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챔스, 그리고 선덜랜드 (3)
뮌헨과의 챔스 16강전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스 8강 진출이 확정되면서 각종 굿즈의 판매도 평소보다 더욱 호재를 보였다.
신상품개발팀장 아드리안의 입이 그야말로 귀에 걸렸을 정도로.
“스태프 피규어의 판매량이, 사상 최대치를 찍었습니다!”
“그렇군요. 역시 브라이언··· 감독 피규어 신제품이 잘 팔리겠군요.”
간단한 추측이다. 갑자기 판매량이 늘었다면 신제품일 것이고, 스태프 피규어 신제품이라면 한 종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아드리안의 반응은 내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물론 감독님 피규어도 잘 팔리고 있습니다만, 역시 스태프 피규어 중에서는 여성 스태프 피규어가 압도적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피규어 제품군은 남성 고객이 타깃이다 보니.”
살짝 피어오르는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럼 샐리겠군요. 요즘 팀 성적이 좋아지면서 분석팀도 주목을 받고 있으니까요.”
“아뇨. 비서님입니다.”
이상하다. 다들 눈이나 머리에 뭔가 문제가 있나? 조만간 선덜랜드 안경을 출시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아드리안이 스마트폰을 조작해, SNS의 사진을 내밀었다.
잠시 후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희주의 피규어 앞에 군것질거리를 잔뜩 늘어놓는 사진이 여러 개 보였기 때문에. 대부분은 푸드트럭 소시지였지만, 한국 과자도 찾아볼 수 있었다.
“선덜랜드를 위해서, 이렇게 공물을 바치면 좋다는 유행이 퍼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구단에서도 조추첨을 앞두고 널리 시행하는 풍습이라고 알려져서요.”
어, 그건 희주 입을 틀어막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그나저나, 희주 피규어를 사다 놓고 공물을 바친단 말이지?
“혹시 그 외에 피규어 판매량이 달라진 품목은 없습니까?”
“네, 구단주님. 다른 제품은 평소와 비슷한 추세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나는 잠시 입맛을 다셨다.
뭐, 내 피규어를 팍팍 팔아치우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팔리지 않는 게 더 좋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희주 피규어가 내 것보다 잘 팔리는 건 왠지 분하다는, 기묘한 이중적 감성이 입맛을 쓰게 했다.
내 표정을 살피던 아드리안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축구공 판매량이 급증했습니다.”
“축구공이요?”
의외의 품목이었다.
메가스토어에서 축구공을 팔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기 품목은 아니었다. 선수에게 사인을 받는 용도로는 공보다는 마킹이 들어간 유니폼 레플리카가 훨씬 낫고, 실제로 사용할 목적이라면 굳이 우리 메가스토어에서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옆에서 에이미가 장난기 넘치는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곧 알게 되실 테니까 너무 고민하진 마세요, 구단주님.”
정말로 나는 나중에 알게 된다. 세상에는, 차라리 모르는 게 좋은 사실이 있다는 것을.
선덜랜드의 행운의 여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거라면, 당연히 그 오빠이자 구단주인 투자의 신에게도 공물을 바쳐야 한다는 개드립이 돌았던 모양이다.
- 투자의 신도 먹을 거 좋아하나? 선덜랜드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현지 음식이 낫겠지?
ㄴ 아무리 그래도 정어리 파이나 장어 젤리는, 외국인에게는 공물이 아니라 악의적 괴롭힘이야.
- 역시 한국 과자가 무난하다고 생각하는데.
ㄴ 남자는 술 아님?
ㄴ 몇 년간 지켜본 경험상 제로콜라가 낫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우스갯소리였던 것 같은데 누군가 진지하게 받으면서 일이 커졌고, 급기야 친숙한 아이디들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 무릎이 부서질 때까지 공을 찼던 남자에게 바칠 공물이라면, 당연히 축구공 아닌가요? @forever9mysun
ㄴ 정말 멋진 생각이세요! @da0_0mi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 들어, 나는 팬들이 사들인 축구공의 행방을 추적하라고 지시했다.
공은 금방 발견되었다. 예전에 시청에서 세운, 지금은 경기장 뒷문에 옮겨진 내 동상 앞에서.
방송국 예능에서나 쓸 것 같은 커다란 바구니가 몇 개나 놓였고, 거기에 축구공이 한가득 담겨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공에는, 깨알같이 글씨가 쓰여 있었다. 대체로 축구 관련 소원이었다.
- 리그 무패 기원합니다.
- 챔스 우승하게 해주세요. 트레블 하게 해주세요.
이건 나도 빌고 싶다··· 챔스 우승하게 해주세요. 트레블 하게 해주세요.
- 세계 평화를 지켜주세요.
이보세요. 이건 너무 나갔잖아요. 다시 말하지만 투자의 신이라는 호칭은 그저 별명일 뿐, 내가 정말로 신적인 무언가는 아니다. 세계 평화를 지킬 능력은 없다.
아, 혹시 지구방위대 스쿼드를 꾸려 달라는 뜻이었나?
그런 팬들의 소망 사이에, 낯익은 글씨들도 보인다.
- 단 하루라도 좋으니, 그라운드 위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 살이 조금 빠진 것 같던데, 건강에 좀 더 주의해주시겠어요?
나는 지인들의 흔적이 담긴 공을 회수해 구단주실 장식장에 넣어두라고 지시했고, 나머지 축구공은 제3세계의 축구 소년들을 위해 선덜랜드 팬들의 이름으로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아, 물론 바구니는 철거되었습니다.
* * *
한편, 이제 챔스 8강까지는 약 한 달 정도의 시차가 있다. 덕분에 선수들도, 코치진도 조금쯤은 숨 돌릴 여유가 생긴 셈이다.
“뭐, 한동안은 괜찮긴 할 거야. 이번 주말 리그 경기만 잘 넘기면.”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브라이언 본인은 ‘숨 좀 돌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희주에게 들은 기억이 난다. 기껏 안정세로 접어들던 드링크 소모량이 도로 늘어났다고. 드링크값 자체는 헐값이지만, 기껏 인력을 늘려 줬는데 자발적으로 약에 찌들어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마디 해주려고 생각하는 사이, 옆에서 샐리가 끼어들었다.
“감독님.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지 마세요. EFL 컵도, FA컵도 남았잖아요? 심지어 FA컵은 아직 상대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요.”
“아차. 그게 있었군.”
머리를 긁적이는 브라이언에게서 시선을 돌린 샐리가 분석팀원들을 응시했다.
“따라서 내일, 분석실은 야근입니다. 반즐리와 블랙풀 중 누가 올라와도 상관없도록 분석을 끝내두도록 하죠.”
···어, 드링크 소모량을 늘린 주범은 샐리였나. 내가 내심 혀를 차는 사이, 루벤이 옆에서 볼멘소리를 했다.
“분석씩이나 필요해? 반즐리와 블랙풀 정도면, 누가 올라와도 상관없지 않아?”
샐리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이번엔 브라이언이 대신 대답했다.
“보통 언더독의 반란 장면에선, 항상 강팀 관계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던데··· 혹시 플래그라도 세우고 싶어진 거야?”
“아뇨, 그런 뜻은···.”
“우리는 팀 선수들에게 항상, 휘슬이 울릴 때까지 멈추지 말고 뛰라고 요구하고 있어. 덕분에 우리는 평균 활동량이 가장 많은 팀이 되었지.”
리그 전체에서 가장 많은 활동량, 선덜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팀 컬러지만, 그만큼 우리가 로테이션에 신경질적이 된 이유기도 하다.
“따라서, 코칭스태프도 선수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죄송합니다, 감독님.”
루벤이 자신의 실언을 사과하는 사이, 옆에선 희주가 속삭였다.
“오빠, 방금 브라이언 씨 말인데, 감독님 같지 않았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쟤는 이미 우리 감독이야.”
아마 조금 전의 브라이언은 로저스 감독과 닮았다는 이야기겠지. 옛 은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 분석실 직원이나 코칭스태프를 통조림에 갈아 넣고 싶진 않았기에 슬쩍 말참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에도 말한 것 같지만, FA컵이나 EFL컵은 올 시즌 우선순위가 낮은 대회야.”
“알아, 브로. 그렇다고 일부러 지고 오라는 소리는 아니잖아?”
“당연히 그런 건 아니지만, 로테이션에는 철저히 신경 써 달라는 뜻이야.”
내 지적에, 브라이언이 웃었다.
요즘은 우리 스쿼드 뎁스가 늘었고, 특히 공격진은 과포화 상태라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컵 대회는 무척 소중하다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요즘은 미드필더진도 살짝 과포화 상태니까, 컵 대회 출전은 오히려 반가워. 그리고 리델의 경기 경험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계속 출전하고 싶은데.”
“감독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나는 산뜻하게 물러났다.
“오빠, 브라이언 씨는 수비수가 과포화라고는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어디 미남 수비수가 매물로 나온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는데.”
“헤헷.”
물론 풀백은 보강하겠지만, 센터백은 당분간 늘릴 생각이 없다. 기본적으로 활동량이나 체력소모가 적은 포지션이라 로테이션 필요성이 적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프랭크도 있다.
여차하면 톰슨도 센터백으로 뛸 수 있고, 조만간 최새벽이 워크퍼밋을 따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다.
그사이 우리 코칭스태프는 열띤 토론을 계속했다.
“구단주님께서 직접 챔스가 최우선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 굳이 리그에서 우승하자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일단 리그 무패 기록도 지켜야겠죠?
“하긴, 반환점을 돌도록 지지 않았으니까, 이대로 날려버리면 조금 아깝지.”
“승점 차이를 고려하면 올 시즌 리그 우승까지는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요.”
“대신 챔스를 확실하게 노려야지. 그리고 또 알아? 뒤에서 무패로 따라가고 있으면, 앞에서 멋대로 미끄러져서 기회를 줄 수도 있어.”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코치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내 시선을 눈치챈 샐리가 눈을 깜빡였다.
“구단주님, 왜 그러세요?”
“옛날 생각이 나서요.”
구단을 인수했던 첫해, 아직 브라이언이 코치로 머무르고 샐리 밑에는 딱히 팀원도 없던 바로 그 3부 리그 시절.
당시의 선덜랜드는 잉글랜드 최초로 홈 20경기 무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가진 팀이었다.
그 팀은 이제, 홈에서 절대 지지 않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시즌 무패를 노리는 팀이 되었다.
내 이야기에 샐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브라이언은 감회가 새로운지 아련한 눈빛으로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러면 일단, 주말에도 지지 말아야겠네.”
* * *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에서는, 주말의 리그 경기를 앞두고 재개된 훈련이 한창이었다.
브라이언의 외침이 훈련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중요한 건 판단의 속도다! 망설이지 마! 공을 멈추면 즉시 뺏긴다!”
참여하는 선수들은 다채로운 색상의 훈련용 조끼를 걸쳤고, 코칭스태프가 준비한 다양한 상황에 따라 역할을 계속 바꿔가면서 연습했다. 체력적으로도 부하가 걸리지만, 그 이상으로 판단력이 요구되는 훈련이었다.
뮌헨의 나겔스만처럼 스크린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대신 분석팀이 실시간으로 붙어 있는 것은 선덜랜드의 강점이었다.
“잭의 스태미너가 평소보다 좋지 못한 것 같은데.”
“아, 음악 틀면 해결될 거야.”
“음악?”
어리둥절한 루벤을 무시한 채, 샐리가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훈련장에 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지가 녹음한, 풋볼 스퀘어의 노랫소리다.
Wise man say, only fools rush in.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원래는 상대팀 경기장을 재현하기 위한 용도였지만, 지금처럼 선수들의 기력을 최대한 끌어내 훈련 효과를 극대화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물론 잭이 다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선덜랜드의 골키퍼, 하퍼는 잠시 고개를 흔들었다. 살짝 시야가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세요?”
옆에서 물어보는 리델을 향해, 하퍼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하퍼도 벌써 서른이 넘었다. 선수 수명이 긴 골키퍼라는 특성상 아직 에이징 커브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스스로 스태미너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다.
물론 그의 지구력은 아직 동료들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경기당 활동량이 적은 골키퍼라는 특성상 오히려 체력 소모는 다른 선수보다 훨씬 적은 편이었다.
‘정신적인 피로이려나.’
선덜랜드가 승승장구하면서 자연히 경기가 늘었다. 기본적으로 국내 컵 대회는 세컨 키퍼 리델의 몫이지만, 리그와 챔스를 둘 다 소화하는 퍼스트 키퍼 하퍼의 부담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근 들어 리그에서 하위권 팀을 상대할 때에는 종종 리델이 대신 출전할 때가 있다. 리델은 그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어쩌면 하퍼 자신보다도 훨씬.
‘다른 팀이었으면 진작에 말 나왔을 텐데.’
하퍼 자신이 페르난데스의 백업을 몇 년간 감수했기 때문에, 선덜랜드는 누가 팀의 퍼스트 키퍼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팀이었다.
컨디션 문제를 제외하면, 챔스, 그리고 강팀과의 리그 경기는 언제나 하퍼의 몫이었다. 그리고 리델이 이에 불만을 표시한 적은, 아직까지 없다.
“피곤하시죠? 이따가 코리안 치킨 수프 주문할까요? 저도 한 그릇 생각이 나서 그런데요.”
“괜찮아.”
훈련을 마치고 샤워까지 한 직후에도 계속 사근사근하게 구는 리델을 향해, 하퍼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기운을 내는 데는, 더 좋은 게 있거든.”
하퍼는 자신의 라커를 응시했다. 그곳에는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서툴게 그린 골키퍼 그림이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페르난데스가, 이후에는 하퍼가 간직해온 물건이다.
“아이의 그림이군요. 혹시 자녀분이 그린 겁니까?”
“···나 독신이잖아.”
“실례했습니다. 크흠. 단장님이 자주 말씀하신 게 있어서, 하퍼 선수는 기혼일 줄 알았습니다.”
“단장님이?”
구단주가 직접 1군 선수의 영입과 계약을 관리하는 선덜랜드에서 단장으로 불리는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
“페르난데스 단장님 입버릇이잖아요. 빨리 결혼하라고. 지킬 게 있으면 골키퍼는 강해지는 법이라던데요?”
거기서 끝나면 좋았겠지만, 리델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요즘 짐이 엄청 폼 좋다잖아요. 그 여자애 때문에요. 이게 다 지켜야 할 존재가 있는 골키퍼의 힘 아니겠습니까? 경기력만 보면, 적어도 골키퍼는 조혼을 장려해야 해요.”
“너는 애한테 아주 못 하는 소리가 없다?”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하퍼의 시선은 여전히 그림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바로 그 짐이라는 걸 알면, 리델은 뭐라고 하려나?’
“그러는 너는 왜 결혼 안 하는데?”
그러자 리델이 명랑하게 대답했다.
“저는 아직 젊으니까요. 뭐, 애인은 있지만요.”
“그러면?”
“아직 골키퍼로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어엿한 골키퍼가 되면, 그때 프러포즈할 계획입니다.”
리델의 목소리에, 문득 기억 속의 음성이 겹쳤다.
[모든 걸 배우고 이어받을 때까지는 받지 않겠습니다. 그건 선덜랜드 1번을 그린 그림이니까요.]
어쩌면 짐의 그림을 보는 중이었기 때문일까? 과거의 자신이 했던 이야기가 이상하게 겹쳐서, 하퍼는 무심코 웃었다.
“···다행히 노총각이 되진 않겠군.”
그림 아래에 걸린 자신의 유니폼과, 그곳에 적힌 등번호 12번을 응시하던 하퍼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