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순간 (4)
생일이 지나고, 디아라는 1군 훈련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줄곧 공을 차고 싶었던 어린 유망주는 훈련장에서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활발히 뛰어다녔지만,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재능만으로는 딱 봐도 1군 선수들조차 감탄할 정도였지만, 프로의 세계는 그저 재능만으로 통할 정도로 만만하지는 않았다··· 특히 지금의 선덜랜드는 더욱.
역사상 최고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대선수가 합류했고, 타고난 재능으로는 디아라에 뒤지지 않는 선수들도 즐비했다. 수년간의 노력과 오랜 훈련으로 갈고닦은 기술이 더해졌으니, 체계적인 훈련조차 받지 못했던 유망주 디아라로서는 그저 실력의 부족을 통감할 뿐이었다.
“뭐야, 몸이 너무 가볍잖아.”
경합 과정에서 디아라는, 가벼운 어깨싸움 끝에 톰슨에게 밀려 넘어지고 말았다.
프리미어리그에서라면 절대로 파울이 될 정도가 아닌 평범한 어깨싸움인데도, 디아라에게는 마치 돌벽을 어깨로 들이받은 느낌이 들었다.
쓰러진 디아라에게 톰슨이 손을 내밀었다.
“몸을 더 키워. 네 키에 그 체격이면 너무 마른 거야. 무슨 콩나물도 아니고··· 웨이트는 따로 하고 있겠지?”
“그, 그게··· 공을 차고 싶어서요.”
예상대로의 답변에, 톰슨이 인상을 썼다.
“혼자서 공놀이하고 싶은 게 아니면, 몸을 더 불려. 네 체격으론 리그 경기에서 공을 만지지도 못해. 다른 선수를 떠밀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드필더라면 경합에서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지··· 저 사내처럼.”
톰슨이 가리킨 축구의 신은, 단신이지만 특유의 낮은 무게중심 덕분에 경합에서 일방적으로 떠밀릴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단단한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고.
“혹은 우리 부주장처럼 공간 침투에 능하면 애초에 몸싸움을 피할 수 있겠지만··· 너는 그런 플레이만 하기엔 타고난 키가 아까우니까.”
“네, 네!”
질책과 격려가 섞인 반응에, 디아라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디아라의 소질 자체는 굉장하다는 게 선덜랜드 관계자의 중론이었다. 미드필더에서 필요한 모든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갖춘 재능러로, 흔히 말하는 육각형 미드필더의 자질을 타고난 유망주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자질의 이야기다. 현시점의 실력을 따지면 작은 육각형에 불과한, 앞으로 더 키워야 할 선수였다.
그런 디아라에게, 선덜랜드 선수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경기 흐름을 보는 눈은 조금 키워야 하겠던데.”
“네, 축구를 많이 보면 도움이 될까요?”
“그것도 좋겠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분석실에 가. 분석실에 가면 안목이 생기거든.”
스티븐이 미소를 지었다.
한때, 신체조건은 최상급이지만 축구 지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스티븐은, 이제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디펜시브 윙어로 활동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분석팀장 샐리의 세뇌에 가까운 주입식 교육이 있었다는 걸 아는 선덜랜드 1군 선수들이 같이 웃었다.
“인프런트 킥 말인데, 반대쪽 발을 좀 더 깊게 딛고 차 봐.”
“어, 그러면 안정감이 없지 않을까요?”
“너는 다리가 기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고 슬라이딩 태클은···.”
이런저런 이야기에 디아라는 과부하 상태가 되고 말았다. 심신 양면이 완전히 지칠 정도로.
기존의 1군 선수들과 자신의 가장 큰 차이는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선수로서 버틸 수 있는 능력임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힘든 훈련을 마치고도, 다른 선수들은 조금도 피로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주장은 집까지 걸어서 돌아간다고 할 정도다.
훈련장 출구에서, 주장 잭이 디아라를 돌아보았다.
“자! 그럼 오늘의 마지막 스케줄을 소화하자··· 웃어 봐.”
“네?”
“기본적으로 훈련 자체는 밖에서 볼 수 없게 막지만, 출입구 통로는 팬들에게도 시선이 닿거든. 그러니까 웃으며 나가는 거야. 손 흔들어주고. 사인도 해 주고.”
“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요? 경기 날도 아닌데요.”
피로에 지친 디아라가 무심코 뱉은 말에, 주장의 얼굴이 엄격해졌다.
“저 팬분들이 없으면, 우리가 하는 건 그냥 공놀이가 되는 거야. 우리를 위해 응원해주고, 돈을 써주고, 한결같이 경기장 찾아와주는 저 고마운 사람들에게··· 웃어주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말문이 막힌 디아라의 어깨를, 주장 잭이 두어 번 두드렸다.
“잠깐 여기서 보고 있어.”
잭은 먼저 경쾌한 걸음으로 훈련장을 빠져나갔고,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미소를 보냈으며, 때로는 달려가서 안아주거나 사인을 해 주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디아라의 곁에서, 에디가 슬쩍 덧붙였다.
“참고로 이 시간에 웃는 건, 나중에 시합에서도 도움이 돼.”
“네?”
“생각해 봐. 축구는 90분간 뛰어다니는 종목이지. 서로 체력소모가 굉장해··· 지치고 피곤한 기색을 겉으로 드러내면 상대팀 선수는 아마 굉장히 기뻐할걸?”
디아라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힘을 주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자세히 보면 억지웃음임을 알 수 있는 어색함이 남아 있었지만, 멀리서 보면 웃는 낯이 되기는 했다.
“잘했어. 사인 연습까지는 하라고 안 하겠지만, 웃는 연습 정도는 해 둬.”
“아뇨. 사인도 연습해두겠습니다.”
경기가 없는 날, 훈련장까지 찾아와줄 정도의 진성 팬들과, 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주장을 바라보는 디아라의 눈동자에 열기가 돌기 시작했다.
“저도, 나중에 저런 선수가 되고 싶으니까요.”
* * *
“몸이 달라. 타고났어. 구단주님은 어떻게 저런 애를 데려오신 걸까?”
훈련을 마친 디아라의 데이터를 확인한 루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샐리가 키득거렸다.
“어떻게라니, 저런 애를 데려오려고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 대회를 여시는 거잖아?”
“내 말은, 그 많은 유소년들 중에서 어떻게 한눈에 저런 애를 알아보냐는 거야. 대회도 세계 각지에서 했다면서.”
루벤의 의문에, 샐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야 구단주님 안목은 특별하니까. 생각해 봐. 루벤 너는 A급 차석이었어. 그런데도 불러주는 곳은 없었지. 라이센스 수료에 필요한 경력 채우기도 힘들었잖아? 성격이 워낙 개판이라서···.”
“샐리 너한테 성격 나쁘단 소리 들으니 기분이 참 신선한데.”
“애초에 선수의 컨디션과 운동능력만 관리해주면 된다는 네 발상은 코치계에서는 이단적이야. 한마디로 너는 악성재고였다고. 구단주님이 데려오기 전까지는.”
루벤이 수긍했다.
“하긴, 그랬지. 애초에 라이센스도 없었던 예전의 너는 말할 것도 없고···.”
“맞아. 그러니 선수 한두 명 줍는 정도는 이상한 일도 아니잖아?”
미소 짓는 샐리의 옆에서 분석팀 신입 토마스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면 저도 마찬가지군요. 직장에 적응 못 하고 금방 그만둔 저를 주워 주신 거니까요. 제 첫 직장은 분석이 강한 팀으로 유명했으니, 구단주님이 아니었으면 기회를 잡기 힘들었을 겁니다.”
“맞다, 거기 분석팀장은 요즘 어떻게 지내?”
“지금은 잘렸다고 하던데요.”
브렌트포드에서 전혀 빛을 보지 못했던 토마스는, 선덜랜드로 옮겨오면서부터는 맹활약을 펼쳤다. 당연히 업계에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이야기는 브렌트포드 쪽에도 전해졌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브렌트포드 구단주는 격분했고, 토마스를 홀대한 분석팀장을 곧바로 날려 버렸다.
“뭐, 그 사람은 팀원의 가치를 모르는 타입이었으니··· 잘리는 것도 당연하지.”
“팀원의 소중함을 모르는 건 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시끄러워. 나는 사람의 가치를 아는 좋은 팀장이니까, 신입 스카웃 다녀올게.”
루벤의 항변을 단호하게 묵살한 샐리가 경쾌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입이요?”
“응, 재미있는 애가 있더라고. 아직 어리지만, 앞으로 잘 키우면 굉장할 것 같아··· 유일한 결점은 프레스팀 애니 씨가 눈독 들인다는 거지만.”
* * *
디아라의 첫 인터뷰는, 선덜랜드 데일리에서 단독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선덜랜드 프레스팀은 특정한 언론사를 편애하지 않는 원칙이지만, 디아라의 사연을 알린 건 선덜랜드 데일리의 단독 특종이었잖아? 그렇다면 영입 후 첫 인터뷰도 당연히 단독으로 해주는 게 도리겠지.”
“이해했어요. 그래서 저를 지명하신 거군요.”
대답하면서도 앨리스는 무심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말았다.
선덜랜드 데일리에 기고하면서 신문사는 몇 번 드나든 적이 있었다. 그래도 프로 축구단 사무실에 방문한 건 처음 있는 일이라 자꾸만 시선이 멋대로 움직였다.
앨리스의 태도를 눈치챈, 선덜랜드 프레스팀장 애니가 키득거렸다.
“인터뷰 나오는 건 처음이지?”
“네, 그동안은 주로 인터넷에서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서 기사로 썼어요. 그래서 말씀인데··· 저 같은 초보에게 인터뷰를 맡겨도 괜찮으신가요?”
“그야, 우리 애도 초보니까.”
애니는 시원하게 대답했지만, 나름의 꿍꿍이가 있었다. 실은 오늘의 인터뷰는 앨리스의 채용 심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구단주의 허가는 이미 받아낸 상태였다. 앨리스가 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구단 스태프로 채용하고 싶다는 의견에 구단주 이희성은 잠시 고민했지만, 사진을 한 번 들여다본 이후에는 곧바로 허락했다.
문제는 적성과 경험이었다. 프레스팀의 업무는, 지금까지 앨리스가 해온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언론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본인이 직접 현장에서 취재해 본 경험이 필요했다.
물론 그런 내막을 꿈에도 모르는 앨리스는, 순수하게 첫 인터뷰에 대한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열심히 심호흡하는 중이었다.
잠시 후 디아라가 브리핑 룸에 들어왔다.
앨리스는 살짝 반가움을 느꼈지만 내색하지는 않으려 노력했다. 디아라가 먼저 알아본다면 또 모를까, 자기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는 싫었다.
어쩐지 생색을 내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고, 선덜랜드에 오기 전 이야기는 사실 디아라가 썩 반기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대신 앨리스는, 조금 서툰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선덜랜드에 합류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데뷔전을 무척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리슨 선수나 프랭크 선수도 1군 콜업부터 공식전 데뷔까지는 한참 걸렸으니, 제 차례가 늦어질 것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1군의 훈련을 배우면서 힘을 붙이고 있습니다.”
디아라의 답변은 앨리스의 상상보다 훨씬 말끔하고 능숙했다. 마치 따로 연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혹시 특별히 역점을 두어 준비하는 내용이 있나요?”
“네, 사인입니다.”
“사인이군요.”
앨리스는 무심코 웃어버리고 말았다. 디아라의 답변이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아라는 의외로 진지했다.
“선덜랜드의 축구 선수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해해요. 선덜랜드는 팬 서비스가 좋은 팀이니까요··· 사인을 처음으로 해주고 싶은 사람은 있나요? 가족? 아니면 여자친구?”
“그건 비밀입니다.”
디아라의 태도는 의젓했다. 사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앨리스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알겠습니다. 이제 곧 챔스 16강전인데요. 선덜랜드로서는 정말로 역사적인 순간이죠? 팀의 일원으로서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뮌헨은 강적이지만, 저희도 모두 똘똘 뭉쳐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아직 챔스에서 뛸 기량은 아니지만, 다른 경기에서 동료들의 체력 부담을 덜어주고 싶습니다.”
* * *
나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원인은 애니와 샐리의··· 그러니까 프레스팀과 분석실 사이의 분쟁이었다.
“썬, 아까 인터뷰 봤지? 앨리스 쟤는 타고난 언론인이야. 애초에 유명해진 계기도 기사 쪽이었고.”
애니의 이야기에, 샐리도 지지 않고 반론을 펼쳤다.
“그 아이가 가진 축구 지식은 남다른 수준이죠. 전술 트렌드도 잘 알고, 선수 기용에 대해서도 센스가 좋아요. 잘 키우면 분석팀에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하는데요.”
옥신각신하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던 희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그걸 왜 우리 오빠에게 말씀하시나요?”
“직원 채용은 인사 문제니까 고용주에게 묻는 게 당연하죠?”
“구단주님의 사람 보는 안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니까요.”
애니가 내세운 정론에 반박하기도, 샐리의 기대를 저버리기도 힘들었지만, 내 솔직한 심정으로는 대략 난감하다는 것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숫자는 직업에 따라서는 바뀌지만, 직무에 따라 바뀌지는 않는다. 따라서 나는 앨리스의 구단 스태프로서의 가치는 알 수 있지만, 프레스팀과 분석팀 중 어느 쪽이 좋은지는 확신할 수 없다.
애초에 앨리스는 아직 고등학생, 분석팀과 프레스팀 중 어느 업무가 어울리는지 정하기는 조금 어려운 나이다.
“일단은.”
내가 입을 열자 곧바로 주위가 조용해졌다. 애니와 샐리는 둘 다 기가 세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고용주의 권한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구단주실에, 내 목소리만 울렸다.
“채용부터 하고 정하죠. 본인이 선덜랜드에서 일하고 싶은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잖아요?”
* * *
선덜랜드의 팀장들이 자신을 탐낸다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앨리스는 집으로 배송된 소포를 뜯어보는 중이었다.
선덜랜드의 엠블럼이 붙은 종이 상자를 열자 붉은색 유니폼이 모습을 드러냈다. 등번호 8, 디아라의 마킹 레플리카였는데, 사인도 들어가 있었다.
[실은 미리 준비했지만, 혹시라도 기사가 나오기 전에 선물을 드리면 괜한 오해를 부를까 기다렸습니다.]
유니폼에 동봉된 디아라의 카드를, 앨리스는 조심스럽게 꺼내 읽었다.
[제가 축구선수로 뛸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만, ‘@이상한_나라의_블랙캣츠’ 님이 아니었다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었는데···.”
무심코 혼잣말하며, 앨리스는 생각했다. 이래서 이 팀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감사의 인사와, 앞으로 좋은 선수가 되겠다는 약속을 담아, 프로 선수로서 제 첫 번째 사인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