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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11화 (311/422)

311화 새 시즌은 언제나 (4)

유스 소식만 들리면 망한 팀이라던 뉴캐슬 팬들의 도발은, 꽤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신난 우리 팬들이, 박제한 다음 댓글을 퍼부어댄 것이다.

- 자, 이제 누가 ㅈ망팀이지?

- 새 시즌은 언제나 선덜랜드가 왕이지!

- 오늘부터 구단주 집 쪽으로 매일 절함.

ㄴ 너어는 진짜 나쁜 놈이다. 그동안 절 안 했단 소리네.

- 네덜란드에서 뛰던 14번? 이건 못 참지.

당연하게도 우리 코치진 또한 로드리게스를 대환영했다. 그는 기동력과 활동량은 물론, 수비력까지 갖춘 ‘후방 플레이메이커’니까.

“양발잡이야! 그렇게 갖고 싶던 양발잡이 패서라고!”

“아니, 구단주님. 어떻게 이런 선수를··· 겨우 육천만 유로에 데려오신 거죠?”

뭐, 일단 명목상으로는 셀온 30%를 붙이긴 했지만, 의미는 없는 옵션이다. 나는 원래 선수 장사 안 하니까, 이적료는 사실상 육천만 유로가 전부인 셈이다.

신생 선덜랜드의 클럽레코드 이적료였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차기 에이스로 거론되는, 스물다섯 살 미드필더의 몸값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저가이기도 했다.

이마의 숫자 900을 자랑하는 미드필더, 그것도 이제 막 전성기를 시작하는 선수를 육천만 유로에 사들인 셈이니, 요즘 이적시장의 거품을 생각하면 괜찮게 샀다··· 이마의 숫자보다 싸게 산다는 원칙도 지켰고.

덕분에 다른 팀 팬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 선덜랜드 구단주가 공갈의 신이던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 아약스 구단주 비디오 갖고 있는 거 아님?

- 혹시 총 들고 협박한 게 아닐까?

ㄴ 총은 무슨. 리미트리스 정도 자금력이면···

“···어디 ICBM 사다가 들이댄 거 아니냐는데?

“그것도 솔깃하긴 한데, 협박용 ICBM 확보할 비용이면 그냥 선수 몸값이 싸지 않을까?”

“아냐 오빠. 미사일 생각보다 싸대. 한 발에 칠십억?”

“훨씬 비쌀걸. 우리 같은 기업이 ICBM 발사능력을 확보하려면 꽤 프리미엄을 얹어야 할 테니까.”

희주의 농담에 맞장구를 쳤더니, 옆에선 브라이언과 샐리가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만일 심정을 글자로 표현하는 기계가 있다면, 궁금해 죽겠다는 단어가 표시되겠지.

둘을 괴롭힐 의도는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실토했다.

“어··· 약간의 언론 플레이와 전화의 힘이죠.”

협상 테이블에 누구를 앉히느냐도 이적료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긴 하다.

이번 건에는, 유럽에 와 있던 다미를 투입했다. 수많은 지분인수와 매각 협상을 진행했던 리미트리스의 부사장에게 선수 이적료 정도는 부담 없는 가벼운 거래였다.

물론 판을 까는 것도 중요하다. 아약스의 퇴로를 막고, 무조건 우리에게 선수를 팔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들어야 협상에 의미가 생기는 법이거든.

설명을 들은 샐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해했어요. 역시 영입은 전화 영업이 효과적이죠. 감독에게 힘이 없을수록 좋다던데요?”

샐리가 말한 ‘전화 영업’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헨도네 팀이다. 전임 주장 제라드가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리버풀에서 뛸 생각 없냐고 물어봤다는 일화는 아직도 널리 이야기된다.

물론 선수가 직접 전화를 걸어 같이 뛰자고 설득한다는 것은, 그만큼 팀에 매력이 없고 감독이 별 볼 일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지?”

가만있다가 졸지에 까인 브라이언이 곧바로 이를 드러냈고, 잠시 후 우리 감독과 수석코치 사이에는 유치한 설전이 벌어졌다. 어째 예전에 수석코치와 분석관이던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데··· 기분 탓이지?

둘의 분쟁을 슬쩍 무시한 채, 나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뭐, 사실 우리는 메시가 있는 팀이니 전화 영업도 꽤 효과적이긴 했을 겁니다. 특히 로드리게스는 아르헨티나 선수라 더 좋았겠지만··· 그건 선수 이적료 깎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잖아요?”

그러자 샐리와 브라이언의 분쟁이 곧바로 멈췄다.

“그건 그렇죠. 그렇다면 역시 언플을 이용한 선수 흔들기?”

“선수 몸값 깎는 데 최선의 방법이긴 하지만··· 우리 몰래 언플하는 방법이 있긴 해?”

“게다가 우리 구단주님은 선수를 흔드는 타입이 아니잖아요.”

브라이언과 샐리가 서로 마주 본 채 눈만 깜빡이기 시작했다. 전술 이야기라면 몇 마디 대화만으로 순식간에 모든 걸 알아차리는 희대의 풋볼 지니어스들도, 이적 사가에 대해서는 전혀 감도 안 오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적 시장은 언제나 도미노거든요. 특히 빅클럽의 선수가 움직이면 말이죠.”

* * *

런던 튜브 기자 엘렌은, 선덜랜드의 오피셜 뉴스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엠바고가 풀렸으니, 이제 기사 써도 되겠죠? 로드리게스는 어떤 선수인지 다뤄볼까 하는데요.”

그러자 선배 기자 랜던에게서 우울한 대답이 돌아왔다.

“늦었어. 그런 기사는 이미 다 풀렸어.”

“오피셜이 이제 떴는데도요?”

선덜랜드는 이번에 꽤 강력하게 언론을 통제했고, 잉글랜드 언론은 모두 협조적이었다. 아무리 단독 특종이 중하다지만, 챔스 디펜딩 챔피언과 척지고 싶은 언론사는 없다. 자칫 ‘출입 금지’ 조치를 받으면 기삿거리가 퍽 줄어들 테니.

특히, 선덜랜드에는 언제 직영 신문사 하나 차려도 이상하지 않은 구단주가 있다. 엠바고를 어기는 언론이 있을 리 없는데···.

“기사 원고는 미리 써 놨어야지. 이거 봐.”

랜던이 혀를 차며 다른 신문사의 기사를 쭉 늘어놓았다.

[아약스의 에이스, 선덜랜드의 품으로!]

[아르헨티나의 플레이메이커, 오랜 우상의 뒤를 따르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영입의 명암!]

[부드러운 트래핑, 강력한 양발··· 그 외의 장점은?]

“겹치지 않는 특집 기사, 쓸 수 있겠어?”

랜던의 질문에, 엘렌은 눈을 네 번 깜빡인 다음 대답했다.

“쓸 수 있어요. 보니까 그의 스타성에 주목한 곳은 아직 없네요. 로드리게스는 꽤 미남이니까, 이 부분에 주목하면···.”

“야, 우리가 무슨 여성지냐?”

면박을 당했는데도 엘렌은 씩씩했다. 그동안 선덜랜드 관련 기사로 연달아 대박을 터트리며 사내에서의 입지도, 기자로서의 자신감도 충분히 쌓였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음··· 그가 어떻게 이적하게 되었는지를 써볼까요?”

“설마,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선수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그런 뻔한 기사를 쓰려는 건 아니겠지?”

“에이, 그럴 리가요.”

피식 웃으며, 엘렌은 기사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투자의 신, 드디어 실패하나? 어중간한 이적료, 도박적인 영입!]

“열 번 연속으로 앞면이 나왔으면, 그 동전은 앞면만 나오는 동전이라고 봐야죠··· 저는 다른 기사를 쓸 거예요.”

랜던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떠올린 게 있는 모양이군. 기왕 늦은 거, 확실한 특종감으로 써 봐.”

잠시 후, 엘렌의 손이 경쾌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뉴캐슬이 부른 나비효과, 선덜랜드의 뜻밖의 행운으로?]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엘렌의 노트북을 살펴보던 랜던이 무심코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나비효과?”

“네, 뉴캐슬이 바이날둠을 영입하면서 파리에서도 대체자를 구해야 했잖아요?”

“그랬지. 덕분에 올여름엔 파리, 유베, 뮌헨, 알레띠가 두루 섞인 연쇄 이적이 발생했··· 그렇구나!”

감탄하는 랜던을 올려다보며, 엘렌이 미소를 지었다.

“네. 슬슬 빅클럽으로 옮기고 싶었을 이십 대 중반 미드필더 눈앞에서, 빅클럽 팀 네 곳이 미드필더를 새로 구해버린 거죠. 덕분에 선덜랜드는 비교적 쉽게 로드리게스를 영입했을 거고요.”

“설득력이 있어. 안 그래도 로드리게스 같은 선수를 어떻게 그렇게 싸게 샀는지 궁금했거든··· 그런데 엘렌? 만일 파리, 유베, 뮌헨, 알레띠 중 한 곳이 로드리게스를 바로 영입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자 잠시 머뭇거리던 엘렌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이건 추측이라 기사에는 안 쓸 건데요··· 판을 그렇게 짠 것 같아요.”

“판?”

“로드리게스 같은 남미 선수는 논 EU 슬롯을 잡아먹잖아요. 그러니까 연쇄 이적 사슬에 논 EU 제한이 없는 나라··· 영국이 끼어들지만 않으면 되는 거였죠."

대답하면서, 엘렌은 무심코 고개를 북동쪽 하늘로 돌렸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선덜랜드 구단주가 있을 방향으로.

“이쯤 되면 로드리게스의 데뷔전이 궁금해지는데요? 투자의 신이 그렇게까지 정교한 판을 짜서 데려온 선수가, 대체 얼마나 잘해줄지가요.”

* * *

로드리게스 영입 오피셜 직후, 선덜랜드는 곧바로 프리시즌 매치 일정을 발표하며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새로운 시즌은 언제나 환영이죠! 자, 다시 달려볼 준비 되셨나요? @선덜랜드_CS팀]

홈 팬들을 배려해, 프리시즌 일정은 전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치른다는 게 구단의 방침이었다. 덕분에 우드 부부와 브라더스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 마음으로, 수시로 경기장에 드나들게 되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소소한 즐거움이 하나 늘었다.

“축구! 추욱구!”

마냥 어리게 보았던 우드 부부의 아기, 크리스의 말문이 트인 것이다. 다들 감탄하고 흥분했으며 또 기뻐했다.

“드디어 말을 하는구나!”

“사실 꽤 됐어. 그동안은 자네들이 못 알아들었을 뿐이지.”

아무래도 경기장은 시끄럽기에, 아기의 작은 옹알이 소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시즌 중에는 더더욱.

“그나저나 마일즈 이 친구는 왜 이렇게 뚱해. 크리스가 말을 하는데, 파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브렌든이 핀잔을 주자, 수잔이 웃었다.

“그게··· 아빠보다 축구를 먼저 말했거든요.”

아무리 우드 일가가 축구팬이라지만, 한 아이의 아빠로서는 충분히 삐질 만한 이유였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진 프리시즌 친선 경기에서, 모두의 눈이 그만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톰슨이 센터백이라고?”

“아니, 원래 센터백을 볼 수 있는 선수인 건 알았지만··· 오늘은 에디가 선발 출전했는데?”

그 외에도 해리슨과 프랭크, 디아라같이 어린 선수들이 기회를 잡았고, 새 식구 로드리게스는 당연히 선발 출전했다.

라인업을 내려다보던 마일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나저나··· 롱 패스로 이름난 패서가 같은 날 넷이나 출전하는 건 조금 과한 거 아닌가? 심지어 그중 셋은 후방이잖아?”

톰슨은 말할 것도 없고, 에디의 롱 패스도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물론 로드리게스는 말할 것도 없고, 해리슨의 패스도 이름 높다.

아무리 친선 경기라지만 영문을 모를 라인업에 모두 당황하는 사이, 핫도그 사내가 무릎을 쳤다.

“알았다! 이거, 선전포고야.”

“선전포고?”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핫도그 사내가 가슴을 펴고 으스대듯 말했다.

“상대의 전방압박을 가장 쉽게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뭐겠어. 롱 패스지?”

“그렇··· 지?”

“센터백 자리에 톰슨과 에디가 서고, 3선에 로드리게스가 출전한단 말이야··· 그러면 어떻게 될까?”

상대가 전방압박을 시도할 때마다, 머리 위로 롱 패스가 날아들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선덜랜드를 상대하는 팀은, 어설프게 맞불 놓을 생각 버리고, 그냥 가드를 세운 채 두들겨 맞기나 하라는 선포라고.”

핫도그 사내의 이야기에 다들 감탄하고 말았다. 실제로 경기의 양상이, 핫도그 사내의 말처럼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선덜랜드는 차분하게 공을 돌리며 후방 빌드업을 준비했고, 상대가 전방압박을 시도하면 곧바로 롱 패스로 응징을 가했다.

에디, 톰슨, 로드리게스, 그리고 해리슨까지··· 어지간한 팀에서라면 빌드업 리더를 맡을 수 있는 패서 넷이 총출동하자 위력이 상당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부분은 따로 있었다. 포백으로 시작했던 선덜랜드가, 수시로 쓰리백 형태로 포메이션을 변경했던 것이다.

정작 핫도그 사내는 웃어 넘겼지만.

“라볼피아나, 이제는 뻔한 빌드업 방식이잖아?”

포백라인에서, 좌우 풀백이 올라가고 대신 미드필더 한 명이 내려와 쓰리백으로 빌드업하는 형태는 축구계의 오랜 상식이다. 심지어 요즘에는 다양한 변종까지 잔뜩 나온 상태라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상식이잖나. 상···.”

선덜랜드의 패턴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 사실을 가장 늦게 깨달은 핫도그 사내가 입을 다물었다.

선덜랜드는 에디나 톰슨이 수시로 전진하며 변형 쓰리백을 만들었다. 풀백 둘과 센터백 하나를 남겨둔 형태를.

혹은 로드리게스가 센터백까지 내려오고 풀백 둘이 전진하기도 했는데, 워낙 변화무쌍한 움직임이라 상대가 대응하기 힘든 플레이였다.

“우리 선수들이 제대로 칼을 갈고 나왔군요. 프리시즌부터 이런 경기력을 보여주기는 힘들 텐데요.”

“호흡을 맞출 시간이 필요하지··· 로드리게스는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이지만.”

이적 후 아직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팀에 오래 머문 선수처럼 척척 호흡이 맞는 로드리게스의 모습을, 우드 부부와 브라더스는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새 시즌은 언제나 기대되지만, 올 시즌만큼 기대되는 프리시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눈 아래에 있는 선수들은, 불과 한 달 전 빅 이어를 들어 올린 챔스 디펜딩 챔피언이다. 우승의 주역들이 전부 팀에 잔류했고, 선수단 대부분은 아직 전성기를 유지할 나이였다.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월드클래스 미드필더가 더해진 것이다.

[고오오올! 선제골은 바스티-아노 라-파! 새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축포를 쏘아올립니다! 이적생 로드리게스! 깔끔한 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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