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구단주의 일 (2)
“오일머니 떡밥은 잘 뿌리고 있어?”
뉴캐슬 구단주 애슐리의 질문에, 구단주 비서 사만다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노력은 하고 있는데, 선덜랜드 구단주 발언이 너무 세서 묻히네요.”
“하긴, 챔스 결승은 꽤 세지.”
“머지사이드, 맨체스터, 런던에서는 종종 챔스 결승에 갔었지만, 타인위어에서는 처음이니까요.”
사만다가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본 애슐리가 웃었다.
“뭐, 그게 다 구단주 차이겠지.”
자신의 입버릇을 들은 사만다가 찔끔하는 사이, 애슐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뭐, 나도 이제는 동감해. 뉴캐슬이 선덜랜드만 못한 팀은 아니지만, 나는 투자의 신보다 못한 구단주라는 걸. 앞으로 영원히 눌려 지낼 생각이 아니면, 팀에 변화를 줘야겠지.”
그 결과로 자신이 물러나게 되더라도 괜찮다고 말하는 애슐리를 향해, 사만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포브스에 정보를 흘린 건가요?”
“맞아. 선덜랜드 구단주 인터뷰에서 우리 이슈가 나오게 하고 싶었거든.”
사실 오일머니의 뉴캐슬 인수설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거론된 이야기였고, 실제로 제안이 온 적도 있다. 최종적으로는 허가가 나지 않아서 엎어진 이야기지만.
“갑부 구단주를 만나 승승장구하는 ‘그 팀’과 , 그렇지 않은 뉴캐슬을 비교하면 형평성 때문에라도 다시 검토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어. 일단 뉴캐슬어폰타인 사람들은 들고 일어날 테고.”
“···그러셨군요.”
줄곧 못난 구단주라고 까던 사람이, 팀을 위해 이렇게 나올 줄 예상 못 했던 사만다는 내심 반성했다.
이 구단주를 줄곧 투자의 신에 비교하며 낮춰 보던 자신의 태도와, 투자의 신이 밝힌 ‘챔스 결승 가겠다’는 발언에, 인수 떡밥이 완전히 묻히게 만든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서.
그런데도 애슐리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대한 대로야. 덕분에 이번 인터뷰에서, ‘그 팀’은 구단주가 직접 결승행을 선언해야 했지. 아직 8강이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선수단의 방심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 팀은 방심 같은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조심스럽게 반문하는 사만다에게, 애슐리가 태연하게 응수했다.
“나도 알아. 그렇다고, 시도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 이대로 가면 더비 라이벌이 챔스 들게 생겼는데. 뭐라도 해야지. 사이드라인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전부 다.”
사만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새삼 구단주답게 굴려고 그러세요··· 떠날 거면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사만다는 꼭, 대답을 이미 들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 *
선덜랜드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터너의 흥분된 목소리가 울렸다.
“도박사들이, 선덜랜드의 4강 진출 가능성을 78%로 점쳤다는데요!?”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쏠린 가운데, 터너가 차분하게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대충 이런 내용이네요. 선덜랜드는 이제 비기기만 해도 올라간다. 최근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5시즌째 무패를 달리는 선덜랜드로서는, 사실상 4강행을 확정한 셈이다.”
[설령 홈에서 패배하더라도, 그게 한 골 차이면 여전히 기회가 있다. 연장전은 선덜랜드 홈에서 치러질 테니. 그리고 혹시 승부차기에 가더라도 무방하다. 선덜랜드는 승부차기에 아주 강한 팀이다.]
터너가 기사를 단숨에 읽어내리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 옆에서는 베리가 다른 인터뷰 기사를 들먹였다.
“솔직히 나는 도박사들보다 구단주님 말씀이 훨씬 인상적인데. 네 경기 더 치르겠다고 하셨잖아? 그런데 우리 구단주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있나?”
“구단주님 말씀은 거의 맞았지··· 비서님 말씀이 다 반대로 되는 것처럼.”
“남매인데 신기하네··· 혹시 이런 것도 유전자 몰빵인가?”
“좀 다르지 않나.”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은 좋지만, 아직 2차전이 남았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
보다 못한 샐리가 인상을 쓰며 끼어들려던 찰나, 먼저 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주장 잭이었다.
“결승 간다는 구단주님 말씀도 맞아. 그러려고 대회에 나가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는 아직 8강 통과 못 했어.”
완벽한 정통성을 자랑하는 주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잭의 이야기에 선수단이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이어서 요니가 싸늘하게 주위를 노려보았다.
“승부차기에 자신감이 있는 건 좋은데··· 혹시 우리가 슈퍼컵에서 뭘 당했는지 벌써 까먹었어?”
승부차기 끝에 트로피를 빼앗겼다. 바로 유벤투스에게. 그 사실을 떠올린 선수들이 차례로 입술을 깨무는 사이 이번엔 에디가 끼어든다.
“절대로 잊지 말자고 유베 유니폼 공동구매까지 했잖아. 다들 왜 벌써 신이 난 거야.”
주장단의 서슬 푸른 이야기에 분위기는 단숨에 진지해졌고, 샐리의 얼굴에도 미소가 돌아왔다.
‘역시 선덜랜드는 이래야지.’
전임 감독 로저스는, 팀을 그렇게 조련했다.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멈추지 않는 팀, 방심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그저 경기에 전력을 다하는 선수들로.
“왜 웃어?”
옆에서 브라이언의 질문이 돌아와서, 샐리는 조용히 대답했다.
“아뇨. 혹시 구단주님은 이런 것까지 염두에 두셨을까 해서요.”
“응?”
“로저스 감독님 말이에요. 로저스 감독님이 잡아둔 기강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잖아요?”
“하긴, 잭이나 요니를 저렇게 키운 건 감독님 작품이지.”
원래부터 잭과 요니는 재능이 있는 선수였고, 팀에 대한 충성심도 투철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리더십을 갖지는 않았다.
지금 잭과 요니가 보여주는 ‘주장다운’ 모습은 다분히 후천적인 것이었다. 에디는 말할 것도 없고.
잠시 생각을 더듬던 브라이언이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브로는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 노장 감독을 원한다고. 수비 축구 하고, 기강 관리 잘하는 분으로. 그러다가 로저스 감독님과 연락이 닿으면서 모셔온 거였지.”
“그럼 전부 계산하신 게 맞네요.”
샐리가 한숨을 쉬었다.
“구단주님은 코치님께··· 죄송해요, 이제 감독님이죠. 감독님께 젊은 스쿼드를 안겨 주셨어요. 앞으로 3, 4년은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스쿼드죠. 그리고 그 젊은 선수들의 멘탈을 다잡아 주기 위해 노력했고요.”
그 결과로, 브라이언은 완벽한 멘탈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갖춘, ‘젊은 선수단’을 넘겨받았다.
“맞아. 브로라면 다 계산했겠지. 그래서 나는, 브로가 투자자 안 하고 그냥 처음부터 축구감독 준비했으면 얼마나 괴물이 되었을지 가끔 궁금하더라고.”
“그건 저도 궁금하지만, 그 가정대로면 감독님은 감독이 아니게 되지 않나요?”
“그럼 분석관 하는 거지.”
“제 부하가 되는 거군요. 지금도 늦지 않았는데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던 샐리와 브라이언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기 시작했다.
* * *
오늘따라 뒷자리 쪽이 시끄럽다. 별실을 쓰는 내 자리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희주가 인상을 썼다.
“가서 한 마디 하고 올까?”
“놔둬. 챔스 8강 원정 승리니까, 조금쯤은 기분을 내야지.”
“하지만 벌써 방심하긴 이르지 않아?”
“방심 안 해.”
인터뷰는 다 이긴 것처럼 말했지만, 그건 구단주로서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우리 선수들이 방심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갖고 있었다.
어린 선수들은 흥분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우리 팀에는 그를 바로잡아줄 인원이 충분하다. 이제는 잭과 요니에게도 충분한 관록이 붙었고, 에디도 3주장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내 예상처럼, 뒤에서 들리던 웃음소리는 이내 잠잠해졌다.
그때 폰이 울렸다. 전화가 온 모양인데, 보니까 다미다. 잠시 후 내 전용석 앞 스크린에 다미의 얼굴이 나타났다.
[축하드려요! 멋진 경기였어요. 저도 보고 있었거든요.]
화사한 미소가 가득 피어난 다미를 바라보며, 나는 슬쩍 물었다.
“한국은 지금 밤중 아니야?”
[맞는데요? 에이··· 설마 제가 유럽은 왜 새벽에 축구 하냐고 할까봐요?]
“그게 아니라··· 안 피곤해?”
축구 팬이 늘어나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다미가 리미트리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밤샘 축구 관람은 좋지 않다. 가뜩이나 다미는 여러 업무를 직접 챙기는 꼼꼼한 성격이라, 더 신경 쓰인다.
[걱정 마세요. 컨디션 관리는 신경 쓰고 있으니까요. 마침 기운이 날 만한 좋은 영상도 구했고요.]
“영상?”
하긴, 이번 경기에선 명장면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이고르와 합작한 리델의 선방이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축구의 신이 보여준 완벽한 마무리도 멋졌단 말이지.
하지만 다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다음부터는 처음부터 제로콜라를 두도록 협의할까요?]
아, 인터뷰 영상.
그러고 보니 어째 희주가 평소보다 폰카질을 열심히 한다 싶더라니, 아무래도 다미의 부탁이 있었던 모양이다. 비행기 옆자리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자, 희주가 슬슬 눈을 피한다.
뭐, 일단 지금은 통화부터 마무리해야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네가 콜라 이야기를 꺼내면 농담이 아니게 될 테니까.”
유에파가 우리에게 FFP 위반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수작을 부렸을 때, 우리는 반격으로 유에파의 스폰서를 모조리 날려 버렸다.
그 첫 번째 타자가 바로 콜라 회사였으니, 어떤 관점에서 콜라 캔은 리미트리스와 유에파 사이의 악연의 상징물인 셈이다.
심지어 리미트리스의 넘버 투로서 칼춤 춘 당사자는 바로 다미였으니, ‘콜라’ 이야기를 꺼내면 단순한 농담으로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잘 풀었지만.
정작 본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시시 웃기만 했다.
“그래서, 챔스 이겼다고 축하 전화한 거야?
[그리고 요즘 오일머니가 분주히 움직이는 것 같아서요.]
이윽고 다미가 예상 인수액 규모와 현금 흐름까지 술술 읊기 시작한다. 큰 자금이 움직이는 문제라면, 다미는 누구보다 빨리 반응한다··· 유일하게 반응이 늦었던 건 내 선덜랜드 인수밖에 없는데, 그건 어쩔 수 없었을 거다.
현찰 일시불로 지르는 걸, 사전에 다미가 어떻게 예상했겠어.
“소식은 나도 들었지만, 규모는 몰랐거든. 정보 고마워.”
[별말씀을요. 그럼, 인력을 충원하시겠네요?]
옆에서 안 듣는 척 딴청을 피우던 희주가 움찔했다. 슬쩍 확인하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조금도 어리둥절하지 않았던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래야지. 일단 스태프를 더 뽑고 유소년 영입도 더 적극적으로 진행할 거야.”
설령 사우디 쪽 자금이 ‘그 팀’에 들어오더라도, 좋은 스태프를 구하긴 힘들도록 말이지. 유소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심시티도 더 하실 거죠? 최근 시티 오브 선덜랜드가 많이 따라잡았지만, 원래는 뉴캐슬어폰타인이 타인위어 제1의 도시잖아요?]
“뭐, 그 부분도 신경은 쓰겠지만··· 우리 리미트리스는 기업투자 전문이라, 부동산 개발은 오일머니 노하우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 그러니 본업에 충실해야지.”
[정말 멋진 생각이세요! 우수한 기업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나은 지역발전 효과는 세상에 없으니까요.]
“그것도 그거지만.”
리미트리스 사장으로서의 본업은, 당연히 기업투자다. 가능성 높은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게 내 전문 분야니까.
하지만 나는, 동시에 선덜랜드 구단주이기도 하다. 그리고 구단주의 본업은 당연히 팀의 승리다.
‘그 팀’의 새 구단주로 누가 오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번 시즌이 끝날 무렵엔, 두 팀의 위상 차이가 지금보다 훨씬 벌어져 있을 테니.
“아, 그리고··· 결승 보러 와.”
[네!]
다미는 퍽 행복해 보였다.
* * *
선덜랜드 선수단이 원정에서 돌아온 직후, 도시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시민 대부분이 선덜랜드 팬이었기에,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얼굴은 밝았고, 건물 외벽에는 온통 붉은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4강 진출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식으로.
“그런데 꿈 뒤에 별을 붙이는 건 무슨 의미야?”
“한국식이래. 구단주가 한국인이니까.”
그렇게 도시 전체가 달아오른 와중에, 앨리스 또한 두 배로 들떠 있었다.
우선 응원하는 팀이 1차전 원정에서 승리하며 4강전에 대한 희망을 키웠고, 둘째로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직이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줄곧 응원하던 바로 그 구단의 직원이 된다는 것은, 축구 팬 앨리스에게는 무척이나 신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업무는 쉽지 않았다.
신입교육차 CS팀 유니폼을 입고 메가스토어에 배속되었을 때부터 앨리스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유니폼 15만 장이요? 도와드릴게요!”
원래 교육 중인 신입은 시키는 일만 하는 게 맞지만, 아무래도 앨리스 본인으로서는 가만히 구경만 하기는 좀 그랬기 때문에 자원한 것이었다.
덕분에 유니폼 매대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원래, 진열하는 것만으로 빵을 망가뜨릴 정도로 궤멸적인 손재주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접객은 싹싹하게 했지만, 그렇다고 요령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그녀의 ‘메가스토어 교육’은 예정보다 훨씬 일찍 조기 종료되었다.
하지만 앨리스를 기다리는 진짜 난관은, 의외로 프레스팀이었다.
“매대에서는 사고를 쳤지만, SNS 키배··· 아니, 관리라면 자신이 있어요! 이력서에도 쓴 것처럼, 저는 ‘@이상한_나라의_블랙캣츠’로 활동하며, ‘@축잘알’ 이후 가장 유명한···.”
씩씩하게 선언하는 앨리스를 향해, 프레스팀 소속 SNS책임자 아벨이 피식 웃었다.
“그 ‘@축잘알’이 바로 난데.”
“우우··· 그럼 홍보 기사를 쓸까요? 저, 선덜랜드 데일리에서 알바한 적이 있는데요.”
“참고로 우리 팀장님이 거기 편집장 하시던 분이야.”
아벨의 이야기에, 앨리스는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물론 자신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뿐이고, 처음부터 기존 스태프와 동등하게 일할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프레스팀에서는 나름 기대받는 신입이 아닐까 했는데, 와보니 나 정도의 스펙은 넘치는 것 같아··· 앞으로 이곳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시무룩해진 앨리스를 향해, 이번엔 프레스팀장 애니가 웃어 보였다.
“그렇게 넋 놓을 여유 없어요, 앨리스 양··· 아니 앨리스 씨. 구단주실에 보고서를 보내야 하거든요. 앨리스 씨가 전담해서 작성해주세요.”
“구단주실이요? 어떤 내용을 쓰면 될까요?”
느닷없이 던져진 ‘구단주실’이라는 키워드에 반응한 앨리스를 향해, 애니가 차분하게 지시했다.
“이번 8강 2차전에서, 풋볼 스퀘어를 가득 채울 방법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