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코인 토스조차 질 수 없는 사이 (1)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 항상 이기란 법은 없다 - 올리버 칸>
“아쉽슴다. 팬분들과 같이 어울리고 싶었는데.”
선덜랜드의 사냥개가 아주 풀죽은 강아지··· 과장 좀 섞으면 유기견 같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옆에서는 요니가 나라 잃은 얼굴로 비행기 의자에 몸을 누였다.
원인은 심플했다. 우리 팬들은 이곳 모나코에서 하루 더 머무르며 축제를 즐길 예정이지만, 주말에도 리그 경기가 있는 우리 선수단은 먼저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당장에라도 팬들과 얼싸안고 날뛰려던 잭과 요니는 풀이 잔뜩 죽어 버렸다.
마음은 이해한다. 우리 팬, 그것도 해외까지 따라올 골수팬을 이곳에 놔두고 먼저 돌아가는 마음이 오죽하겠냐마는···.
주말에는 경기가 있다. 그것도, 절대 질 수 없는 경기가.
“알다시피 주말에 ‘그 팀’과 경기가 있는데··· 그날 빠질 사람은 팬들과 하루 더 놀다 와도 괜찮아.”
브라이언이 마치 악마 같은 미소로 선언하자, 주장단 자리에 앉아 있던 유기견들은 즉시 용맹한 사냥개로 돌아왔다.
“저는 원래 돌아가고 싶었슴다. 현관에 유니폼을 바꿔 달아야 하기 때문임다.”
“저도 그렇습니다. 더 빨리 돌아가죠.”
이해한다. 솔직히 더비는 못 참지. 그건, 구단 유스 출신에게는 일종의 종교이자 상식이며, 공을 차는 이유다. 하물며 오랜 라이벌이 새로운 구단주를 만나 부활을 꿈꾸는 마당이면, 더더욱 밟아 놔야 하고.
그래도 기왕이면 잭과 요니의 동기부여를 더욱 끌어올릴 필요가 있겠지 싶어서, 나는 슬쩍 태블릿을 내밀었다.
“너무 실망하지 마. 풋볼 스퀘어에도 팬이 있으니까. 설마, 스타드 루이에 따라온 분들만 팬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럴 리 있겠슴까? 천벌 받을 생각임다.”
잠시 후, 태블릿을 건네받은 잭과 요니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풋볼 스퀘어에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 앞에, 우리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마침 흘러나오는 드림스케이프의 축하 공연 영상에, 모여든 팬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들 일어나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구호에 맞춰 일제히 합창했다.
If you hate Newcastle clap yer hands.
Stand up if you hate Newcastle.
“당장 돌아가겠슴다.”
“그래야지··· 아, 그래도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진 말고.”
“박수는 됩니까?”
“그 정도야 뭐, 비행기 이륙하는 데 지장 없겠지.”
잠시 후 주장단과 구단주의 열렬한 박수 속에서 비행기가 출발했다.
* * *
한편 인터넷은 발칵 뒤집혔다. SNS부터 커뮤니티까지 아주 난리다. 덕분에 비행기 안에서 아주 시간 가는 줄 모를 뻔했다.
- 시즌 중이니 선수단은 바로 돌아오겠지?
- 이번엔 선덜랜드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나?
ㄴ 유로파와 챔스 먹고는 카퍼레이드로 뉴캐슬어폰타인을 횡단했고··· 4강 때는 미들즈브러에 비행선 띄웠다면서?
ㄴ 그럼 조만간 로켓 쏘겠네. 썬 정도면 스페이스 뭐시기 지분 있지 않을까?
SNS 반응을 중계하던 희주가 피식거렸다.
“얘들이 뭘 모르네. 우리 오빠가 어떤 사람인데 로켓 쏘겠어?”
그렇지. 얘가 뭘 좀 아네. 항공우주 쪽 지분투자로는 이미 재미를 많이 봤고, 지금은 차익실현까지 끝낸 상태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희주가 덧붙였다.
“로켓은 수천 발을 쏴도 뉴캐슬어폰타인에선 안 보이잖아.”
그래서 안 쏜다는 소리였냐. 난 또 뭐라고.
“안 보이냐?”
“땅에서 보이게 쏘면 그건 미사일 아니야?”
“어··· 나중에 국방부에 물어보자.”
사실 이번에는 에어쇼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돌아가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하니까.
대신 로지머스 기지의 비행기를 섭외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하면 비행기 날아오는 길에 뉴캐슬어폰타인 위를 지나거든. 아주 깔끔하게.
그런데 매사가 항상 깔끔하게 끝나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우선 SNS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았다. 언제나처럼 ‘너희 팀은 트로피 없지?’로 놀리고 상대가 맞받아치는 정도를 생각했는데, 올 시즌은 어째 분위기가 많이 과열된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 팀’ 구단주가 바뀌면서 상당한 투자를 했기 때문이겠지만, 조르디들 반응이 평소보다 훨씬 드세다.
- 우리도 이제 돈 있어. 돈으로 산 트로피 따위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지.
“뭐? 돈으로 사?”
나는 무덤덤했지만, 옆에서 희주 눈썹은 꿈틀거린다.
- 아, 그러고 보니 너희들 풀주전 냈더라? 토요일에 뒷감당할 자신은 있음?
ㄴ 물론 로테이션으로도 뉴캐슬 따위는 충분함.
뒤쪽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SNS를 확인한 샐리와 브라이언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전해졌다.
“원칙대로라면 이런 컵 대회 결승 직후에 만나는 중.하.위.권 상대로는 로테이션이 정석이긴 한데··· 우리가 꼭 그래야 할까요?”
샐리의 의문에, 브라이언이 곧바로 코웃음을 쳤다.
“어.림.도.없.지. 전력으로 밟아버릴 거야.”
나도 동감이다. 설령 우리가 주중에 치르는 경기가 챔스 결승전이라도, 주말에 뉴캐슬을 대충 상대할 생각은 없는데 말이지.
- 그렇게 까불다가 토요일에 지면 울지나 마라.
ㄴ 불가능할 것 같은데?
ㄴ 하긴 불가능하겠지. 어떻게 안 울겠어. 선덜랜드 애들 잘 우는 건 다큐멘터리만 봐도 뻔하잖아.
유치한 설전.
요새는 초등학생도 이렇게는 안 싸울 것 같긴 하지만, 이런 유치한 이야기로도 치가 떨리는 게 더비 라이벌이라는 사이의 복잡함이다.
나는 굳은 얼굴로 전화기를 들어,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 대기 중인 조엘에게 연락했다.
“조엘?”
“네, 구단주님.”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는 그에게, 최대한 냉정한 목소리로 지시하려 노력했다.
“공항에 세운 버스 전부 치우세요.”
“네?”
“다른 버스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러자 조엘이 뭔가를 눈치챘다는 것처럼, 은근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아, ’그거’ 말이군요.”
“네. ‘그거’요.”
나와 조엘이 말하는 ‘그거’는 프리시즌 때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서 한번 만들어둔 물건인데, 지금은 우리 창고에 들어가 있다. 만들 때는 다들 낄낄거렸지만, 막상 실제로 굴리자니 너무 유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리석었다. 라이벌을 놀릴 땐 유치할수록 효과가 좋은 건데.
‘그거’, 다른 이름은 ‘스페셜 땡스 투 뉴캐슬’ 호를 대령하라는 내 지시에, 조엘은 신이 나서 버스를 뉴캐슬 국제공항에 세웠다.
“어··· 저걸 꼭 타야 해요?”
희주와 샐리의 표정은 처참했지만, 우리 선수단에게는 대체로 호평이었다. 뭐, 남자들은 나이가 몇 살이라도 장난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말이지.
아, 물론 여자 중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입이 귀에 걸린 리지 윌리엄슨 양 같은 케이스가.
그러니까 뉴캐슬 관계자들도 부디 기뻐해 줬으면 하는데.
* * *
쿵-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가 뉴캐슬 회장 집무실을 가득 메웠다. 튼튼한 고급 마호가니 책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소리는 굉장했다. 주먹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그리고 책상을 내려친 장본인, 뉴캐슬 감독 시어러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상대적으로 보드진은 훨씬 침착했다. 회장 나지프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얼굴로 응수했다.
“책상을 좀 더 싼 거로 바꿀 걸 그랬군요.”
“이봐, 그럴 땐 비싸고 튼튼한 거, 주먹으로 내려쳐도 꿈쩍도 안 하는 놈으로 바꾼다고 하지 않나?”
나지프가 미소를 지었다.
“그야 아무리 명품 책상이라도 감독님 주먹보다 귀하진 않으니까요. 차라리 책상이 부서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내 주먹은 괜찮아··· 괜찮지 않은 건 마음이야. 그 망할 놈들이 기어이 슈퍼컵을 들었어!”
“그야 예상대로의 결과잖습니까? 지금의 선덜랜드 전력으로, 슈퍼컵을 못 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죠.”
줄곧 차분하게 응수하면서도 나지프는 눈앞의 사내가 왜 분노에 떠는지를 알고 있었다. 슈퍼컵을 차지한 선덜랜드가, 이번에도 퍼레이드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시즌 중이라 규모는 나름 줄여서 운영했지만, 대신 에어쇼가 더해졌고, 버스 모양도 전보다 훨씬 화려하게 꾸몄다. 마치 놀이공원의 차량 같은 느낌으로, 지붕 위에 트로피 모양 조형물을 설치한 것이다.
물론 조형물이 챔스, 그리고 슈퍼컵 트로피임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다른 무엇보다 버스에 내건 현수막이 기묘하게 사람 속을 긁었다.
[스페셜 땡스 투 뉴캐슬]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외교적 수사를 벗겨내면, ‘느 집엔 트로피 없지?’라는 소리가 될 것이다. 뉴캐슬 로컬 시어러가 격노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공항을 옮겼으면 좋겠어. 빌어먹을.”
“챔스 때는 가드 오브 아너를 지시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시어러는 의외로 순순히 수긍했다.
“그랬지. 이번에도 시켰어. 아직 전력이 밀리니, 속이라도 부글부글 끓어야 해볼 만할 게 아닌가.”
사실 이번 슈퍼컵을 대하는 선덜랜드의 자세는, 숙적 뉴캐슬의 감독을 맡은 시어러조차 살짝 감동했다고 밝힐 정도였다.
작년에 자신들을 탈락시킨 유베 유니폼을 숙소에 걸었고, 챔스에서 만나 복수한 이후에도 떼지 않은 채 이번 슈퍼컵을 맞이했다.
그리고 경기 내내 상대를 얕보는 모습은 단 1분도 보여 주지 않았다. 지난 시즌 챔스 우승팀이라는 명백한 탑독 포지션인데도.
오죽하면 경기를 지켜보던 시어러조차
[저 팀 연고지가 선덜랜드가 아니었다면, 혹은 내가 조르디가 아니라면 존경했을 거야.]
라는 코멘트를 남겼을 정도다.
물론 ‘그 팀’의 연고지가 바뀐 적도 없고, 시어러의 출신과 커리어에도 변함이 없으니 라이벌 관계는 당분간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선수들은··· 동기부여가 좀 된 것 같으십니까?”
“뭐, 각양각색이지. 외부에서 영입된 베테랑은 의도를 이해하니까 잠자코 따라 주려 하고, 오래 머물던 로컬들은 아주 사생결단 낼 기세인데··· 개중 아무 생각 없는 놈들이 있어.”
시어러의 설명에, 나지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까진 태도가 바뀌었으면 좋겠는데요. 아니면 다른 선수를 알아봐야 할 테니까요.”
“뭐, 올겨울은 넘어가자고. 한 시즌에 너무 많은 선수를 바꾸면 조직력이 살아나지 않아.”
“하긴, 그래서 선덜랜드 구단주도 점진적으로 선수단을 바꿔 나갔죠.”
그 이야기에는 시어러가 조금 질렸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럴 때 보면 헷갈린단 말이야. 자네가 대체 우리 회장인지, 아니면 선덜랜드 회장인지.”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저는 사우디보다 아부다비나 카타르 실정을 더 잘 알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싸울 수 있으니까요.”
“으음.”
고개를 끄덕이는 시어러에게, 나지프가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떻겠습니까? 해볼 만합니까?”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좋은 조건이지. 우리 홈이고, 저쪽만 주중에 한 경기를 더 뛰었어. 심지어 풀주전을 내보냈고.”
“지금이 절호의 찬스라는 뜻이군요.”
“그렇지. 특히··· 이기고 싶어서 실수까지 했거든. 슈퍼컵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겠지만, 오른쪽에 너무 과투자했어.”
“아아. 그렇군요.”
나지프는 곧바로 시어러가 말한 의미를 이해했다.
선덜랜드에서, 라이트윙 자원은 메시와 스티븐이다. 그 두 사람 모두를 슈퍼컵에서 풀타임으로 뛰게 한 이상, 선덜랜드는 오른쪽 윙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한다.
선수의 스쿼드도, 전술도 그만큼 제한될 것이라는 설명에, 나지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 * *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분석팀에도 돈을 엄청 썼을 테니.”
브라이언은 북쪽 창문을 흘끗 응시하며 키득거렸다. 북쪽은 당연하게도 ‘그 팀’의 본거지, 뉴캐슬어폰타인이 있는 방향이다.
그 옆에선 샐리가 악당 같은 표정을 지었는데, 만화에 나오는 악의 여간부 역할 맡기면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주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옆에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갑부 오라버님? 대체 이 악당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해설 좀 해 줘.”
희주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샐리가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어머 악당이라뇨? 저는 지략과 통솔력으로 악을 물리치는 미모의 전술가··· 그러니까 잔 다르크 같은 존재인데요.”
아냐. 잔 다르크는 그렇게 웃지 않았을 거야.
“샐리 씨, 근데 그 잔 다르크는 영국군 깨부수는 게 특기 아니었나요?”
“그래서죠, 비서님.”
영국에서 일해서 그렇지, 그녀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실수를 깨달은 희주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여동생의 실수를 무마할 겸, 나는 재빨리 화제를 원래대로 돌렸다.
“바보가 아니라면, 슈퍼컵을 치르면서 우리의 오른쪽 윙포워드 주전이 소모되었음을 눈치채겠지. 그렇다면 상대는, 아마 우리가 다이아 4-4-2로 나올 거라고 예상했을 거야.”
“어째서?”
“윙어를 쓰지 않는 포메이션은 그 외에도 여럿 있지만, 우리는 윙어 없이는 항상 다이아 4-4-2를 썼거든.”
“하긴, 개막전에도 썼지?”
“그래서야.”
잠시 후 나는 짧게 설명했다. 어차피 추측성이지만, 그래도 정답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만일 틀렸다면 샐리나 브라이언이 곧바로 정정했을 텐데, 두 사람은 그저 미소를 지은 채 나와 희주를 바라보는 중이었으니까.
설명을 들은 희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진짜 악당들이네.”
아니, 나는 그냥 해설만 한 건데? 그리고 나가서 길을 막고 물어봐. 다 뉴캐슬이 악이라고 할걸?
아무튼 ‘그 팀’과 우리는 가위바위보 하나도 질 수 없는 사이니까, 이 정도 대비는 필요한 법이다. 하물며 상대의 가용 자금이 늘어나고, 스쿼드가 대폭 강화된 직후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그 팀’과의 더비 경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두 팀이 창단된 이래 162번째, 내가 구단을 인수한 이후로는 일곱 번째 타인위어 더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