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73화 (273/422)

273화 챔스, 그리고 선덜랜드 (2)

로빙 스루가 날아오기 전까지, 선덜랜드의 오른쪽 측면 - 뮌헨의 왼쪽 사이드는 꽤 한가한 상황이었다. 선덜랜드가 반대쪽 측면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뤼카는 축구의 신과 이야기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생각해보니 꽤 독특한 장면이겠군. 프랑스인과 아르헨티나인이, 영국 경기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니까··· 심지어 스페인어로.’

축구의 신은 스페인에서 오래 활동했고, 뤼카 역시 스페인 이중국적자라 아무래도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아무리 요즘 트렌드가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라지만, 이건 너무 뻔한 거 아닙니까? 듣자니 그쪽 감독은 전술 천재라던데요. 아, 혹시 천재의 생각은 저 같은 사람들은 이해 못 하는 겁니까?”

단순히 야유하거나 도발하려는 목적은 아니었기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어도 뤼카는 별로 실망하지는 않았다.

대화를 시도한 이유의 반쯤은 귓가를 울리는 선덜랜드 팬들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고, 나머지 반은 자신이 상대를 놓치지 않았음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뤼카의 매치업 상대는 축구의 신. 이미 전성기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혼자서 마크하기엔 부담스럽고 버거운 상대다.

“그러고 보니 그쪽도 훈련장에 드론 같은 거 띄우고 그럽니까? 우리는 요즘 훈련장 피치 옆에 대형 스크린도 세웠는데요. 선덜랜드도 분석팀이 유명하죠?”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대신 반응이 돌아왔다. 줄곧 멈춰선 채 어슬렁거리던 메시가 순간적으로 가속한 것이었다.

‘침투라고?’

뤼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반대쪽 측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베넷의 모습을 발견하고 마음을 놓았다.

베넷은 뮌헨 수비에 포위된 채 고전하고 있었다. 아직 공은 뮌헨의 소유로 넘어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선덜랜드가 뭔가를 해낸 것도 아니었다.

‘너는 아직도 싸우고 있구나.’

누군가는 풀백을 현대 축구의 꽃이라고 부른다. 21세기 축구의 가장 중요한 포지션으로, 요즘은 좋은 풀백이 있으면 전술의 폭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에 정작 풀백의 사인이나 유니폼을 원하는 이는 거의 없다. 골대를 항상 엔드라인 정중앙에 두는 축구라는 종목의 규칙상, 측면에서 머무르는 풀백은 언제나 조연이기 때문이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자리에서, 팀의 누구보다 많이 뛰고, 궂은일을 도맡는, 그런 종류의 조연이지.’

뤼카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 또한 경험했었기 때문에.

아무튼 공은 여전히 베넷에게 있었고, 메시의 침투는 너무 일렀다.

‘이래서 공격수들이란··· 자기들 멋대로 뛰쳐 들어가면 알아서 패스가 올라올 거라고 기대하지. 정작 헐레벌떡 달려와 공격에 가담한 풀백은, 몇 명이나 되는 수비에 포위당한 채 고생하는 중인데 말이야.’

베넷의 로빙 스루가 올라온 것은,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뤼카는 재빠르게 곁눈질로 메시의 모습을 살폈다. 여전히 라인 아래쪽에 있었다.

공을 받으면 바로 오프사이드가 되는 자리였기에, 메시는 아예 골대를 등진 채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그래서 뤼카는 안심했고, 심판에게 확실히 어필하기 위해 손을 들며 라인을 올렸다.

그때,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뮌헨 감독의 절규가 들렸다.

“내려가! 요나스다!”

‘요나스?’

그 단어가 선덜랜드의 19번, 요나스 ‘요니’ 뮐러를 가리킨다는 것을 뤼카가 눈치챈 순간, 뤼카의 뇌리에는 한 가지 단어가 추가로 떠올랐다.

Raumdeuter, 혹은 공간연주자.

“빌어먹을!”

뤼카는 창백해진 얼굴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절묘한 타이밍으로 침투한 선덜랜드 선수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붉고 흰 유니폼, 등번호 19,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고 가로막는 수비도 이미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공을 받아낸 요니의 뒷모습이 뤼카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더 나쁜 것은, 이제 오프사이드가 아니게 된 메시가 함께 침투 중이라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스피드에 자신이 있는 뤼카였지만, 따라잡을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서 요니는 컷백 패스를 메시에게 보냈다.

그리고 박스 안, 마크조차 없는 자리에서 공을 받아낸 축구의 신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처럼 득점에 성공했다.

[ (2) 선덜랜드 1 - 0 뮌헨 (1) ]

쏟아지는 홈 팬들의 환호 속에서, 어째서인지 뤼카의 시선은 베넷 쪽에 향했다. 경기 내내 무모한 돌격을 반복하며, 끝내 팀을 위해 찬스를 만들어낸 완벽한 미끼, 최고의 조연을 향해.

자랑스럽게 미소 짓는 베넷의 뒤편에서, 다시 한번 깃발이 흔들렸다.

[This is Sunderland]

* * *

선제골을 허용한 이후, 뮌헨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나겔스만은 젊은 천재라는 평가답게 다채로운 전술을 선보이며 우리를 몇 차례 위기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끝내 점수를 내주지는 않았다. 수훈은 역시 우리 수비진이었다.

센터백 듀오 에디와 이고르가 언제나처럼 든든하게 버텼고, 그 뒤를 골키퍼 하퍼가 언제나처럼 믿음직스럽게 지켜냈다. 좌우 풀백 베넷과 브루노 역시 공수 양면으로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다.

그중에서도 역시 베넷이 가장 눈에 띄었다.

오늘 우리는 오른쪽에서의 마무리 한 방을 위해, 왼쪽 측면에서 공격을 반복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지만, 중간에 실패도 많았다.

그때마다 베넷은 수비에 가담하러 복귀했고, 우리가 공격할 때는 또다시 뮌헨 진영에 파고들었다. 그야말로 헌신적인 플레이였고, 대단한 활약이었다.

오죽하면 희주조차 경기 종료 직후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로.

“내게 결정권이 있으면, 오늘 MOM은 베넷 줬을 텐데.”

동의한다. 골 기록도, 어시스트도 남지는 않겠지만 오늘 팀을 승리로 이끈 일등 공신은 틀림없이 베넷이었다.

다만, 그가 MOM에 선정되는 데에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네가 가만있었으면 틀림없이 받았을 텐데.”

그러자 희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맞다! 망했어!”

처음에는 완강히 부정했지만, 16강전 추첨에서 귀신같이 뮌헨을 뽑은 이후, 희주는 스스로가 부두술사임을 완벽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오빠, MOM 선정은 언론과 팬투표로 하는 거지? 경기 끝난 다음에, 그라운드 밖에서 하는 거니까··· 이건 어쩌면 축구가 아니지 않을까?”

지금까지 희주의 저주는 축구에만 발동했었기 때문에, 본인 나름대로의 논리를 준비해 저주를 회피하려는 모양이다··· 어림도 없지만.

희주의 논리대로라면 조추첨도 축구 외적인 요소일 것이다. 경기 시간에 조추첨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장소도 그라운드 밖이니까. 하지만 매번 귀신같이 작동했잖아?

“정말 못 받으면 베넷에게 미안해서 어떡해.”

울상을 짓는 희주를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베넷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만일 베넷이 MOM 투표에 연연하는 선수였다면, 애초에 좀 더 눈에 띄는 포지션에서 뛰었을 것이다. 뮌헨의 풀백들이 전부 포지션을 옮긴 것처럼.

하다못해 오늘 맡은 미끼 노릇보다는 더 나은 역할을 요구했겠지.

나는 희주에게서 시선을 돌려, 경기장에 눈을 돌렸다.

이미 경기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곳곳에서 흔들리는 깃발과 승리를 자축하는 노랫소리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우리 홈 팬들이 베넷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에 화답하듯, 자랑스럽게 손을 흔드는 베넷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번 경기의 MOM은 결승골을 기록한 축구의 신에게 돌아갔다.

딱히 편파적인 판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세계 축구계의 레전드고, MOM 선정에는 투표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SNS 투표는 전 세계 축구팬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우리 선덜랜드 팬들은 베넷의 레플리카와 피규어 같은 굿즈를 순식간에 매진시키며, 로컬 팬이 뽑는 MOM이 누구였는지를 확실히 보여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챔스 16강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8강 진출을 확정했다.

* * *

바에 도착한 직후, 뤼카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손님 몇 명이 눈에 띄었지만, 그에게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뤼카의 눈이 먼저 와서 기다리던 베넷과 마주쳤다.

“나는 처음에, 네가 미쳤다고 생각했어.”

그러자 베넷이 키득거렸다.

“하긴 내 경기력이 오늘 좀 미치긴 했지.”

“···그도 그렇지만, 경기 끝난 직후 술집에서 보자고 하길래 간도 크다 싶었지. 그만큼 대단한 경기를 했으면 알아보는 사람도 많을 텐데.”

투덜거리는 뤼카를 향해, 베넷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 시간대의 바 블랙캣츠는, 사실상 축구단 관계자 전용이야. 바텐더는 입이 무겁고, 일반 손님들은 거의 안 오거든. 신경 쓸 거 없어. 그보다 뤼카 너, 원정 끝났는데 안 돌아가도 되는 거냐?”

“비행기 타면 금방이니까,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이동하기로 했어. 다행히 숙소로 잡은 선덜랜드 로열 호텔에서 영국식 요리 안 나오더라고··· 그리고 우리는 대회가 하나 줄어서 한가해졌거든.”

“그럼 다행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베넷을 향해, 뤼카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런데··· 관계자 전용이라고 해도, 통제가 되나? 선수들이 모이는 곳은 대부분, 팬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지 않아? 비결이라도 있는 거야?”

“그건 잘 모르겠네.”

베넷의 시선을 받은 바텐더가 대신 대답했다.

“저희는 선수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개발된 메뉴는, 평소에 일반 고객님들께도 똑같이 제공됩니다. 일종의 신사협정이죠.”

“아, 이해했습니다.”

뤼카는 곧바로 수긍했다.

결국 ‘앞으로도 계속 선수들과 똑같은 메뉴 먹어보고 싶으면, 선수들이 쓰는 시간대에는 와서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간단한 방법이지만, 실행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이런 명분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우수한 스태프, 그리고 실제로 신메뉴를 계속 개발할 수 있는 바의 능력이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부속 시설이니까, 이곳 바텐더도 선덜랜드 스태프라는 뜻이겠네. 선덜랜드 구단주가··· 정말로 엄청난 걸 만들어 버렸어.’

뤼카가 속으로 감탄하는 사이, 베넷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 생각엔, 주장과 부주장이 둘 다 술이라곤 입에도 안 대서 그런 거 같긴 해. 우리 팀에선 그 둘이 가장 인기 있거든. 특히 우리 주장은 이런 날이면 풋볼 스퀘어에 달려가서 팬들에게 사인해주고, 끌어안고 같이 노래 부르고 아주 난리도 아냐.”

“그러면 굳이 팬들이 바에 기웃거릴 필요는 없겠네.”

대답하면서, 뤼카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베넷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좋은 팀에서 뛰는 모양이라고.

잠시 후, 무알콜 칵테일로 목을 축인 뤼카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번엔 완패했다. 반쯤은 구단주 차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자 베넷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네가 졌다고? 맞대결한 것도 아니면서?”

“팀이 졌으니까.”

뤼카 나름대로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한 것이었지만, 베넷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과의 경쟁에서 한 번도 이긴 적 없는 베넷에게, 오늘의 승리는 무척이나 값질 텐데도.

베넷은 줄곧, 스마트폰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베넷 선수? 굿즈가 모조리 동났는데도 팬들이 계속 줄을 서 있어요··· 정말 죄송한데, 잠깐 오셔서 사진이라도 좀 찍어 주면 안 될까요?]

[풋볼 스퀘어 아주 난리 났어요. 베넷은 어디 있냐는데요. 덕분에 잭이 시무룩해져서 곧 땅 파고 들어갈 것 같아요.]

에이미와 요니의 메시지를 번갈아 확인한 베넷이 미소를 지었다.

“미안한데, 먼저 일어나야겠다. 가서 사인이라도 해 줘야겠어.”

“어··· 너희 팬들은 원래 주장하고 부주장만 찾는다면서?”

“오늘은 내 사인이 필요하대.”

잠시 후, 득점도, 도움도 기록하지 못했고, 경기의 MOM이 되지도 못했던 사내가 바 블랙캣츠를 빠져나가자, 선덜랜드 팬들의 뜨거운 환호성이 도시를 가득 메웠다.

풀백은 조연이라는 축구계의 오랜 상식을 부정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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