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65화 (265/422)

265화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순간 (3)

오늘도 희주의 스마트폰은 시끄러웠다. 희주의 SNS 계정, ‘@선덜랜드_구단주실’을 향한 멘션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 여친 안 생기게 해주세요.

- 시험 망치게 해주세요.

- 가게 망하게 해주세요.

“아오, 이것들이 진짜!”

전화기를 노려보던 희주의 눈동자가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네 자업자득이잖냐.”

“그건 그런데··· 부두술 하려면 공물이라도 좀 바치는 게 기본 상식 아니야? 최소한 선덜랜드 푸드트럭 소시지는 가져와야지.”

아무래도 여동생이 진지하게 부두술사로 전업을 꿈꾸는 모양이다.

계기는 챔스 16강 조추첨이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구단주실에 찾아온 최새벽이 어디서 구했는지 한국 과자를 잔뜩 늘어놓았고, 옆에서는 해리슨과 프랭크가 어설픈 발음으로 따라 했다.

희주가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아니 뭘 비는데요?]

[제가 팀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습니다.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비서님께 대량의 공물을 바치라고요.]

[아, 조추첨?]

대답 대신 최새벽은 비나이다를 반복했다.

[뭐, 굳이 이럴 필요는 없었지만, 잘 먹을게요! 음, 오랜만에 한국 과자가 땡긴다 싶었는데···.]

희주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과자를 개봉했고, 대량의 질소에는 약간의 불만을 드러냈다.

[어휴, 이거 잘 모아두면 구명조끼 대용도 되겠네. 혹시 위어 강이 범람하면 고맙게 쓸게요··· 근데 이번 16강은 뭐 신경 쓸 것도 없지 않아요?]

한때 죽음의 조라고 불린 B조에서 우리는 6전 전승을 따내며 압도적인 경기력을 과시했다. 이 팀이 고작 16강에서 발목을 잡힐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물론 전통의 강호들, 레알이나 바르샤, 뮌헨, 파리, 맨시티 같은 팀은 여전히 만만찮은 상대였지만··· 그들과 16강에서 만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B조 1위인 우리는 다른 조 2위와 만나기 때문이다··· 당연히 빅클럽들 대부분은 조 1위로 무난히 통과했고, 유일한 예외는 하필 죽음의 조에 걸렸던 뮌헨뿐이었다.

오죽하면 이번 16강 추첨에는 우리 스태프들도 딱히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정도다. 조별리그 조추첨 당시엔 마치 홈파티처럼 몰려들던 얼굴들이, 이번엔 코빼기도 안 비친다.

물론 감독으로서는 살짝 신경 쓰이는 이벤트였던 모양이다. 굳이 우리 유망주들에게 과자까지 들려 보낸 모습을 보면.

[아무나 만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뮌헨만 빼고.]

희주가 무심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조용히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아직 이변을 눈치채지 못한 우리 유망주 삼인방은 열심히 부두술을 시전했다.

[그렇죠. 잘 부탁드립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후, 우리가 귀신같이 뮌헨을 뽑았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이 이야기가 팬들에게 널리 퍼지면서 희주에게 성지순례 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애인 안 생기게 해 주세요, 사업 망하게 해주세요 같은 부두술 요청이 쇄도한다.

개인적으로는 ‘뮌헨은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를 시켜보고 싶긴 한데···.

“그나저나 이거 누가 소문낸 거야? 오빠, 아무리 봐도 최새벽이지? 자기는 이제 곧 크로아티아로 출국한다 이거잖아 지금.”

희주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내버려두면 괜히 애꿎은 최새벽 괴롭히러 크로아티아까지 따라갈 것 같은 기세라서, 나는 점잖게 타일렀다.

“괜히 유망주 핍박하지 마라.”

“아니면 프랭크? 해리슨?”

“글쎄, 나야 모르지.”

“아이참. 그때 구단주실에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범인일 텐데···.”

발을 구르는 희주를 곁눈질하면서, 나는 조용히 ‘@선덜랜드_대신_전해드립니다’ 계정에서 로그아웃했다.

* * *

챔스 16강에서 뮌헨과 만난다는 것만 빼면, 팀 분위기는 정말로 더할 나위 없을 만큼 훌륭했다.

리그에서는 무승부가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아직 무패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순위는 2위, 올 시즌 최우선 목표가 챔스임을 고려하면 무척 훌륭한 성과였다.

그리고 EFL컵에서도 꾸역꾸역 올라가는 중이다. 비록 우선순위에서 밀리기에 로테이션을 돌리고는 있지만, 어떻게든 악착같이 다음 라운드에 향하는 중이다.

승부차기도 한 번 했었다. 모처럼 승부차기에 강한 선덜랜드라는 면모를 과시하며, 시원하게 5-3으로 앞섰다. 상대의 마지막 키커는 공을 차 보지도 못했다.

분석실이 강해지면, 자연히 승부차기에도 강해지는 법이다. 본질적으로 승부차기는 방향을 읽는 싸움이니까.

“그래, 이 루벤 님 덕분이라는 뜻이군.”

“아닌데? 토마스 덕분인데?”

샐리는 저렇게 말했지만, 사실 루벤도 노력하고 있다. 메디컬 팀과 협력해, 선수 관리를 훨씬 더 체계적으로 하고 있으니까.

올 시즌, 여러 대회를 소화하는 우리 선수들에게는 어쩌면 루벤이야말로 세상 누구보다 위대한 스태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맞이한 겨울.

카메룬의 축구 신동 디아라가, 물끄러미 테이블 위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어··· 이게 다 뭡니까?”

내가 대답했다.

“뭐긴 뭐야. 생일상이지.”

곧바로 희주가 엣헴 하고 헛기침을 했다.

“우선 이쪽의 꼬치구이는 친숙하죠? 디아라 선수의 고향, 카메룬에서는 꽤 흔한 요리니까요. 오늘은 절반만 정통 카메룬식으로 요리했고, 나머지는 동아시아식으로 준비했어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을 체험하면 좋겠네요.”

카메룬식 꼬치구이 레시피는 디아라의 가족들에게 따로 체크했고, 조리는 선덜랜드 푸드트럭 인기 꼬치집 한 곳을 따로 불러 맡겼다.

“그리고 접시에 담긴 건 쿠스쿠스인데, 물론 이 또한 카메룬의 전통 요리고요.”

아무리 봐도 희주는 부두술보다는 먹방 해설이 훨씬 나을 것 같은 느낌이다.

설명을 듣는 디아라의 표정은 시시각각 총천연색으로 변했고, 동석한 다른 선수들은 벌써부터 식욕이 동하는 것처럼 입맛을 다시는 중이니까.

희주의 해설은, 대충 상반신만 한 높이의 커다란 생일 케이크에서 끝났다.

“그리고 오늘의 생일 케이크는, 시즌 중에 먹을 수 있도록 지방분 사용을 최소로 줄였어요. 아, 그렇다고 혼자 다 먹으면 안 돼요! 다 같이 먹을 거니까.”

디아라의 눈이 촉촉해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생활고 때문에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던 십 대 소년에게, 지금의 상황은 어쩌면 꿈만 같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납작한 종이상자를 내밀었다.

“열어 봐. 구단에서 준비한 선물이니까.”

“이건··· 유니폼이군요.”

조심스럽게 유니폼을 바라보며 웃는 디아라는, 아직 ‘선물’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덧붙였다.

“뒤집어 봐.”

잠시 후, 디아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유니폼의 뒷면에서 자신의 이름과 등번호 8 마킹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이건···.”

“그래, 워크 퍼밋이 나왔어. 너는 이제 선덜랜드 선수야.”

왕세손의 추천서를 확보한 시점에서, 이미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긴 했다. 아무리 영국이 입헌군주제 국가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왕족이니까.

게다가 비록 명예직이라고는 해도 축협 회장 자리에 앉은 사람의 서명이 들어간 것이니 적어도 영국 축구계에서, 이 추천서보다 효과적인 서류는 존재할 수가 없다.

아동 노동 관련 떡밥이 더해졌으니 영국 노동부도 당연히 거부할 리가 없고.

다만 그동안은 생일이 지나지 않았기에 줄곧 기다리던 중이었다. 유소년 선수의 해외 이적에 대해서는, 피파가 이래저래 귀찮게 구는 편이라서.

디아라가 눈물을 그렁거렸다.

“저···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왜 나만 불행한 걸까. 세상에는 원하면 축구를 볼 수 있고, 공을 찰 수 있는 애들도 있는데··· 왜 나만 카카오 농장에서 일해야 하는 걸까 생각했었습니다.”

디아라의 사연은 우리 팀 관계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다들 숙연해졌다.

샐리는 우아하게 손수건을 꺼냈고, 리지는 아끼던 모자를 눌러썼다.

잠시 후 디아라가 팔뚝으로 눈가를 슥슥 문질렀다.

“그런데 지금은 저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싶어서 믿기지가 않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수 속에서, 그날 디아라는 정식으로 선덜랜드의 프로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프로 데뷔를 앞둔 최새벽 또한 워크 퍼밋을 따내기 위해 크로아티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 * *

오시에크로 향하는 최새벽의 옆에는, 선덜랜드 원정지원팀 직원이 동행하는 중이었다.

전용기는 출격하지 않았지만, 대신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했다. 물론 비용은 구단 부담이었다.

그런데도 직원의 표정은 조금 어두웠다.

아마, 자신을 염려하기 때문일 거라고 최새벽은 생각했다.

최새벽과 디아라는, 비록 생일은 좀 차이 나지만 기본적으로 동갑내기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외국인 선수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한 명은 워크 퍼밋을 받아 곧바로 1군이 되고, 다른 한 명은 해외에 임대를 다녀야 하는 지금 상황은, 사실 최새벽에게는 퍽 가혹한 편이었다.

최새벽은 미소를 지었다.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솔직히 저는 디아라에 비하면 그동안 아무 고생도 안 하고 자랐던 거니까요.”

그렇기에 영국 노동부는, 한국에서 온 축구 유망주에게 쉽게 워크 퍼밋을 내주지 않을 것임을, 최새벽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실력으로 A매치 출전을 채우거나, 유럽 대회에서 활약하거나, 프로로서 계속 뛰면서 실적을 채워야 한다는 것을.

“조금 돌아가는 것도 괜찮죠. 오늘내일 축구하고 말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스태프님은 무슨 짐이 그렇게 많습니까?”

기내용 캐리어는 물론, 백팩까지 착용했다. 심지어 화물칸에도 대량의 짐을 실었으니, 이쯤 되면 무슨 보따리상이라도 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 이거? 이거 네 건데?”

“제 거라고요?”

최새벽의 질문에, 스태프가 가방을 풀어 내밀었다.

잠시 후, 손글씨로 적힌 카드며, 책 같은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 와라. 늦으면 자리 없다 - 프랭크]

[손수 정리한 오시예크 맛집 리스트 첨부함 - 이고르]

[그 팀 사람들은 다들 영어 할 줄 알아. 그래도 크로아티아에서 지내는 거니까, 간단한 회화는 할 줄 알면 좋지. - 터너]

먼저 오시예크 임대를 다녀왔던 터너는 손때 묻은 크로아티아 회화책을 전했고, 루벤은 웨이트 트레이닝 가이드를, 샐리는 전술 트렌드를 정리해서 넘겼다.

자신에 대한 선덜랜드의 마음이 느껴져서, 최새벽은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려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을 잠깐 머물다 간 외부인이 아니라, 같은 팀 식구로 대해주는 마음이 느껴져서.

하지만 그의 감정을 가장 흔들어놓은 물건은, 클럽하우스 구내식당 운영팀의 편지였다.

[정어리 파이는 사실 일부러 권한 거였어. 그 메뉴는 영국에서도 요즘 잘 안 먹거든. 팀에서도 브라이언 감독님이나 린다 팀장님 정도만 드셔.]

“이 사람들이 정말···.”

[보장할 수 있어. 영국 요리에도 적응한 너는, 크로아티아 음식에도 틀림없이 익숙해질 거라고. 그리고 네가 선덜랜드에 돌아오는 날에는, 쉐프 고든 씨가 개발한 선수 전용 메뉴를 대접할게. 건강히 다녀와!]

최새벽의 입꼬리가 일그러졌다.

“네, 반드시··· 워크 퍼밋을 따낼 만한 성과를 올려서··· 돌아가겠습니다.”

잠시 후 비행기가 오시예크 공항에 도착했다. 동승한 선덜랜드 원정지원팀 직원의 도움을 받아 비행기를 빠져나온 최새벽의 눈에, 피켓을 들고 마중 나온 사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시예크 스태프들, 심지어 단장까지 함께였다.

“선덜랜드 선수는 언제나 환영이지. 실력도 좋고, 성실하거든. 개인적으론 그쪽 구단주님께 너무 신세를 많이 져서 항상 고마워하는 중이기도 하고.”

미리 연습해둔 크로아티아 인사말이 어째서인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머뭇거리자, 단장이 호쾌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기분은 이해해. 임대 생활을 빨리 끝내고 싶은 게 선수 마음이지. 그래도 당분간은 우리와 함께 지낼 오시예크 선수니까, 같이 잘 지내보자.”

유창한 영어로 이야기하는 오시예크 단장을 향해, 최새벽은 가까스로 크로아티아어로 인사할 수 있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오. 미리 연습했나? 훌륭하군! 그리고 오늘은 환영회다.”

선덜랜드 원정지원팀 스태프가 미리 준비한 최새벽의 숙소로 짐을 옮기는 사이, 단장은 손수 차를 몰아 최새벽을 오시예크 클럽하우스에 안내했다. 환영회를 클럽하우스에서 하겠다는 설명은 덤이었다.

최새벽은 내심 기대했다. 이제 막 프로 계약을 맺은 어린 선수를 단장이 직접 마중 나올 정도라면, 당연히 환영하는 것이다.

‘어쩌면 메뉴도 상당할지도 모르지··· 양고기 요리가 그렇게 훌륭하다던데.’

최새벽의 기대는 절반만 맞았다. 환영식 만찬에는 양고기 비슷한 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꽤 상당한 메뉴였다.

“어··· 이게 뭡니까?”

여기가 클럽하우스인지, 아니면 코리아타운 한인식당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서, 최새벽은 눈을 깜빡였다.

다시 봐도 한국식 음식이 한 상이었다. 김치, 떡볶이, 순대국··· 심지어 치킨까지 출동한 것 같다. 양념으로.

최새벽은 속으로만 오열했다. 글로벌 식성을 유지하려던 노력이 또다시 아무 쓸모 없어질 상황 때문에. 그리고 최새벽의 침묵을 감동으로 오해한 오시예크 단장이, 그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다.

“모조리 주문했지. 한식이 그리울 것 같아서. 하하, 생색내려는 건 아니지만 음식점 찾느라 고생 좀 했어. 진짜 한국인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아주 맛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크로아티아 음식을 먹으며 적응 준비를 했으니까요.”

최새벽의 답변에, 단장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 각오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하긴, 썬 리 구단주님이 직접 뽑은 선수니 당연한 소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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