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95화 (295/422)

295화 Say we are (4)

희주가 전화기를 흔들어 보였다.

“오빠, 토마스 씨가 메시지 보냈어. 오빠가 시킨 대로 했다는데?”

“그럼 됐어.”

대답하면서, 나는 구단주실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어차피 그 정도만 말해 두면 전해졌을 테니까.

브라이언은 나와 마찬가지로 로저스 감독의 제자고, 샐리 또한 4년을 함께 배웠다. 그러니 선덜랜드가 어떤 팀인지,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하는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괜찮겠지만.

“오빠, 우리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이었어? 우리, 리그에서도 성적 꽤 괜찮잖아. 조금 흔들려도 챔스권 사수는 가능할 텐데.”

“맞아, 괜찮지. 사실 남은 경기를 브라이언 대신 네가 지휘해도 4위 아래로 떨어지진 않을 거야.”

“어, 진짜로?”

눈을 동그랗게 뜨는 희주를 바라보며, 나는 빙긋 웃었다.

“그렇지. 예를 들어 브라이언이 네가 해준 밥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고 치면···.”

“나 음식 잘하는데? 다미 언니 정도는 아니더라도···.”

아니, 별로 잘하지 않아. 다미에 비하면 네 음식은 영국 본토 요리급이라고. 아, 어쩌면 브라이언은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르겠네.

“가정이야, 가정.”

“어금니 악무는 거 보니 진심이네 뭘.”

“아무튼, 그래서 네가 책임지고 감독 대행이 되었다 치자. 그러면 어떻게 운영할 거야?”

그러자 희주는 턱에 손을 대고 잠시 진지하게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지난번 레알과의 2차전 멤버를 그대로 낼 거야. 그때 나온 멤버가 아마 우리 팀의 베스트 일레븐일 테니까. 그리고, 나머지는 선수들에게 알아서 해 달라고 부탁할 거야.”

정답이다. 부두술사.

“그렇게만 해도 어지간한 팀 상대로 쉽게 지지는 않을 거야. 적어도 올 시즌 끝까지는.”

감독의 임무는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다. 누구를 내보낼지, 어떤 역할을 맡길지에 따라 팀의 퀄리티가 달라지니까.

하지만 이미 모범 답안이 존재한다면, 베끼기만 해도 중간은 간다. 다시 말해, 그 모범 답안을 만들어 낸 브라이언 본인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현상 유지만 해도 지금 순위는 문제없이 지켜낸다는 뜻이다.

올 시즌, 선덜랜드의 리그는 사실상 이미 끝난 셈이었고 오직 챔스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구단주는 항상 그 이후까지 생각해야만 한다.

다가올 다음 시즌, 리그 우승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는 우승 레이스를 치를 집중력을 38라운드 동안 유지해야 한다.

로테이션을 돌려 선수단 전체의 체력을 안배하는 한편, 경기 감각도 살려야 한다.

해리슨과 프랭크, 터너, 베리, 디아라처럼 내년 이후가 더 기대되는 어린 선수들에게는 성장의 기회를 주고 싶다. 오랫동안 팀에 헌신해온 하퍼와 크리그, 톰슨 같은 선수에게도 출장 횟수를 보장해 주길 원한다.

당연히 챔스 결승을 앞두고 주전의 경기 감각과 체력을 최고조로 유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모든 조건을 고려하게 된다면, 감독의 일은 올 시즌 마지막까지 꽤 까다로워질 것이다.

“그래서 시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말라고 한 거구나.”

“그렇지 뭐. 그리고 구단주 비서도 끝까지 집중력 챙기고. 이번 결승전에는 다미 자리도 마련해 줘야 하니까.”

그동안은 주최 측에서 내빈석을 제공했기 때문에, 희주의 티케팅 솜씨를 써먹은 적은 드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셋이서 봐야 하니 미리 조율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티켓을 확보하거나.

그런 의도로 지시했더니, 희주가 대놓고 까불거리기 시작했다.

“음, 아예 둘이서 보게 자리 비켜줄까?”

“알리안츠 익스클루시브 박스는 그렇게 좁냐?”

그러자 희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부 오라버님, 그런 소리로 때울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열일곱 살 정도가 아닐까요? 서른 넘은 남자는 좀 더 책임감이 있으셔야죠.”

“어, 그래··· 그래도 축구는 여럿이 보는 게 재밌으니까 말이지.”

“그건 맞지.”

잠시 후 희주가 여느 때처럼 부산을 떨기 시작했고,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몸을 의자에 파묻었다.

* * *

[리그 35라운드 빌라 대 선덜랜드]

빌라와의 원정 경기에서, 브라이언은 또다시 로테이션을 잔뜩 돌렸다. 당연하게도 빌라 팬들은 격분했지만, 의외로 언론의 반응은 평온했다.

[지난 번리전에서, 선덜랜드는 이미 자신들의 스쿼드가 얼마나 두터운지 확인시켰다. 따라서 로테이션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톰슨과 해리슨의 위치다.]

다만, 톰슨을 센터백으로 쓰거나 해리슨을 3선에 세운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단이라는 평이 많았다··· 나는 만족했지만.

“그렇게 나왔나.”

남은 리그 경기에서, 브라이언은 해리슨의 역할을 다시 고민해보기로 한 모양이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동안 해리슨은 주로 전방에 배치되어 찬스 메이킹에 주력했다. 그가 가진 번뜩이는 센스를 살려, 골이나 어시스트를 만들어내는 플레이는 해리슨의 재능에 아주 잘 들어맞는 역할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그는 전문 드리블러는 아니고, 압박을 자유롭게 벗겨낼 발재간이 없다. 게다가 지금의 우리 팀에는 메시가 있고,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테오가 콜업될 것이다.

그래서 브라이언은, 해리슨을 3선에서 시험해 보기로 한 거겠지. 실제로 조금 아래로 처진 위치에서 경기 조율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널려 있고.

피를로나 알론소가 좋은 예시가 될 것이고, 혹은 차비처럼 경기장 전체를 누비며 팀을 패스로 지휘하는 역할도 적당해 보인다.

다만 해리슨의 경우 수비력에는 약점이 있는 편이니까, 뒤쪽에 톰슨을 배치해 짐을 덜어주는 게 오늘 브라이언의 복안일 것이다.

기분 탓인지, 벤치에 앉은 브라이언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브로, 이제 방심 같은 건 하지 않는다니까?]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무심코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게, 믿음직스럽네.”

그날 해리슨은 아래로 처진 자리에서 절묘한 스루패스를 몇 번이나 선보였다. 톰슨이 선호하던 로빙 스루는 아니었고, 보통 대지를 가르는 패스라 부르는 시원한 땅볼 패스였다.

해리슨의 패스를, 크리그와 베리가 각각 한 골씩 득점으로 바꾸면서 우리는 시원한 승리를 차지했다.

[빌라 0 - 2 선덜랜드]

“이제 진짜로 희주 네가 감독해도 리그 4위는 지키겠다.”

기분이 좋아서 슬쩍 농담했더니, 가시 돋친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겠지. 남은 경기를 전패해도 4위니까.”

예리한 녀석 같으니라고.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자, 희주가 키득거렸다.

“갑부 오라버님의 지시대로, 시즌 끝까지 집중하는 중이거든.”

* * *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 2번 그라운드.

선덜랜드 공격진은, 언제나처럼 관리인의 묵인 아래 이른 아침, 혹은 늦은 새벽 자율 연습을 진행했다.

사실상 포지션 경쟁자인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선수들의 사이는 아주 괜찮은 편이었다. 아침마다 함께 연습하면서 정도 쌓였고, 그리고 전술에 따라서는 서로 공존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확고한 주전과 서브는 구분되어 있다. 자율 연습 멤버 중에서는 현재 요니와 바스티아노만 주전이었고, 크리그와 해리슨, 베리는 서브 멤버에 해당했다.

“악, 또 날렸네!”

베리가 머리를 감싸쥐었다. 공격수치고 슛 기술에 자신이 없는 베리의 킥이, 또다시 크로스바를 크게 벗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바스티아노가 차분하게 조언했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 내 경험상 크로스바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꼭 넘어가더라고. 의식하면 안 좋아.”

“어··· 바스티아노 선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요?”

“있었지.”

그가 이탈리아의 적이라 불리며 극심한 슬럼프를 겪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바스티아노는, 찼다 하면 크로스바를 넘기기 일쑤였고, 한번 넘기면 입스로 몸이 굳는다는 지옥의 악순환에 시달렸었다.

선덜랜드에 와서 구원받기 전까지는,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비록 바스티아노는 그 시절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태도에서 진실성은 충분히 전해졌는지 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바스티아노 선수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조금 나은 것 같네요. 더 편하게 연습해 보겠습니다.”

“기왕 편하게 할 거라면, 호칭도 좀 편하게 하지? 아직도 날 바스티아노 선수라고 부르는 사람은 유소년들 아니면 너하고 터너 정도야.”

“아···.”

“터너는 그렇다 쳐도 너는 슬슬 편하게 부를 때도 된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어렵나?”

그러자 베리에게서 조금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게 아니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바스티아노 선수 애칭이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누구 티안이라고 하고, 누구는 밥이라고 한다. 최근엔 아예 바비라고 하는 케이스도 나오긴 했다. 그 사실을 지적하자 바스티아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초반에 바로잡지 못한 내 잘못이긴 한데··· 에디 그 자식이 진짜 나쁜 놈이야.”

“에디 3주장이요?

“그 자식이 처음에 티안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밥이라고 고쳐 불렀거든.”

“패턴으로 보아하니 조만간 바스티라고 하겠군요. 그러다가 은근슬쩍 줄여서 바티라고···.”

“바티는 안 돼. 여긴 영국이잖아.”

‘바티’는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바티스투타의 애칭이다.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의 껄끄러운 감정을 고려하면, 굳이 그런 애칭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게 바스티아노의 입장이었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크리그였다.

“차는 순간 발목을 조여 봐. 공을 깎는다는 느낌으로.”

“발목을 조이라고요?”

“어··· 발을 의식적으로 반대쪽으로 끌어당기라는 거지. 사소하지만, 임팩트 타이밍을 바로잡을 수 있거든.”

설명하면서, 크리그가 곧바로 시범을 보였다.

스핀이 들어간 예리한 슛이 크로스바 아래쪽을 스치듯 네트를 흔들었다. 그것도 몇 번이나.

슛 하나만 놓고 보면 선덜랜드 전체에서도 손꼽힐 만큼 훌륭한 솜씨였지만, 정작 크리그 본인은 ‘수비 붙으면 이렇게까지는 못 찬다.’거나, ‘축구의 신이라면 테니스공 가지고 똑같이 할 수 있다’며 웃어넘겼다.

곧바로 크리그를 따라 한 베리가 감탄했다.

“어, 진짜 느낌이 다른데요? 공이 좀 더 아래로 착 깔리는 것처럼.”

“그렇다니까.”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바스티아노가 한마디 했다.

“축구의 신은 테니스공으로도 할 수 있겠지만, 크리그 선수만큼 잘 가르쳐주진 못할 것 같네요.”

크리그와 베리가 곧바로 찬동했다.

“하긴, 그분은 남을 잘 가르치는 이미지는 아니지.”

“왜 발로 공을 찼는데 슛이 뜬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신이니까.”

메시가 남을 가르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천재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었다.

* * *

선덜랜드 유소년팀 에이스 테오가, 짐을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평소 테오는 짐을 무척 잘 따르는 편이었기에.

“치사해. 원래 내가 배울 차례인데!”

짐은 순순히 사과했다.

“미안, 그렇지만 킥을 더 잘하게 되고 싶었거든.”

짐은, 스로잉에는 꽤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페르난데스의 플레이를 보면서 연습하기도 했거니와, 이 팀에는 인간투석기 델랍이 코치로 와 있다. 필드 플레이어의 스로인 기술은 골키퍼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팔이나 어깨를 쓰는 법 자체는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다.

그래도 후방 빌드업에 참여하려면, 역시 발재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마침 선덜랜드에는 축구 역사상 공을 가장 잘 다루는 선수가 합류했고, 오늘은 모처럼 짬을 내어 유소년을 지도해 주겠다고 한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게 짐의 입장이었다.

메시의 지도는, 세간에서 생각하는 ‘천재’에 대한 편견과 달리 훌륭했다. 그래서 테오는 또 투덜거리고 말았다.

“치이. 저한테는 항상,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식으로만 가르치셨잖아요. 왜 캡틴한테만 자상하게 해주시는 건데요?”

메시는 대답하지 않았고, 짐은 쓴웃음을 지었다.

‘테오, 지금 그 이야기, 남들이 들으면 배 아파 죽으려고 할 거야.’

페르난데스, 그리고 하퍼도 짐에게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소년 팬과 프로 선수이던 시절엔 이것저것 묻는 대로 알려 줬지만, 유소년 선수와 구단 관계자로 다시 만나자 태도가 바뀌었다.

힌트는 주겠지만, 답은 스스로 생각하라는 식으로.

처음에는 짐도 지금의 테오처럼 불만을 품었지만, 등번호를 물려받고 유스팀 주장 완장을 찬 다음부터는 어렴풋이 의미를 짐작하게 되었다.

스스로 고민해서 얻은 결론이 훨씬 오래 남기 때문이다.

‘테오 너는 지금, 축구의 신의 후계자로 여겨지고 있는 거야.’

페르난데스와 하퍼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짐이지만, 그래도 ‘축구의 신의 후계자’라는 타이틀은 축구 소년으로서 아주 살짝 부러웠다.

그래서 물끄러미 바라보자, 테오가 발을 동동 굴렀다.

“캡틴, 빨리 좀 끝내! 나도 여쭤볼 게 많단 말이야! 나중에 클라라한테 이를 거야. 캡틴이 심술부렸다고.”

“일러 봐··· 그런데 클라라가 누구 편을 들까?”

겉으로는 자신 있게 대답하면서, 짐은 테오에게 살짝 미안함을 느꼈다. 잠시 후 테오가 더 속상해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실제로 테오는 아주 우울해했다. 짐에게 이런저런 기술을 알려줄 때와 달리, 축구의 신은 테오의 질문에는 그렇게만 대답했기 때문이다.

정 궁금하면, 챔스 결승전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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