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20화 (320/422)

320화 누구보다 빠르게 (2)

프리미어리그 3라운드가 끝난 직후, 뉴캐슬 분석실의 분위기는 침울하고 어두웠다.

주전 일곱 명을 2군으로 내려보낸 뉴캐슬은 브렌트포드와의 대결에서 비겼지만, 선덜랜드는 브라이튼을 시원하게 꺾어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브렌트포드는 원래 선덜랜드와의 개막전 맞대결에서 무릎을 꿇은 상대라, 뉴캐슬 관계자의 자존심을 더욱더 상하게 만들었다.

유일하게 차분한 인물은, 새 분석팀장 도슨이었다.

“상대의 수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방법은, 미리 읽는 거죠. 영화 같은 데서 나오는 초능력 중, 미래 예지가 유독 사기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 아닙니까?”

“선덜랜드 놈들이 읽고 있었다는 거지?”

감독 시어러의 퉁명스러운 반문에, 도슨이 침착하게 답변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유도한 것 같습니다.”

“유도?”

“앞선 두 경기를 통해 노골적으로 라인 내리라는 신호를 보낸 다음 세트피스로 득점했는데, 선발 라인업이 바스티아노와 크리그면 뻔하죠. 득점 직후 곧바로 마르틴을 낸 것도 그렇고요.”

“그렇다면 그 팀은··· 유도가 안 통하는 상대에겐 어떻게 나올 셈이지? 맨시티나 첼시, 리버풀 상대로 똑같은 수작을 부리진 못할 것 아닌가?”

“그 경우라면 아마 4-3-3으로 전환하겠지요. 그게 선덜랜드의 베스트 라인업이니까요. 강팀 상대로도 충분히 해볼 만한 조합임은, 작년 챔스를 차지하며 입증했다고 생각합니다.”

“레알, 뮌헨, 유베, 파리를 꺾었지··· 빌어먹을!”

튼튼한 새 마호가니 테이블을 주먹으로 두들긴 시어러가 으르렁거렸다.

“뭐, 그건 좋아. 챔스 디펜딩 챔피언이면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다만, 내가 가장 분통 터지는 점은 감히 우리 상대로도 그놈의 다이아 4-4-2를 냈다는 거야!”

“아마··· 그것도 유도의 일부였을 겁니다. 우리는 그 팀 상대로 라인 내리는 선택을 하지 못하니까요. 나름의 존중이겠습니다만.”

“···악마 같은 놈들.”

공교롭게도 시어러는, 선덜랜드 스태프가 뉴캐슬 관계자를 부르는 호칭을 똑같이 사용하고 말았다.

“좋아, 도슨. 지금 내용 잘 정리해서 선수들에게 브리핑해. 더비 라이벌에게 이렇게 깔보이고도 갚아주지 못하면, 축구 계속할 생각은 접으라고.”

시어러의 으르렁거림에, 도슨은 조용히 눈인사를 보낸 다음 분석실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구석에서 계속 조용히 듣고 있던 뉴캐슬 회장 나지프가 입을 열었다.

“어떠십니까?”

“아주 유능한 친구 같군. 뭐 하던 친구인가?”

“월스트리트에서 분석가로 일하던 친구입니다. 주식에 비하면 축구 경기의 데이터는 차라리 쉽다던데요.”

나지프의 답변에, 시어러가 몸을 떨었다.

“무시무시하군.”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그 논리대로면 선덜랜드 구단주는 무적이라는 소리 아닌가? 업계 최고로 꼽히는 투자가라면서.”

“뭐, 사실 현대 축구는 자본 싸움이니까··· 꽤 유리하긴 하겠죠. 심지어 그는 아직 실패한 적이 없다더라고요.”

“더 무시무시하군.”

“괜찮습니다.”

시어러와 달리, 나지프는 태연했다.

“상대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투자자라고 하면, 우리는 실패해도 상관없는 투자자거든요.”

“으음.”

암시를 알아차린 시어러가 신음을 흘렸다.

“네, 투자의 신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실패도 없었죠. 아주 위대한 투자자입니다. 하지만··· 사우디 국부펀드는,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석유가 마르기 전까지는요.”

“장기전을 가겠다는 뜻인가.”

“장기전을 가면 필승이지만, 그렇게까지 길게 끌지는 않을 겁니다.”

나지프가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우선 뉴캐슬어폰타인을 시티 오브 선덜랜드보다 훨씬 매력적인 장소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할 겁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원래 뉴캐슬어폰타인은 시티 오브 선덜랜드보다 크고 번화한 도시였거든요.”

* * *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건설회사 몇 군데가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불려갔다고 하더라고요.”

다미의 보고에 나는 그만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지만, 옆에서 듣던 희주는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다.

“오빠, 사우디에서 그렇게 나오면 사람 뺏기는 거 아니야? 상권과 유동인구가 넘어가면, 티켓 파워도 밀리게 되잖아.”

대답은 나 대신 다미가 했다.

“네. 그랬을 수도 있었겠죠.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만요.”

“늦었다고요?”

“사장님께서 무사히 티엠씨를 올리신 시점에서, 사실 심시티 싸움은 진작에 끝난 게임이 되었거든요.”

희주의 눈동자가 그야말로 물음표투성이가 되었다. 옆에서는 다미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노트북 하나 들고 티엠씨에 몰려와서 창업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성공하면, 그 회사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빌딩 지어서 나가겠··· 아, 그렇구나!”

이제 희주도 이해한 모양이다.

상업 지구? 물론 좋다. 멀티플렉스도 지어야겠지. 축구장 주변에 놀 거리와 즐길 거리를 풍족하게 만드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어떤 상업 지구도, 좋은 일자리가 넘치는 동네보다 매력적이지는 않다.

애초에 타인위어는 잉글랜드 북동부에 위치했으며, 수도 런던과의 거리도 상당한 곳이다. 즉, 변두리라는 뜻이다.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에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그러니, 지역 자체의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갑을 채워 줘야지. 게다가 TMC 입주 기업의 성공은 내 투자 수익률로 이어지니, 완벽한 선순환 구조인 셈이다.

다미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지금쯤이면 그 팀 관계자들은 사장님께 미래 예지 능력 있는 거 아니냐며 깜짝 놀라지 않을까요? 사실은 미리 판을 짜시는 건데 말이죠.”

사실은 이마의 숫자를 보는 건데.

“그럼, 혹시 다미 언니가 와 있는 이유도···.”

희주가 본격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기분 탓인지 약간의 존경심도 섞인 것 같다.

마치 뉴캐슬의 수를 두 시즌 전에 미리 읽고 포석을 두어 놓고, 움직임을 보이기 직전에 유능한 오른팔을 불러들여 대비하는 천재 투자자 같은 느낌을 받고 있겠지.

희주 얘는 지 오빠를 더욱 존경해야 마땅하겠지만,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이번 일은 예측과는 별 상관이 없다. 내가 TMC 지을 때는 뉴캐슬 구단주가 바뀌기 전이었고, 다미는 콜라 광고 때문에 알아서 왔거든.

뭐, 다미에게 시킬 만한 일은 언제나 많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다미가 배시시 웃으며 서류를 내 책상 앞에 올렸다.

“사장님, 이번에 TMC 입주 기업 중 추가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이 있어 보고드립니다. 풋볼존인데요.”

“풋볼존이요? 꼭 골프 업체와 이름이 비슷한 거 같은데요.”

“희주 씨, 원리도 비슷해요. 배팅 센터나 스크린 골프장처럼, 축구도 비슷한 게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발상에서 출발한 기업이거든요.”

보아하니 이번에 시제품이 완성되어, 테스트 목적으로 로드샵을 운영하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잠시 서류를 훑어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네. 진행시켜.”

* * *

그런 우여곡절 끝에 새로 개업한 스크린 축구장 입구에서, 잭과 에이미가 딱 마주쳤다.

약속을 잡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꽤 필연적인 만남이었다. 축구단 관계자로서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할 키워드였고, 혹시라도 재미있는 곳이면 팬에게 소개하겠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팬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두 사람이, 누구보다 빠르게 이곳에서 마주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잭과 에이미는, 자연스럽게 함께 입장하게 되었다.

“세심하네요. 축구화도 발 크기에 맞춰 빌려주는 것 같고··· 여성용 신발도 있네요?”

에이미가 라운지를 살펴보는 사이, 잭은 입구에서 사용료를 지불하려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잭을 알아봤는지, 직원이 입만 뻐끔뻐끔거렸기 때문이다.

잠시 후 직원은 돈을 안 받겠다며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잭이 피식 웃었다.

“저희 어머니도 장사하셨슴다. 단골이라고 돈 안 받기 시작하면 영업이 안 됨다.”

“아뇨. 그게···.”

“돈 안 받으시면 저도 두 번 다시 안 올 검다.”

엄청난 강수였다.

아무튼 잭은 선덜랜드 축구단 최고의 인기 선수고, 선수 이외까지 폭을 넓혀도 구단주 이희성과 1, 2위를 다툰다. 그런 잭이 ‘두 번 다시 안 온다.’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강력한 수는 찾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못 받습니다. 봐주십쇼.”

직원이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벽면을 가리켰다.

[선덜랜드 선수 이용료 무료. 구단 직원 50% 할인.]

“어···.”

“저희 풋볼존은 그, 구단주님이 투자하신 곳이라서요.”

“구단주님이 말임까?”

잭이 입맛을 다셨다.

종종 까먹을 때가 있긴 하지만, 선덜랜드 구단주 이희성은 사실 축구단 구단주가 아니라 투자자로 훨씬 유명한 인물이었다. 축구 관련 신사업에 투자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이희성이 투자했다면, 구단 관계자에게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약속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옆에서 에이미가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냈다.

“저는 구단 직원이니, 그럼 50% 할인가로 이용할 수 있겠네요?”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손으로 벽을 가리켰다.

[위의 혜택은 동반 1인까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결국 둘 다 무료라는 뜻이다. 그래서 둘은 무료로 입장했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게임 룸에 들어갔다.

바닥에 깔린 인조 잔디의 품질이 좋았다. 매일 천연 잔디 위에서 훈련하는 잭의 발에도 촉감이 크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직원이 재빠르게 설명했다.

“프로 축구단에서 연습용 그라운드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잔디를 설치했습니다. 선덜랜드 관리인님의 자문도 받았고요.”

“리지 씨가 개입했으면 이 정도 품질도 당연하겠네요.”

에이미의 표정도 밝았다.

직원이 뭔가를 조작하자 화면에는 축구장의 풍경이 떠올랐고, 잔디 위에는 흰 선이 피어났다. 아래에 조명을 깔아 둔 모양이다.

“바닥의 선은 화면과 연동되어 몇 가지 패턴이 표시됩니다. 지금 보시는 패턴은···.”

“페널티 스폿이네요.”

에이미가 재빨리 대답하자 직원이 미소를 지었다.

“축구단 관계자 앞에서 괜히 허튼소리를 할 뻔했군요. 세팅해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면 프리킥이나 코너킥 상황도 가능합니다만.”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는 세트피스 위주로 패턴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래도 실내에서 혼자 공을 차는 스크린 축구 특성상, 드리블이나 패스워크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옆에서 잭의 입이 열렸다.

“그냥 페널티 킥으로 하겠슴다.”

잠시 후 커다란 화면에는, 선덜랜드 골키퍼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는 하퍼 같다. 구단주가 투자해서 그런지, 실물과 꽤 비슷해 보인다.

에이미가 감탄했다.

“팬들이 아주 좋아하겠는데요?”

“네, 가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선덜랜드 선수를 상대로 페널티 킥을 찰 수 있다는 게 팬들에게 어필하고···.”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잭이 끼어들었다.

“혹시 상대를 바꿀 수도 있슴까?”

“네. 물론입니다. 다만 다른 팀은 선수 초상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아서 유니폼만 표시될 텐데요.”

“상관 없슴다. 변경 부탁드림다.”

“네. 어디로 바꿔 드릴까요?”

“당연히 ‘그 팀’임다.”

잭의 반응에 직원이 황급히 세팅을 바꿨고, 옆에서 에이미가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그러심까?”

“선덜랜드의 캡틴은 이럴 때도 선덜랜드구나 싶어서요.”

“그건 당연한 일임다.”

골대를 응시하면서, 잭이 담담하게 덧붙였다.

“기왕이면 요니랑 같이 오시는 게 나았을 검다. 킥은 저보다 요니가 훨씬 낫슴다.”

“하지만 PK는 캡틴이 훨씬 잘 차지 않나요?”

“어··· 그건 어차피 일종의 배짱 싸움 같은 검다. 지금은 의미 없슴다.”

실패에 대한 부담이나 중압감이 없는 상태라 딱히 긴장할 이유도 없고, 기계가 상대라 심리전도 의미가 없다고 설명한 다음, 잭의 몸이 천천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킥은 골대 구석을 정확히 때렸다.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떴고, 화면 속의 골키퍼는 분한 듯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쳤다.

“대단하네요. 역시···.”

“이런 조건에선, 프로라면 누구나 구석에 정확하게 꽂아 넣을 검다. 요니라면 온종일 차도 빗나가지 않을 거고, 축구의 신은 아마 럭비공으로 똑같은 플레이를 할 검다.”

“하지만, 그 선수들은 캡틴만큼 우리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지는 못하잖아요?”

“제가 로컬 출신이라 팬들께서 유난히 아껴 주시는 검다.”

담담히 대답하면서 잭은 계속 공을 걷어찼다. 그때마다 공이 골대 구석에 정확하게 날아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이미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단지 로컬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닐걸요.’

이런 게임에서조차 선덜랜드의 골대를 향해 공을 찰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거라고, 에이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캡틴에게 축구 재능이 없었더라도, 직장이 바뀌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직업은··· 선수가 아닌 스태프로 바뀌었겠지만.’

몇 번이고 화면 속의 뉴캐슬 골대에 공을 차 넣은 잭이, 에이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처럼이니, 에이미 씨도 차 보시겠슴까?”

“어머. 엄청 빨리 말해주네요? 당연히 저도 해 봐야죠. 직접 해 보지도 않은 걸 고객님께 추천할 순 없잖아요?”

“좋슴다. 하지만 하퍼 씨는 가상이라도 만만치 않을 검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도 당연히 ‘그 팀’을 상대할 건데요.”

에이미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대꾸하자, 잭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좋슴다. 특별 서비스임다. PK의 요령을 알려 드리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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