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03화 (303/422)

303화 함성의 잔향 (3)

고요한 클럽 박물관에 에이미의 목소리가 맑게 울렸다.

[바르샤, 맨유, 뮌헨··· 그리고 선덜랜드. 우리 FC 선덜랜드는 이번 우승으로, 역사상 열한 번째로 챔스 무패 우승을 달성한 팀이 되었습니다.]

옆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희주다. 이번에 우리가 챔스에서 얼마나 대기록을 세웠는지 이제야 간신히 눈치챈 모양이다.

[이제 그 영광의 상징, 빅 이어가 선덜랜드 클럽 박물관에 들어옵니다.]

에이미의 안내에 따라, 빅 이어가 박물관 통로에 등장했다. 가져오는 사람은 로저스 감독과 샘 아저씨였는데, 나와 잭이 그랬던 것처럼 양쪽에서 트로피를 들고 있다.

그 모습에 다시 가슴이 뭉클해지려는 찰나, 소년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클럽 박물관에 울렸다.

“아! 할아버지랑 무서운 할아버지다!”

바르카의 천진난만한 반응에, 주위에 메마른 웃음기가 번졌다.

“누가 무서운 할아버지야.”

샘 아저씨가 탄식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바르카는 로저스 감독보다 샘 아저씨를 훨씬 무서워하는 모양이다··· 사실은 반대인데.

샘 아저씨는 기본적으로 선수들에게 꽤 무른 편이고, 유스에겐 더 무르다. 예전에 현역 관리인으로 일할 때는 몰래 간식 같은 걸 쥐여 주기도 했고, 자율 연습 때는 그라운드에 들여보내 주기도 했다.

반대로 우리 은사님은, 별명이 교관님일 정도로 호랑이 감독이다.

“바르카 쟤도 언제 감독님 밑에서 축구를 해 봐야···.”

혼잣말하던 브라이언이 로저스 감독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자세를 고쳤다. 사실 이런 모습만 봐도 누가 더 무서운 할아버지인지는 뻔하지만, 아직 어린 바르카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사이, 트로피는 천천히 유리 진열대 앞으로 이동했다.

[선덜랜드가 이루었던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에, 챔스 우승이라는 영광이 아로새겨지는 순간입니다. 줄곧 함께해 주신 팬 여러분 덕분입니다.]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지, 에이미의 목소리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오늘의 선덜랜드가 있도록 오랫동안 헌신한 두 분의 기여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선수단과 스태프 일동이, 마음을 담아 가드 오브 아너를 보냅니다.]

통로 왼쪽에서는 선수들이, 오른쪽에선 구단 스태프가 일제히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외모만 무서운 할아버지는 물론, 진짜로 무서운 할아버지까지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말았다.

로저스 감독께는 샐리가, 샘 아저씨께는 리지가 재빨리 손수건을 들고 따라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빅 이어가 선덜랜드 클럽 박물관 장식장에 놓였다.

[아시겠지만, 이제 선덜랜드가 갖지 못한 트로피는 딱 세 개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딱 한 걸음이 미치지 못했던 유에파 슈퍼컵, 처음으로 참가하는 피파 클럽월드컵, 그리고 선덜랜드 가족 모두의 소망, 프리미어리그 우승이.]

잠시 숨을 고른 에이미가 힘차게 선언한 순간, 마침내 억눌렀던 함성이 풋볼 스퀘어에서 터져 나왔다.

[선덜랜드는 돌아오는 시즌에, 이 세 가지 트로피 모두에 도전할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선덜랜드를 잘 부탁드립니다.]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 * *

마침 그 함성의 잔향은, 뉴캐슬 구단 사무실까지도 울렸다.

선덜랜드 팬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든 함성은, 뉴캐슬 구단 관계자에게는 지옥의 소음처럼 들렸다. 덕분에 자리에 모인 인물들이 일제히 인상을 쓰고 말았다.

마침 선덜랜드 클럽 박물관의 행사를 중계로 지켜보는 중이었기에, 비참함은 더욱 컸다. 얼마 전까지 구단주 비서였던, 그리고 지금은 회장 비서로 신분이 바뀐 사만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덜랜드가 확실히 팬 서비스는 정말 잘하네요. 오래 헌신한 스태프를 내세워 근본을 과시하는 정책은 우리도 보고 배워야겠어요.”

이야기를 마친 사만다는 무심코 흠칫하고 말았다. 예전 뉴캐슬 구단주였던 애슐리는 꽤 격의 없는 타입의 상사였지만, 그녀의 새 고용주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만다는 조심스럽게 뉴캐슬의 새 회장, 나지프의 시선을 살폈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적어도 사만다의 방금 전 발언을 문제 삼으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일하기 까다로운 상사는 아닌 것 같다.

‘문제는 구단 운영 능력인데···.’

뉴캐슬이 사우디 국부펀드에 넘어간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새로 구단을 구입한 사우디 관계자들이 얼마나 열성적일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선덜랜드 구단주의 절반만 되면 소원이 없겠는데.’

이희성의 딱 절반만큼만 구단에 열성적이고, 딱 절반만 투자해 주면 더 바랄 게 없었다. 그 정도만 되어도 뉴캐슬은 다시 일어나 싸울 수 있을 테니.

사만다는 자신의 소망이 꽤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애초에 선덜랜드 구단주를 기준으로 삼으면, 비교 대상은 기껏해야 파리와 맨시티, 첼시 정도가 남을 뿐이기에.

게다가 이미 뉴캐슬의 새 구단주 빈 살만은, 축구단 일에 직접 개입하기는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의 측근 나지프를 회장으로 파견한 상태였다. 이것만으로도 구단주가 직접 경영하는 선덜랜드와는 온도 차이가 조금 나지만···.

‘애초에 그건 선덜랜드 구단주가 너무 특별한 거지. 우리 회장은 어떠려나?’

나지프가 천천히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군요. 보고 배운다··· 네, 그럽시다.”

사만다가 말의 의미를 따라잡으려 노력하는 사이, 나지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단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대체로 선덜랜드와 같은 수준으로 맞추게 될 겁니다. 경기장 개축이나, 지역 발전 말이죠. 선수도 살 거고요.”

“돈을 쓰겠다는 말씀이군요.”

사만다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그렇습니다. 그러려고 뉴캐슬을 샀죠. 문제는 돈을 어떻게 쓰느냐인데, 기왕이면 이것도 선덜랜드에서 배우도록 합시다.”

“네?”

“듣자니 선덜랜드 구단주는 첫 시즌에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찾아와 정찰했다더군요. 그러니 저도 똑같이 하겠습니다.”

사만다는 안도했다. 다행히 나지프는 대리치고는 꽤 의욕적으로 구단 업무를 수행하려는 모양이었기에.

그때, 줄곧 침묵을 지키며 화면만 노려보던 뉴캐슬의 새 감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가야 하는 겁니까?”

타오르는 듯한 눈길에, 사만다는 물론 나지프도 살짝 움찔거리고 말았다. 잠시 후 나지프가 재빨리 대답했다.

“아뇨, 감독님은 너무 눈에 띕니다. 굳이 뉴캐슬에서 정찰 왔다는 티를 낼 필요 없으니, 그냥 남아 계십시오. 타인위어에서 감독님 못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자 감독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안심한 듯 의자에 등을 기대는 감독을 보며, 사만다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긴, 그 말이 맞지. ‘우리 새 감독님’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가는 순간, 뉴캐슬에서 정찰 나온 거 확정이니까.’

뉴캐슬의 새 감독은, 원정 드레싱룸 이외의 통로로는 단 한 번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이용한 적 없는 남자였다.

선덜랜드의 숙적이자 뉴캐슬의 레전드,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새 감독 시어러를 향해, 사만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트로피를 가져온 직후, 선수단은 일제히 휴가에 돌입했다. 본격적인 프리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휴가를 떠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예를 들면 브라이언과 샐리, 그리고 분석실 멤버들인데, 다음 시즌 운영 계획 때문이었다.

아, 나라 잃은 표정으로 브리핑룸 구석에 주저앉은 희주도 휴가 못 갔다··· 그나저나 쟤는 이제 슬슬 포기할 때도 되었을 텐데, 새삼 뭘 기대한 거지?

“다미 언니가 정말로 결승만 보고 곧바로 돌아가버릴 줄이야··· 계산 미스였네.”

뭐, 정말로 다미가 남아 있었으면 희주에게 휴가 며칠쯤 줄 수도 있었겠지만, 어림도 없다.

동생은 부려먹는 게 제맛이고, 희주에게 휴가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리미트리스의 넘버 투를 써먹기엔 너무 손실이 크단 말이지.

희주가 정신 못 차리는 사이, 회의는 착착 진행되었다.

“올 시즌은, 팬들에게 공언한 것처럼 우리 선덜랜드가 갖지 못한 트로피 세 개 모두를 노릴 겁니다.”

프리미어리그, 피파 클럽 월드컵, 유에파 슈퍼컵은 선덜랜드가 갖지 못한 유일한 메이저 트로피였다. 그 이외의 트로피는 모두 한 번씩 챙겼다. 심지어 리그 원 우승컵은 물론, 커뮤니티 실드까지 꼼꼼하게 확보했다.

마침 피파 클럽 월드컵과 유에파 슈퍼컵은 둘 다 이번에 노릴 수 있다. 우리는 챔스 우승팀 자격으로 두 대회에 모두 출전할 권리가 생겼기에.

챔스 우승팀 자격. 다시 곱씹어도 참 좋은 울림이다.

“저··· 구단주님, U-18 FA 유스컵도 없는데요.”

루벤의 이야기에 온 사방에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특히 샐리는 고운 입술을 달싹거리기까지 했다. 아마 NSN이라고 말하려던 것 같은데,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샐리는 내 쪽을 한 번 흘끗 쳐다보았을 뿐이다. 평소 감독 눈치조차 거의 안 보는 그녀는, 내 눈치는 신기할 정도로 살피는 편이다.

하긴, 내가 월급 주니까.

한편 옆에서 희주는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같이 설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난번에 FA 유스컵 먹었잖아요?”

“그건 U-15고, U-18은 별개입니다.”

유소년 레벨에서 U-15와 U-18의 격차는 상당한 편이다. 15세 이상, 18세 미만이 뛰는 U-18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로급 재능만 남는다. 프로가 될 수 없는 소년들이 진작에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주위의 싸늘한 시선을 눈치챈 루벤이 항변했다.

“아니 왜, FA 유스컵도 중요한 대회잖아요. 이름 있는 선수들 대부분이 유스컵 우승 경력 있을 정도로··· 흠흠.”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유스컵은 아마, 두 시즌이 지나면 무난하게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그때부터 테오가 15살을 넘긴다. 그다음 시즌부터는 로베르토와 바르카가 순서대로 15살을 넘길 것이다. 우리 선덜랜드가 확보한 유소년 황금세대 라인업이 본격적으로 U-18에서 뛴다는 뜻이다.

그들을 이끄는 주장은, 이제 세 자리로 각성한 짐이고··· 유소년 레벨에서는 사실상 지구방위대급 스쿼드란 말이지.

“그러니 성인 1군 팀 이야기를 해봅시다.”

슬쩍 그렇게 제안하자, 샐리가 곧바로 대답했다.

“클럽 월드컵은 별 걱정이 없다고 생각해요. 클럽 축구에서 유럽과 다른 대륙의 격차는 상당하거든요. 애초에 유럽 챔피언이 우승 못한 적도 딱 네 번밖에 없고···.”

“슈퍼컵도 자신 있어, 브로.”

브라이언의 자신 있는 멘트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희주가 미소를 지었다.

“하긴, 우리는 올 시즌 챔스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하는 거였죠!”

무심코 중얼거리고 말았다.

“한 번 더.”

“챔스 우승팀 자격으로··· 문제는 프리미어리그겠네요?”

그놈의 맨시티가 리그에서 너무 압도적이라 문제다. 지난 시즌의 우승으로 마침내 리그 5연패를 달성하고 말았던 것이다. 리버풀과 첼시, 그리고 우리의 도전을 뿌리쳤다.

하지만 샐리의 표정은 자신만만해 보인다.

“이번엔 자신이 있어요. 마지막 맞대결에서 지긴 했어도 경기 내용은 백중세였고··· 무엇보다 우리는 맨시티를 꺾은 파리를 꺾은 팀이잖아요?”

그건 또 어느 나라 계산법인지··· 뭐, 브라이언과 샐리는 챔스에서 격돌할 상대로 맨시티를 원할 정도로 의욕이 넘치긴 했다.

잠시 후 우리 스태프들이 갑론을박을 벌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티보다 스쿼드가 젊다는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지난 시즌에 챔스를 들어 올릴 만큼 이제 막 전성기를 맞이하는 선수들로 가득하거든요.”

“대신 스쿼드가 얇다는 것은 약점이 되겠지. 베스트 11은 괜찮지만 벤치의 퀄리티가 부족해. 공격진의 뎁스는 충분하지만 미드필더와 수비는 문제야.”

지난 시즌에 절실히 느낀 문제였다. 우리 베스트 11은 챔스에서 우승할 정도로 대단하지만, 벤치는 부족하다. 그리고 리그는 항상 장기전이다.

“하긴, 잭이 워낙 철강왕이 아니었으면 우리 미드필더진은 진작 절단이 났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긴 했네요.”

“그리고 수비도요.”

포백라인도 주전급은 문제가 없다. 이번 챔스를 계기로 베넷은 월드클래스 레프트백으로 자리매김했고, 에디와 이고르는 왕년의 퍼디치급으로 평가받는 센터백 듀오가 되었다.

다만 그들의 백업은 아직 어린 프랭크 한 명이고, 최새벽은 아직 워크퍼밋을 채우지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스태프들을 바라보며, 나는 재빨리 메모를 시작했다.

[ ] 3옵션 센터백 확보

[ ] 로테이션 풀백 확보

[ ] 미드필더 뎁스 늘리기

그사이 샐리가, 뭔가가 생각났다는 것처럼 눈을 빛냈다.

“맞다. 맨시티의 프리시즌 행보도 모니터링해야겠어요. 기왕이면 첼시도요.”

“하긴, 경쟁자를 아는 건 중요한 일이지.”

“그도 그렇지만, 맨시티가 나서면 이적시장이 들썩들썩하잖아요? 오일머니가 움직이면 대부분 그렇게 되죠.”

일리 있는 이야기다. 나는 곧바로 메모를 한 줄 더 추가했다.

[ ] 오일머니 대응 준비

그리고 나는, 이제 리그에 오일머니가 한 곳 더 들어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선덜랜드의 영원한 숙적, ‘그 팀’에 들어온 사우디 자본을 떠올리며, 나는 머릿속에서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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