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누구보다 빠르게 (3)
“PK의 요령은 우선 시선 처리야.”
“시선 처리?”
호기심에, 클라라가 보석 같은 눈을 빛냈다.
“골키퍼의 눈을 똑바로 보는 거야. 절대로 눈 돌리지 마. 우리 분석팀에서 그렇게 알려주셨어.”
정작 조언과는 별개로 테오 본인이 시선을 살살 피하고 있었지만, 클라라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명랑하게 웃었다.
“아하하! 정말 고마워. 그런데 그거··· 이런 상황에서도 효과가 있는 걸까?”
클라라가 손을 척 들어서 풋볼존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러자 허를 찔린 테오는 일행 바르카를 잠시 바라보며 시선으로 무언가를 의논했다.
잠시 후 두 소년이 입을 모아 외쳤다.
“캡틴한테는 효과가 있을 거야!”
“있을 거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짐의 얼굴이 구겨졌다. 기분 탓인지, 스크린 속에서 골마우스 앞에 서 있는 선덜랜드 골키퍼··· 짐 하워드의 표정도 같이 구겨진 것만 같았다.
스크린 축구장, 풋볼존의 페널티킥 기본값은 선덜랜드로 세팅되어 있다. 디폴트 골키퍼는 하퍼지만, 꼼꼼한 개발자는 리델과 페르난데스, 그리고 짐을 선택할 수 있게 해 두었다.
그리고 의외로, 짐이 굉장히 인기였다.
일단 유소년이기 때문에 골키퍼 넷 중 가장 능력치가 낮게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 이유였다. 덕분에 청소년이나 여성 고객들에게 무척 어필 중이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테오와 바르카가 클라라를 끌고 온 것이다.
실제로 화면에 떠오른 짐의 모습을 본 클라라는 환호했고, 테오와 바르카는 배를 잡고 웃었다.
짐은 내심 생각했다.
‘요 녀석들 봐라.’
클라라에게 PK를 알려주겠다는 것은 핑계임이 틀림없고, 실상은 짐 자신을 놀려먹으려는 속셈이 역력하다.
애초에 클라라는 수술 이전부터 다소 병약하고 얌전한 성격의 소녀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고에서 회복하며 건강하고 활달해졌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다.
예상대로 클라라는 몇 번 휘적휘적 발을 휘두르다 말았다.
그 모습조차 짐의 눈에는 퍽 예쁘장해 보이긴 했다. 미리 연습했는지, 킥 동작은 선수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말 근사했다.
하지만 위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래도 혼자 거울만 보고 자세를 연습한 사람이 처음으로 공을 차면 임팩트를 정확히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반쯤은 다리 근력 문제겠지···.’
반바지 아래 드러난, 가느다란 클라라의 다리에 무심코 시선을 보낸 짐의 얼굴이 다시 붉어진다.
그에게는 안타깝게도, 클라라는 임시 교사 테오와 바르카의 가르침 하나는 끝까지 충실하게 지켰다··· 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클라라는 짐의 시선 처리에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뺨에 가벼운 홍조를 띤 채, 초승달 같은 눈으로 짐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 시선은, 작년 유스컵 우승으로 재능을 온전히 개화한 이래, 유소년 레벨에선 무적이라고 칭송받던 소년 골키퍼를 쩔쩔매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사이 테오와 바르카는 신나게 공을 걷어찼다.
“또 넣었다!”
“신난다! 이쪽 캡틴은 엄청 만만한데?”
일반인도 이용하는 공간이라, 골키퍼의 능력치는 실존 선수에 비해 꽤 너프된 상태였다. 덕분에 화면 속의 ‘가상 짐’은, 테오와 바르카 정도의 선수가 차는 킥에는 손 한번 못 대보고 실점을 허용하고 만다.
짐이 투덜거렸다.
“···너흰 그냥 훈련장에서 하지? 직접 상대해줄 테니까.”
“그야··· 캡틴은 요즘 너무 잘 막으니까 재미없어.”
“재미없어! 재미없어!”
“야, 언제는 이제 너희 캡틴 아니라며? 왜 캡틴이라고 부르는데?”
“디테일이 다른걸.”
“맞아. 잭 선수는 캡틴이고, 캡틴은 캡틴. 월터는 캡틴이야.”
자세히 들으니 캡틴이라는 단어의 억양이 조금씩 다르다. 자기들 딴에는 나름 구분하고 있겠지만··· 짐으로서는 알 게 뭐냐는 심정이 되고 만다.
게다가, 사실 짐으로서는 다른 이야기가 훨씬 더 신경 쓰였다.
‘너무 잘 막으니까 재미없단 말이지?’
무심코 미소가 지어지고 만다. 테오와 바르카의 성격상, 듣기 좋으라고 괜한 소리를 해줄 가능성은 없다는 걸 알기에.
유스컵 우승 이후,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은 스스로도 눈치채고 있었다. 예전보다 공이 잘 보이는 것 같고, 몸도 가볍다. 트로피라는 실적이, 조금쯤은 자신감을 붙여 주었기 때문일까.
짐은 화면 속에 비춘, 자신을 모델로 한 가상 골키퍼를 응시했다.
선덜랜드의 골키퍼 유니폼이 눈에 들어왔다. 풋볼존 라인업에서는, 페르난데스와 함께 단 두 명만이 입고 있는 1번 유니폼이.
축구를 시작한 이래 줄곧 동경하던 유니폼, 유소년 팀의 주장을 맡은 이래 줄곧 어깨를 무겁게 만든 등번호인데···.
···신기하게도,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 * *
스크린 축구, ‘풋볼존’은 원래 예상보다도 훨씬 인기를 끌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지점이 늘어나고 있고, 라이센스 계약을 맺은 선수들도 늘어나는 중이다.
뭐, 사실 잘 만들긴 했다. 나도 종종 애용할 만큼. 비가 세게 오는 날은 아무래도 공 차기 어려운데, 그럴 때 풋볼존에서 공 차는 게 아주 꿀맛이란 말이지.
조만간 풋볼존에 전문 스포츠 과학자를 동원해, 실내 트레이닝용 버전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시장성은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한 대는 팔릴 게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풋볼존 아니면 내가 언제 ‘그 팀’ 골키퍼 상대로 PK 펑펑 넣어보겠어?
풋볼존의 히트 소식에, 희주도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음, 여러모로 우리 선덜랜드를 따라 하려던 그 팀 회장도, 이건 못 따라 하지 않을까?”
“힘들겠지.”
풋볼존 같은 업체를 밀어주는 건 IT 스타트업 여러 군데에 투자한 나 같은 사람만 가능한 방식으로, 국부펀드는 태생적으로 초기 스타트업에는 투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 팀 회장 나지프가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그동안 지켜본 나지프의 구단 운영은 꽤 공격적이었고, 일 처리 솜씨도 훌륭했으니까. 게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실제로 며칠 안 되어, 나지프는 우리의 풋볼존을 겨냥한 대책을 내세웠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 종합 어뮤즈먼트 파크로? 뉴캐슬 회장은, 앞으로 축구와 엔터테인먼트는 결국 함께 즐겨야 할 요소라고 밝혀···.]
그 밑에는, 젊은 세대가 축구 대신 게임을 보는 경향에 대한 뉴캐슬의 해법이라는 식의 깨알 같은 멘트가 붙었다.
요약하자면 풋볼존 같은 건 못 만들지만, 대신 게임센터는 크고 웅장하게 만들겠다는 소리다··· 이걸로 날 상대하겠다고?
나름 애썼다만, 어림도 없다. 오죽하면 옆에서 희주도 잠깐 동정했을 정도다.
“아··· 게임은 안 될 텐데.”
잠시 후, 우리는 뉴캐슬 홍보 기사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응 기사를 냈다.
[선덜랜드 풋볼 스퀘어에서, ‘@쩔컨’과 직접 대전할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우리에겐 이미 세계 최고의 게이머가 있단 말이지. 축구게임의 신으로 통하는 사람이. 그리고 풋볼 스퀘어 옆에서는 한국식 피씨방의 위력을 보여줬고.
나지프가 준비한 종합 어뮤즈먼트 파크 계획은 그렇게 시작도 전에 좌초되었다. 그 대신, 뉴캐슬에서는 경기장 옆에 영화관을 오픈하겠다며 떠들었다.
[축구 관람은 일주일에 하루만 즐길 수 있는 취미죠. 그나마도 시즌오프에는 이적 소식 말고는 아무것도 즐길 수 없는 스포츠고요. 그래서 저희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영화관을 추가로 열기로 했습니다!]
뉴캐슬 회장이 직접 TV에 나와 발표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나지프의 주장 자체에는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유능한 인물임은 확실하다. 아쉽게도 마무리는 조금 약한 느낌이지만.
“얘들은 하필이면 영화를 골라서.”
상황은 이해한다. 합리성도 있다. 축구와 영화는 서로 보완하는 부분이 많으니까. 실내와 실외라는 특성 때문에, 축구 보기 좋지 않은 날은 대체로 영화 보긴 괜찮은 날이 된다.
경기장 옆에 멀티플렉스를 지어서,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오는 걸 습관처럼 만들려는 계산일 것이다. 내가 수시로 풋볼 스퀘어에서 각종 이벤트를 여는 것과 같은 이유다. 나름대로 내 경영 방식을 꽤 성실하게 공부했다는 점이 느껴진다.
희주가 눈을 빛냈다.
“아, 오빠 또 그 표정 짓는다!”
“무슨 표정인데?”
“브라이언 씨나 샐리 씨가 전술 이야기할 때 표정. 특히 상대의 수를 역이용해서 통수칠 때 얼굴하고 똑같아.”
“어··· 그랬나.”
사실 그렇게 거창하게 통수칠 것도 없는 문제다. 한국인 상대로 게임센터 시설을 지어서 승부 보려던 계획이 어리석었던 것처럼, 리미트리스 오너 상대로 하필 영화관 지어서 경쟁하겠다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니까.
“얘들은 내가 어디 주주인지 잊어버린 건가?”
“어··· 그건 사실 다미 언니 말고는 아는 사람 없을걸? 지분 가진 회사가 어디 한두 개여야···.”
“그건 그래.”
사실 가끔은 나도 헷갈릴 정도긴 하지만, 아무튼.
“극장 받고, 컨텐츠도.”
나는 벽에 걸린 우리 유니폼을 응시했다.
슬리브 스폰서 자리에 올라간 넷플릭스 로고가, 오늘따라 유난히 빛나는 것 같았다
* * *
선덜랜드 유니폼을 입은 여성, 구단주 비서 이희주의 명랑한 목소리가 TV에 울렸다.
[OTT 최신 컨텐츠를, 오프라인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즐기는 방법? 풋볼 스퀘어로 오세요!]
광고를 본 나지프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이런···!”
나지프는 인내심을 끌어모아,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잠시 억제했다. 그렇다고 영원히 억누를 자신까지는 없었기에,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한참 아랍어 욕설을 퍼붓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타이밍을 맞춰 앞에 찻잔이 놓였다. 무슨 허브티인지 향이 좋았고, 살짝 진정도 되는 것 같았다.
옆에서는 비서 사만다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얼굴이 너무 안 좋으시네요.”
“솔직히 말하면, 좋을 일이 없지요. 저 괴물 때문에.”
축구 천재라는 브라이언-샐리 조합을 상대하는 뉴캐슬의 코칭스태프도 물론 곤욕스럽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처지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나지프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기 딴에는 나름 최대한 합리적인 전법을 준비해 꺼내도, 투자의 신은 언제나 유유히 카운터를 쳐 버린다.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어차피 축구로는 당분간 이길 수 없다는 것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이드라인 밖에서 이렇게까지 장난감 취급을 당하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기에, 굴욕이 더욱 컸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차를 들이켜며, 나지프는 애써 침착하려 노력했다.
“사실, 그 남자의 수익률은 업계 최고죠. 따라서 같은 돈이 들어가면 절대로 투자의 신을 이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 혹시 항복 선언인가요?”
기분 탓인지 사만다의 눈은 싸늘해 보였다.
뉴캐슬 레전드의 딸인 그녀는 태생적으로 조르디였다. 따라서 선덜랜드에 항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나지프도 마찬가지로, 항복할 수 없는 처지이긴 하다. 뉴캐슬과 선덜랜드 사이의 해묵은 감정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사우디 국부펀드 출신으로서, 리미트리스 수장에게 항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뇨. 그저 제 한계를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대책도요.”
“대책이요?”
“인력을 좀 늘려 볼까 합니다.”
나지프가 말하는 ‘인력’은, 사실 선수 이야기는 아니었다.
스쿼드 뎁스는 쉽게 늘지 않는다. 선수 몸값은 아주 비싸기도 하고, 규정에 따라 성인 선수는 최대 스물다섯 명을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선수들은 돈만 보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일반 직장인에 비하면 선수의 생명은 아주 짧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의 커리어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태프는 상황이 다르다.
프로 선수에 비하면 훨씬 인건비가 저렴하고, 인원수의 제한도 없다. 물론 구단 재정에는 부담을 주겠지만, 애초에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지금의 뉴캐슬에게 있어 직원 인건비는 일종의 푼돈이었다.
“선덜랜드의 운영은 기본적으로 소수정예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죠. 리미트리스의 운영 방침부터가 그렇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나지프의 이야기에, 사만다가 수긍했다.
“그렇다고 들었어요. 오죽하면 구단주가 자기 여동생을 비서로 쓸 정도겠어요?”
“뭐, 투자의 신이라 불리는 사내의 친동생이니 나름대로 능력이야 있겠지만··· 다시 말하면 투자의 신은 아주 유능한 인재 아니면 고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슬슬 나지프의 암시를 알아챈 사만다가 눈을 빛냈다.
“그리고 어지간한 일은 직접 개입해서 처리하죠.”
“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하루 24시간이라는 한정이 걸려 있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렇게 뉴캐슬 보드진은, 인력 충원이라는 키워드를 새로운 무기로 삼으려 시도했지만, 뜻대로 잘 풀리지는 않았다. 링크드인 위주로 필요한 포지션 몇 개의 채용 공고를 올리자마자, 선덜랜드 보드진이 바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FC 선덜랜드, 공개채용 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