠습니다. 휘슬이 울릴 때까지요.”

“···자각이 없는 타입이었나.”

쓴웃음을 지으며 사라지는 휘터의 뒷모습을 응시하면서, 브라이언은 눈을 깜빡였다.

“저기, 휘터 감독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는 사람 있어?”

그러자 옆에서 샐리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어, 살짝 재수 없으니까, 설명 안 하려고요.”

“이봐, 상대 팀 감독의 의도를 해석해서 전해주는 건, 분석팀장의 업무잖아?”

“제 일은 어디까지나 경기 안에서의 의도를 분석해서 보고하는 거죠. 방금은 휘슬 울린 다음이잖아요?”

“쳇.”

혀를 차는 브라이언을 향해, 샐리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뭐, 그래도 마지막 대답 정도는 아주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 추세면, 조만간 믹스드 존에서도 사람 구실 하겠는데요?”

믹스드 존 이야기에, 형편없는 인터뷰 솜씨로 유명한 브라이언의 얼굴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그래도, 브라이언은 입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가 배운 축구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뭐, 방금 대답은 딱히 특별할 것도 없었잖아. 그냥, 로저스 감독님한테 배운 선덜랜드의 축구를 하겠다는 것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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