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67화 (267/422)

267화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순간 (5)

노스이스트 저널 사무실.

뮌헨전을 앞두고, 취재진이 머리를 맞대는 중이었다.

“생각해보니, 선덜랜드 기사는 의외로 쓰기 편한 것 같더라고요.”

“그런가?”

“예전에는 굳이 자극적인 가십 기사를 뽑으려고 노력했는데···.”

이야기하며, 기자가 살짝 입맛을 다셨다. 그랬다가 리미트리스 부사장이 친히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후 노스이스트 저널은 완전히 꼬리를 내렸고, 현재는 대표적인 친-선덜랜드 언론으로 알려져 있다.

“어차피 우리는 노스이스트 잉글랜드 지역 언론이잖아요. 이 지역 사람들은 절반 좀 넘게 선덜랜드 팬이고요. 대충 무지성 칭찬만 반복하면 반응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기자의 이야기에, 편집장이 인상을 썼다.

“그따위로 하니 선덜랜드 데일리에 밀리는 거야.”

선덜랜드 데일리 이야기만 나오면 노스이스트 저널 사람들은 입맛이 쓰다.

선덜랜드 데일리는, 선덜랜드가 3부 리그에 머물던 시절부터 호의적으로 기사를 써준 언론이었다. 덕분에, 지금은 아주 관계가 돈독하다. 이번에 새로 입단한 카메룬 신성 디아라의 단독 인터뷰를 받아갔을 정도로.

편집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덜랜드 특집 기사로는 선덜랜드 데일리에게 이길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거면 그냥 간판 내려야지···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기사 내 보자고.”

“알겠습니다. 가끔은 못 이기는 걸 알면서도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럼 뮌헨전은 누구에게 포커스를 맞출까요? 역시 독일 팀을 상대하는 요니에게?”

“아니, 떡밥 식었어. 조별리그에서 이미 글라드바흐를 상대했으니까. 게다가 선수 본인부터 자기는 선덜랜드 사람이라고 선을 그었으니 딱히 화제 안 될 거야.”

“그렇다면 역시 감독 특집 어떠십니까? SNS에서도 슬슬 이야기 나오던데요.”

“감독 특집?”

호기심을 보이는 편집장에게 기자가 재빨리 설명했다.

“두 팀 감독이 젊은 천재들로 유명하잖아요. 나겔스만은 말할 것도 없고, 브라이언은 이대로 가면 역대급 데뷔 시즌 찍겠던데요?”

“하긴, 브라이언 아직 시즌 무패였지?”

“다만 무승부가 많아 리그에서는 2위지만요.”

이대로 가면 무패 준우승하게 생겼다는 비아냥도 붙었지만, 그래도 무패는 무패다. 프리미어리그에선 과거의 아스널에게만 허락된 수식어, 천하무적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중이었다.

“몇 경기 이겼다고 천재냐, 곧 질 거다. 그런 말도 많았지만, 반환점을 돌도록 무패를 유지하는 중이잖습니까? 올해 처음 감독으로 데뷔한 거니까, 이 정도면 천재 감독이죠.”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롭군. 좋아. 진행해.”

그때였다. 컴퓨터 앞에서 한참 마우스만 딸깍거리던 부팀장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 마. 방금 감독 특집 떴다··· 선덜랜드 데일리에서.”

“그놈의 선덜랜드 데일리···!”

“아, 진짜 엿 같네.”

기사도 제대로 못 써보고 명예로운 죽음을 당해버린 노스이스트 편집부의 분위기는 처참했다.

그때 편집부 막내 직원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베넷은 어떨까요?”

“베넷이 왜? 그 선수는 독일인도 아니고, 뮌헨에서 뛴 적도 없는데?”

“베넷의 라이벌, 뤼카가 뮌헨에서 뛰잖습니까.”

막내 직원의 말에도 편집부 사람들은 시큰둥했다.

“풀백끼리 라이벌이 되나?”

“풀백 무시하는 말씀 하지 마시죠. 아무리 풀백은 유니폼도 안 받아간다지만.”

기본적으로 풀백은 인기가 없는 포지션이다. 오죽하면 어떤 풀백은, 자기 유니폼 대신 소속팀 스트라이커의 유니폼을 팬에게 선물로 보냈을 정도로.

“아니, 풀백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은 레프트백끼리 라이벌 구도가 잡힐 수 있느냔 말이지. 미드필더끼리는 괜찮아. 높은 확률로 경기 안에서 맞대결할 테니까.”

기자의 반론에, 편집장도 가세했다.

“공격수끼리는 경기 중 서로 마주칠 일은 없지만, 대신 공격포인트라는 확실한 결과가 나와. 골키퍼끼리는 실점으로 경쟁할 수 있지.”

“맞아. 센터백은 하다못해 세트피스 상황에서 경합하는데··· 레프트백끼리는 그라운드에서 서로 붙을 일이 없잖아. 애초에 라이벌이 성립될 수 있는 사이냐고.”

경기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오버래핑을 시도하거나, 좌우 풀백끼리 서로 자리를 바꾸는 전술을 쓰면 마주칠 수 있겠지만, 두 가지 방법 모두 현대 축구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그런데도 막내 직원의 태도는 완강했다.

“그게, 의외로 그렇더라고요. 선덜랜드의 베넷은, 뤼카가 레프트백일 때 단 한 번도 대표팀 경기에 나가지 못했거든요.”

“진짜로?”

“진짜입니다. 청소년대표팀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요.”

“요즘은 국대에 종종 나가던데···.”

“뤼카가 센터백으로 출전하는 경우 한정입니다. 경기 기록 전부 체크해봤어요.”

“어··· 그러면···.”

노스이스트 저널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모니터 화면의 선덜랜드 데일리 로고를 응시하던 부팀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죽이고 싶을 만큼 싫겠네.”

* * *

경기를 앞둔 드레싱룸에서, 베넷은 스마트폰을 빤히 응시하는 중이었다.

[진작에 센터백으로 옮길 걸 그랬나? 그랬으면 너와 대표팀에서 좀 더 빨리 같이 뛰었을 텐데.]

상대에게 악의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이기에. 그래도 선수로서는, 이 메시지를 볼 때마다 울화가 치미는 것도 사실이었다.

조용히 전의를 불태우는 베넷의 곁에서, 에디가 슬쩍 끼어들었다.

“애인이지?”

“음?”

“어때, 이 몸의 명추리가. 경기 직전에 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면 애인밖에 더 있어?”

능청스러운 에디를 향해, 베넷이 차분하게 되물었다.

“친구일 가능성은 없고?”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그냥 친구면 경기 앞두고 메시지 주고받진 않거든··· 따라서, 우리는 그걸 애인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사회적 합의라니까?”

피식 웃으며 베넷은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그러는 에디 너는 솔로 아니야?”

“나야 뭐, 한 여자에게 묶이는 게 너무 아까워서 그렇지. 일단 나만큼 축구를 잘 아는 여자가 나오면 고려해 보겠지만.”

“그럼 영원히 못 만나겠네.”

해석에 따라서는 칭찬으로도, 저주로도 들릴 이야기에도 에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런 에디를 바라보며, 베넷이 슬쩍 덧붙였다.

“뭐, 일단 평소 만날 수 없는 상대는 맞아.”

그라운드의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한 포지션 특성상, 다른 팀에서 뛸 때는 맞대결하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팀인 동안은 주전과 벤치로 갈리느라 같이 뛸 수 없다. 레프트백을 두 명 쓰는 팀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에디가 휘파람을 불었다.

“짝사랑인가! 애틋하네.”

“뭐··· 애증일지도 모르지.”

대답하면서 베넷은, 뤼카가 센터백으로 옮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오늘 경기에서는 처음으로 맞대결할 수 있을 테니.

상대에게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안다. 베넷이 아는 뤼카는 원래 그런 성격이다.

타고난 재능의 차이가 역력하다는 것도 안다. 축구를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넘지 못했던 상대이기에.

하지만 남자에게는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순간이 있다. 축구에서 공은 언제나 한 개고, 토너먼트의 승자 또한 한 팀이기에.

[챔피언스리그 16강, 뮌헨 대 선덜랜드]

잠시 후, 입장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감독의 독려에, 선덜랜드 선수들이 힘찬 걸음으로 그라운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 나가자! 뮌헨 그까짓 게 다 뭐라고··· 프리시즌에도 한 번 때려잡아 봤잖아?”

* * *

우리는 오늘 변형 4-3-3를 기본으로 내세웠다. 마르틴과 바스티아노와 메시를 쓰리톱으로 세웠고, 미드필더로는 잭과 요니, 스티븐을 출전시켰다.

물론 스티븐은 윙포워드니,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변형 4-4-2라고 칭할 수도 있을 듯한 포메이션이었다.

축구를 잘 모르는 희주조차

“어쩐지, 굉장히 공격적인 느낌이 드는데.”

라고 평가할 정도였는데, 아마 뒤에서 공을 돌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감독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나겔스만은 전방 압박을 꽤 선호하는 타입이었고, 우리 팀도 마찬가지로 압박에 이은 숏카운터를 주무기로 삼는다.

로저스 감독이 키워낸 많이 뛰는 축구에, 브라이언이 준비한 수비 조직력과 샐리의 공격적인 성향까지 더해진, 신생 선덜랜드의 축구다.

덕분에 오늘 경기는 시작부터 뜨거웠다.

서로 라인 올리고 쉼 없이 상대를 압박했고, 공을 따내면 지체 없이 전방으로 투입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공을 뺏고 뺏기는 장면도 빈번하다. 나쁘게 말하면···.

“개싸움이네, 아주.”

희주를 흘끗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좀 더 그럴듯한 표현 있잖냐. 헤비메탈 축구 같은 거.”

“응? 나는 그런 용어 잘 모르는데.”

사실 희주가 사용한 개싸움이라는 표현은 꽤 적절한 편이었다. 당장 선수들의 모습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전개 또한 그렇다.

개싸움은 먼저 꼬리를 내리는 쪽이 지는 법이거든.

“오빠, 이렇게 된 이상 후방 빌드업으로 상대를 끌어들였다가··· 미드필더 안 거치고 냅다 지르는 축구도 꽤 괜찮지 않아? 예전에 우리 그걸로 재미 많이 봤잖아.”

“괜찮지 않지. 독일 감독들의 전방 압박은 굉장히 수준 높으니까.”

후방에서 공 돌리며 끌어들이는 방식을 시도하다가, 괜히 우리 진영에서 공 뺏기기라도 하면 곧바로 결정적인 찬스를 내주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개싸움은 먼저 꼬리 내리는 쪽이 지는 거다.

“아이참, 개싸움은 우리한테 불리한 느낌이라 그렇지. 홈이었으면 신경 안 썼지만, 오늘은 원정이니까··· 어휴, 이것들 아주 작정했네. 작정했어.”

확실히 경기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긴 하다.

리지는 잔디의 상태부터 햇빛의 각도, 관중석의 소음까지 재현했지만, 이 경기장의 압박감까지 복제하지는 못했다.

똑같은 데시벨이라도, 스피커가 내는 소리와 수만 명 군중이 발을 구르며 외치는 소리는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기 마련이다.

희주 말처럼, 이런 분위기에서 빠른 템포로 경기하는 건, 우리에게 불리한 선택이겠지. 이곳, 알리안츠 아레나에 울려 퍼지는 함성, 흔들리는 카드 섹션,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적대적이니까.

그래도 상관없다.

우리 선수들의 발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으니까.

* * *

타인위어 게이츠헤드, 마일즈의 집에서는 우드 부부와 브라더스, 그리고 빌리 노인과 앨리스가 함께 모여 응원하는 중이었다.

앨리스의 해설은 평소와 달리 살짝 침울했다.

“프리시즌 컵에서 뮌헨을 잡아낸 게, 오히려 안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어째서? 축구는 일단 이기면 좋은 거 아닌가?”

축구 본 경력이 가장 짧은 빌리 노인의 질문에, 앨리스가 상냥한 미소로 응대했다.

“당시 우리에겐 몇 가지 어드밴티지가 있었어요. 아직 폼이 올라오지 않은 프리시즌이라 체력적으로 해외 원정팀이 불리하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그 대회에서 계속 홈에서 싸운 유일한 팀이고요.”

프리시즌컵에서는 체력 이슈에 더해, 원정 지옥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었다는 앨리스의 이야기에, 브라더스는 물론 우드 부부까지 미소를 지었다.

기분 탓인지 크리스도 방긋방긋 웃는 것 같았다··· 덕분에, 유일하게 침울한 사람은 앨리스였다.

“프리시즌컵 경기는 전 세계에 중계되었어요. 경기를 본 뮌헨 팬들이라면 당연히 되갚아 주자고 벼르고 별렀겠죠. 네, 지금 보시는 것처럼요.”

우드 부부와 브라더스에게,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보다 뜨거운 경기장은 일종의 환상종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단순한 수용인원만 따져도 프리미어리그에서 두 번째로 큰 경기장이었으니.

하지만, 알리안츠 아레나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와 대등한 칠만 석 경기장이었다. 그곳에 가득한 팬들의 열기는, 그들이 늘 보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와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아니, 어쩌면 더할지도 모른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구조상 카드섹션에는 적합하지 않으니까.

“저거 뭐라고 쓴 거야?”

관중석의 카드섹션을 바라보던 브렌든의 질문에, 앨리스가 곧바로 대답했다.

“···적과 백이라는데요.”

“독일어도 하는구나! 똑똑한데?”

“아뇨, 뮌헨의 저 문구는 워낙 유명해서요.”

선덜랜드의 두 상징, 레드 앤 화이트는 공교롭게도 뮌헨의 상징색이기도 했다. 프리시즌컵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뮌헨 팬들이라면 당연하게도 색깔 이야기를 걸고넘어질 법했다.

중계방송으로도 전해질 만큼 뜨거운 응원의 영향인지, 선제골은 뮌헨의 몫이었다.

[뮌헨 1 - 0 선덜랜드]

“아아···.”

앨리스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화면에 비치는 뮌헨 팬들의 카드섹션 내용이 조금 바뀌었다.

적과 백을 알리는 Rot & Weis 앞에, 한 단어가 더 붙었다.

“진짜 적과 백이라네요.”

분함에 앨리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의외로 주위의 반응은 태연했다. 아직 말을 못 알아듣는 크리스는 물론, 우드 부부, 브라더스, 심지어 빌리 노인도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저기, 여러분은 괜찮으세요?”

“그야 아직 경기 안 끝났으니까. 상대의 조롱에 일희일비하면, 게이츠헤드에선 축구 못 봐. 우리 동네 팀은 기껏해야 7, 8부에서 뛰거든.”

빌리 노인의 답변에 브라더스와 우드 부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몇 년간 암흑기에도 팀을 응원했는데, 겨우 한 경기 만에 기죽을 리 있겠어?”

“앨리스 양은 강해진 선덜랜드만 알겠지만, 사실 우리는 십 년 넘게 조르디 놈들에게 조롱당하는 게 일이었어.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 팀이, 휘슬이 울리기 전에 멈추는 팀이었나요?”

수잔의 말처럼, 킥오프 직후 선덜랜드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방향은 왼쪽 측면.

마르틴의 드리블에서는 평소의 화려함 대신 처절함이 느껴졌고, 레프트백 베넷은 아예 수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로 돌격했다.

베넷의 빈자리를 평소보다 조금 넓게 벌려선 에디와 이고르가 메우는 모습에서, 단호한 결의가 느껴졌다.

16강전이 홈 앤 어웨이로 치러진다는 사실은 관심 없다고. 우리는 오늘 지지 않을 거라고.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앨리스는 입에 손을 모았다.

Over and over, We will follow you.

울려 퍼지는 함성, 경기날과 똑같은 응원가가 우드 부부의 거실을 가득 메웠고, 게이츠헤드의 단독주택은 어느새 작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처럼 변해 버렸다.

그 열기 속에서, 마치 목소리가 전해진 것처럼.

선덜랜드의 선수들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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