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72화 (272/422)

272화 챔스, 그리고 선덜랜드 (1)

<경기는 이겨야 하고, 그게 전부다 - 카를로스 빌라르도>

리미트리스의 자회사, 리미트리스 스포츠마케팅 영국 지사장은 고개를 들어, 온 사방에 나부끼는 깃발을 응시했다.

“솔직히 이 풍경 말인데, 처음 보는 사람은 질릴 겁니다.”

선덜랜드 굿즈는 예전부터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하기로 유명했다. 피규어 세트는 다른 팀 굿즈에 비해 퀄리티가 월등했고, 유니폼 레플리카는 다른 팀보다 더 싸게 팔았다.

하지만 모든 굿즈 중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것은, 역시 선덜랜드 깃발이었다. 응원 효과를 고려해 아주 싸게 가격을 책정했는데, 특히 올해는 더 싸졌다.

리미트리스가 모로코의 의류 공장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카메룬의 카카오 농장을 인수하고, 현지에 초콜릿 공장을 건설한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일종의 우회 수단이었다. 유소년의 해외 이적 제한은 피파에서 엄격하게 규제하는 항목이지만, 축구와 관련 없는 이유로 가족이 함께 이주하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미트리스는 모로코의 의류 공장을 인수하고 영국에 판로를 내서 일자리를 만드는 식으로, 모로코의 천재 축구 소년을 선덜랜드에 합류시키려는 그림을 짰다.

그 그림에, 이희성이 한 가지 의견을 더했다.

[기왕 공장이 생겼으니, 굿즈를 생산하면 어떻습니까?]

곱씹어보니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디자인이나 소재 기술을 논외로 치면, 의류 생산은 기본적으로 개도국에 무척 적합한 비즈니스다. 한국이 70년대에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모로코는 마침 의류 분야에서 수출량을 늘려 나가는 국가라서 생산 능력은 충분했다. 그 결과물이 지금 경기장 곳곳에서 나부끼는 [This is Sunderland] 깃발이다.

“가격도 싸다고 했죠?”

옆에서 묻는 미모의 여성, 리미트리스 부사장 최다미를 향해 지사장이 공손히 대답했다.

“네, 다른 축구단이 판매하는 유사한 제품 대비 절반 가격입니다. 듣자니 원정 경기에서는 1파운드에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적지에서 선덜랜드 깃발을 휘두르려는 용자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정도면 구단 마진은 거의 남지 않겠는데요··· 다른 팀은 절대 못 따라 하겠네요.”

“공장 짓기 전에는 불가능할 겁니다.”

한 번 어깨를 으쓱거린 다음, 지사장이 빠르게 추가로 설명했다. 그의 상사 최다미는, 이희성과는 달리 스포츠에는 빠삭하지 않은 타입이라 보충이 필요했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관중들의 함성이나 경기장 분위기가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거든요. 그러니 깃발 같은 응원용품은 최대한 많이 뿌리는 게 이득입니다. 마진을 줄여서라도요.”

“이해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다 같이 소리 지르고 깃발을 휘두르며 응원하는 긍정적인 경험들이 쌓이면, 팬들이 앞으로도 이 경기장을 다시 찾게 되겠죠.”

지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부연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은데.’

하긴, 최다미는 그 ‘투자의 신’ 이 리미트리스의 운영을 맡길 정도의 인재다. 그녀가 아무리 스포츠 팬이 아니라고 해도, 이 정도 이야기는 스스로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사장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모처럼 영국에 오셨으니, 기왕이면 사장님과 같이 축구를 보시지 그러십니까? 이 경기장은 아시다시피 사장님 소유이고, 사장님께서 쓰시는 특실에는 사람 여러 명이 들어갈 수 있는데요.”

그러자 최다미가 곧바로 이야기를 딱 잘라 버렸다.

“아뇨. 그럴 순 없죠. 사장님은 정말로 축구 관람을 좋아하시거든요. 괜히 옆에서 방해하거나 신경 쓰시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짓은, 측근으로서 실격이에요.”

“철저하시군요.”

“··· 괜히 저울에 달아보기도 무섭고.”

“네?”

지사장이, 최다미의 말에서 숨은 의미를 파악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희성이, 눈앞의 축구 경기와 옆자리의 자신 중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여겨줄지 무섭다고 고민하는 최다미의 모습은, 처음으로 평범한 여성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새, 옆자리의 여성은, ‘신의 오른팔’ 로 불리는 리미트리스 부사장으로서의 위엄을 되찾은 상태였다.

“강 지사장? 이번 채용 문제 차질 없이 마무리하세요. 이런 소소한 일처리 때문에 사장님 신경 쓰시는 일 없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최다미의 시선은 그라운드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지사장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 * *

모처럼의 홈 경기에, 우드 부부와 크리스, 빌리 노인, 브라더스에 앨리스까지 자리를 함께 했다.

그러자 사람이 여덟, 깃발이 두 개, 플래카드가 하나, 응원용 머플러 다수가 동원된 대형 응원단이 되었다.

디스 이즈 선덜랜드 깃발은 덩치 좋은 핫도그 사내와 맥주집 사장의 손에 넘어갔다.

“지난주 TV 중계 보고 복장 터지는 줄 알았다! 누가 진짜 적과 백이라고?”

레드 앤 화이트 유니폼을 걸친 거구의 사내들이 뿜어내는 압박감은 상당했고, 목소리 또한 컸다. 그 옆에서는 마일즈와 브렌든이 플래카드를 흔든다. 노인과 여자들은 응원용 머플러, 아기는 선덜랜드 딸랑이를 손에 들었다.

We do what we want. We do what we want.

잠시 후,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악명 높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응원이 펼쳐졌다. 경험 적은 승격팀 선수들은 제대로 뛰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바로 그 응원이.

“그래도 뮌헨은 뮌헨이네요. 어지간한 팀이라면 지금쯤 쫄아서 공 흘리고 그랬을 텐데.”

수잔의 혼잣말에, 앨리스가 재빨리 해설했다.

“별 수 없죠. 이제부터 만날 상대는 전부 우리보다 팬이 많거든요.”

레알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나 바르샤의 캄 노우는 지금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보다도 훨씬 크다.

8강에 올라올 것 같은 팀들 중에서는 그나마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가 개중 작은 경기장에 속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조차 사만 팔천 석. 개축 전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필적하는 수준은 된다.

설명을 들은 수잔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팀 상대로는, 우리 목소리가 무기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본값에 불과한 거구나.”

“네, 사실 뮌헨의 알리안츠는 우리와 똑같은 칠만 석··· 처럼 보이지만, 리그 경기에서는 인원이 더 늘어나거든요. 분데스는 입석을 허용하는 리그라서요.”

물론 선덜랜드의 함성에는 풋볼 스퀘어를 더해야 하지만, 평소 칠만 명 이상의 팬들을 등에 업었던 뮌헨 선수들은 함성만으로 제압할 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할 일이 변하는 건 아니잖아?”

“물론이죠. 자기들이 지금 어느 경기장에 와 있는지, 똑똑히 알려줘야 해요.”

수잔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고, 앨리스는 팔짝거리며 머플러를 흔들었다. 마일즈와 브렌든이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잠시 후, 각자의 외침이 하나의 응원이 되었다.

We are Sunderland. Say we are Sunderland.

그 함성 속에서, 선덜랜드의 주장이 공을 몰고 질주했다.

왼쪽 측면이었다.

* * *

“어··· 지난번 경기부터, 우직할 정도로 왼쪽을 파고드네? 혹시 뮌헨 라이트백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렇다기보다는···.”

희주의 의문에 대답하기 전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뮌헨의 좌우 풀백 라인업은 수년간 역대급으로 훌륭했다. 과거의 람이나 알라바는 물론, 지금의 뤼카, 알폰소, 키미히, 그리고 파바르까지도.

뮌헨에는 어느 팀이나 탐낼 만한 우수한 풀백이 즐비하다. 유일한 문제는 아마도··· 본인들이 풀백으로 뛰기 싫어한다는 것 정도겠지만, 오늘 경기에서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문제를 만들려는 거야.”

대답하면서, 나는 잠시 어제 저녁의 일을 떠올렸다.

감독이 된 이후, 브라이언은 경기 구상이 완성되면 꼭 내게 이야기를 해 준다. 굳이 보고할 필요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브로, 보고가 아니라, 피드백이 필요한 거야. 피-드백.]

[내가 널 피드백할 실력이 되면 너 감독 시키겠냐.]

솔직히 축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보면, 누구나 구단주보다는 감독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커 매니저 같은 게임만 봐도 그렇다. 구단주가 아니라 감독을 다루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만일 내 전술 실력이 브라이언에 필적할 정도였다면, 나 또한 직접 팀을 지휘하려 들었을 것이다··· 감독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니까?

[옆에서 보이는 건 또 다르지. 나도 설명하면서 생각을 한번 정리할 수도 있고.]

[게다가 제 생각에, 구단주님 전술 안목이 나쁠 리도 없다고 보는데요.]

옆에서 끼어든 샐리의 칭찬에, 보다못한 희주가 한 마디 했었다.

[에이, 아무리 우리 오빠한테 월급 받는다지만, 방금 건 좀 너무했어요.]

[아뇨, 저는 진지해요. 사실 전술이라는 건 어떤 선수를 어떤 식으로 쓰느냐가 전부잖아요? 그런데 구단주님의 선수 보는 눈은 축구계에서도 최고 수준임이 증명되었어요. 그러니, 전술을 못 짤 리는 없죠.]

그런 결론 끝에 우리 코칭스태프가 미리 들고온 16강전 플랜에, 나는 박수를 보냈었다. 흠잡을 데 없이 아주 완벽하다고.

“그렇게 흠잡을 데 없는 전술이, 왜 정작 경기장에서는 통하지도 않는 측면 공격만 계속 반복하는 건데?”

입을 삐죽거리는 희주에게,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왜 안 통해. 잘만 통하는구만. 지난번 골이 어디서 나왔는지 잊었어?”

“마르틴과 베넷의 핫라인이지만··· 그건 지난 경기잖아? 1차전에서 재미 봤다고 계속 왼쪽만 후벼파는 건 의미 없지 않나?”

“의미는 있지. 지난번에 우리는 왼쪽 측면을 뚫어냈고 점수까지 따냈어. 그리고 오늘도 보란 듯 왼쪽을 후벼파고 있지. 그러면 뮌헨은 어떻게 움직일까?”

희주가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한쪽에 몰릴 테니까···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구나?”

“많이 좋아졌네.”

“엣헴. 내가 구단주 비서 생활만 몇 년인데··· 그런데, 나겔스만이 걸려 줄까?

“아니. 그 정도 감독이라면 오늘 우리가 뭘 시도하는지는 빤히 보이겠지. 다만, 걸리든 안 걸리든 상관은 없지만.”

축구는 언제나 인원 배치의 싸움이기에, 나겔스만이 우리 속셈을 읽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왼쪽 측면에 공세를 집중할 것이고, 뮌헨 역시 대응하기 위해 측면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익스클루시브 박스에서 내려다보니 명확하다.

경기장의 한쪽 측면에 바글거리는 우리와 뮌헨 선수들의 모습과, 상대적으로 텅 빈 반대쪽 측면이. 그쪽엔 서로가 선수 한두 명만을 남겨둘 정도였다.

브라이언도, 나겔스만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선덜랜드는 오른쪽 측면으로 공세를 전환할 것이다. 비록 인원은 소수이지만, 공간이 텅 비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공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뮌헨에게 막힐 경우, 텅 빈 공간은 그대로 상대의 역습 찬스가 된다.

그것은, 뮌헨 같은 거함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리스크였다.

“어··· 꽤 과감한 경기 운영이네.”

희주는 걱정스러운 듯 한숨을 쉬었지만, 나는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리스크를 짊어질 수 없는 감독은, 챔스에서 세계적인 빅클럽들 상대로 맞서 싸울 수 없기 때문에.

* * *

발에 가벼운 통증이 느껴졌다. 살짝 밟힌 모양이었다.

베넷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밀집지대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고, 명백한 실수다.

‘고의로 밟았다면 가벼운 통증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정강이를 살짝 걷어차이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옆에서 떠밀리는 일도 흔하다. 신가드 아래가 피멍으로 물드는 일은, 축구선수의 숙명이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다. 예컨대 그의 동료 마르틴의 정강이는 무척이나 깨끗했다.

‘쟤는 어지간하면 안 밟히지.’

발재간이 워낙에 화려해서, 대놓고 파울하는 방식 아니면 발을 밟히거나 정강이를 차일 일이 없다.

덕분에 마르틴은 인기도 많다.

예전에 CS팀 직원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판매량 순위를 매기면, 마르틴의 유니폼은, 보통 4~5위 정도에 들어간다고.

잭과 요니, 그리고 메시가 있는 선덜랜드의 특성을 고려하면, 마르틴은 사실상 팀 내 최고 수준의 인기를 자랑하는 선수였다.

반면, 베넷의 유니폼 판매량 순위는 뒤에서 센다. 풀백은 원래 인기 없는 포지션이기에.

팬에게도, 또 선수에게도.

라이벌 뤼카가 요즘 센터백으로 슬슬 포지션을 옮기는 중임을 알고 있었다. 역대급 라이트백이라던 뮌헨의 키미히는, 요즘 들어 미드필더로 뛴다.

‘하긴, 이런 포지션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지.’

눈앞에서 선덜랜드의 10번 유니폼이 크게 좌우로 흔들렸다.

마르틴의 특기, 플립 플랩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수비를 부숴버린 개인기였지만, 이번에는 워낙에 밀집지대라 그런지 잘 통하지 않는다.

마르틴의 발이 수비와 엉켰고, 공이 뒤로 굴렀다. 흘러나오는 공을 향해, 베넷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나이스 커버.”

엄지를 세우는 마르틴을 향해, 베넷은 다시 공을 되돌렸다. 기분 탓인지 멀리서 그를 바라보는 뤼카의 시선이 싸늘하다.

‘꼭 말하는 것 같네. 왜 직접 돌파하려 들지 않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밀집 지대에서 공을 빼낼 만큼의 발재간이 없기 때문에. 그런 역할은 베넷 자신보다 마르틴에게 훨씬 어울린다.

그래도 선덜랜드 감독 브라이언은, 이번 16강전 전체에서 베넷에게 꽤 멋진 역할을 맡겼다.

“헤이!”

마르틴의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공이 또다시 뒤로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수비에게 걸린 것은 아니었고, 발뒤꿈치를 이용한 백 힐 패스였다.

순간적인 찬스에 베넷의 눈이 번뜩였고, 뮌헨의 수비 역시 반응했다.

‘어쩌면 저쪽도 알고 있었을 텐데.’

오늘의 선덜랜드의 왼쪽 측면 공격은 미끼다. 뮌헨의 수비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술로, 진짜 공격은 오른쪽에서 행할 것이다.

전부 알고 있었을 텐데도, 뮌헨 수비가 반사적으로 끌려 나왔다. 아마 자신이 지난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베넷은 오른발을 크게 앞으로 내디뎠다.

크게 내민 디딤발, 다이나믹하게 휘두르는 왼발, 균형을 잡기 위해 휘두르는 팔까지 득점했을 때와 똑같았지만, 공의 궤적은 달랐다.

‘미끼라도, 조연이라도 난 상관없어.’

마침내 경기장 반대쪽 측면으로 로빙 스루를 날려 보낸 베넷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가 이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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