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18화 (318/422)

318화 코인 토스조차 질 수 없는 사이 (3)

우드 부부와 크리스, 핫도그 사내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경기를 직관했지만, 브렌든은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 남기로 했다.

같이 가자는 권유를 거절하며, 그는 몇 가지 핑계를 내세웠다.

[아니, 맥주집 친구만 남겨두고 어떻게 가겠나?]

[이봐, 언젠 안 그랬나? 자네는 원래 해외 원정마다 날 두고 나갔어.]

맥주집 사장의 항의를 슬며시 무시하며, 브렌든은 또 다른 명분을 꺼냈다.

[게다가 조르디 놈들이 난리 피우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크리스는 무사히 데려와야 할 거 아닌가? 아무리 핫도그 자네가 한주먹 해도, 아기를 지키려면 짐이 적을수록 좋겠지.]

그 시점에서 다들 눈치채고 말았다. 결국 브렌든은 ‘조르디를 배반한’ 것으로 유명해졌으니, 뉴캐슬 홈에 직관 가기 찔려서 이런다는 걸.

사실은 퍽 현명한 생각이었다. 그를 알아볼 조르디가 적지 않았기에. 정작 본인은 퍽 아쉬워하는 중이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갔을 텐데!”

4-1로 압승했으니, 이런 경기는 현장에서 봐야 제맛이긴 했을 것이다. 브렌든은 아쉬움에 혀를 차며 SNS 반응을 살폈다.

-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 항상 이기란 법은 없다.”

팀워크나 동기부여 같은 요소를 강조하는 축구계의 오랜 명언 중 하나를 인용했는데, 프로필 사진을 보아하니 뉴캐슬 팬이 분명했다.

자기 딴에는 스쿼드가 더 좋은 선덜랜드가 꼭 이기란 법은 없다는 식으로 써먹으려던 모양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반대의 그림이 나오고 말았다.

뉴캐슬은 참패했고, 선덜랜드가 승리했다. 심지어 팀워크도, 동기부여도 선덜랜드가 훨씬 뛰어났다.

브렌든은 재빨리 글을 박제한 다음 조리돌림을 실시했다. 그러자 곧바로 댓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ㄴ 그만해라. 애 울겠다.

ㄴ 축구로도 패 놓고 SNS로도 패네. 진짜 살벌한 놈들.

이겼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분위기가 순식간에 선덜랜드 쪽으로 돌아섰다. 이 정도면 경기장에 못 간 아쉬움을 풀었지 싶었던 브렌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조금 다른 글이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 선덜랜드가 살벌하긴 살벌한가 봄. 현장 직원이 그러는데 지금 원정 드레싱룸 분위기 장난 아니라고 함.

ㄴ 홈팀이 아니고?

ㄴ 홈팀은 감독 혼자 극대노 중이고, 원정팀은 다 같이 반성 중인 것 같대.

ㄴ 현장 직원이면 뉴캐슬 아님? 원정팀 분위기를 뉴캐슬 직원이 어떻게 암?

ㄴ 그 왜, 세인트 제임스 파크 원정팀 드레싱룸은 잘 안 닫히잖아.

혹자의 표현으로는 콘크리트 벽에 못질 좀 해 둔 수준이다. 축구판에서 원정팀을 홀대하는 건 오랜 전통이지만, 세인트 제임스 파크처럼 노골적인 경우는 드물다.

- 근데 이쯤 되면 더비라고 부르기 민망하지 않음?

ㄴ 그러게. 세상에 어느 더비에서 한쪽이 7연패를 함?

* * *

경기가 끝난 직후, 나는 스태프들로부터 몇 가지 보고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키워드 유입률은 브렌트포드전과 비슷합니다. @프레스팀_아벨]

[글로벌 시청률도 개막전하고 얼추 비슷해. @프레스팀_애니]

개막전과 비슷한 정도란 말이지?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곧바로 전화를 들어 시설관리팀에 연락을 보냈다.

“아 맞다. 조엘. 모처럼이니까 ‘그거’ 타고 이동하고 싶은데요.”

[즉시 대령하겠습니다.]

옆에서 희주의 눈이 불안하게 굴렀다.

“오빠, 혹시 그··· 트로피 붙은 버스 말하는 거야?”

“당연하지.”

시티 오브 선덜랜드와 뉴캐슬어폰타인은 기껏해야 차로 30분 정도 거리일 뿐이고, 축구 경기를 치렀으니 평소보다 교통체증이 심하겠지만, 그래봤자 한 시간을 넘기진 않을 것 같다.

도발하기엔 시간이 조금 짧아서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오빠, 꼭 그럴 필요 있어?”

희주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맥켐즈가 조르디 놀리는 데 굳이 이유까지 필요해? 블랙캣츠가 툰 까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어. 그냥 쿨타임 돌면 까는 거지.”

“그게···.”

“버스 생긴 게 정 싫으면, 따로 차 타고 오든가.”

잠시 망설이던 희주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괜히 자극하는 것 같아서.”

“왜, 훌리건들이 날뛸까 봐 그래?”

아무리 영국이 훌리건의 본고장이긴 하지만, 선수단 버스를 습격할 정도로 막 나가지는 못한다. 경호 인력도 있고, 경찰도 따라붙으니까.

“아이참, 오빠가 같이 타는 버스인데 훌리건 같은 거 신경이나 쓰겠어? 나는 그냥, 뉴캐슬 선수들이 정신 차리고 강해질까 봐···.”

“그래서인데.”

그러자 희주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굴 막 쓰기로 유명한 샐리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표정 변화였다.

“아니, 그 무슨 변태 같은 발상이야? 다미 언니한테 빨리 알려줘야겠네. 생각보다 훨씬 변태니까 조심하라고.”

“투자회사에선 이런 짓 안 해. 축구니까 하는 거지.”

“스포츠라서?”

“프로 스포츠라서.”

다시 말하면, 흥행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더비 라이벌전은 글로벌 흥행에 아주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엘 클라시코,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노스웨스트 더비··· 글로벌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더비를 치르는 팀들은 엄청나게 인기가 많다.

물론 기본적으로 그들이 기본적으로 명문 강팀이라 그렇겠지만, 저런 팀들은 몇 년 성적을 못 내도 팬베이스가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만들고 싶은 팀의 모습이기도 하다. 로컬과 글로벌 시장 모두에서 오래오래 사랑받는 명문 클럽.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매 경기 만석이고, 메가스토어 굿즈도 수시로 매진될 만큼 인기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로컬 팬들의 사랑. 이제 팀을 한 단계 더 키우려면, 글로벌 인기 구단 자리를 노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비 라이벌은 아주 좋은 발판이 되어 주겠지.

내 암시를 알아차린 희주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우리나라에도 그런 애들 많더라. 아주 현지인 다 된 것처럼 몰입해서. 주로 기존 인기 팀들 한정이지만.”

아직 해외에서는, 선덜랜드에 깊이 몰입해 주는 팬을 찾기 힘들겠지. 타인위어 더비만 해도 그렇다. 현지 팬들의 열기는 밀란 더비 이상이라고 평가받지만, 글로벌에서의 관심도는 넘사벽 차이가 난다.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와 뉴캐슬, 두 팀 사이의 격차가 라이벌리티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벌어졌기 때문이겠지.

나는 약간을 더 기다린 다음, 조엘이 준비한 우리 원정 버스에 올랐다.

창밖에 보이는 뉴캐슬어폰타인의 풍경은 적막했고, 사람들은 모두 침울했다.

4-1이라는 참혹한 결과 때문인지, 트로피 조형물이 주렁주렁 열린 우리 버스, 일명 [스페셜 땡스 투 뉴캐슬] 호를 보고서도 욕설을 퍼부을 기운조차 없는지 그저 소리 없는 눈물만 흘릴 뿐이다.

그나마 울음소리를 내지 않았던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겠지.

그 모습에, 기억 속의 풍경이 오버랩된다. 강등되던 날 우리 팬들이 울던 모습이. 내가 없던 선덜랜드가 무너지던 모습이. 자꾸만 예전 우리 팬들이 겹쳐 보여서 마음이 썩 편치는 않았다.

원수 같은 조르디가 우는 건데도.

[프리미어리그에 돌아오세요. 다시 한번 타인위어 전체를 검게, 붉게 물들여야 하니까요.]

그 말대로, 우리는 돌아왔다. 유럽의 왕으로서. 그런데 정작, 위에서 기다리던 라이벌은 이제 더비 라이벌이라기도 민망한 수준이 되어버렸다.

외치고 싶다. 기어 올라오라고. 타인위어의 축구를 노스웨스트보다, 런던보다 훨씬 뜨겁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창밖을 내다보던 희주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모습 보면, ‘그 팀’ 선수들도 정신 번쩍 들지 않으려나.”

“글쎄, 나야 모르지. 내 선수들도 아니고.”

“일부러 버스까지 부른 것 치고는 되게 쿨하시네요. 갑부 오라버님.”

“이건 어디까지나 선덜랜드 구단주로서 팀의 경제적 이득을 위한 최선의 대책일 뿐이고.”

“아, 네··· 그놈의 이득.”

희주가 뭔가 말하고 싶은 것처럼 이죽거리길래,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정신 차리든 말든 관심은 없는데, 확인은 하고 싶네.”

만일 팬들의 눈물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선수들이 뛰는 팀이라면··· 앞으로 상대할 가치도 없을 테니까.

* * *

선덜랜드의 원정 버스를 떠나보낸 직후, 뉴캐슬 회장 나지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선덜랜드 구단주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군요.”

그러자 감독 시어러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 그럴 리가 있나. 선덜랜드 구단주는 태어난 지역 이외의 모든 면에서 블랙캣츠야. 선덜랜드 이외의 유니폼을 걸친 적도 없고, 식성도 전부 노스이스트식이라고 들었어.”

“정어리 파이와 장어 젤리 빼면 말이죠.”

“심지어 그 친구는 영어에도 맥켐즈 사투리가 묻었지. 같은 외국인이라도, 자네 같은 제삼자가 아니란 말일세.”

나지프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로서는 맥켐즈 사투리가 조르디 사투리와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노스이스트 사투리 아니냐는 말을 꾹 눌러 참는 사이, 시어러가 분통을 터트렸다.

“뼛속까지 맥켐즈인 그 친구가, 우리 뉴캐슬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고?”

“버스 보셨잖습니까.”

“아무리 봐도 조롱의 손길 같던데? 그놈들이 검지 중지를 세워서 내밀었어도 지금처럼 열받지는···.”

“그래서 말씀입니다. 열받으라고 한 거잖아요.”

“···그렇군.”

시어러는 순순히 수긍했다. 마침 그가 회장 면담을 신청한 계기가, ‘졌는데도 화를 내지도 않는 선수들’ 때문이었으니.

그렇다고 굴욕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지, 뉴캐슬의 새 감독이 분노에 몸을 떨었다.

“패는 맛이 없다 이건가? 고맙긴 한데, 더 굴욕적이군.”

“네, 그런 의미도 섞여 있었을 겁니다. 말씀처럼 그 사람은 뼛속까지 맥켐즈니까요. 다만, 감정을 제쳐두고 보드진으로서 판단하면, 더비 라이벌은 팔팔하게 저항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흥행하거든요.”

“흥행이라··· 결국 돈 이야기였군.”

“아시다시피 이제 돈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는 세상 아닙니까. 저 같은 제삼자도 명확히 알 수 있는 건데···.”

“제삼자 드립 잘못 쳤다간 본전도 못 뽑겠군.”

졌다는 듯 시어러가 두 손을 들자, 나지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면담에 앞서 통보드리자면, 분석팀을 싹 갈아치울 겁니다. 코치진도요.”

“으음. 오늘 경기는 분석팀의 잘못은 아니었다고 보는데. 코치들도 관계없어. 그냥 내가 진 거야.”

“별수 없습니다. 지금 감독님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

“제 실책이기도 합니다. 사실 감독님이 선덜랜드의 브라이언 상대로 전술 싸움을 이길 수는 없죠. 진작에 좋은 참모를 붙여 드렸어야 했습니다.”

“···고마워해야 하는지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군.”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뜻은 없으니까요. 애초에 감독님 역할은···.”

“알아. 선덜랜드의 로저스처럼, 팀의 기틀을 잡고 나서 적당히 비키라는 거 아닌가?”

쓴웃음을 짓는 시어러를 향해, 나지프가 진지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조금 다릅니다. 감독님은 은퇴를 고민하시기엔 너무 젊죠. 그리고 팀의 레전드라 코치로 누구를 붙여 드려도 휘둘릴 이유가 없는 분입니다.”

“···바지 감독을 하라는 뜻인가?”

사실이지만, 팀의 레전드에게 대놓고 말하기에는 다소 모욕적인 어휘였다. 그래서 나지프는 다른 키워드를 재빨리 떠올리려 애썼다. 동기부여, 기강 관리, 마이크 워크 같은 것들을.

하지만 나지프의 노력은 곧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뭐, 바지 노릇도 상관없어. 내가 앉아 있는 동안, 선덜랜드를 꺾을 수만 있다면 말야.”

“선수들이 감독님 좀 닮았으면 좋겠군요.”

나지프의 푸념에, 시어러가 이를 드러냈다.

“그렇지 않은 놈들은 몸값 상관없이 전부 2군에 처박을 거야. 오늘은 그 소리 하러 왔네.”

* * *

“브로, 소식 들었어? 뉴캐슬 선수 일곱 명이 2군행이라던데!?”

브라이언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나중에 은퇴한 다음 펍에서 떠들 무용담이 하나 늘었으니까.

[젊었을 때 조르디 놈들 일곱을 2군으로 보내 버렸지.]

희주는 살짝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별수 없다. 브라이언은 뼛속까지 블랙캣츠니까. 그리고 소식을 듣자마자 입꼬리가 올라가는 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뭐, 그들을 우리 홈에 불러들일 겨울에는 제법 해볼 만한 경기가 되겠지. 기대되네. 아주 흥행하겠어.

반면, 샐리의 반응은 얼핏 무덤덤했다. 새침한 눈길로 브라이언을 흘겨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이미 다 끝난 경기인데, 뭐 하러 신경 쓰세요? 3라운드나 준비하죠.”

“어··· 그래.”

머리를 벅벅 긁으며 분석실로 이동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희주가 한마디 던졌다.

“역시 샐리 씨가 프로페셔널하네.”

“꼭 그렇지도 않을걸. 샐리는 태블릿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었거든.”

“뭐어?”

“애초에 샐리는 아버지부터가 구단 레전드시고,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경기만 봤던 사람이야. 뉴캐슬 싫어하기로 따지면 브라이언이나 나 못지않을 걸.”

“으이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희주도, 막상 가만 보면 입이 귀에 걸리긴 했다. 이 녀석도 블랙캣츠 다 됐단 말이지.

“그래서 갑부 오라버님. 우리 악당님들이 세운 계략대로 잘 풀릴 것 같아?”

“그거라면 곧 빛을 볼 거야. 이번에도 대승했으니까.”

마르틴, 메시, 스티븐이라는 걸출한 공격진을 보유하고도, 우리가 굳이 다이아 4-4-2로 경기를 치르는 이유는···.

리그에서 계속 이길 수 있는 팀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