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75화 (275/422)

275화 챔스, 그리고 선덜랜드 (4)

[프리미어리그 30R, 선덜랜드 대 빌라,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빌라를 우리 홈으로 불러들인 주말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맞아, 나는 언제나처럼 익스클루시브 박스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오늘 경기에서는 꽤 로테이션을 돌린 참이었다. 주중에 챔스를 치른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우선 잭이 선발로 뛰었다. 팀의 주장이기도 하고,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한정으로 무적의 활동량을 자랑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아울러, 홈 경기에 내보내지 않으면 사기가 떨어지는 곤란한 성격도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추가로, 하퍼도 선발 출전했다. 당장 다음 주 FA컵 출전을 앞둔 리델에 대한 배려 차원이었다.

“그래도 든든하네! 오늘은 우리 홈이고, 하퍼 씨가 선발이니까.”

희주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하자, 내 얼굴에도 자꾸만 미소가 번졌다.

구단을 인수한 직후만 해도, 하퍼는 우리 스태프들의 전력 구상에서 논외로 밀려난 선수였다. 벤치에 앉혀 두라거나,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하지만 지금의 하퍼는 틀림없는 선덜랜드의 수호신이 되어 있었다. 다시 1번을 달아도 손색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본인 스스로 1번은 페르난데스의 것이라며 사양해, 여전히 12번을 쓰는 중이었다.

오늘도 하퍼는 골마우스를 든든하게 지켜줄 게 틀림없었다.

잠시 후 킥오프가 시작되었고, 경기는 치열하게 흘렀다. 최근 우리 스쿼드는 빌라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대신 로테이션 선수를 많이 내보냈기에 종합적으로는 호각이었다.

전반에는 양 팀 모두 득점 없이 끝나고 말았고, 스코어보드가 움직인 것은 후반전의 일이었다.

후반 50분, 해리슨의 패스가 절묘하게 빌라 최종 수비라인 뒤쪽에 떨어졌다. 크리그가 재빨리 공을 추격했고, 날카로운 터치로 빌라 골네트를 흔들었다.

[선덜랜드 1 - 0 빌라]

“그렇지! 이제 이긴 거나 마찬가지잖아!?”

환호하는 희주를 흘끗 바라보며, 나는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내심으로는 동의하지만, 경기 종료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아직 경기 안 끝났어.”

“그치만 크리그 씨가 득점한 경기에서는 한 번도 지지 않았다면서? 게다가, 우리 홈에서 하퍼 씨가 실점할 리 없잖아?”

호언장담하는 희주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즘 본인이 뭐라고 불리는지 벌써 잊었어?”

“아차차···.”

희주는 곧바로 시무룩해졌고, 나는 조용히 접시를 여동생 앞으로 밀어 놓았다. 희주가 묵묵히 소시지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희주의 저주가 또 작동할 뻔했다. 하퍼가 쉽게 점수를 내주지는 않았지만, 빌라가 그야말로 총공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꼭 우리한테 원한이라도 쌓인 것 같네.”

“몇 점 차로 지더라도, 패배는 똑같이 패배니까.”

실점 전까지, 빌라는 수비를 굳히며 무승부를 노리는 축구를 했다. 딱 승점 1점만 가져가자는 느낌의 경기 운영이었다. 하지만 실점 후에는, 수비를 도외시한 채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그때마다 하퍼의 몸이 날았고, 동점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변은 70분에 일어났다. 달려 나오던 하퍼와, 라인 뒤쪽에 침투하던 빌라 공격수가 뒤엉켜 쓰러진 것이다.

“어···?”

희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나 또한 입술을 깨물었다. 빌라 공격수에게 내밀어진 치즈 한 장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하퍼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 *

꿈인지 환각인지 모를 풍경 속에서, 하퍼는 지금은 은퇴한 선덜랜드의 1번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팀이 3부 리그에 머물던 시절.

프리미어리그 팀을 상대로 줄곧 골마우스를 지켜내던 페르난데스의 모습을, 하퍼는 줄곧 사이드라인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경험한 장면이기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경기는 이제 곧 승부차기로 향할 것이고, 자신은 페르난데스와 교체되어 들어갈 것이다.

사이드라인을 빠져나오는 페르난데스와 손을 마주치면, 그가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할 것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마. 동료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마.]

이후, 자신이 뭐라고 대답했는지를 떠올리려는 찰나, 하퍼는 눈을 떴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동료들과 심판의 모습이 보였다. 위치는 아직 경기장 안이었으니, 쓰러지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큰 부상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 하퍼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옆구리에서 시작된 통증이 온몸에 퍼졌기 때문에.

‘갈빗대가 나갔구나.’

통증도, 당황한 기색도 주위에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하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괜찮은 검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하퍼는 벤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외치는 브라이언 감독과, 자신을 걱정스럽게 응시하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선덜랜드는, 선수의 부상 문제에 대해서는 극도로 민감한 팀이다. 아마 약간이라도 고통을 호소하면, 곧바로 교체할 것이다.

‘손을 들면 편해질 수 있겠지.’

벤치를 향해 손을 머리 위로 들고 두어 번쯤 돌리면 된다. 그러면, 벤치에서는 곧바로 교체를 알리는 팻말을 들어 올릴 테니.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동료들이 보고 있기에. 그리고 하퍼는, 자신의 등 뒤에 지금 무엇이 있는지 안다.

후반전의 선덜랜드는 나이얼 스탠드를 등지고 있다. 팀 레전드의 이름을 딴, 가장 뜨거운 스탠드를. 그리고 그곳에는 선덜랜드의 유소년들도 앉아 있을 것이다. 유소년 팀은 항상, 그곳에서 1군의 홈 경기를 직접 관전한다.

따라서 짐도 그의 등을 보고 있을 것이다. 축구 팬이었던 소년은 이제, 선덜랜드 유소년팀 주장이니까.

‘명색이 1군 퍼스트 키퍼가, 유소년 꼬맹이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순 없지··· 그리고 리델 앞에서도.’

하퍼는 알고 있었다. 리델에게는 오는 수요일, 컵 대회에 출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하퍼 자신이 부상당한 이상, 다음 주말의 리그 경기도 리델이 뛰어야 한다. 어쩌면 챔스까지도 전부.

리델은 아직 몸도 풀지 않은 상태다. 곧바로 교체했다가 리델까지 부상당하는 순간, 선덜랜드의 이번 시즌은 사실상 끝난다.

[공을 막는 게 아니라, 팀의 패배를 막고 오겠습니다.]

벌써 5년도 지난 과거에, 하퍼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그렇기에, 지금 다쳤다는 사실을 알릴 수는 없었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감독이 다시 뭐라 말하려는 찰나, 하퍼는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천천히 골마우스 앞에 섰다. 입술 대신 볼 안쪽을 깨물며, 자꾸만 덜덜 떨리는 몸에 힘을 넣었다.

‘딱 20분··· 그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두꺼운 골키퍼 장갑 아래에 통증을 감춘 채, 하퍼는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그런 하퍼를 향해, 팬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Sunderland 'til I die. I'm Sunderland 'til I die.

* * *

날아드는 공을, 하퍼가 몇 번이나 쳐냈다. 마치 훨훨 나는 것 같은 모습에 유소년 선수들이 환호했다.

“역시 우리 팀 1군은 대단하구나!”

열광의 한가운데서, 유일하게 시무룩한 사람은, 짐이었다.

‘하퍼 씨의 움직임이··· 조금 이상한데?’

짐은 알고 있었다. 하퍼의 운동능력은 원래 훨씬 대단하다는 것을.

팬으로 오래 지켜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이 골키퍼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등 뒤에 앉아서, 골대를 향해 날아드는 공을 같은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 이후, 하퍼가 얼마나 대단한 골키퍼인지 실감한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의 하퍼는, 특히 한 번 쓰러진 이후의 하퍼의 움직임은 평소에 미치지 못했다.

‘조금 전의 슛은, 평소였으면 잡아냈을 거였어. 펀칭하는 건 간단하지만, 상대에게 세컨볼을 내줄 수도 있으니 잡을 수 있는 공은 잡으라고 말했었는데···.’

인정하기 싫은 결론이 자꾸만 짐의 머릿속을 스쳤다.

‘다친 거야. 틀림없이.’

그런데도 하퍼의 뒷모습은 흔들림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부상을 숨긴 채 경기에 임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잠시 후, 짐은 하퍼가 어째서 부상을 감추는지도 눈치챌 수 있었다.

“주장, 왜 그래?”

“아니, 잠깐 목이 잠겨서···.”

얼버무리자, 테오의 얼굴에 평소같은 장난기가 돌았고, 곧바로 바르카도 가세했다.

“알았다! 옆에 클라라가 없어서 그런 거야.”

“그런 거야?”

선덜랜드의 골키퍼는 동료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지금, 하퍼가 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동요하면, 유소년 팀 전체가 흔들린다. 어쩌면 주위의 팬들에게도 불안이 전염될 수 있다. 기껏 통증을 참으며 버티는 하퍼의 노력을 허사로 만드는 짓이 된다.

이곳 나이얼 스탠드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도 가장 충성스러운 팬들이 앉는 자리이기에, 만에 하나 이 자리의 팬들이 무너진다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전체가 동요할 것이다.

그래서 짐 또한, 하퍼와 똑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시큰거리는 감정을 가슴 속 깊이 억누르며, 입술 대신 볼 안쪽을 깨물었다. 그리고, 옆에서 까불거리는 테오와 바르카에게 천천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계속 응원이나 하자.”

그날, 하퍼는 끝까지 점수를 내어 주지 않았다. 휘슬이 울릴 때까지.

하퍼가 부상당했다는 소식이 공식적으로 전해진 것은, 경기가 완전히 끝난 다음의 일이었다.

* * *

사실, 같은 팀에서 뛰는 골키퍼끼리는 서로 꽤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축구 규칙상 손으로 공을 다룰 수 있는 선수는 팀에 딱 한 명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골키퍼는 절대로 동시에 출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팀 동료라는 의식보다는, 서로를 포지션 경쟁자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팀에 따라서는, 꼭 필요한 이야기 외에는 서로 말도 섞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다고 자신 외의 다른 골키퍼가 팀에 없는 상황을 반기는 선수는 없다. 선수에게는 휴식이 필요하고, 때로는 부상 같은 사고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선덜랜드의 골키퍼는 사정이 조금 낫다.

팀에서 엄격하게 주전과 후보를 구분하고, 일정 기간 서브 대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선수만을 영입한다는 방침 때문이었다.

물론 지나친 기다림에 서브 키퍼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나이 차이가 나도록 스쿼드를 구성하면서 자연스럽게 계승이 이루어지도록 배려했다.

덕분에 하퍼와 리델은 포지션 경쟁자라기보다는, 선후배라는 느낌으로 서로를 대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꽤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가끔 불편한 순간도 있었다.

자신의 병실에 난입한 리델을 바라보며, 하퍼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째서 그런 무모한 짓을 하신 겁니까!?”

리델의 질책에, 하퍼는 살짝 눈을 피했다.

“그 소리는 벌써 여러 번 들었는데.”

처음엔 메디컬 팀과 감독에게서 들었고, 나중엔 구단주실에서 직접 다녀갔다. 구단주 본인은 물론, 구단주 비서 또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몇 번이나 설교했다.

리델은 다섯 번째다.

‘대부분의 팀에서라면, 너는 티 나지 않게 기뻐해야 정상이야. 기회를 잡은 거니까.’

자신을 원망스럽게 노려보는 리델의 기세가 조금도 꺾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퍼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큰 부상은 아니야. 움직일 수는 있었거든.”

선덜랜드 메디컬 팀은 약 6주 정도의 결장을 예상했다. 난데없이 퍼스트 키퍼를 잃어버린 브라이언과 샐리는 머리를 감싸고 말았다.

팀 동료들 또한 의기소침해졌는데, 특히 리델의 상심이 컸다. 자신이 의지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퍼가 부상 투혼을 보여야 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태연한 사람은 하퍼였다.

“그냥, 동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도.”

하퍼는, 마치 선수 교체라도 하는 것처럼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리델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맞췄다. 서로 장갑을 끼지 않은 상태이기에, 마주 댄 손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하퍼는 조심스럽게 왼손을 올렸다. 양팔을 들어 올린 덕분에 기껏 잠잠해진 통증이 몰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잠시 후 하퍼는, 왼손을 들어 리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두드려 격려했다. 언젠가 세컨 키퍼이던 그에게, 팀의 퍼스트 키퍼가 해주었던 것처럼.

“동료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마.”

리델은 한참 동안 울 것 같은 얼굴로 하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얼마간 하퍼를 응시하던 리델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고, 자신의 두 손바닥으로 스스로의 뺨을 두들겼다.

둔탁한 소리가 몇 번쯤 울린 뒤, 병실에는 환자와, 선덜랜드의 골키퍼만이 남아 있었다.

“네.”

리델의 듬직한 모습을 바라보던 하퍼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줄곧 궁금해하던 것이 있었다. 리즈와의 승부차기를 자신에게 맡기고 교체되던 순간, 페르난데스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힘차게, 하지만 다정하게 격려하던 목소리나 어깨를 감싸는 감촉은 무척이나 생생한데, 표정만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골마우스만을 바라보던 당시의 하퍼에게는 페르난데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지금의 자신처럼, 웃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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