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10화 (310/422)

310화 새 시즌은 언제나 (3)

풋볼 스퀘어의 노천카페에서, 짐은 한창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 녀석들이 잘 해낼 수 있을까?’

테오나 바르카를 생각하면 편두통이 올 것 같다.

사이드라인 안에서는 둘 다 천하무적으로, 나이가 비슷한 또래들 대부분을 장난감 취급하는 실력자다.

사실 짐 자신조차 테오나 바르카를 연습에서 상대하긴 꽤 버거울 정도인데, 다행히 요즘은 주로 자기들끼리 승부욕에 불타는 중이었다. 둘은 서로를 마음껏 기술을 걸어도 망가지지 않는 튼튼한 샌드백으로 취급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사이드라인 밖에서는···.

‘솔직히 열 살짜리만도 못하잖아.’

그런 애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선덜랜드 U-15 주장을 맡는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 같다. 그래서 고민하는 짐의 앞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왜, 주장 자리 때문에 고민이야?”

클라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앞에는 책이 놓여 있었다. 제법 두께가 있어 보였는데도 진도가 꽤 나갔다. 읽기 시작한 지 한참 지난 모양이다.

“나는 괜찮은데, 남겨진 애들 때문에.”

“그렇구나. 역시 책에 나온 대로네.”

“책?”

“골키퍼는 지키는 것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기에 주장 완장이 힘이 될 때가 많지만, 공격수라면 오히려 어깨를 가볍게 해 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그거 엉터리 아니야?”

미심쩍은 반응을 보이자, 클라라가 곧바로 받아쳤다.

“응? 페르난데스 자서전인데? 혹시 안 읽었어? 팬이면서?”

클라라의 지적에, 짐의 얼굴이 붉어졌다.

당연하게도, 자서전은 아직 읽지 않았다. 팬으로 남아 있던 시절엔, 두꺼운 책을 읽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지금은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아카데미의 훈련에, 개인 연습까지 하고 나면 기본적으로 하루가 금방 간다. 심지어 분석실에서 전술 공부를 하고, 페르난데스의 스페셜 영상까지 돌려보다 보면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판이다.

하지만 팬인데도 자서전 안 읽었냐는 말은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짐은 황급히 변명을 시도했다.

“나야 직접 물어볼 수도 있으니까.”

물론 요즘은 대답을 피하는 일이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의미로, 조언을 게을리하는 건 아니었다.

“흐음, 그렇구나··· 그럼 나중에 물어봐 줄래? 리포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긴 안 나와 있더라.”

페르난데스의 배우자가 리포터 출신임은 축구팬 사이에서 제법 유명한 일화다. 물론 짐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늘 침착하던 소년 골키퍼가 보기 드물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그런 건 내가 물어볼 만한 게 아니잖아?”

“그럼 내가 물어봐야겠다. 짐 선수! 리포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마치 가상의 마이크를 내밀듯, 입 앞에 클라라의 손이 내밀어졌다. 그 뽀얗고 작은 손은, 짐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다음에야 내려졌다.

“아하하, 대답은 안 들어도 괜찮겠네. 그런데 큰일이야.”

“뭐, 뭐가.”

“실은 나, 곧 일일 리포터가 되거든?”

“그, 그래서?”

클라라의 반달 같은 눈이 가늘어졌다.

예전에는 다소 병약하고 얌전한 이미지였는데, 사고 이후 회복과 재활을 거친 이후로는 오히려 건강도 예전보다 좋아지고, 성격도 활달해진 느낌이 든다.

이대로 있다간 큰일 날 것 같은 예감에, 짐은 무심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말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주위 어른들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모른 체했다. 입가에 따스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좋을 때다] [화이팅] 같은 키워드가 떠오를 듯한 표정들이다.

‘아니, 나는 좀 도와 달라는 거였는데···.’

궁지에 몰린 짐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감춘 한국인 여성, 구단주 비서 이희주다. 잠시 후, 짐은 무심코 혼잣말처럼 이야기하고 말았다.

“가만, 비서님 아닌가?”

그 발언은 무서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 선덜랜드 유소년 주장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짐이 ‘비서님’ 이라 부를 여성은 당연히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최근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는 구단주의 부모님이 와 있다.

이 정도 단서면, 누구라도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저 한국인들이 썬의 부모님!?”

잠시 후, 평화롭던 풋볼 스퀘어 일대에, 순식간에 소란이 일어났다. 짐은 아차 싶은 심정이 되었고, 클라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스퀘어관리팀 리더, 니콜라스가 황급히 보고했다.

“구단주님, 큰일입니다. 풋볼 스퀘어 북쪽이 혼란스럽습니다. 근처에 비서님이 출몰했기 때문에···.”

나는 무심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희주 얘는 도대체 부모님 모시고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싶어서.

“혼란스럽다고요?”

심각하게 묻자, 니콜라스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아, 오해를 부를 표현이었군요. 죄송합니다. 일종의 축제 분위기라는 뜻입니다. 물론 비서님의 식사량에는 위협적이겠습니다. 노점상들이 이거 좀 먹어보라며 온 사방에서 먹을 걸 권하는 중이거든요.”

어··· 김치에 싸서 드셔보세요? 여긴 영국이니까 어쩌면 ‘장어 젤리에 비벼서 드셔보세요’일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시는 모양입니다. 음식이 입에 맞으시면 좋겠는데요.”

긴장이 풀린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옆에서 같이 일어났던 다미가 따라 앉으며 키득거렸다.

“역시 말로는 티격태격해도, 가족은 가족이네요. 희주 씨를 걱정하신 거죠?”

“부모님 때문에 놀란 거야. 부모님 때문에.”

그러자 다미가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안심하세요. 두 분께는 항상 리미트리스 경호팀이 붙어 있으니까요. 사장님은 다른 걸 걱정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다미에게, 고개를 저었다.

“희주가 살 좀 찐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잖아. 아무튼 니콜라스, 계속 잘 부탁합니다.”

“네. 스퀘어관리팀에서 가족분들을 계속 모니터링하겠습니다.”

모니터링이라는 용어를 쓰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내가 굳이 부모님을 감시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원격 경호다. 어차피 리미트리스 경호팀이 붙어 있으니 살짝 과잉경호 느낌이 들긴 하지만.

“다만,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구단주님 가족을 건드릴 사람은, 적어도 이 도시에는 없습니다.”

“나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냥 자식 된 도리로···.”

“애초에 그런 짓을 했다간,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서 살아서 나갈 가능성이 무척 희박할 테니까요.”

니콜라스의 진지한 대답에,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럴 리가요. 내가 무슨 호마리우도 아니고··· 아무튼 안전하게 관광 중이시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북쪽이요?”

그제야 나는 다미가 말한 ‘다른 것’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북쪽은 경기장 뒷문 방향이고··· 다시 말하면 내 동상이 세워진 쪽이다.

아니, 우리 부모님이 그걸 보신다고?

예전에 다미에게 들켰을 때도 수치 플레이라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은 아주 각별하다.

챔스를 차지한 구단주, 새 시즌을 치르지 못하고 숨을 거두다. 부검 결과 사인은 수치사로 밝혀져 파문.

“저기··· 구단주님?”

“구단주 죽었습니다. 방금요.”

투덜거리면서, 나는 그놈의 구단주 동상이 있을 스퀘어 북쪽에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 * *

구단주 동상 앞에서, 클라라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듯 북문 앞 스퀘어에는, 선덜랜드의 자랑인 구단주 썬 리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요. 일종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어요. 왜냐면, 풋볼스퀘어는 아주 넓지만, 동상은 딱 한 곳이거든요.”

그래서 데이트 약속 장소로 널리 활용된다는 코멘트를 덧붙이면서, 클라라는 멀리서 바라보는 짐 쪽을 향해 눈동자를 슬쩍 돌렸다.

잠시 후 컷 사인이 났다.

“잘했어, 클라라.”

앨리스가 환히 웃으며 클라라에게 음료를 건넸다.

프리시즌을 맞아 선덜랜드 유소년 팀은 특집 영상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른바 기획 : 앨리스, 제작 : 선덜랜드 영상제작팀이었는데, 클라라는 일일 리포터로 출연했다.

계기는 앨리스의 추천이었다. 아무래도 유소년 홍보 영상이니, 선수들과 같은 또래 클라라가 하는 게 여러모로 친근감이 느껴질 거라는 의견을 냈다.

마침 클라라 본인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촬영까지 매끄럽게 이어진 것이다··· 물론 짐은 영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물론 앨리스는 촬영 전 짐과 클라라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알 리가 없다.

“다음 씬은 U-15 팀의 새 주장에 대한 거였죠? 혹시 누가 물려받을지 정하셨나요?”

“말도 마. 안 그래도 테오와 바르카가 서로 자기 달라며 난리거든.”

“그래서 누구 주기로 하셨는데요?”

“둘 다 안 줬어. 육성단장님 의사가 워낙 확고하셔서.”

앨리스의 푸념에, 클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둘 다 공격수였죠. 자서전에서 읽었어요. 공격수는 어깨를 가볍게 해 주는 게 좋을 거라고요.”

그러자 앨리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누군가는 주장 자리는 그냥 경기 시작 전 동전을 던지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빅클럽의 주장 자리는 아주 특별하니까.”

[클럽 유스를 키우는 정책과 문화는, 1군과 똑같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 1군이 그냥 에이스에게 주장을 달아 주는 팀이면, 유스도 똑같이 운영하면 됩니다. 실력순으로요.]

그 경우 짐의 U-15 주장 완장은 아무 고민 없이 테오가 물려받았을 것이며, 1년 뒤에는 바르카에게 넘어가는 수순으로 이어졌으리라.

[하지만 선덜랜드 1군은 그렇게 주장을 정하지 않습니다. 팀에 오래 몸담고, 다른 누구보다 헌신적이며, 팬을 사랑하는 선수를 주장으로 만들죠. 그렇다면 선덜랜드 유스 주장도 똑같은 기준이어야 합니다.]

페르난데스의 입장이 워낙 강경했기에, 앨리스가 고민 끝에 이번 영상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유소년을 아카데미에 보내려는 부모들에게 팀의 유소년 육성 정책을 홍보하는 한편, 이미 선덜랜드에서 뛰는 유소년들에게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자, 그럼 이제 짐을 취재할 거야··· 클라라, 부탁할게.”

실제로 앨리스의 영상은 꽤 호평을 받았다. 고집을 부리던 테오와 바르카도 순순해졌다. 특히 테오는, 자기는 주장 완장을 갖고 싶은 게 아니라. 선덜랜드 주장이 되고 싶은 거라며 태도를 바꿨다.

그리고 선덜랜드 유소년 신청은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챔스를 우승하며 팀의 위상이 더 올랐기 때문이었지만, 유스팀의 홍보 영상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다만 사소한 부작용도 있었다. 클라라와 인터뷰하던 짐이, 나이다운 조숙함은 어디에 흘렸는지 얼굴을 붉힌 채 쩔쩔맨 것이다.

덕분에 이번 영상은, 또래에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소년 골키퍼의 유일한 약점으로 알려지지만···.

그건, 조금 나중의 이야기다.

* * *

아직 선수들의 휴가도 안 끝났을 시기인데, 뉴캐슬의 행보는 기민했다. 선수 두 명이 은퇴했고, 한 명은 챔피언십에 팔려나갔다.

그리고 자리를 바꾸듯 세 명이 합류했다. 프리미어리그 팬들에게는, 이름을 대면 알 법한 선수들이었다.

[바이날둠, 마침내 뉴캐슬 복귀!]

- 리버풀과 파리에서 활약한 미드필더, 뉴캐슬에 노련함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함

[뉴캐슬, 암스트롱 재영입!]

- 소튼, 블랙번을 거쳐서 다시 뉴캐슬로? 이거 완전 시어러 커리어 아니냐?

[조 하트, 뉴캐슬의 수문장으로···.]

기사를 응시하던 핫도그 사내가 분통을 터트렸다.

“암스트롱이야 원래 고향부터 뉴캐슬 출신이니 그렇다 쳐. 바이날둠에 하트라고?”

브렌든이 침착하게 덧붙였다.

“기분 탓인가? 꼭 우리 따라 하는 것 같은데.”

구단주가 바뀐 직후 선덜랜드가 딱 그런 영입을 했다. 페르난데스와 톰슨, 전성기를 벗어나긴 했어도 네임밸류는 확실한 선수를 영입해 팀의 균형을 잡았다.

하필이면 포지션도 골키퍼와 미드필더라 똑같다. 이쯤 되면 꽤 노골적인 행보였다.

덕분에 브라더스는 새삼, 선덜랜드가 얼마나 좋은 구단주를 만났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더비 라이벌 팀이 곧바로 따라 하려 들 정도라면, 완벽한 정답에 가까운 행보였다는 뜻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정답’ 을 따라 하는 뉴캐슬도 무시할 수는 없다.

“사우디 자본이 들어왔다더니, 아주 제대로 각 잡고 해보려는 모양인데?”

실제로 조르디의 기세는 심상치 않았다. 아직 이적시장 소식이 없는 선덜랜드에게 선제 도발을 실시할 정도로.

- 프리시즌 ㅈ망팀 특 : 유스 소식만 올라옴.

“이놈들은 작년에 이러다 무슨 꼴 당했는지 아직도 기억 안 나나?”

당시의 선덜랜드는, 축구의 신을 영입하며 이적시장을 완벽히 흔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며칠만 기다려 보자고. 올해는 아직 이적 루머도 안 나왔잖아?”

구단에서 이적 관련 소식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증거였기에, 우드 부부와 브라더스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적 소식을 기다릴 수 있었다. 비록 예상했던 것보다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인내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FC 선덜랜드는,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새로운 14번을 발표합니다!]

오피셜 기사 속에서, 아르헨티나가 자랑하던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파블로 로드리게스가 선덜랜드 유니폼을 입은 채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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