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58화 (258/422)

258화 공을 차는 이유 (1)

<공에 대한 욕망으로 축구를 하는 것이다 - 차비 에르난데스>

요니의 챔스 첫 골 피규어를 예약 주문한 앨리스는, 그날부터 알바 자리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선덜랜드 굿즈는 품질에 비해 무척 저렴한 편에 들어가지만, 그래도 피규어는 기본적으로 고가품이다. 적어도 십 대 소녀가 척척 사들이기에는 꽤 비싸다.

SNS에서야 ‘@이상한_나라의_블랙캣츠’라고 하면 꽤 이름난 편에 들어가지만, 그래도 SNS를 하는 것만으로 돈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현실 세계의 그녀는···.

“SNS에서는 최강자인 내가, 알바에서는 최약이라고?”

레스토랑에서는 접시를 몇 개나 깨 먹은 끝에 잘렸고, 카페에서는 음료를 몇 번이나 쏟은 후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런 고난조차, 빵 가게에서의 사고보다는 나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그녀의 서툰 손길을 거쳐 진열대에 오를 때쯤엔 음식물 쓰레기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빵 가게 주인아저씨는 처음이라 그렇다며 웃음으로 넘겼지만, 앨리스 스스로가 미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퇴직했다.

아직도 주인아저씨를 떠올리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앨리스였다.

“어째서···? 나는 빵을 담기만 했는데.”

결과적으로 앨리스의 손재주는 아주 엉망이었다. 선덜랜드 팬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스태프 시절 브라이언의 손놀림과 비슷한 수준으로 판명될 정도로.

주위에서는 ‘덜렁이 속성 메이드 카페’ 같은 데서 일하면 수요가 있을 것 같다며 위로했지만, 그런 특수한 취향의 업소는, 적어도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러던 그녀에게 뜻밖의 제안이 찾아왔다.

“원고를 써 보라고요?”

눈이 휘둥그레진 앨리스를 향해, 선덜랜드 데일리의 사장 겸 편집장 리타가 미소를 지었다.

“SNS에 올라온 문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무엇보다 축구 보는 눈도 확실하고, 애정도 느껴졌어. 마침 우리 회사 사정상 축구 관련 칼럼을 써줄 필진이 부족해서···.”

앨리스는 환한 얼굴로 가슴을 폈다.

“맡겨 주세요! 전술 분석이라면 자신이 있어요.”

“어··· 아무리 그래도 알바에게 전술 칼럼을 맡기지는 않지.”

“그런가요···.”

“네 실력이 꽤 좋은 편이긴 해. 언젠가 좋은 분석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도 전술 칼럼은 네임밸류가 없으면 어림도 없거든.”

앨리스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해지려면 뭘 싸라고 하는 이야기인가요?”

“정확히는, 일단 유명해지면 싸기만 해도 박수받는다는 거 아닌가? 아, 물론 로커 애비뉴에서 싸면 유명해지긴 하겠네.”

“대신 제 인생이 사회적으로 끝장나겠죠. 네, 네, 아무튼 이해했어요.”

똑같은 내용의 원고라도 누가 썼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진다. 은퇴한 퍼거슨의 이름을 붙이면 전술적 통찰력이 풍기겠지만, 그녀의 이름에선 축알못의 헛소리만 느껴질 것이다.

설령 그녀가 SNS에서 이름 높은, ‘@이상한_나라의_블랙캣츠’라고 하더라도, 전술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에게 부탁할 원고는 다른 쪽이야.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 알지?”

“네. 들은 적 있어요. 선덜랜드 구단주가 해외 유소년 대상으로 여는 대회죠?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축구 강국과, 아프리카 쪽 제3 세계 국가들도 포함되어 있고요”

“응. 유소년 대회는 원래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우리는 지역지니까 선덜랜드 구단주의 미담을 기사화하는 느낌이면 괜찮다고 생각해··· 네게 맡기고 싶은데, 어때?”

“특파원···!”

앨리스의 눈이 야망으로 활활 타올랐다.

“출장비는 주시나요? 비즈니스면 편하겠지만, 저, 이코노미에서도 잘 버틸 수 있어요.”

“얘, 해외 출장은 너무 나갔다. 외국어 할 줄 알기는 하고?”

리타의 지적에, 앨리스가 우아하게 대답했다.

“퀸스 잉글리시는 국제 공용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 영국인으로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국제 공용어는 아메리칸 잉글리시지. 그리고 네 발음은 전형적인 맥켐즈 사투리고.”

“그야, 저는 지역 토박이니까요··· 네, 네, 이해했어요. 출장 가지 말고 조사만 해서 쓰라는 말씀이시죠?”

앨리스는 마침내 상황을 파악했다.

‘하긴, 해외 특파원 업무를 고작 아르바이트생에게 시키지는 않겠지.’

사실 지금의 원고조차 그녀에게는 꽤 과분한 일자리나 마찬가지였다. SNS에서 활동한 경력이며 이름값이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다.

그렇게 앨리스는,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 특집 원고를 준비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는 리미트리스에서 보내준 보도자료를 참고했지만, 날것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인터넷이나 SNS를 뒤적거리기도 했다.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었다.

[한국에서는 우승팀의 주장, 센터백 최새벽이 프로로 계약한다. 오는 겨울부터는 임대로 오시예크에서 뛸 예정이다.]

“와! 얘는 좀 잘생겼···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모로코 대회에서는, 선덜랜드의 전임 감독 로저스가 옆에 끼고 있는 천재 소년 바르카가 두각을 나타냈다. 타고난 득점원으로, 아직 어린 나이지만 골문 앞에서 보여주는 냉정함이 굉장하다.]

[브라질에서는 윙포워드 로베르토가 맹활약을 펼쳤다. 브라질리언 특유의 리듬을 살린 현란한 드리블은, 마치 춤사위와 같았다.]

바르카와 로베르토는 마침 나이도 적당하다. 선덜랜드가 자랑하는 축구 천재, 테오 또래의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사하던 앨리스의 입이 아주 헤벌쭉 벌어졌다.

“그러니까, 얘들이 앞으로 다 선덜랜드에서 뛰게 된다, 이런 말이잖아!?”

앨리스의 머리에 여러 단어가 스쳤다. 퍼기의 아이들, 밀란 제너레이션, 라마시아 제네라시온 87··· 축구계에서 이름을 떨쳤던

“어떤 호칭이 좋을까? 썬의 아이들? 리미트리스 제너레이션?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 10? 어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네. 진짜.”

그녀가 기사의 제목을 고민하던 사이, 조금 다른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카메룬 대회를 지켜보던 누군가가 올린 SNS였다.

[눈물 어린 기권패? 디아라,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빠져···.]

* * *

디아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선덜랜드 데일리의 사장 겸 편집장 리타가 아르바이트를 한 명 뽑았는데, 그 아르바이트가 기사를 쓴답시고 SNS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디아라의 사연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아르바이트에게서 리타, 애니를 거쳐 내게 소식이 전해진 다음부터는, 대응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 카메룬 대회 관계자들이 곧바로 자료를 보내왔다. 대회에서 뛰던 당시의 하이라이트 영상이었다.

처음 든 생각은, 환상적이라는 것이었다.

디아라는 무척이나 발이 빠르고 부지런한 미드필더였다. 몸싸움도 강인하고, 지구력도 좋아 보인다. 게다가··· 항상 올바른 위치를 찾아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마의 숫자는 500.

재능만으로는 1부 리그 어느 팀에서도 주전이 될 유망주고, 우리 팀 안에서도 당장 다섯 손가락에 꼽힐 재능의 소유자다.

비록 체계적 훈련을 받지 못해 볼 컨트롤은 조금 투박해 보였지만, 3선의 미드필더에게는 그렇게까지 큰 단점은 아니었다. 그리고 디아라는 아직 어린 나이이므로, 좋은 코치를 만나면 곧바로 바로잡을 수 있다.

세상없어도 데려오고 싶은 재능이다.

잠시 후 영상이 바뀌었다. 리미트리스에서 마련한 유니폼 대신 낡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채, 손에는 마체테 칼을 들고 있는 디아라의 모습으로.

[대회요? 그만둬야죠. 아빠가 아픈 지 오래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엄마 혼자서 카카오를 따게 할 수는 없고요.]

[그래도 잠깐이지만, 잔디 위에서 축구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축구화도 신어 봤고요.]

소년의 발에는 축구화 대신 낡은 플라스틱 샌들이 신겨 있었다. 사실 축구화는 작업용으로는 썩 편리한 도구는 아니긴 하지만···.

“이미 팔아··· 버렸을 수도 있겠네요. 저런 형편이라면, 축구화는 사치품이었을 테니까요.”

급하게 날아온 다미가, 핏기가 가실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제 불찰이에요.”

“담당자 잘못이겠지.”

카메룬 대회 진행을 원래 맡고 있던 리미트리스 담당자는 당연하게도 퇴사했고, 이번 영상은 새 담당자가 보냈다.

“아뇨. 제 잘못이죠. 해당 지역 담당자에게만 맡겨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논리면, 너한테만 맡겨 둔 내 책임이 되는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네 책임 아니니까.”

“사장님···!”

다미의 커다란 눈망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부풀어 오르고 흔들린다 싶은 순간, 옆에서 브라이언이 헛기침을 했다.

“브로. 그런 건 둘이 있을 때나 하고, 지금은 일 이야기나 하는 게 어떨까?”

하긴, 굳이 따지자면 이건 리미트리스의 업무니까, 나중에 다미하고 둘이서 따로 정리해야겠지.

“근데 희주 너는 뭐 하냐?”

“응? 레프트백을 어느 쪽 사이드라인에 묻··· 아니, 어느 사이드라인이 가깝나 싶어서.”

왼쪽 라인이라고 답하면 간단하겠지만, 어느 골대 기준으로 왼쪽이냐가 문제겠지. 브라이언이 곧바로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 레이디. 대부분은 나이얼 스탠드를 바라보는 쪽 골대를 우리가 전반에 씁니다··· 정확히는 상대가 피하는 거지만요.”

나이얼 스탠드는 선덜랜드 팬들에게 가장 상징적인 관중석이고, 열혈 팬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원정 팀은 절대로 나이얼 스탠드를 후반에 등지지 않으려 한다.

“그렇군요··· 나이얼 스탠드를 바라보고 왼쪽 사이드면 괜찮겠어요, 브라이언 씨?”

브라이언을 바라보는 희주의 시선이 아련하다. 마치 영원한 작별을 앞둔 사이처럼··· 뭐지? 브라이언이 나 몰래 불치병이라도 걸렸나? 내 친구 곧 죽는 거야?

브라이언의 병명이 끝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긴급회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재능이 묻히지 않도록 신경 쓰고 싶었지만, 세상엔 축구를 할 여유 자체가 없는 아이들도 있었네요.”

한국에서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는 사례가 종종 있지만, 그래도 재능이 있으면 어떻게든 기회를 잡기 마련이다.

한국은 인프라가 그만큼 잘 갖추어진 나라니까.

아프리카 쪽은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바르카 같은 천재 소년은 무사히 발굴했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케이스가 훨씬 많았다. 집의 생계를 위해, 대회에 나올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소년들이.

희주가 번쩍 손을 들었다.

“좋은 생각이 났어! 축구 하러 오는 애들에게 일당을 주는 거야. 어때?”

“어··· 지금 아동 노동이 문제인데,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까지 아동 노동의 현장으로 만들겠다고?”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더니, 희주가 헤실헤실 웃었다.

“물론 아동 노동 느낌이 들지 않도록, 명목상으로는 참가상이라고 해야지··· 아무튼, 축구를 하러 오면 돈을 준다는 식이 되면 일 대신 축구를 선택하지 않을까?”

희주의 이야기에 브라이언은 곧바로 만족했지만, 나와 다미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브로, 혹시 예산 때문에 그래?”

“감독님··· 저희 회사 이름이 뭔지 잊으셨나요?”

브라이언이 끼어들자, 다미가 곧바로 응수했다. 그 직후, 내가 덧붙였다.

“예산 문제는 아니야. 카카오 농장 하루치 벌이보다 조금 더 주면 그만이거든··· 별로 큰 금액은 아닐 거야. 애초에 돈 잘 벌면 굳이 애들까지 동원하진 않을 테니까.”

“네, 사장님 말씀대로 예산 문제는 아니에요. 그저··· 일당 좀 뿌리는 건 미봉책에 불과한 것 같아서요.”

디아라는 이미 내 눈에 들었다. 대회의 결과와 상관없이, 그를 데려올 것이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문제는 제2의, 혹은 제3의 디아라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지. 그래서 말인데, 초콜릿 브랜드는 어디가 유명하지?”

그러자, 다미가 곧바로 열렬히 환호했다.

“사장님, 정말 멋진 생각이세요!”

* * *

앨리스의 기사는, 선덜랜드 전체에 큰 반향을 불렀다.

[문제가 된 카카오 농장은 리미트리스에서 곧바로 인수했고, 일당을 기존의 두 배로 지급하는 대신 미성년자의 노동은 절대로 허가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추가로, 리미트리스는 아프리카에 카카오 가공장을 짓기로 발표했는데, 이번 유소년 대회의 우승팀이 나온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덕분에 원고료도 적지 않게 받았다. 꽤 비싼 편인 요니의 챔스 첫 골 기념 피규어를 사고도 돈이 충분히 남을 정도로.

하지만 앨리스는 피규어를 구입하지 않기로 했고, 발매 당일에는 메가스토어에 들러 정중히 사과했다.

“죄송하지만, 피규어 예약 주문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그러시군요.”

“네··· 다른 게 갖고 싶어져서요.”

앨리스는 선덜랜드의 신제품, 유니폼 모양 초콜릿을 잔뜩 챙겼다. 원고료를 탈탈 털어서.

유명 초콜릿 브랜드 캐드베리와 선덜랜드, 리미트리스가 손잡고 발매한 굿즈로, 원료는 당연히 리미트리스 카카오 농장에서 가져오는 제품이었다.

‘다 못 먹으면 친구들 나눠 주지 뭐.’

앨리스는 평소 단 것을 그리 즐기지는 않았지만, 이번만은 피규어 대신 초콜릿을 사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아··· 그러시군요. 곧바로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예전, 앨리스에게 메시 유니폼을 양보했던 직원이 주위에 눈짓을 보내자, 스토어 안쪽에서 직원 몇 명이 급히 달려 나와 손뼉을 쳤다.

“어, 이건 뭔가요?”

모 스마트폰 회사의 직영점에서 물건 사면 직원들이 박수를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선덜랜드 메가스토어에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래서 앨리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인해 보니, 유니폼 초콜릿을 백 번째로 구입하셨어요! 상품으로 한정판 피규어를 드리게 되어 있는데요.”

“···거짓말.”

그러자 CS 직원이 흐드러지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거짓임을 명확히 알 수 있을 때는, 지적하지 않는 게 예의랍니다.”

선덜랜드 직원들은, 앨리스에게 억지로 요니의 피규어를 안겼다.

“저기··· 자꾸 이러시면 뭐가 남아요?”

“어머, 예전에 한 번 말씀드렸잖아요? 팬이 남는다고요.”

장난스럽게 대답한 직원, 에이미가 표정을 진지하게 고쳤다.

“이번에는 고객님 덕분에 어린 축구선수도 한 명 남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블랙캣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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