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15화 (315/422)

315화 왕의 귀환 (4)

세비야의 회심의 세트피스를 하퍼가 막아낸 순간, 유소년 선수들 사이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퍼졌다. 하지만 테오와 바르카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둘이 힘차게 외쳤다.

“카운터, 카운터! 빨리 올라가요!”

“아크 왼쪽이 빌 거야! 컷 백!”

두 소년의 외침에 호응하듯, 수비벽을 세웠던 선덜랜드 선수들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짐 또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그의 눈에도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았기에.

하퍼가 팔을 크게 휘둘렀고, 로드리게스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다시 공을 앞으로 길게 걷어찼다. 벽에 합류하지 않고 최전방에서 기다리던 유일한 선덜랜드 선수, 축구의 신에게로.

로드리게스가 메시에게 보내는 패스가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오프사이드는 선언되지 않았다.

이제 몇 초 전, 두 천재 소년의 눈앞에 그려졌던 비전이 유소년 모두에게 선명해졌다. 골키퍼 이외에는 단 두 명의 수비만을 남긴 세비야,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축구의 신.

그리고··· 따라붙는 선덜랜드의 보물까지.

소년들은, 입을 모아 일제히 외쳤다.

“컷 백!”

축구의 신은, 이번에도 모두의 외침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수비의 접근을 허용하지도, 그렇다고 자기 대신 요니를 견제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은 채, 축구의 신은 완벽한 찬스를 요니 앞에 만들어 냈다.

요니의 침착한 슛이 세비야의 골네트를 뒤흔든 순간, 선덜랜드 팬들의 함성으로 스타드 루이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Wise man say, only fools rush in.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선덜랜드 2 - 0 세비야]

선덜랜드의 보물, 요니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들 사이에서, 선덜랜드 유소년들 또한 열렬히 환호하며 서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나이스!”

“이긴 거야, 이제 이긴 거야!”

기뻐 날뛰던 유소년들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피치 위의 1군 주전들이, 경기를 관람하는 자신들보다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열정적인 세레머니조차 없이 그저 서로 머리나 어깨를 두드리며, 담담하게 진영에 돌아와 킥오프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빈틈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모두는 직감했다.

이 골이 쐐기골이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남은 시간 세비야의 추격은 일어나기 힘들 것임을.

* * *

“원, 목청도 좋지.”

하퍼의 선방 직후부터, 크리스는 줄곧 기운차게 날뛰었고, 바둥거리며 큰 목소리를 냈다. 어린아이들 특유의, 괴성이 섞인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가 마구 오갔다.

“뭐라는 거야?”

“글쎄요. 아무튼 날카로운 역습까지 보여줬으니, 된 거 아닐까요? 골도 넣었고요.”

앨리스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에 힘을 주어 표정을 관리하려 애썼다. 선수들이 오늘,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처음 슈퍼컵에서 떨어졌을 땐, 그냥 우리가 부족했다고 생각했슴다. 하지만 막상 빅 이어를 들고 보니, 지난 슈퍼컵이 떠올라 미칠 것 같았슴다.]

[우리가 그렇게 약한 팀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오히려 더 미련이 커지더군요. 팬분들께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요.]

경기를 앞두고 준비한, 주장단 잭과 요니의 인터뷰 영상의 장면으로, 오늘 경기가 승리로 끝나면, 미니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유튜브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왕의 귀환] 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프레스팀 주도로 준비한 영상이라, 얼마 전까지 프레스팀이던 앨리스 또한 미리 시청한 상태였다.

[두 번은 없슴다.]

그렇게 다짐하던 선덜랜드 선수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칼날 같은 집중력을 유지할 모양이었다. 경기력을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앨리스로서는 차마 마음 편히 웃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잠시 앨리스의 얼굴을 살피던 크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나, 화났어?”

“아니, 화 안 났어.”

표정을 조금 누그러트리며, 앨리스는 CS팀에서 전수받은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드 부부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선수들이 저렇게까지 투지를 불태우는데, 우리가 마냥 웃고 즐기기는 조금 미안하네.”

앨리스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뇨. 웃으셔도 괜찮아요. 팬 여러분을 웃게 해 드리려고 지금 저렇게 싸우는 거니까요. 그게 선덜랜드 선수들의 일이죠.”

그리고 선수들이 오직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선덜랜드 스태프의 일이다. 지금도 스태프용 채팅방에서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원정지원팀입니다. 유에파 슈퍼컵 위너 단상, 나갈 준비 끝났어요. @원정지원팀_샌디]

[수고했어요. 영상 체크는? @프레스팀_애니]

[전부 끝났습니다. @프레스팀_클라크]

[2-1이나 3-0 썸네일도 미리 만들어 둬. 스코어가 이대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프레스팀_애니]

잠시 망설이던 앨리스는,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입력했다.

[지금 경기장인데요. 2-1 썸네일은 미리 만들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유스팀신입_앨리스]

[하긴, 꼭 실점을 기원하는 것 같아서 조금 싫긴 하네. 3-0은 미리 만들어도 괜찮지? @프레스팀_애니]

[기세로 보면 5-0이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아요. @유스팀신입_앨리스]

다시 입가에 떠오르려는 미소를 억누르며, 그녀는 피치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달리는 선수들을 향해, 목에 힘을 넣었다.

“앞으로 30분! 끝까지 힘내요!”

* * *

‘앞으로 30분.’

에디는 아주 냉정하게 남은 시간을 파악했다.

세상에서는 까불거린다는 이미지로 통하지만, 그는 보기보다 훨씬 냉정했고, 또 침착했다. 유스 출신이 아닌 그가, 선덜랜드의 3주장을 맡고 있는 이유다.

[방송요? 에이, 전 그런 거 안 나가요.]

그는 알고 있었다. 투지를 드러내 보이는 역할, 팬들에게 사랑받는 자리는 자기보다 유스 출신 주장, 부주장이 훨씬 어울린다는 것을.

자신에게는 더 적합한 역할이 있다. 그러니까···.

‘치고 들어오는 세비야 공격진을 셧아웃 하는 거지.’

분석실과의 협의로, 상대의 패턴은 이미 숙지했고 성향도 파악했다. 데이터와 실제가 똑같지는 않겠지만, 약간의 차이점은 이미 현장에서 미세하게 조정을 마쳤다.

골키퍼와, 그리고 동료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고개를 돌릴 필요는 없었다. 핸드볼 파울에 대비하는 것처럼 등 뒤로 돌린 손에서, 쉼 없이 수신호를 발신하는 중이었기에. 그때마다 하퍼가 큰 소리로 대답해 준다.

지금처럼.

“이고르! 커버 준비해!”

하퍼의 외침에 따라, 에디는 먼저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다. 일부러 알기 쉬운 큰 동작으로. 공을 빼앗지는 못하지만, 슛 코스 몇 개쯤은 확실히 막아낼 수 있는 태클이다.

그리고 코스가 한정되고 나면, 나머지는 그의 동료 이고르의 몫이다. 상대와의 경합은 차돌 같은 피지컬을 자랑하는 그의 동료가 좀 더 유리하기도 하거니와···.

‘내게는 다른 일이 있으니까.’

이고르의 태클에 흘러나온 공을 재빨리 확보하며, 에디는 고개를 들어 로드리게스를 찾았다. 그러자 세비야 미드필더진이 필사적으로 패스길을 가로막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좋은 판단이야. 똑같은 패턴에 자꾸 당하면 멍청이지··· 그런데 말이야.”

히죽 웃으며 에디는 힘차게, 그리고 크게 공을 걷어찬다. 로드리게스가 아닌, 오른쪽 측면 전방으로. 어느새 깊이 올라가 있던 라이트백 스티븐의 가슴을 향해서.

우월한 피지컬을 자랑하는 스티븐은, 언제나처럼 무사히 공을 따냈다. 그리고 흘러나온 공은, 선덜랜드의 라이트윙에게 전해진다.

“매번 이걸 당하더라고. 분석 똑바로 안 하나?”

챔피언십에 머물던 시절부터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던 롱 패스 카운터는, 슈퍼컵이라는 큰 무대에서도 어김없는 위력을 발휘했다.

역습에 무너지는 세비야 수비진과 파고드는 선덜랜드 공격수들, 격렬한 움직임에 펄럭이는 7번 유니폼. 그 모든 것을 응시하며 에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리게스가 뛰기 전부터, 선덜랜드엔 이 몸이 계셨단 말이지. 음, 완벽한 패스야.”

[고오오오올! 쐐기골이 될 것 같습니다! 메시, 또다시 슈퍼컵을 폭격합니다!]

* * *

마침내 기다리던 휘슬이 울린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스코어보드를 응시했다.

[선덜랜드 3 - 0 세비야]

경기는 우리 선덜랜드의 깔끔한 승리로 끝났다. 몇 차례의 실점 위기도 있었지만, 악착같은 선방으로 막아내며, 오히려 추가골을 뽑아내 경기를 완벽히 끝냈다.

피치 위에서는 브라이언이 선수들과 포옹하는 중이었다.

“너희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만일 6-1로 이겼어도 지금보다 기쁘진 않았을 거야.”

나도 동감이다.

축구는 득점을 겨루는 종목이지만, 그렇다고 골을 넣는다고 무조건 승리하는 종목은 아니다. 득점하면서 실점을 최소한으로 억제해야 이길 수 있는 게 축구다.

그 점에서 오늘 우리 경기력은, 그야말로 챔스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단 1점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은 채 상대를 셧아웃했고, 그 와중에 우리는 멀티골을 넣었으니까.

심지어 경기 내용도 아주 좋았다.

선제골을 넣을 때는 공격적으로 주도권을 잡고, 추가골과 쐐기골은 상대의 공격을 흘려넘긴 역습을 성공시켰다. 그야말로 축구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누가 옆구리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니 희주다.

“웃어도 괜찮아. 오빠. 우리가 완벽하게 이겼으니까, 심각한 표정 안 지어도 돼.”

“내가 그랬나?”

거울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도, 희주도 웃고 있지 않다는 것.

“그러게. 이제 웃어도 괜찮겠지.”

딱 1년 전.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슈퍼컵을 내주었던 날, 우리는 아무도 울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오늘 웃기 위해서.

최단거리로 달려온 건데도, 너무 긴 기다림이었다.

나는 조용히 피치를 내려다보았다.

흩날리기 시작한 꽃가루, 부지런히 단상을 설치하는 우리 스태프들, 마침내 잔디 위에 올라선 유에파 슈퍼컵 트로피가 선연하게 빛난다 싶더니, 갑자기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이제 우리 주장이 트로피를 누구보다 힘차게 들어 올리는 순간, 이곳에 모인 선덜랜드의 모두는, 1년을 꼬박 기다린 감정을 모두 토해낼 것이다.

“그러니까 너도 웃어도 돼.”

어느새 눈물범벅이 된 여동생을 살짝 다독이면서, 나는 차분하게 웃었다.

* * *

이후에는 온통 축제였다.

선수단이 돌아가면서 트로피를 차례대로 들었고, 팬들은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으며, 스타드 루이 경기장 곳곳에는 붉은 걸개가 내걸렸다.

[진정한 유럽의 왕, 새 시즌에 돌아오다!]

“오빠, 남의 경기장에 저런 거 걸어도 되는 거야?”

“내일 정오까진 괜찮을걸.”

이 경기장은 이제 우리 겁니다.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빌렸으니까!

마침 곧바로 방송시설을 점거한 원정지원팀이 안내 멘트를 읽어 내려갔다.

[이제부터 K팝 아이돌 드림스케이프의 축하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오니, 함께해주신 선덜랜드 팬 여러분께서는-]

뒷말은 함성에 묻혔다. 예상보다 훨씬 뜨거운 반응에, 나는 무심코 눈을 깜빡였다.

“드림스케이프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던가?”

“사실 드림스케이프가 아니라 무슨 듣보잡 무명 가수가 나왔어도 신났을걸.”

하긴, 우승 직후니 가수의 네임밸류는 따질 필요도 없다. 심지어 희주가 노래해도 우승의 함성처럼 들릴 상황이지.

“참고로 선덜랜드 한정으로는 거의 국민가수야. 아무래도 구단 제휴 가수 느낌이니까. 팬서비스도 좋고.”

“하긴, 다들 싹싹하더라. 근데 거기 소속사는 팬서비스 좋은 느낌은 아니던데.”

“어··· 오빠한테 많이 배웠대. 요즘은 아무튼 팬을 남기는 정책으로 선회했다더라고.”

그거 잘됐네.

한편,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잔디에 설치한 무대 위에 올라온 드림스케이프 리더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축하 공연에 앞서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희주가 느닷없이 난동 부리기 시작했다. 하긴 얘는 원래 아이돌 팬클럽 출신이었지. 그것도 아주 VIP급으로.

“구단주 비서가 참 예쁘다는 건가요!?”

무대까지 희주 목소리가 들렸는지, 리더가 키득거렸다.

“어··· 오늘 개런티 받아가려면 그렇다고 말해야 하는 거 맞죠?”

제법 재미있는 농담이라 맞장구를 쳐 주기로 했다.

“참고로 비서는 구단주 여동생이고, 개런티는 내가 줍니다. 알아서 처신하리라 믿죠.”

“이해합니다, 구단주님. 저도 집에 누나가 있어서요.”

리더가 능숙하게 화제를 원래대로 돌렸다.

“실은 저희 멤버들 중 아직도 선덜랜드 팬이 아니었던 애들이 있었는데요··· 오늘,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팬들의 함성이 뒤를 따른다.

“선덜랜드! 선덜랜드!”

“유럽 최강팀은 누구죠!?”

“선덜랜드! 선덜랜드!”

아이돌이란 이런 건가. 예전에 잭이 선덜랜드 축구교 교주 하면 잘하겠다 싶었는데, 드림스케이프 리더도 만만치 않다.

그날, 드림스케이프는 우리와 계약된 공연 시간보다 두 시간을 더 뛰어다니다가 매니저에게 끌려 내려갔고, 우리 팬들은 일제히 근처 펍으로 이동해, 못다 부른 노래를 외쳤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은···.

“어··· 유니폼이 조금 다른 것 같슴다?”

주장 잭을 필두로, 기념촬영용 유니폼을 지급받은 우리 선수들의 표정에는 의아함이 떠올랐다. 사실은 궁금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선수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CS팀과 미리 준비해둔 물건이었으니.

기본적으로는 올 시즌 챔스에서 착용할 유니폼을 베이스로 삼았고, 챔스 디펜딩 챔피언 패치를 꼼꼼하게 붙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유니폼 뒷면이었다.

이름 대신 써놓은 ‘유에파 슈퍼컵 챔피언’ 마킹을 바라보는 우리 선수들의 얼굴에, 미소가 천천히 번져 나갔다.

“이제 그놈의 유베 유니폼 치워버릴 수 있겠네.”

“빨리 숙소에 돌아가고 싶은데··· 이제 우리 유니폼 걸어야지!”

“마음은 이해하는데··· 벌써 돌아가자고? 저 팬들을 놔두고?”

지금 당장이라도 팬들에게 다이브 할 것 같은 주장과 부주장, 흐뭇한 미소를 짓는 선수들, 주먹을 불끈 쥔 감독, 모나코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포효하는 수석코치까지.

그 모든 풍경이, 우리가 명실상부한 유럽의 왕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 우리가 돌아왔다.

왕의 귀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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