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64화 (264/422)

264화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순간 (2)

[챔피언스리그 조별 4경기, 선덜랜드 대 글라드바흐.]

원정팀 글라드바흐의 감독 휘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경기장에서 뛰는 건 솔직히 불공평할 정도군.”

드레싱룸의 설비나 숙소에는 불만이 없었다. 축구계의 오랜 관례대로 약간의 심술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래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원정 드레싱룸은 보루시아 파르크의 홈팀 드레싱룸보다도 훨씬 호화롭다.

문제는 함성이었다. 킥오프 전부터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몰려든 관중들의 목소리는, 도저히 칠만 석 수준이라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지그날 이두나 파크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도 뛰어 봤지만···.”

아마 경기장 옆에 지어둔 풋볼 스퀘어의 함성이 더해졌기 때문일 거라고, 휘터는 생각했다.

‘솔직히, 이 보드진은 정말 부럽군.’

팬들의 충성도 관리를 어지간히 신경 쓰는 팀이 아니라면, 경기장을 이 정도로 끓어오르게 만들 수가 없다. 덕분에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원정팀의 지옥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베테랑들을 내보내면 이곳에서도 버틸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선덜랜드의 젊은 선수단에게 기동력으로 잡아먹히겠지. 젊고 쌩쌩한 친구들은 분위기에 휩쓸릴 테고.’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휘터는 이곳에서 선덜랜드를 꺾기가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싸우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경기의 양상은 1경기와 비슷하게 흘렀다. 글라드바흐는 젊은 라인업을 출격시켰고, 많이 뛰고 기동력 좋은 팀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했다. 1경기에서 보여준 브라이언의 전술에 대한 나름의 대책도 마련했다.

하지만 승패의 향방을 바꾸지는 못했다.

- 축구는 아주 간단한 스포츠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따라 달리다가, 마지막에 선덜랜드가 이기는 게임.

팬들의 찬사처럼, 선덜랜드는 당연하다는 듯 승리를 따냈고, 글라드바흐의 축구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불패 신화에 상처를 주지 못했다. 아탈란타와 한창 조 2위 싸움 중인 글라드바흐로서는 무척이나 뼈아픈 패배였다.

경기 종료 후, 언제나처럼 양 팀 감독들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나름대로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를 바꾸긴 힘들군. 완패했네.”

휘터의 칭찬에 브라이언이 겸손하게 대답했다.

“아뇨, 훌륭한 축구를 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감독님께 이기지 못했으니까요.”

이기지 못했다는 브라이언의 답변에, 휘터는 어깨를 으쓱하며 스코어보드를 돌아보았다.

[선덜랜드 3 - 0 글라드바흐]

“이기지 못했다고 말하기엔 점수 차이가 너무 크잖아.”

“제 전술이 아니라 팀이 이긴 겁니다. 죽도록 달린 우리 선수들이요. 그리고 이곳,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공기는 정말로 특별하죠. 이 경기장에서라면, 우리는 누구와도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맞잡은 손에 살짝 힘을 넣으며, 휘터가 유머러스하게 덧붙였다.

“믹스드 존에서도 똑같이 말해.”

“네?”

“인터뷰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던데··· 사실 방금 이야기는 무척 훌륭했거든.”

휘터 나름대로는 선의의 조언이었지만, 썩 효과는 없었다. 믹스드 존에 선 브라이언이, 인터뷰 대신 자아비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팬 여러분, 저는 오늘 이기지 못했습니다. 표면적인 스코어는 대승이었지만, 경기의 깊은 의미를 뜯어보면 전술적으로는 불만족스러운 국면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이상하다.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는 분명히 정상이었는데··· 천재라는 족속은 원래 다 저런 건가?”

* * *

[챔피언스리그 조별 5경기, 샤흐타르 대 선덜랜드]

샤흐타르 원정을 앞두고, 마일즈의 집에 선덜랜드 축구팬들이 다 같이 모였다.

술과 요리는 맥주집 사장이 조달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를 하길래, 우리도 참고하려고.”

“그래서 사장이 직접 배달하는 건가? 서비스 가능 지역은?”

“게이츠헤드 27번지 인근.”

아무리 생각해도 배달 서비스라기보다는 그냥 사장이 자기 지인들 집에 음식 싸들고 찾아오는 느낌에 가까웠지만, 딱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화면에는 축구가 있고, 옆에는 같은 팀을 응원하는 동료가 있으며, 눈앞에는 술과 안주가 있으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집주인 우드 부부도 따로 마실 것과 먹거리를 준비했다. 오늘은 술을 마실 수 없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예를 들면 선덜랜드의 소녀 팬, 앨리스 같은.

“정말 귀여워요! 아기가 엄청 얌전하네요?”

“어휴, 말도 마. 평소엔 얼마나 활발한데. 근데 축구 볼 때만 얌전하더라.”

수잔과 이야기를 나누는 앨리스를 흘끔거리며, 마일즈가 브렌든에게 속삭였다.

“그래서 쟤가 축구를 그렇게 잘 안다고?”

“맞아. 우리 같은 늙다리 축구팬은 이제 끝났다는 걸 보여주는 산증인이지. 경기 보는 눈도 좋고, 선수 스탯 데이터도 잘 알더라고··· 요즘 우리는 쟤 해설 듣는 맛에 살아.”

잠시 후, 주스로 목을 축인 앨리스가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지난 4경기에서 글라드바흐에 승리하면서, 우리는 승점 12점으로 16강 진출을 확정했어요. 샤흐타르와 글라드바흐가 12점 이상 따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는 브라더스의 옆에서, 마일즈도 수긍했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상 조 1위를 확정한 거나 마찬가지죠. 순위가 바뀌는 유일한 경우의 수는, 아탈란타가 남은 경기를 전승하고, 우리가 전패하는 경우밖에 없거든요!”

선덜랜드의 팬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경기 전에 친절하게 정리해 주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아직 승점 계산이나 경우의 수를 잘 모르는 수잔은, 박수까지 칠 정도로 기뻐했다.

앨리스의 설명처럼, 일단 선덜랜드가 전패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B조 최약체로 평가받는 샤흐타르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할 가능성은 무척 희박했으니.

“아탈란타의 전승은 어려울 거 같아요. 조 2위 경쟁 중인 글라드바흐가, 사력을 다해 아탈란타를 물어뜯을 거니까요.”

잠시 후 앨리스가 미소를 지었다.

“따라서 오늘 선덜랜드는 로테이션을 돌릴 게 틀림없어요. 조별리그 1위 진출을 거의 확정한 마당에, 굳이 힘 뺄 필요는 없으니까요.”

수잔이 열렬히 환호했고, 맥주집 사장과 핫도그 사내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브렌든은 조용했고, 마일즈는 처음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좀 아니지 않나?’

혹시 오늘 경기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열리는 거였다면 마일즈도 똑같이 대답했을 것이다. 조별리그 1위를 거의 잡았는데 왜 쓸데없이 힘을 빼야 하느냐고.

하지만 오늘은 원정이고, 샤흐타르의 홈, 올림피스키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와 대등한 칠만 석 경기장이다.

‘칠만 명 관중들이 미쳐 날뛰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데, 굳이 모험할 필요는 없지. 우리 감코진은 바보가 아니야.’

마일즈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앨리스의 예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기세등등한 십 대 소녀에게 굳이 지적질로 망신을 줘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저 나이는 대체로 복잡한 시기라는 정도는 마일즈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일즈가 고민 끝에 침묵을 선택한 순간, 브렌든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내가 아는 선덜랜드는 힘을 뺄 팀이 아니야.”

“어? 그럴까요?”

“장담할 수 있어. 그게, 나는 원래 조르디였잖아? 만일 선덜랜드가 어설프게 힘 조절하는 팀이었으면, 갈아타지 않았을 거야.”

뜻밖의 착안점이었는지 앨리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가, 다시 가늘게 휘었다.

“이해했어요. 선덜랜드는 매 시즌 전력을 다해 위로 올라가는 팀이었죠··· 만일 이럴 때 힘 조절하는 팀 컬러였으면, 진작에 하부 리그에서 발목을 잡혔겠네요.”

브렌든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런 것도 있지만··· 일단 힘 조절하는 선덜랜드에는 반하지 않았을 테니까.”

잠시 후, 킥오프를 앞두고 선덜랜드의 일레븐이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축구의 신을 필두로 마르틴, 베넷, 브루노··· 잭과 요니를 포함한 선덜랜드의 주전 대부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앨리스가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세요! 역시 오랜 팬의 경험은 아직 제가 따라가지 못할 것 같네요.”

그날 선덜랜드는 샤흐타르 상대로 고전했다. 어쩌면 상대가 자랑하는 칠만 석 경기장의 함성에 조금쯤은 주눅 든 것처럼 보였다.

평소 칠만 명의 함성에 의지하던 선덜랜드 선수들에게, 똑같은 규모의 야유는 퍽 생소한 것이었다.

그래도 레드 앤 화이트 아미는 패배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았다.

[샤흐타르 0 - 1 선덜랜드]

선덜랜드가 조 1위를 완벽하게 확정하는 순간이었다.

* * *

[챔피언스리그 조별 6경기, 선덜랜드 대 아탈란타]

챔스 조별 마지막 경기, 아탈란타와의 홈경기는 우리에게는 사실상 아무런 영향이 없는 매치였다. 이미 16강 진출에, 조 1위까지 확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기에서는 보통 후보를 내는 경우가 많고, 심한 팀들은 유소년을 섞는 경우도 있다. 물론 우리도 어느 정도 로테이션을 돌렸다.

그래도 완전히 힘을 빼지는 않았다. 글라드바흐와 아탈란타의 조 2위 싸움이 남아 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대충하기는 아무래도 좀 찜찜하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역시 동기부여를 유지했다.

브라이언과 샐리는 새로운 전술을 실험하겠다며 벼르는 중이었고, 주장단은 선수들을 소환해서 독려했다.

“팬들이 보고 계심다!”

이어질 이야기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홈 팬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잭은, 팬들 앞에서 대충 뛰는 선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아직 어린 해리슨과 프랭크의 어깨가 동시에 살짝 움츠러들었다. 다만, 대충 뛰려다 걸린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주장의 단호한 시선에 조금 기가 죽은 것처럼 보인다.

에디가 재빨리 끼어들며, 해리슨과 프랭크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진 말고. 아침에, 혹은 밤에 따로 연습할 때처럼만 뛰면 돼. 그렇게만 하면 저절로 경기력이 따라올 거야. 너희들은 우리 팬들의 자랑거리니까.”

“아니, 나도 그 소리를 하려던 건데···.”

그렇게 우리는 아탈란타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칠만 명 홈 팬들의 외침, 주장단의 독려, 브라이언의 새로운 전술, 부두술사가 제공받은 각종 공물 중 무엇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오늘도 변함없이 강력했다는 것이었다.

[빌 크리그-! 쐐기골을 넣었습니다! 마침내 우리 선덜랜드가 처음으로, 챔스 16강에 진출-합니다!]

조별리그 6전 전승, 지금의 우리는 챔스의 어떤 팀을 만나도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과시했다.

- 누가 B조는 천하제일 ㅈ밥대전이라고 하지 않았음?

ㄴ 선덜랜드 입장에서는 정확한 표현이었네.

ㄴ 조별리그 2위 통과는 사형선고 아님? 저 선덜랜드하고 16강에서 만날 수 있다는 소리 아니야.

ㄴ B조 2위는 사형 면제입니다. 글라드바흐 만세!

* * *

챔스 조별리그가 끝난 다음 날에도, 일부 선수들의 새벽 자율연습은 계속되었다. 그 사이에는 선덜랜드의 차세대 포백라인, 최새벽의 모습도 섞여 있었다.

최새벽의 태클은 예리했다. 선덜랜드의 어린 플레이메이커 해리슨조차 피하기 힘들 정도로.

공을 빼앗긴 해리슨의 몸이 잔디 위를 굴렀다.

“와, 너 진짜 잘한다! 프랭크는 이런 거 못 하는데!”

몸을 일으키며 해리슨이 환호하자, 옆에서 구경하던 프랭크의 얼굴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아니, 나도 할 수 있는데?”

“너는 전에 나한테 넛맥 먹었잖아.”

해리슨이 싱긋 웃자, 프랭크의 얼굴이 붉어졌다.

“야, 딱 한 번 뚫린 걸 언제까지 우려먹으려고!”

“그럼 들어와. 다시 해보게.”

“오냐. 오늘 아주 잔디 청소 제대로 시켜 주마. 나도 관리인님한테 칭찬 좀 들어보자.”

프랭크가 이를 드러냈고, 최새벽은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났다.

사이드라인 밖에서 지켜보던 베넷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슬라이딩 태클 엄청 잘하네. 구단주님이 일부러 데려올 만하겠어.”

“별로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요.”

“그래?”

“해리슨은 패서고, 저는 센터백이잖아요?”

베넷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오호라··· 패스가 특기인 해리슨에게서 공 뺏는 건 자랑거리도 아니란 말이지?”

“패스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으면, 해리슨도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센터백의 역할은 태클이 아니고요.”

센터백은 필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최후의 보루 노릇을 하고, 그 뒤에는 오직 골키퍼가 있을 뿐이다. 혹시라도 슬라이딩 태클에 실패하면 곧바로 일대일 찬스를 내주게 된다.

“실패하지 않도록 연습은 하고 있지만··· 시도하지 않는 게 가장 좋죠.”

“프랭크도 널 보고 배워야 하는데.”

베넷이 보기에, 프랭크의 태클 기술은 최새벽 못지않다. 아니, 어쩌면 기술적인 부분만 따지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프랭크는 최새벽보다 두 살이 많은 선수니까.

그런데도 영리함이라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최새벽이 우위에 선 것처럼 보인다. 프랭크가 멍청한 선수는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새벽의 영리함이 더욱 놀라웠다.

정작 최새벽 본인은 프랭크를 자기보다 훨씬 고평가하는 모양이지만.

“풀백과 센터백을 동시에 소화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죠. 요구되는 플레이의 우선순위가 다르잖아요. 저는 도저히 자신이 없는데요.”

“맞아··· 그건 나도 불가능하지.”

동의하는 베넷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그의 라이벌 또한, 두 가지 포지션 모두를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진작에 센터백으로 옮길 걸 그랬나? 그랬으면 너와 대표팀에서 좀 더 빨리 같이 뛰었을 텐데.]

챔스 16강전에서 만나게 될 상대, 뮌헨의 뤼카를 떠올리면서 베넷은 천천히 주먹에 힘을 넣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