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08화 (308/422)

308화 새 시즌은 언제나 (1)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 펩 과르디올라>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구단주 전용 익스클루시브 박스 앞에서, 나는 무척 어색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그러니까 평소 내가 쓰던 방에 노크하고 들어가는 어색함을.

안에서는 다미가 한창 솜씨를 부리는 중이었다··· 아무리 봐도 다미 쟤는 과일 깎는 솜씨만으로도 먹고살았을 것 같단 말이지.

잠시 후 부모님과 눈이 마주쳤다.

“참 멋지게 뛰더구나.”

두 분 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눈가는 조금 붉었지만, 이런 건 못 본 척 하는 게 예의겠지.

“감사합니다.”

“그래, 만족했니?”

“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두 분의 반응이 유난히 선선하다. 평상시였으면, 나도 이제 서른 줄이 넘었다는 이유로 은근슬쩍 결혼 압박을 꺼내시는 게 프로세스인데, 오늘은 아무 말씀이 없다.

옆에서 희주가 낮게 속삭였다.

“이게 다 내 덕분이라니까?”

“뭔 소리야.”

“아이참, 내가 스태프석으로 옮겼으니까 다미 언니가 익스클루시브 박스에 온 거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서?”

“다미 언니는 외모, 몸가짐, 직업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상견례 프리패스거든.”

아하. 이해했다. 다미와 내가 딱히 혼담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지만, 부모님이라면 그렇게 착각하실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겠지. 일단 절호의 탈압박 찬스인 데다가··· 최다미 씨 지금 칼 들고 계시잖아.

“에헤헷, 역시 축구단 일은 머리로 하는 거라니까? 그러니 당분간, 다미 언니를 오빠 옆에 두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희주는 검지로 자기 머리를 톡톡 쳐 보인다. 물론 희주에게는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다미에게 일을 떠넘기면 자기는 자유일 테니.

“그럼, 일 잘하는 비서님?”

“네, 갑부 오라버님.”

“어머니 아버지 당분간 네가 모시고 다녀. 그래도 모처럼 나오셨는데 영국 관광은 시켜드려야지. 내 카드 챙겨가고.”

희주의 입이 단숨에 헤벌쭉 벌어졌다. 이 지시를 수행하려면, 희주 본인도 영국 관광을 하게 될 테니까.

그런데도 희주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려 시도했다.

“어··· 축구단 자금을 그런 데 써도 되는 겁니까?”

“뭔 소리야. 누가 들으면 언제는 내 카드 안 긁었는 줄 알겠다?”

그러자 희주가 피식 웃었다.

“그냥 내가 결제할게. 나도 이제 돈 벌잖아.”

내가 주는 월급 말이지. 뭐, 나름 기특하긴 하네.

희주와 이야기를 마친 나는, 다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다미는 온 김에, 며칠만 나 좀 도와주고.”

“네!”

다미는 퍽 행복해 보였다.

* * *

뉴캐슬 보드진은 퍽 불행해 보였다. 레전드 매치 당일, 경기장은 물론 풋볼 스퀘어를 꽉꽉 채운 선덜랜드 팬들을 확인했기에.

두 사람 모두 평상복 차림이었다. 다른 장소도 아니고, 선덜랜드 풋볼 스퀘어에 뉴캐슬 유니폼을 입고 등장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전 경기가 끝났고, 선덜랜드 구단주 이희성은 손수 두 골을 넣으며 자신이 레전드들 사이에 섞여 뛸 수 있는 실력자였음을 입증했다.

덕분에 팬들의 반응은 미친 듯이 뜨거웠다. 사이드라인을 넘어 걸어 나오는 이희성에게 무수한 박수가 쏟아졌다.

나지프도 동참하고 말았다.

“감동적이군요.”

사만다가 눈을 흘겼다.

“박수치실 일인가요?”

“그야, 일종의 인간승리잖습니까? 같은 축구인으로서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는 없죠.”

“그나저나 회장님, 이럴 거면 그냥 티켓 끊지 그러셨어요. 돈도 많으신 분이.”

사만다가 주위에 혐오스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아무래도 풋볼 스퀘어는 선덜랜드 팬으로 가득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뉴캐슬 레전드 딸인 사만다 눈에는, 주위가 온통 훌리건 떼처럼 보일 정도로.

그러자 나지프에게서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경쟁팀에 티켓 수입을 안겨주는 건 바보짓이죠.”

두 팀 구단주의 재력을 고려하면 티켓 한두 장 정도는 대세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겠지만, 나지프의 반응은 의외로 진지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사만다는 그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둘의 시선이 스크린에 향했다.

“이제 선덜랜드 구단주가 현역 복귀 발표라도 하면 아주 난리 나겠네요?”

“기립박수가 쏟아지겠죠. 선덜랜드 팬들은 기뻐할 테니까요. 그리고 나도 박수칠 겁니다.”

“···네?”

“1군 스쿼드에는 자리가 25개밖에 없잖습니까. 굳이 그중 한 자리를 자기 자신으로 채우겠다면, 고맙죠. 상대는 챔스 디펜딩 챔피언이고, 갑부 구단주를 가진 팀이니까요.”

“그럼 회장님은, 선덜랜드 구단주가 어떻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세요?”

선덜랜드 구단주는 분명히 오늘 뭔가를 발표할 것이다. 뉴캐슬 보드진은 그렇게 예측하고 있었다.

구단주가 레전드 매치를 직접 뛰는 특수성 덕분에, 타인위어의 축구팬 모두가 오늘 현장을 주목하고 있었다. 프리시즌 계획을 발표해 분위기를 끌어올리기에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던가?

다만, 이희성이 발표할 ‘뭔가’가 무엇인지는 아직 예측하지 못했다. 잠시 스크린을 응시하던 나지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만일 나라면 아카데미 육성에 힘을 줄 것 같군요. 자신이 선덜랜드 유스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유소년들을 장차 반드시 레전드 매치에 설 수 있도록 키우겠다고 나온다면···.”

잠시 혼자 몸서리친 나지프가, 냉정을 되찾았다.

“그 경우, 우리는 좋은 유소년을 수급할 방법이 아예 없어집니다. 이미 팀의 위상마저 역전된 처지니까요."

위상이 역전되었다는 표현에 사만다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반론은 없었다. 아무튼 선덜랜드는 챔스 디펜딩 챔피언이니까.

“그러지 않길 바라야겠군요.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높은 확률로, 지역에 투자하겠죠. 연고지의 티켓 파워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요.”

“썬은 둘 중 어느 방법을 쓸까요?”

사만다의 질문에 나지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예측은 모르겠고,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희망합니다. 후자는 그래도 우리가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크게 보면 타인위어 주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질 테니, 우리에게도 나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전자는 너무 뼈아프다는 말씀이군요? 우리가 대응할 방법이 없어지니까요.”

“네. 물론 가장 뼈아픈 수는 따로 있지만요.”

나지프가 언급한 ‘가장 뼈아픈 수’를, 사만다는 곧바로 눈치챘다.

유소년 육성과 도시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그에 더해 빅 사이닝 하나쯤 얹으면 효과가 더 좋다. 선덜랜드가 그렇게 나오면, 뉴캐슬은 완벽하게 수세에 몰린 상태로 대응에만 급급한 프리시즌을 보내야 할 테니.

“에이, 무슨 신도 아니고, 인간이 그렇게까지 완벽한 수를 두겠어요?”

사만다가 지은 억지웃음에, 나지프는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대답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투자의 신이라고 불린다더군요.”

잠시 후 스크린에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덜랜드 구단주 이희성, 그리고 리미트리스 부사장 최다미였다.

[2년 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치르게 됩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겠죠. 그러니까··· FC 선덜랜드는 풋볼 스퀘어를 확장하게 되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알려드립니다.]

[리미트리스는 지역 기업과 협력해, 시티 오브 선덜랜드의 문화를 존중하고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추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에서는 유소년을···.]

사만다는 자신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느꼈다. 거울을 안 봐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음을 눈치채긴 어렵지 않았다. 나지프의 얼굴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나지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타개책은 하나밖에 없겠군요.”

알짜배기 선수의 영입, 그것만이 이번 프리시즌에서 뉴캐슬에게 주어진 마지막 활로임을, 뉴캐슬 보드진은 민감하게 눈치채고 있었다.

* * *

레전드 매치를 마치고, 프리시즌 계획까지 무사히 팬들 앞에서 선언했다. 덕분에 타인위어 팬들의 관심은 온통 우리 팀에 쏠렸다.

내친 김에 프레스팀, CS팀을 앞세운 선호도 조사를 실시했고, 결과를 타인위어 지도에 땅따먹기처럼 표시했다.

‘그 팀’의 본거지 뉴캐슬어폰타인은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지만, 나머지 전 지역이 대체로 붉은색 우위다. 이대로 무사히 프리시즌을 치르면, 당분간 그 팀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다미가 호기심 어린 시선을 지도에 보냈다.

“사장님···이 아니라 구단주님, 타인위어 이외의 지역은 신경 쓰지 않으시는 건가요?”

“응. 다른 지역에서는 어차피 연고지 팀이 강세일 거고, 글로벌 시장에선 당분간 질 이유가 없거든.”

우리는 몇 년 전부터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흥행에 대성공했고, 세계 축구팬의 동정 섞인 관심을 듬뿍 받았었다. 언더독 시절을 넘기게 해준 고마운 이벤트였다.

그리고 이제 언더독이 아닌 지금, 우리는 챔스에 나가지만, ‘그 팀’은 챔스에 못 나온다. 아주 큰 격차다. 글로벌 팬들의 상당수는 챔스 정도만 챙겨 보는 라이트한 축구팬이다.

게다가 뉴캐슬이 챔스에 복귀하는 건 아무리 빨라야 2년 뒤의 일인데, 그때쯤이면 우리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챔스 결승전을 치르고 있겠지.

“외통수를 두신 거네요. 멋져요.”

다미가 감탄했다. 희주와 달리, 꽤 풍부한 리액션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뉴캐슬은 아마 영입에서 활로를 찾으려 할 것 같은데.”

그러자 브라이언이 살짝 인상을 썼다.

“영입? 브로, 그게 가능해? 뉴캐슬은 굳이 따지자면 프리미어리그에 막 승격했던 우리와 비슷한 처지 아닌가?”

돈이 많고 의욕도 넘치는 구단주를 가졌지만, 막상 돈을 쓰기는 쉽지 않다. 팀의 위상이 부족하기 때문에, 거물 선수가 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의 우리는 마르틴과 브루노, 베넷 같은 선수를 영입해야 했다. 현재 이들은 모두 리그에서 손꼽히는 측면 자원이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 위상이 아니었다.

특히 마르틴은 체코 리그에서만 뛰어서, 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은 선수였다.

샐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브라이언의 의견에 동조했다.

“뉴캐슬의 상황은 당시 우리보다 더 나빠요. 우리는 그 시즌에 유로파 컨퍼런스리그에 나갔지만, 뉴캐슬은 그게 아니니까요.”

“애초에 그쪽 관계자가 브로처럼 나중에 빵빵 터질 선수만 골라 영입하는 안목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하지만 그게 쉽나?”

“그건 그런데, 그래도 뉴캐슬은 영입을 시도할 거야. 아니면 활로가 아예 없거든. 가만있다간 우리에게 팬을 뺏기고 쪼그라들 테니.”

돈을 써서라도 당장 성적을 올리겠다는 구단의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겠지. 그들은 우리와 같은 타인위어를 기반으로 삼는 팀이니까.

뉴캐슬어폰타인 팬들은 절대 넘어오지 않겠지만, 그 외 지역을 전부 빼앗는 게 내 목표다. 그리고 그 팀 구단주가 사우디로 바뀐 지금도 내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앞서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빅 사이닝이 가장 효과적이다. 뉴캐슬은 전성기가 지난 스타, 알짜배기 선수 여럿을 영입하는 형태를 취할 테니까.

“그래서 말인데··· 우리 코치진은 혹시 어느 포지션을 보강하기 원하지?”

“으음. 수비진의 뎁스를 늘리고 싶은데.”

“미드필더도 보강이 필요해요! 팀의 균형을 맞춰야 하거든요.”

숨도 쉬지 않고 대답하는 브라이언과 샐리를 향해, 슬쩍 못을 박아 두었다.

“알고 있겠지만, 이번 시즌에는 뉴캐슬의 영입 소식을 싹 덮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영입을 하고 싶어.”

그러자 브라이언이 입맛을 다셨다.

“그렇겠지. 사실 챔스를 들어 올린 스쿼드에 선수 여럿을 보강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고.”

“대신 딱 한 명이라면 누구든 사와 줄게.”

챔스를 차지한 이후, 우리도 위상이 많이 올랐다. 이제 우리는 대부분의 선수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그리고 선수 본인만 동의한다면, 이적료에 대해서는···.

다미가 눈을 빛냈다.

“여러분, 지금이 찬스일걸요? 사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우는, 비매품만 아니면 전부 사준다는 뜻이거든요.”

“챔스 우승이 좋긴 좋구나. 투자의 신이 오버페이를 다 해주고···.”

킬킬 웃는 브라이언을 향해, 슬쩍 못을 박았다.

“오버페이는 안 할 거지만.”

이마의 가치보다 비싸게 사올 생각은 없다. 그건, 내 절대적인 원칙이다. 그리고 원칙을 어기는 행위는 투자자로서 실격이고.

“어··· 브로, 그러면 ‘누구든’이 아니지 않나?”

“보면 알아.”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런 나와 브라이언을 번갈아 바라보며, 다미가 낮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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