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79화 (279/422)

279화 I owe you (4)

경기는 초반부터 치열했다. 모처럼의 유럽 투어를 맞아 토리노를 찾은 케이팝 아이돌 그룹, 드림스케이프 멤버들조차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근데 우리 유니폼만 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아직 축구를 잘 모르는 EWD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리더와 올리버가 차례로 부연했다.

“보통은 필드플레이어 유니폼을 입거든. 퍼스트 킷으로.”

“맞아. 근데 우린 골키퍼 유니폼을 입었고.”

물론 둘의 설명은 EWD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아니, 그럼 처음부터 필드 플레이어 유니폼 사라고 하지!?”

“그럴 순 없지. 네가 하퍼가 좋다면서?”

“정작 하퍼 유니폼은 또 못 입게 했잖아.”

셋은 오늘 리델의 마킹이 들어간 유니폼을 입었다. 하퍼가 출전 명단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깔맞춤 느낌이라며 홈 킷과 어웨이 킷, 써드 킷을 사이 좋게 나눠 입기까지 했다.

EWD에게 써드 킷 유니폼을 넘겨준 리더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신경 안 써도 돼. 너 준 건 포교용 유니폼이니까.”

“아니, 내 말은 기왕 빌려줄 거면 필드 플레이어···.”

그때 경기장이 떠나갈 것 같은 함성이 울렸다. 홈 팬들의 환호였는데, 당연히 선덜랜드에게는 위기 상황이었다. 유베의 젊은 에이스, 알렉이 왼쪽 측면에서 공을 건네받은 찰나였다.

“쉿!”

올리버가 EWD의 입을 손으로 막았고, 리더는 곧바로 응원을 시작했다.

“리델 화이팅!”

잠시 후 셋의 간담이 서늘해질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알렉은 자신을 견제하던 잭을 한 동작으로 따돌렸고, 커버하려는 브루노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리며 따돌렸다. 그렇게 유벤투스의 에이스는, 순식간에 파이널 서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에디의 절묘한 슬라이딩 태클이 아니었으면, 슈팅까지 내줄 뻔한 순간이었다.

“···이래서 골키퍼 킷을 입은 거야. 오늘은 저 선수를 무실점으로 막는 게 관건이니까.”

어느새 축구를 꽤 잘 알게 된 리더가 친절하게 설명하는 사이, 원래 유소년 축구 선수 출신이던 올리버는 그라운드 위의 알렉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레프트 윙포워드네. 꼴 보기 싫게.”

“응? 레프트 윙포워드면 안 되는 건가?”

어리둥절하는 EWD를 향해, 리더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쟤 우상이던 사람하고 똑같은 포지션이라서 그래.”

* * *

알렉은 정말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였다.

이탈리아 축구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판타지스타의 자질을 타고난 선수로, 단신으로 수비를 때려부수는 센스와 기량을 갖췄다.

그 위에 유벤투스의 7번을 자처할 정도의 돌파력과 득점력이 추가되었으니, 솔직히 좀 무시무시하다. 게임이었으면 밸런스 패치가 살짝 잘못된 게 아니냐고 항의했을 정도로.

네이마르나 음바페, 홀란드 다음에는 아마 이 선수가 세계 축구계를 지배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에이스란 저런 선수를 가리키는 단어겠지.

희주가 한숨을 쉬었다.

“레프트 윙포워드네. 짜증 나게.”

“왜, 레프트 윙포워드가 어디가 어때서.”

전 세계의 모든 레프트 윙포워드들에게 사과해. 덤으로 레프트 윙포워드가 되지 못한 나에게도··· 같은 느낌으로 묻자, 희주는 대답 대신 그라운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유벤투스의 공격과 우리의 반격이 계속 이어졌다. 또 알렉이 공을 넘겨받았고, 브루노를 또다시 따돌렸으며, 이번에는 이고르마저 뚫렸다.

이고르는 마치 스스로 길을 내준 것처럼 보였다. 프리시즌컵 당시, 메시에게 그랬던 것처럼.

“꺄악!”

이고르가 돌파당하는 순간 희주가 비명을 질렀고, 차마 못 보겠다는 것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아직 가까스로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기도하는 심정이 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제발.’

다음 순간, 이고르의 뒤에 리델의 몸이 나타났다. 이고르를 따돌리기 위해 방향을 전환했던 알렉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공이 리델의 손에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주먹을 쥐었다.

“그렇지!”

참았던 숨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라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바로 이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 알기에.

[그러니까 구단주님은, 알렉에게, 가짜 버릇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이시죠?]

[네, 에디의 방식보다는 훨씬 세련된 것 같지만요.]

셰필드에서 뛰던 시절, 에디는 가짜 버릇을 만들어 두었다. 심지어 그의 옛 동료들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꼼꼼하게.

알렉의 움직임에 위화감이 든다는 하퍼의 제보를 듣자마자, 에디의 옛 영상을 함께 가져오라고 요청한 이유다.

다만, 당시의 에디는 자신의 버릇이 분석당한다는 것을 알고 역으로 이용하려 했지만, 알렉은 그 정도로 티 나는 버릇을 만들지는 않았다. 아마 포지션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몸동작을 속이는 것은, 수비수보다는 공격수들에게 더 중요할 테니까요.]

[하긴, 수비를 속이는 연기력은 이탈리아 판타지스타에게 아주 중요한 덕목이죠. 선수 스스로는 CR7의 후계자 자리를 선호하는 것 같지만요.]

그렇게 시작된 알렉의 가짜 버릇 찾기 분석은, 곧 난관에 봉착했다.

[아무래도 골키퍼가 직접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저로서는 어느 포인트가 다른지 정확하게 짚지 못하겠어요.]

샐리의 목소리에서는 분함이 깊이 묻어났다. 전술 지식이라면 완벽하게 알지만, 선수의 움직임과 대응 같은 디테일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런 건 역시 같은 선수 출신이 잘 알기 마련이다.

이번 경우에는 특히, 골키퍼의 시선이 필요했다. 레프트 윙포워드의 시각이라면 어느 정도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었지만, 막는 쪽의 입장만은 나조차도 알 수 없었기에.

[그렇다고 리델에게 와서 영상이나 들여다보라고 할 수도 없고···. 하퍼 선수에게 맡기면 어떨까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루벤이 냉큼 끼어들었다.

[당분간은 재활과 회복에만 전념하게 하고 싶은데, 페르난데스 단장님이라면 딱 보면 알지 않을까?]

샐리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도움이야 되겠지. 출장 중만 아니면.]

페르난데스는 아프리카에 가 있다.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를 계기로 새로 발굴된 유소년을 영입하기 위해서.

분석팀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팀의 미래와, 당장의 1승. 어느 쪽을 중시할지는 구단주님의 판단에 맡기죠.]

그날, 샐리의 질문에 나는 미소로 대답했다.

[페르난데스 단장을 호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1승을 포기할 생각도 없고요. 선덜랜드에는 또 한 명의 골키퍼가 있잖아요?]

* * *

알렉의 발을 떠난 공이 리델의 손에 빨려들듯 넘어온 순간, 홈 팬들의 열광은 좌절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원정 팬들의 함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카운터-!”

목에 힘을 주며, 리델은 선덜랜드 분석팀이 알렉의 버릇에 대해 알려주던 순간을 떠올렸다.

[짐이 고생했어요. 잘 들어맞으면, 나중에 칭찬해주세요.]

밤을 꼬박 새웠는지 눈이 새빨갛게 변한 채 설명하는 샐리의 옆에서, 짐이 수줍게 웃었다.

[네가 버릇을 찾았다고?]

[아뇨, 그냥 팀장님을 좀 도와 드린 건데요.]

쑥스러운지 뺨을 검지로 긁적이는 소년에게, 리델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밤낮없이 버릇을 찾아낸 분석팀에게도,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조차 경기를 염려하던 하퍼에게도.

그 성과가 지금 자신의 손안에 있다.

유벤투스의 젊은 에이스가 가졌던 공은 선덜랜드의 골키퍼에게 넘어온 상태였고, 단단하던 비안코네리의 중심은 한껏 앞으로 쏠려 있었다. 절호의 반격 찬스다.

마치 구르듯 몸을 일으키며, 리델은 공을 길게 던졌다. 어느새 하프라인 앞까지 전진한 베넷을 향해.

“올라가! 뒤에는 내가 있다! 올라가!”

한 손을 입가에 대고, 한 손 앞으로 내밀며 지시하는 리델의 모습은, 과거 선덜랜드의 골마우스를 지켜온 골키퍼들과 꼭 닮아 있었다. 비록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잠시 후 베넷이 공을 건네받았다.

마침내 선덜랜드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 * *

트래시 토크는 스포츠에서라면 흔히 벌어지는 일이고, 축구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탈리아 팀이라면 더욱 능숙하다. 월드컵 결승에서, 은퇴를 앞둔 아트사커의 지휘관을 절묘한 트래시 토크로 퇴장시킨 사례처럼.

유베 선수들은 빅 이어 개수, 챔스 득점 같은 스탯을 거론하며 축구의 신과 챔스의 신을 계속 비교했다. 대부분 메시의 신경을 긁으려는 의도였지만, 개중에는 진심이 느껴지는 도발도 있었다. 7번을 물려받은 자, 알렉이 특히 그랬다.

그렇게 도발이 이루어질 때마다, 메시는 짧게 대답했다.

“누가 나은 선수냐고? 그런 건 내가 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미 기자들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질문이기에, 조금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누가 봐도 나보다 그가 나았다고 봐.”

“챔스에서의 성적 말입니까?”

유베 수비진의 빈정거림에도, 메시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응수했다.

“아니, 누군가에게 자신의 플레이를 확실히 전했다는 점에서.”

알렉이라는 걸출한 계승자를 남긴 라이벌과 달리, 축구의 신에게는 아직 후계자라 불릴 만한 선수가 없다.

굳이 만들려 들지도 않았다. 자신부터가 제2의 마라도나라는 무거운 간판을 짊어지며 성장했기 때문에, 축구의 신은 누군가의 후계자라는 표현을 아주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뒤를 이어받을 누군가는 필요하다.

[나를 닮은 선수, 나를 롤모델이라고 말하는 선수를 그라운드에 남기고 싶었어.]

자신의 선수 수명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기껏해야 1, 2년 정도일 것이다. 물론 억지로 더 버틸 수야 있겠지만, 바라는 바는 아니었다. 더 나이를 먹으면, 기량이 형편없이 떨어질 테니.

영원히 뛸 수 있는 선수는 세상에 없다. 페르난데스가 떠난 자리를 하퍼가 물려받고, 그의 라이벌의 빈자리를 알렉이 메운 것처럼, 그 또한 떠나게 될 것이다.

“마르틴!”

베넷의 외침과 동시에, 선덜랜드의 10번이 공을 건네받았다. 단숨에 왼쪽 측면을 주파한 마르틴-베넷 듀오가 공을 파이널 서드에 가져왔다.

이제는 그의 차례였다.

그의 플레이에는, 아르헨티나 테크니션들의 개인기가 녹아 있었다. 스페인의 패스 마스터가 남긴 흔적도.

어린 그를 열광시켰던 마술과 그와 함께 뛴 선배들의 가르침이 축구의 신을 구성하는 모든 재료가 되었던 것처럼, 이제는 그의 플레이가 누군가의 재료가 될 차례다.

[또 다른 내가 계속 뛰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해서.]

다가오는 패스를, 메시는 한 템포 늦게 받아냈다. 공이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기 직전, 발뒤꿈치를 대서 궤적을 살짝 비틀었다. 동시에 어깨를 반대쪽으로 아주 살짝 흔들었다. 빠져나가는 방향을 속이기 위해서.

그가 몸을 돌렸을 때, 천천히 무너지는 유벤투스 수비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너머에 골대가 보였다. 원정 스탠드의 팬들도.

이제는 그의 유니폼이 된 레드 앤 화이트 레플리카와 세차게 흔들리는 팀의 깃발, 작지만 또렷하게 울려 퍼지는 함성을 향해 축구의 신은 돌격했다.

We are Sunderland. Say we are Sunderland.

그 함성 사이에, 기억 속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섞인다.

[득점하실 때, 그러니까··· 죄송해요.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대답 대신 메시는, 달려나오는 골키퍼를 향해 슬쩍 페인트를 넣었다. 그리고 파포스트에 그대로 공을 꽂아 넣었다.

[유벤투스 0 - 1 선덜랜드]

* * *

브리핑 룸은 고요했다. 유소년 축구선수들이라는, 아마 세상에서 두 번째로 시끄러운 집단이 몰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마 다들 넋이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플레이에.

유베의 젊은 에이스를 완벽하게 막아낸 수비진의 협력 플레이도 정말로 멋졌지만, 가장 멋진 부분은, 그 위기로부터 딱 10초만에 역습을 성공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축구의 신의 화려한 마법이었다. 어떻게 골을 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득점 하이라이트를 다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선덜랜드 유소년 선수들이 가까스로 언어를 되찾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리델 선수 진짜 쩐다··· 일부러 함정에 끌어들인 거지?”

“주장이 버릇을 찾았댔어!”

“잠깐, 수비가 저절로 넘어졌어! 저거 뭐야?”

“어··· 일단 너는 넘어지지 않겠네. 봐도 모르는 걸 보면.”

“대체 작은 페인트를 몇 번이나 넣은 거야?”

“다음이 진짜야. 3연속 라 크로케타. 역시 축구의 신···!”

“그런데 왜 굳이 반대쪽으로 찬 거지? 니어포스트가 가깝지 않았을까?”

시끄럽게 떠드는 선수들 사이에서, 테오만이 계속 고요했다.

[그렇구나. 너한테도 ‘그게’ 보였구나.]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테오는 간신히 대답을 쥐어 짜냈다.

“네, 이번엔 다른 것도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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