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12화 (312/422)

312화 왕의 귀환 (1)

<축구는 그저 골만 넣으면 되는 게 아니다. 이겨야 하는 종목이다 - 앨런 시어러>

그날 경기는 압도적으로 끝났다. 팀은 3-0으로 완승했고, 로드리게스는 세 골 모두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정작 로드리게스 본인은, 결과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많았지만.

“오늘부터 구단을 안내해 주시는 거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로드리게스의 구단 적응은, 전적으로 메시가 돕기로 되어 있었다.

원래는 구단주의 일이었다. 선덜랜드에 이적해온 선수에게 구단 시설 곳곳을 안내하는 업무는 전통적으로 내가 직접 했었고, 사실 이번에도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로드리게스 본인이 너무나도 황송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 * *

“구단주님이 저를 안내해 주신다고요?”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메시 선수도 안내받았으니까요.”

희주의 이야기에, 로드리게스는 더 황송하다는 반응이었다.

“그게, 메시 님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황송해서요.”

메시 님?

하긴, 아르헨티나 출신 축구선수에게 메시는 신과 같은 존재일 테니, 님 붙이는 정도는 괜찮겠지. 이름 중간에 갓 넣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대우요? 그거 우리 팀에 이적하면 누구나···.”

나는 재빨리 희주의 옆구리에 팔꿈치를 찔러 넣었다. 아무래도 로드리게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바스티아노와 베넷부터, 그간 선덜랜드에 영입된 이적생 전부를 테러하려 덤빌지도 모른다. 감히 축구의 신이 받은 대우를 똑같이 받다니, 신성모독이라면서.

아무튼, 로드리게스는 내 안내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자 희주가 재빨리 나섰다.

“그렇게까지 나오니 어쩔 수 없군요. 제가 직접 안내하죠··· 뭐,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희주는 마치 ‘내가 누구?’ 같은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폈다.

자기 딴에는 ‘구단주 여동생’, ‘선덜랜드의 2인자’ ‘썬의 오른팔’ 같은 수식어를 떠올렸겠지만, 하나 빼고 전부 틀렸다. 우리 팀 넘버 투는 감독 브라이언이고, 내 오른팔은 여의도에 돌아간 다미니까.

로드리게스의 표정이 미묘해지려는 찰나, 나는 빠르게 제안했다.

“그럼, 메시 선수에게 안내를 부탁하고 싶군요.”

로드리게스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일단 예의상 ‘황송해서 어쩌냐.’고는 답했지만, 때로는 표정은 말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전한다.

영상으로 찍어서 남겨 두고 싶을 정도로··· 가만, 영상?

[축구의 신과 함께하는 선덜랜드 시설 투어]

머릿속에서 뭔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해서, 나는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냈다.

* * *

[왕의 귀환? 유럽의 디펜딩 챔피언, 화려한 프리시즌 복귀··· 브레멘 대파!]

우리가 프리시즌에 보여준 경기력은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물론 프리시즌 특성상, 이번엔 한 수 아래의 팀을 불러들이기는 했다. 리미트리스가 주최하는 프리시즌 컵은 격년제고, 프리시즌은 원래 가벼운 친선 경기 위주로 새 시즌을 준비하는 시기니까.

선수들의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고 구단 운영을 준비하는 시기라, 강팀끼리 전력으로 치고받는 모습은 개막 이후를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어디까지나 우리 팀의 경기 내용이나 호흡에만 집중할 생각이었지만, 브라이언과 샐리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한 수 아래의 팀? 양학? 그야 어쩔 수 없잖아?”

우리의 연승을 ‘양민학살’이라며 비아냥거리는 SNS 메시지를 흘끗거리던 브라이언의 곁에서, 이번엔 샐리가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불가항력이죠. 우린 챔스 디펜딩 챔피언이니까, 유럽의 모든 팀은 우리보다 한 수 아래인걸요.”

웬일로 죽이 잘 맞는다. 감독과 수석코치가 화기애애한 모습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브라이언과 샐리 사이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오죽하면 옆에서 희주도 속닥거릴 정도다.

“오빠, 혹시 우리 올해 국수 얻어먹는 거 아니야?”

“일없을걸.”

얘는 이상하게 세상만사를 꼭 그런 쪽으로 해석하려 들더라고. 그리고, 혹시 둘이 잘되더라도 국수 얻어먹을 일은 없다. 여긴 영국이고, 브라이언의 식성은 장어 젤리 같은 거니까.

참고로 샐리는 아이리시스튜 지지파다. 그리고 사실 둘이 화기애애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브로, 로드리게스가 아주 좋은걸? 구단에 적응도 적극적으로 하려는 것 같고.”

“낯선 위치에서도 잘 뛰려고 하죠. 데뷔전은 3선과 센터백을 오갔고··· 오늘은 아예 2선으로 내보냈잖아요?”

그것도 펄스 텐으로. 축구의 신과 보여준 호흡은 확실히 경이적이었다.

“훌륭하더라고. 그래도 아마 바스티아노와는 그런 호흡을 보여주지 못하겠지.”

“하긴, 로드리게스의 주 포지션은 3선의 후방 플레이메이커니까요. 하지만 동경하는 우상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자리라면··· 포지션이 바뀌어도 상관없다는 거겠죠?”

둘의 눈이 반짝인다. 잠시 후 ‘메짤라’ ‘인버티드 풀백’ 같은 흉흉한 단어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로드리게스가 조만간 골키퍼 빼고 모든 포지션을 경험하게 될 것 같아서 한마디 끼어들었다.

“보통 3선 미드필더를 사다 주면 얌전히 후방에 놓고 쓰지 않나? 굳이 펄스 텐으로 올려야겠어?”

“브로가 모처럼 우수한 미드필더를 사다 줬으니까. 그리고 사실 흔한 모티프잖아. 활동량 좋고 수비력 뛰어난 선수를 10번 자리에 두고 쓰는 건.”

거, 베니테스가 좋아하겠네.

한편 옆에서 혼이 나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희주를 위해, 축알못도 알아들을 수 있는 방향으로 슬쩍 설명을 고쳤다.

“아이돌 보컬을 영입했는데, 알고 보니 춤도 랩도 잘해서 다른 역할을 맡겨봤더니 훌륭했다는 이야기야.”

“대단하네요··· 잘 샀네!”

물론 선수의 기량에는 만족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새로 영입한 선수에게 느닷없이 다른 역할을 맡기고도 수준급 경기력을 뽑아낼 수 있는 코칭스태프의 능력에 가장 만족하고 있다.

정작 자기들은 새 장난감을 받은 애들처럼 잔뜩 신이 났지만.

“그럼 메시를 라이트윙으로, 로드리게스를 라이트백으로 쓰면 어떨까?”

“아니, 멀쩡한 미드필더를 왜 풀백으로 돌려요? 이 축···.”

“풀백 혐오 멈춰! 너 지금 내가 예전에 풀백이었다고 그러는 거지. 이 축···.”

축알못이라는 단어만은 끝내 입에 담지 않았지만, 표정은 언제나 말보다 많은 정보를 담기 마련이다. 지켜보던 희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 또 시작이네. 아무래도 올 시즌도 조짐이 좋으려나 봐.”

* * *

“올 시즌은 시작부터 조짐이 좋으려나 봐. 무엇보다 크리스도 이제 의젓해져서 축구 보기 편하고. 이번 시즌에는 나란히 앉아서 손잡고 볼 거야.”

마일즈의 반응에, 주위에서는 미적지근한 시선을 보냈다.

마일즈의 아들, 크리스는 남자애다. 지금은 마침 말문도 트였고, 축구 볼 때는 얌전해서 돌보기 편한 아기이지만, 이제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체력을 상당히 요구받게 될 것이다.

특히 크리스에게는 이미 몇 가지 조짐이 보인다는 게, 브라더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다섯 살쯤 지나면 밤낮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고 공을 찰 게 뻔하다.

[걔가 태어났을 때, 온 선덜랜드가 환호했던 거 알지?]

[말도 못 할 시절부터 축구만 보면 환장하던 애가, 과연 얌전할까?]

그렇다고 벌써 마일즈의 벅찬 꿈을 깨부수고 싶지는 않다. 친구 된 도리도 그렇거니와, 사실 크리스는 브라더스도 무척이나 예뻐하는 아기였기 때문이다.

“응? 자네들 왜들 그래?”

그래서 마일즈의 반문에 브라더스는 일제히 침묵했다. 잠시 후 브렌든이 재빨리 핑곗거리를 찾아냈다.

“나는 오히려 올 시즌이 걱정이던데. 시작부터 너무 손패를 다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어서.”

“하긴, 우리는 이번 프리시즌에 로드리게스의 펄스텐도, 4인 패서도, 변형 쓰리백도 모조리 보여줬지.

“가뜩이나 챔스 우승팀이라 집중 견제 받을 텐데.”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전략 노출을 자제해 주십시오.] 같은 슬로건을 하나 붙여야 적당할 것 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사내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앨리스를 통해서 민원 넣을까? 팬들의 목소리라고.”

“전에 들었는데, 구단에 트럭을 보내면 좋다더군. 썬의 나라에서는 그렇게 한다던데?”

맥주집 사장의 이야기에 브라더스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선 세게 넘는 짓이지··· 어떻게 이렇게 자랑스러운 구단에 그런 몹쓸 짓을 한단 말인가? 그나저나 썬도 참 무서운 나라에서 살았군.”

실제로 한국에서 트럭을 보낸다고 하는 의미는 전광판이 설치된 소형 트럭을 구단 사무실 앞에 세워놓는 식이지만, 사내들은 당연하게도 구단 사무실에 트럭을 돌진시키는 거라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유독 마일즈만 ‘좋은 일 아닌가? 우리가 이만큼 강해졌다는 뜻이니까.’라며 대범한 반응을 보였지만, 브라더스는 못내 걱정을 멈추지 못했고, 급기야 퇴근하는 앨리스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앨리스에게서는 패기 넘치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 모처럼이니까 왕의 귀환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 그리고 이건 구단주님과 감독님 말씀인데요.”

잠시 후, 앨리스가 낮은, 하지만 힘찬 목소리로 덧붙였다.

“토너먼트에서 이기는 팀이 되려면 분석당하지 않는 게 중요하지만, 리그에서 이기는 팀은 상대에게 분석당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요.”

* * *

새 시즌이 개막하면서, 축구단의 달력은 리그와 컵 대회 일정으로 가득해졌다.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선덜랜드는 브렌트포드를 홈으로 불러들이게 되었다. 브렌트포드는, 리그에서도 분석팀이 강하기로 정평이 난 곳이었다. 실제로 선덜랜드 분석팀의 막내, 토마스도 브렌트포드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을 정도다.

선덜랜드에 토마스를 내주면서 분석팀장이 바뀌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새 분석팀장 아래에서 부활에 성공했다.

그런 브렌트포드 분석팀은, 챔스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강적을 맞이해 부지런한 분석으로 활로를 준비하려 노력했다.

“로드리게스가 적응 못 하는 거 아닌가 싶다고?”

브렌트포드 감독의 질문에, 분석팀장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팀과 융화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보시다시피 프리시즌 내내 포지션 여러 개를 옮겨 다니는 중입니다. 아약스에선 이런 적이 없었죠.”

“으음.”

“어쩌면 선덜랜드는, 아직 로드리게스의 용도를 확정하지 못한 건 아닐까요?”

“로드리게스의 용도? 그런 걸 고민할 필요가 있나? 그 친구는 전형적인 6번 미드필더잖아.”

“맞습니다. 그런데 선덜랜드에는 똑같은 타입의 선수가 있죠.”

“피터 톰슨 말이군.”

슬슬 분석팀장의 이야기를 이해한 감독의 눈이 빛났다.

“네, 그래서 선덜랜드는 프리시즌에 둘을 공존시키려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유는···.”

“정답을 찾지 못했을 때지. 일리 있어.”

어쩌면 톰슨과 로드리게스가 주전 경쟁을 벌이거나, 알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브렌트포드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개막전에서는 그 빈틈을 제대로 찔러보자고!”

* * *

[프리이머리그 1R. 선덜랜드 대 브렌트포드]

킥오프 직후, 나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쟤들 지금 뭐 하는 거지?”

내 혼잣말에, 요즘 경기 보는 눈이 퍽 좋아진 희주가 재빨리 응수했다.

“중원 싸움을 시도하는 것 같은데?”

“그건 나도 알아··· 문제는, 브렌트포드가 왜 저러냐는 거지.”

우리하고? 중원 싸움을? 갑자기 뭘 잘못 먹었나?

마침 오늘의 우리는 다이아몬드 4-4-2를 준비했다. 이것만으로도 일단 중원 싸움에서는 압도적으로 유리해진다. 미드필더 넷을 풀어놓는 거니까.

심지어 오늘의 스타팅은 톰슨과 로드리게스, 잭과 요니다.

바르샤 세 얼간이나 레알 크카모를 전성기 상태로 데려온 게 아니고서야, 우리와 중원 싸움을 시도할 수는 없다. 차라리 다이아 4-4-2의 약점을 노려 측면을 파고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브렌트포드는 우직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중원 싸움을 걸고 있다.

“아하.”

상황을 파악한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상대의 노림수가 뻔히 보이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새로 이적한 로드리게스를 노리려는 모양이네.”

이적 직후라 주위와 호흡이 맞지 않기를 기대한 거겠지. 어쩌면 적응에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로드리게스는 프리시즌 내내 여러 포지션, 다양한 역할을 맡았으니까.

미안하지만, 로드리게스가 프리시즌 내내 다양한 롤을 수행한 건, 그저 우리 코칭스태프가 전술 덕후라 그런 건데.

그의 적응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실력도 마찬가지고.

로드리게스는 톰슨과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브렌트포드의 압박을 벗겨냈고, 잭과 요니에게 몇 번이나 결정적인 패스를 선보였다. 수비 상황에서도 강렬한 태클로 몇 번이나 공을 따내며 우리 홈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빠져나왔습니다! 로드리게스의 스루패스가 대지를 가르고, 브렌트포드의 진영 또한 갈라버렸습니다! 오프사이드 아닙니다! 메시! 메시! 메시! 메시··· 고오오올!]

축구의 신이 보여준 완벽한 오프 더 볼 움직임을 놓치지 않은, 완벽한 스루패스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희주는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선덜랜드 1 - 0 브렌트포드]

로드리게스의 맹활약 덕분에, 그날 우리 미드필더는 브렌트포드 중원을 완벽하게 압도했다. 그리고 중원 싸움의 결과는 항상 팀의 승패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곧바로 바스티아노가 두 골을 추가했고, 종료 직전에는 요니가 쐐기골을 박으며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완벽한 마무리였다.

[선덜랜드 4 - 0 브렌트포드]

며칠 전 희주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이번 시즌은 조짐이 좋다. 개막전부터 우리는, ‘챔스 디펜딩 챔피언’의 강력함을 과시하며, 이번 시즌 슬로건에 걸맞은 경기력을 펼쳤다.

Sunderland, the King of Eur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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