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22화 (322/422)

322화 누구보다 빠르게 (4)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에 올라온 채용 공고에, 사만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회장실에 카메라나 도청기가 설치된 게 아닌가 싶다면서.

나지프가 쓴웃음을 지었다.

“뭐, 채용 문제는 우리 공고를 보고 나서 대응했을 것 같긴 합니다. 우리 공고가 먼저 떴으니까요.”

“하지만 타이밍이···.”

“그저, 일 처리 속도가 아주 빨랐던 거겠죠.”

나지프의 답변에 사만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타인위어 더비 매치에서 맞대결 끝에 패배했을 때보다도 훨씬 분한 표정이었다.

“저도 나름 일솜씨엔 자신이 있었는데요.”

나지프는 상황을 곧바로 눈치챘다.

사만다는 얼마 전까지 뉴캐슬의 구단주 비서였고, 지금은 회장 비서로 재직 중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선덜랜드의 구단주 비서 이희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셈이었다.

비서로 일한 경력은 엇비슷하지만, 그래도 구단주의 여동생이라는 이유로 채용된 이희주와 달리, 사만다는 나름대로 능력을 인정받아 뽑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채용 공고 관련된 일 처리에서 상대가 훨씬 앞서가는 모습을 보였으니, 어지간히 충격적이긴 했을 것이다.

나지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아뇨. 아마 이건 구단주 비서가 아니라··· 그 여자, 신의 오른팔이 개입했을 겁니다.”

“으음, 그렇군요.”

사만다의 표정은 여전히 미묘했지만, 자세히 보면 퍽 누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리미트리스의 넘버 투, 최다미라면 경력부터 업계에서의 평판까지 모든 면에서 사만다와는 급이 다른 상대니, 일 처리 속도가 조금 뒤떨어진다고 분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희미한 미소가 돌아온 사만다가 선덜랜드의 채용 공고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딱 한 가지만은 이해가 안 되네요. 대체 이··· 공개채용이라는 문구는 뭘까요?”

“글쎄요. 공개적으로 사람을 채용한다는 소리 같긴 한데···.”

“아니, 그럼 우리는 비공개인가요?”

“어, 그건 그렇네요.”

동아시아 기업의 공개채용 문화는 잉글랜드에서는 무척 낯선 것이었고, 사우디 국부펀드 출신의 엘리트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요소였다.

덕분에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도대체 선덜랜드 놈들은, 이번엔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지?’

* * *

노스이스트 저널의 담당 기자가 무심코 한마디를 던졌다.

“선덜랜드가 요즘 너무 잘 나가네요.”

기자의 말대로, 선덜랜드가 한창 잘 나가는 중이긴 했다.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에서는, 빌라를 잡아내며 4연승을 질주했고, 챔스에서도 ‘꿀조’를 뽑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선덜랜드가 챔스에서 꿀조인 이유는, 그들이 1포트이기 때문이다. 챔피언스 리그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선덜랜드는 1포트 팀 중에서도 탑시드를 부여받아, 가장 먼저 조추첨을 진행하는 영광을 만끽했다.

추첨 결과도 아주 좋았다. 2포트의 도르트문트를 제외하면 전부 해볼 만한 팀이었는데, 심지어 도르트문트조차 선덜랜드에 비하면 전력이 밀린다는 평가였다.

하물며 3포트의 벤피카, 4포트의 키예프는 꽤 만만한 상대에 가깝다.

“운이 좋았어요. 2포트에서 바르샤나 아틀레티코를 만날 뻔했는데, 천운이죠.”

기자의 발언에, 팀장이 피식거렸다.

“스페인 언론의 생각은 다르던데.”

“네?”

“라리가 팀의 대진운이 너무 좋대. 바르샤나 아틀레티코가 꿀조 뽑아서 다행이라고 할 정도야.”

“···바르샤는 뮌헨하고 같은 조잖아요. 어디가 꿀조라는 건지.”

“바로 지난 시즌에 그 뮌헨을 꺾고 올라간 디펜딩 챔피언보다는 훨씬 만만하지 않냐는 소리 하더라고.”

그러자 팀장이 지난 챔스의 대진표 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16강전, 바로 그 뮌헨을 잡아낸 팀이 선덜랜드라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뭐, 꼭 선덜랜드만 지칭한 건 아니겠지. 맨시티를 피한 것도 기분 좋았을 거야. 리버풀과 첼시는 같은 2포트라 애초에 신경 쓸 필요 없었을 거고.”

“그래도 선덜랜드 위상이 진짜 오르긴 했네요. 립서비스라도 고마운데요.”

기자의 반응에, 팀장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아마, 그래서 공개채용을 하려는 것 같긴 해. 팀의 위상이 엄청, 엄청 올랐으니까.”

“맞다. 그러고 보니 이 공개채용이라는 거는 도대체 뭐가 다른 거죠?”

기자는 뼛속 깊이 영국인이었으며, 아직 사회생활 경험도 부족했다. 심지어 담당 업무도 경제지가 아닌 스포츠지였으니, 공채에 대해 알 방법이 없었다.

그 점에서, 상대적으로 조금 유리했던 팀장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뭐,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단 선덜랜드라는 구단에서 일할 스태프를 뽑겠다는 뜻이지. 어느 부서에서 일할지는 나중에 정하더라도 말야.”

“아아··· 대충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이 통할까요?”

“지금까지는 안 통했지. 예를 들어 선덜랜드 CS팀은 사실, 선덜랜드 시설관리팀보다는 뉴캐슬 CS팀과 업무가 비슷하잖아.”

대답하면서, 팀장이 목을 움츠린다. 마치 무언가를 겁내는 것처럼.

“팀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듣자니 무서운 누님이 요즘 영국에 와 계시다고···.”

팀장이 말하는 ‘무서운 누님’을 떠올린 기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에 기자는, 상사의 뽐뿌질에 휘말려 이희성과 최다미의 스캔들을 쓰려다 한번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편집장이 곧바로 석고대죄를 했고, 신문은 전량 회수되었다.

그날 회수된 신문의 행방에 대해서는, 몇 가지 소문이 공존하고 있다.

혹자는 여의도 리미트리스 본사 부사장실 옆, 자료실에 보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감히 리미트리스에 대항하려는 자들을 징계하려는 목적으로 쓰이는 모양이라면서. 한편 최다미 부사장이 집에 가져간 다음 개인적으로 처분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진실을 확인할 방법은, 적어도 노스이스트 저널 신문사 멤버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자가 한숨을 쉬었다.

“그분은 구단주 스캔들만 안 실으면 이런 누추한 데는 안 오시잖아요.”

“누추한 곳!? 아니, 우리 신문사가 어디가 어때서!?”

“리미트리스 부사장실에 비하면 어디가 많이 어떻죠··· 왜요. 왔으면 좋겠어요?”

“엄청 미인이긴 하잖아. 오시면 광고도 좀 주시고··· 그럼 우리는 보너스 좀 받고.”

“어··· 그러려면 선덜랜드 공채가 좀 잘 풀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자의 농담 섞인 질문에, 팀장이 진지하게 답했다.

“생각해보니 잘 풀릴 거 같아. 투자의 신이, 심지어 자기 오른팔을 불러다 놓고 진행하는 일이 안 풀릴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어?”

논리적이지는 않았지만, 아주 놀랍게도 설득력이 느껴졌다.

* * *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리듬 좋게 서류를 척척 넘겼다. 그런데도 책상 위에 쌓인 서류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산더미 같은 서류는 전부, 우리 공채에 응모한 사람들의 이력서였다. 잉글랜드에서는 낯선 형태였지만, 이번 공채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사진에 보이는 숫자 또한 만족스러웠다.

선덜랜드라는 축구팀의 위상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겠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이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선덜랜드 축구단의 뒤에는, 리미트리스라는 세계 굴지의 투자회사가 붙어 있다는 것을.

“그나저나, 채용 프로세스 한번 간단하네. 구단주가 서류를 슥 훑는 게 서류 전형의 전부라니.”

예전에 희주는 내가 관상만 보고 사람 뽑는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는데, 사실 크게 틀리진 않은 표현이다. 그러니 희주의 반응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마의 숫자를 보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으니.

물론 이후의 면접은 실무자들이나, 축구단 팀장들이 진행할 것이다. 이번 채용 프로세스에서,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몸값을 보고 커트하는 부분까지다.

“어차피 관상 보고 데려올 거, 이력서는 왜 받았나 몰라? 번거롭게.”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 뽑지.”

정확히는, 일할 의욕이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한 목적이었다. 동아시아식 공채의 전제는, 직무보다 기업의 매력을 훨씬 높게 평가하는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니까.

“그런데 오빠, 왜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인력을 늘리는 거야?”

“그야, 그 팀 구단주가 바뀌었기 때문이지.”

희주의 의문에, 나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일부러 열 좀 받고 정신 차리라고 도발까지 하긴 했다. 더비 라이벌이니, 라이벌다운 위치에 머물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진짜 바람은 어디까지나, 선덜랜드가 우위에 있는 라이벌리티이다. 그러니 상대가 인재를 긁어모으려 하는 타이밍에는, 당연히 좋은 인재를 먼저 싹 선점해둘 필요가 있었다.

“아하, 이번에는 그런 명분인 거구나.”

희주가 뜬금없이 딴소리를 시작했다.

“응?”

“그야 정말로 그 이유 때문이었으면,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채용했어도 그만이잖아? 뭐 오빠는 선덜랜드의 위상이 예전보다 올랐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지만, 원래 스태프는 팀의 위상에 그렇게까지 구애받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도 오빠였지?”

나는 살짝 흥미로운 시선으로 여동생을 응시했다.

계속해보라는 내 시선의 의미를 눈치챈 희주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가장 좋은 인재는 전부 선덜랜드에서 데려가는 거지. 이건 오빠가 무조건 지키는 원칙이야. 리미트리스에서도 똑같이 하고 있다고, 다미 언니한테 들었어.”

“그리고?”

잠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희주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다음으로 좋은 인재는, 그 팀에서 데려가라는 뜻이지. 우리와 똑같은 방식을 따라 하면, 이번에 오빠가 채용하고 남은 인재를 싹 긁어갈 수 있을 테니까.”

만일 브라이언이었으면, 조금 다른 대답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우승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기왕이면 그 팀은 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겠지.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가 1위를 하기만 하면, 그 팀이 2위, 미들즈브러가 3위를 해도 상관없다. 그만큼 타인위어의 축구가 강하다는 이야기가 되고, 라이벌리티가 뜨거워질 것이며, 인재가 몰려들 테니까.

그리고 인재가 타인위어에 몰리기만 하면, 가장 우수한 사람은 전부 선덜랜드에서 데려올 수 있다. 사람의 가치가 보이는 눈이 존재하는 한,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인재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혹시 다미하고 통화했어?”

“안 했거든!?”

발끈한 희주가, 잠시 후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아니, 통화는 했지만 답을 들은 건 아니야. 내가 생각한 거라니까?”

“뭐, 그 정도면 훌륭해.”

웃으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도 서류를 들여다봤더니 마침 눈이 아프던 참이었기에, 시선은 저절로 창밖으로 향하고 만다.

“너도 아는 건데, 왜 이 친구들은 빨리 안 따라 하는지···.”

축구에는 특허가 없다.

아니, 있긴 하겠지. 훈련 장비나 유니폼 재질, 신발 같은 것에는 특허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술이나 구단 운영 방식에는, 특허가 없다.

예컨대 우리 전술에는, 리버풀의 클롭이 예리하게 갈고 닦은 게겐프레싱이나, 맨시티의 펩이 예술적으로 다듬은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 같은 기법이 녹아들어 있다.

그렇다고 클롭이나 펩이 브라이언과 샐리를 ‘표절’이라며 깠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구단 운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의 FSG가 성공한 이래, 그들의 ‘머니볼’ 운영 방식은 종목을 넘어 모든 프로 스포츠 구단이 참고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번에 우리가 실시하는 ‘공채’ 역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스포츠 프랜차이즈는, 무엇보다 팀을 사랑하는 스태프가 필요한 곳이기에.

자신의 직무보다, 팀이라는 직장을 훨씬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야만, 팬들에게 진심 어린 서비스를 해줄 수 있을 테니까.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나면, 아주 특수한 몇몇 보직을 제외하면 전부 공채로 뽑아 일을 가르치는 게 이득이라는 사실 또한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기왕이면, 그 팀이 먼저 알아차리기 바란다. 라이벌로서, 앞으로도 타인위어를 뜨겁게 달구려면 그 팀은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할 테니.

눈에 띄는 서류를 한쪽으로 따로 뽑아낸 다음, 나는 잠시 눈 주위를 지그시 눌렀다.

“기왕이면 그 팀이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잠시 후, 희주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어··· 공고 보니까 벌써 따라 하려는 팀이 나온 것 같아.”

“혹시 브렌트포드?”

“브렌트포드.”

예상대로다. 거기 운영은 유소년을 키우지 않고 사서 쓴다는 점만 빼면 우리와 아주 닮았으니까. 딱히 전통 명문도 아니라, 채용 방식을 바꾸는 데에도 저항감이 없을 거고.

“그리고···.”

희주의 입술이 달싹거리는 모습이 보여서, 한마디 던졌다.

“맨시티라고는 말하지 말아 줘. 올 시즌에 잡아내야 할 상대가 우리와 똑같은 짓을 하기 시작하면 피곤하거든.”

“맨시티 맞는데.”

“제길. 도청기 같은 게 들어온 건 아니겠지.”

농담처럼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희주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그 팀도 채용 공고를 새로 올렸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책상 위의 서류뭉치에서, 애매한 숫자를 전부 ‘서류전형 합격’ 쪽으로 옮겨 놓았다.

머리로는 그 팀과 공존해야 하는 걸 알지만, 그래도 가슴의 대답은 다른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블랙캣츠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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