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94화 (294/422)

294화 Say we are (3)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과 동시에, 팬들의 함성이 거칠게 터져 나왔고, 선덜랜드 선수들 또한 포효로 화답했다.

벤치에서 선수들이, 스태프들이 일제히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감개무량한 순간이기에.

바스티아노는 어느새 크리그와 포옹하는 중이었고, 평소 유들유들하던 에디는 잔디 위에 무릎을 꿇은 채 오열했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선덜랜드의 주장은 또다시 광고판을 넘어 팬들에게 돌진했다.

“이제 결승전임다! 다 여러분들의 성원 덕분임다! 더 좋은 경기 보여드릴 검다! 그러니까···.”

“독일이 아니라 지옥이라도 따라갈 테니, 걱정 마!”

“감사함다!”

관중석에 다이브한 주장 잭은, 팬들과 끌어안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부주장 요니는 그 모습을 약간의 부러움과 냉정함이 섞인 시선으로 응시했다.

“주장단이라는 것들이 아주 자알 한다.”

요니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은 그 또한 흥분한 상태였고, 몸이 멋대로 날뛰려 움찔거렸다. 가슴 속이 뜨거워서 포효하고 싶을 만큼.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챔스 결승이라니,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가 아니던가?

아니, 어쩌면 축구관계자라고 정정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라운드 위에 달려나온 선덜랜드 코칭스태프의 모습을 보면.

유일하게 벤치에 남은 스태프는 분석팀장 샐리였는데, 얼핏 보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평소엔 미녀로 이름 높은 선덜랜드 분석팀장이지만, 지금은 도저히 사람 앞에 나설 몰골이 아니게 되었을 것이다.

구단주 비서 희주는 펑펑 울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모양이니까··· 아무래도 워터프루프 화장품 지급이 시급하다고, 요니는 생각했다.

아무튼, 챔스 결승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그만큼 큰 것이었다. 요니 자신조차 울고, 웃고, 포효하고, 날뛰고 싶은 생각뿐이었으니. 그래도 요니는 주먹에 힘을 넣으며 버텨냈다.

주장과 3주장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이상, 부주장이라도 이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빙긋 웃는 레알의 미드필더, 크로스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요니는 최대한 건조하게 반응했다.

“오늘은 살아있는 모양이네? 지난번엔 정신 못 차리더니.”

“거긴 베르나베우고, 여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니까요.”

요니는 나름의 명분을 내세웠지만, 통하지 않았다.

“정작 이긴 경기에선 축 늘어졌으면서, 비긴 경기에선 멀쩡하기냐. 얄미운 것들 같으니라고.”

“뭐, 저희 수비라인은 아주 강하니까요.”

“그래, 그렇더군.”

“그래서 오늘도 유니폼 필요하십니까?”

“아니, 1차전에서 받았잖아. 필요 없어.”

크로스의 태도는 조금 뚱했다. 유머를 모르는 독일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에 딱 들어맞는 것처럼. 마침 카메라도 돌고 있기에, 요니는 같은 독일인으로서 그 편견을 깨부수기로 했다.

“아니, 이럴 땐 보통 격려해줄 타이밍 아닙니까? 나한테 이겼으니까 지지 말라거나, 이번 시즌 최고의 팀이 되어서 사실상 준우승을 시켜달라고···.”

“···만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키득거리며, 크로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경기장을 떠나며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두 번만 해라. 두 번만.”

“두 번?”

“남의 기록은 깨지 말라고.”

잠시 후, 요니는 축구팀 중 오직 레알만이 가진 기록을 떠올릴 수 있었다. 챔피언스리그로 명칭이 바뀐 이후 유일하게 3연패를 달성한 팀이라는 대기록을.

자기네 기록을 깨버리지는 말라는 소리는, 올 시즌은 물론 내년 시즌도 우승하라는 독일식 덕담이 된다. 유머 감각으로는 완벽하게 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요니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선덜랜드 선수들을 하나둘씩 회수하기 시작했다.

“잭! 적당히 하고 돌아와! 팬들께 다 같이 인사해야지! 에디, 너도 그만 일어나고.”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누르면서.

* * *

챔스 결승 상대는 우리보다 하루 늦게 결정되었다. 맞은편 블록에서 펼쳐진 맨시티와 파리의 대결에, 우리 스태프 전원이 스크린 앞에 몰려들었다.

“시티, 시티, 시티, 시티!”

브라이언과 샐리는, 마치 누가 보면 시티즌이라도 된 것처럼 맨시티를 연달아 외쳤다. 저러다 숨넘어가겠는데.

뭐, 맨시티에게 리그 무패 기록이 깨진 원한을 갚아주고 싶긴 하겠지. 그 정도 승부욕도 없으면 코칭스태프는 절대 못 해 먹는다.

개인적으로는 챔스 결승 상대로 파리도 상관없을 것 같긴 하다. 나 또한 무패 기록이 날아간 악감정은 있지만, 그건 다음 시즌 리그에서 갚아주는 게 훨씬 좋은 그림이 될 거라고 믿으니까.

프리미어리그 우승도 당연히 노려야 할 업적이고 말이지.

그때 옆에서 희주가 무심한 소리를 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까지 챔스에서 무패네요? 그러니까···.”

곧바로 희주의 앞에 음식이 산처럼 쌓였다.

“피시 앤 칩스는 어떠세요?”

“코리안 테이스트 스윗 앤 사워 치킨을 준비했는데요!”

이제 보니 희주 얘는 평생 굶을 일은 없겠지 싶다. 마치 먹여서 응원하려는 듯한 우리 스태프의 기세에, 희주는 조금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너는 그동안 뭘 좀 어쩌긴 어쨌어.”

희주의 사고패턴으로 볼 때, 하려던 이야기가 대충 짐작이 간다. 리그에서 무패를 유지하다가 시티에게 깨진 것처럼, 챔스에서도 무패로 올라오다가 마지막에 시티한테 기록 깨지는 거 아니냐는 소리나 하겠지. 불길하게.

가만, 희주 얘 이야기는 귀신같이 정반대로 되니까 그냥 놔두는 게 이득이었으려나?

이제는 슬슬 나도 헷갈리니, 그냥 입 다물게 하자. 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동생의 입에 물릴 롤리팝 캔디를 집어 들었다.

그때였다.

[네이마르··· 네이마르! 환상적인 골입니다! 쐐기 골이 될 것 같습니다! 브라질의 영웅이 팀을 또다시 챔스 결승으로 이끕니다!]

중계 화면에서 아나운서의 절규와 같은 외침이 들렸고, 맨시티와의 설욕전을 기대했을 우리 감독과 분석팀장이 동시에 고개를 풀썩 떨궜다.

“파리가 올라올 것 같네요. 썬, 맨시티가 아니라서 실망했나요?”

리지의 이야기에, 나는 차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누구를 만나도 상관없었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거니까요.”

“와우, 세게 나오네요?”

“구단주라면 그래야죠. 다만 우리 프레스팀에선 파리를 반길 것 같긴 하네요. 언론에서 리얼부 결정전이라며 엄청 장작을 넣어줄 테니까요.”

갑부 구단주 매치라는 공통점은 맨시티도 마찬가지지만, 정작 맨시티와는 리그는 물론 국내 컵 대회에서 자주 붙어서 화제성이 조금 줄었다. 흥행으로 따지면 파리가 낫다.

리지가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바르샤 없는 메시 더비라고 하더라고요.”

메시가 이적을 결심한 직후, 파리의 러브콜이 무수히 쏟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선덜랜드행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파리의 남색 유니폼을 걸친 축구의 신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내가 있는 한 어림도 없는 소리지만.

“무슨 더비든 간에, 아무튼 흥행은 보장될 겁니다. 챔결이니까요··· 그럼, 슬슬 결승 준비를 시켜야겠군요.”

잠시 후 나와 리지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망연하게 모니터 앞에 주저앉은 브라이언과 샐리를 각각 회수했다.

목적지는 물론, 분석실이었다.

* * *

결승전 매치업이 확정된 다음 날, 우드 부부의 자택에서는 선덜랜드 팬들이 모여 독일 여행 계획을 알차게 짜는 중이었다.

“크리스는 괜찮으려나요?”

“축구 보러 가는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가서는 괜찮겠죠. 비행기가 문제지만요.”

수잔의 지적에 마일즈가 움찔거렸고, 옆에서는 브라더스는 물론, 빌리 노인마저 같이 움찔하고 말았다.

앨리스는 그 모습이 조금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파리 놈들이 엄청 몰려올 거야. 그쪽은 독일에서 가깝잖아? 같은 대륙이고··· 국경도 맞닿아 있고.”

“뭐, 피차 비행기 타면 큰 차이는 아닐 테지만.”

비행기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민감해졌다.

기본적으로 비행기는 돈만 주면 탈 수 있는 것이지만, 챔스 결승전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번에는 선덜랜드와 파리를 합쳐서 칠만 명의 축구팬이 뮌헨에 몰려든다. 그러니 하늘길조차 아침 출근처럼 혼잡할 것이고, 어쩌면 항공권을 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경기 날을 피해서 조금 일찍 움직이면 비행기표 구하기는 조금 여유가 생기지만, 대신 숙소까지 구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추가된다.

아기를 동반하는 우드 부부는 숙박비를 쓰더라도 조금 여유 있게 움직이길 원했고, 브렌든이나 핫도그 사내는 최대한 당일치기로 다녀올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맥주집 사내는 어떻게 와이프를 설득해 가게를 쉬겠다고 말할 방법이 없을지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예약 가능한 숙소와 항공권을 면밀히 검토하던 수잔이 울상을 지었다.

“아, 앨리스는 좋겠다! 구단 직원은 팀에서 데려가 줄 거 아냐?”

“어··· 저까지 데려가 주실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선덜랜드 프레스팀은 보통 국내 언론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그녀는 스스로를, 결승전에 동행하지 못하고 남게 될 가능성이 높은 직원으로 판단했다.

물론 프레스팀에서도 한 명 정도는 현장 인터뷰를 위해 따라가겠지만, 아직 신입인 앨리스에게 그런 역할을 맡겨 줄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시무룩해지려던 앨리스가 표정을 고쳤다.

“교통편은 조금 기다려보세요. 구단에서 지원 검토 중인 것 같긴 하거든요.”

“검토?”

회사 직원 앨리스가 슬쩍 흘린 정보에, 선덜랜드의 오랜 팬들이 곧바로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원래 국내 경기 원정에서는 버스를 대절했잖아?”

“컵 대회에서는 숙소를 지원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럼 챔스니까 항공권이려나?”

그때 브렌든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재빨리 폰을 열어보는 브렌든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파리, 챔스 결승을 위해 떠나는 팬들을 위해 항공권을 제공하겠다고 밝혀.]

“파리 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팬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다. 부디 비용 걱정 없이 결승전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던데···.”

어차피 결승전에 갈 수 없는 맥주집 사내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일제히 시무룩해지려는 찰나, 브렌든의 스마트폰이 한 번 더 울렸다.

[팬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항공권을 지급하겠다고? 아주 좋은 생각이군요. 응원하겠습니다. @선덜랜드_오피셜]

[받고 호텔도. @선덜랜드_구단주실]

잠시 후, 짜릿한 환호가 우드 부부의 자택 가득히 울렸다.

* * *

결승전 매치업이 결정된 당일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브라이언은, 다음날에는 완벽한 차분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이제 좀 사람 구실 하게 생겼네요. 어제까지만 해도 펩이 비겁하게 이기고 도망갔다면서 난리더니.”

“이봐, 분석팀장.”

브라이언이 정색했다.

물론 어제 난리를 치기는 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패배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며 걸어둔 펩의 정장을 내동댕이쳤으니. 하지만 그건 어제 일이고, 클럽하우스가 아니라 집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연하지만, 목격자가 있을 리 없다.

“난리 친 건 내가 아니라 샐리 너겠지. 증인도 있어.”

“증인이요?”

샐리 또한 분석실에서 약간의 ‘스트레스 발산’ 을 시도했지만, 장소의 특성상 목격자는 전부 분석팀원이었다. 성깔 있는 직속 상사의 비행을 고자질할 마음이 없었던 루벤은 곧바로 침묵했다.

잠시 후 토마스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두 분 다 똑같이 난리 치셨습니다···.”

“”NSN.””

넌씨눈, 선덜랜드 관계자라면 꼭 배워야 하는 한국어로 꼽힌다. 당연하게도 의미를 알고 있었던 토마스가 곧바로 잠잠해졌고, 침묵에 만족한 감독과 분석팀장은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그 펩이 전술 싸움에서 밀리다니···.”

한탄하는 브라이언을 향해, 샐리가 새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이쯤 되면 그러려니 해야겠죠? 챔스의 펩은 괜히 실험적인 전술로 자멸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 양반은 우리랑 싸울 땐···.”

“어머, 자멸하는 펩을 이긴다고 복수가 되겠어요?”

“···제대로 해 달라는 뜻이었어.”

“아무튼, 상대는 파리죠. 맨시티가 아니라.”

눈을 빛내는 상사를 우울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루벤이, 마침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상대는 파리가 아니라, 빌라인데요. 우리는 리그부터 마무리해야 하니까요.”

챔스 4강과 결승 사이는 대략 4주가 남았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감독과 분석팀장의 몸이 동시에 움츠러들었다.

올 시즌, 리그 우승은 이미 가능성이 없어졌다. 맞대결의 패배로, 맨시티가 알아서 세 번쯤 넘어져 주지 않는다면 기회가 없을 만큼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그의 맨시티는 자멸과는 아주 거리가 먼, 단단한 팀이다.

결국 선덜랜드의 올 시즌 목표는 챔스밖에 남지 않았고, 리그는 어디까지나 다음 시즌 챔스 진출을 위한 보험일 뿐이었다. 그리고 챔스에서 우승할 경우, 리그 순위와 무관하게 다음 시즌 챔스 진출이 확정된다.

아무래도 이럴 때, 야망 있는 젊은 코칭스태프로서는 챔스에 올인하자는 판단을 내리기 마련이다.

“사커 매니저에선 이럴 때 휴가 돌리지 않나?”

브라이언이 농담을 던졌고, 옆에선 샐리가 솔깃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였다. 분석실의 막내, 토마스의 입이 조용히 열렸다.

“아 맞다. 구단주님께서 이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하셨는데요.”

구단주 이희성을 거론하자, 들떴던 분위기가 단숨에 가라앉았고, 브라이언과 샐리가 동시에 찔끔하는 표정이 되었다.

정적 속에서, 토마스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선덜랜드가 어떤 팀인지, 한번 떠올려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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