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24화 (324/422)

324화 이제 누가 강팀이지? (1)

<오늘 잘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일 더 잘할 수 있다 - 위르겐 클롭>

[챔피언스리그 A조 1경기, 키예프 대 선덜랜드]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브라이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경기 내용은 물론, 경기 준비와 진행도 완벽했기 때문이다.

“구단에 직원이 잔뜩 늘어서 그런지, 요즘 우리 팀 일 처리가 좀 더 매끄러워진 것 같지 않아?”

샐리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예전에도 충분히 편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원정지원팀은 예전부터 세계 최고였고···.”

“그건 맞지만, 분석팀은 더 나아진 것 같아. 일단 자료가 예전보다 훨씬 직관적이던데.”

분석팀 이야기에, 전직 분석팀장 샐리의 눈썹이 세차게 꿈틀거렸다.

“그야 인포그래픽 디자이너를 뽑았으니까요.”

“어째 기분이 나빠 보인다?”

브라이언의 질문에, 새침한 미소를 짓는 샐리의 옆에서 델랍이 대신 대답했다.

“왜냐면 퀸 수석코치는 작년까지 분석팀장이었기 때문이잖나.”

“그게 무슨···.”

“델랍 아저씨.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요.”

샐리가 도끼눈을 뜨자, 델랍은 껄껄 웃으며 위치로 향했다. 잠시 델랍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샐리가, 그라운드 위를 향해 시선을 되돌렸다.

[키예프 0 - 1 선덜랜드]

아직 전반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선제골을 넣었다. 최근의 선덜랜드는 구단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그 평가에 걸맞은 경기력을 매일 보여주고 있었다.

샐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 인력 충원은 필요했죠. 이제 우리는 유럽의 왕이고, 매 시즌 여섯 개 대회를 뛰어야 하니까요.”

“여섯 개?”

“리그, 챔스, EFL컵, FA컵, 클럽 월드컵, 그리고 슈퍼컵이잖아요. 감독님, 혹시 숫자 못 세요?”

앞의 네 대회 출전은 사실상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었지만, 슈퍼컵과 클럽 월드컵은 사정이 다르다. 챔스 우승팀만 참여하는 특성상, 샐리의 이야기는 올해도 챔스에서 우승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야기를 듣는 코치진은 물론, 벤치의 선수들까지 기막혀 했지만, 샐리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뭐, 왜 같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후 브라이언이 입을 열었다.

“이봐, 숫자는 네가 잘못 셌어. 올해는 여섯 개지만, 내년부터는···.”

“어머, 감독님? 벌써부터 꽁무니 빼는 건가요?”

“···커뮤니티 실드를 넣어야 한다는 뜻이야.”

“아, 올해부터는 리그 우승도 중요한 목표였죠.”

감독과 수석 코치가 벤치의 스태프와 선수들을 살짝 질리게 만들었던 날, 선덜랜드는 디펜딩 챔피언다운 면모를 보이며 키예프 원정을 승리로 장식했다.

[키예프 0 - 3 선덜랜드]

선덜랜드 팬들 또한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 혈관에 탄산이 흐르는 듯한 상쾌한 경기!

ㄴ 어, 그거 썬이 찍은 광고 멘트 아니냐?

ㄴ 뭔 소리야. 구단주가 광고도 찍음?

* * *

“콜라.”

크리스의 발음은 또렷했다. 그렇다고 무슨 성우나 아나운서 같은 딕션까진 아니었지만, 일단 나이치고는 무척 훌륭하다.

아들의 성장에 만족감을 느낀 마일즈가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서는 수잔이 박수를 쳤다. 모처럼 구경을 온 앨리스가 엄지를 치켜든다.

“참 잘했어요!”

콜라 요구를 얼버무리려는 어른들의 시도는 통하지 않았다. 크리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콜라!”

표정도 그렇고, 숨을 고르는 모양새만 봐도 아주 제대로 난장을 부릴 모양이다.

마일즈가 두 손을 들었다.

“···그나마 제로콜라가 나은 거지?”

원래 크리스는 단것을 그다지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다. 충치 예방 차원에서, 단것에 입맛 들지 않도록 엄마 수잔이 철저히 관리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탄산은, 입에 댄 적도 없다.

그랬던 크리스가 콜라에 눈독을 들이게 된 계기라면, 역시 콜라 광고가 문제였다. 레전드 매치 때 뛰던 이희성의 경기 영상을 편집한 광고 영상이.

선덜랜드 유니폼을 입은 채 상쾌하게 제로콜라를 따서 마시는 이희성의 모습이 탄산이라고는 입에 대 본 적 없는 두 살짜리 소년 축구광을 매료했다.

그렇게 해서, ‘코아’로 시작한 크리스의 투정이 막을 올렸다. 중간에 잠깐 앨리스가, 못 알아들은 척 코코아를 가져다주는 시도를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마일즈가 사온 콜라를 아이용 컵에 조금 따라 주는 결말로 이어졌다.

“이거 뭐야.”

다행히 크리스는 탄산이 입에 맞지 않는지 곧바로 컵을 팽개치듯 내려놓았다. 다들 안도하는 와중에, 수잔이 앨리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신입을 많이 뽑았다면서?”

“네, 어쩌다 보니 저도 선배가 되었네요.”

입사 반년 만에 누군가의 선배가 되어버린 현실에 쑥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앨리스를 향해, 마일즈가 부드럽게 물었다.

“너희 부서에도 사람 늘어난 거니?”

“한 명이요.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와 협력하는 업무를 맡을 사람이 필요해서, 대외협력팀이 신설되었거든요.”

“그렇구나.”

이야기를 듣는 마일즈의 표정은 조금 어두웠다. 앨리스가 해외 출장에 조금 욕심을 내던 중이었음을, 그래서 나름대로 외국어를 이것저것 공부하는 중이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정작 앨리스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뉴캐슬어폰타인 사는 분이라던데요.”

“저런.”

뜻밖의 소식에 선덜랜드 골수팬 우드 부부의 얼굴이 굳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크리스가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한 모양이다.

겨우 두 살 때부터 이러니, 앞으로 좋은 블랙캣츠가 될 것 같다. 아니면··· 좋은 선수가 되거나. 그렇게 생각하며 앨리스는 살짝 웃었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브렌든 아저씨도 예전엔 조르디였다면서요?”

“그 친구는 사실 예전엔 좀 나빴어. 그리고 뉴캐슬어폰타인 살지도 않았고.”

옆집 사는 오랜 이웃을 태연하게 씹은 마일즈의 곁에서, 이번엔 수잔이 염려했다.

“애초에 선덜랜드 직원이 뉴캐슬어폰타인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야? 통근거리는 그렇다 치고, 그··· 주위에서 가만 안 둘 것 같은데.”

“첫 월급 받으면 바로 이사 온대요. 집 알아본다던데요.”

“그렇게까지 해서 선덜랜드에 온다고? 혹시 스파이 아니야?”

“에이, 그렇지는 않을걸요. 구단주님이 직접 뽑으셨으니까요.”

“썬이?”

그 말에 마일즈는 곧바로 납득했지만, 수잔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에이, 썬이 아무리 좋은 구단주라고 해도 스파이를 딱 보고 간파할 수 있겠어요? 조심해야지.”

의외로 진지한 수잔의 반응에, 마일즈 또한 진지하게 응답했다.

“아냐. 썬은 원래 투자회사 사장이잖아? 정보를 생명처럼 다루는 업계니까, 스파이를 심고 싶은 상대도 더 많았겠지.”

“하긴, 따지고 보면 뉴캐슬이 보낸 스파이라고 치면 스케일이 좀 작네요. 기껏해야 알짜배기 유스 선수 정보를 빼돌리는 정도겠죠.”

“맞아. 리미트리스에서 다루는 정보에 비하면 여러모로 저렴하지··· 그런 썬이 뽑은 거라면, 스파이를 걸러내는 요령도 있었을 거야.”

조금 안심이 된 것처럼 미소 짓는 우드 부부를 향해, 오히려 앨리스가 조심스럽게 경고했다.

“아무튼 두 분이야말로 조심하세요. 저희 이번에 사람 엄청 뽑았거든요.”

“···조심하라고? 대체 뭘?”

“그러니까 신상품개발팀과 CS팀이···.”

뜬금없는 경고를 알아듣지 못한 우드 부부를 향해, 앨리스가 차분히 설명하려던 찰나, TV에서 광고가 흘러나왔다.

선덜랜드의 마스코트 노릇, 물론 구단주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겠지만, 을 하고 있는 구단주 비서 이희주의 목소리였다.

[전설적인 선수를 여러분의 손안에! FC 선덜랜드가 선수 피규어, 리터치 한정 세트를 발매합니다!]

“어머?”

수잔의 시선이 TV에 쏠렸다.

그렇잖아도 수잔은 은근히 선수나 경기장 피규어를 열심히 모으는 타입으로, 이미 시판 중인 모든 선덜랜드 관련 피규어를 구입한 상태였다.

“화면빨이나 보정이 조금 들어갔다 치더라도 생동감이 상당한데요? 조형은 그대로인데, 어떻게 퀄리티가 이렇게 좋아진 거지?”

수잔의 감탄에, 앨리스의 입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아무튼 이제 앨리스도 선덜랜드의 스태프인 것이다.

“사람이 손으로 직접 덧칠한 거래요.”

“그렇구나. 어머, 저건 사야 해!”

수잔을 흘끗 바라본 마일즈가 짧게 한숨을 지었다. 이렇게 된 수잔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은 결혼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기에, 딱히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럼, 나는 뭘 조심해야 하는 거지?”

그러자 앨리스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마일즈 아저씨 요즘 살이 많이 찌신 것 같은데, 스낵바 쪽에는 절대로 가지 마세요.”

* * *

이번 공채는, 여러모로 팀의 활력소가 되었다. 우선, CS팀 인력이 대거 늘어나며 스낵바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존에는 주로 노점과 푸드트럭 위주로 힘을 주었다. 지역 상인들과 상생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래도 구단 내에서 판매하는 먹거리도 필요하다. 특히 우리 선덜랜드가 자랑하는 고오급 레스토랑, 리버뷰 브래서리로 연계하려면, 간식 라인업을 충실히 갖출 필요가 있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덕분에 경기장 곳곳에서 활기가 느껴진다. 덤으로, 쏠쏠한 자금줄도 되어 주고.

새로 뽑은 프레스팀원, 브루스도 맹활약 중이었다.

그는 선덜랜드 선수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구단 홍보 웹툰을 마구 찍어냈다. 덕분에 팬들은 선수들의 소소한 일상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덕통사고를 당해서 그만 굿즈를 더 사게 되는 거지. 지갑 열게 만드는 솜씨가 예술이라니까?”

희주가 놀리듯 말하길래, 나는 차분하게 응수했다.

“아드리안이 돈독이 오른 거야.”

“오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피식 웃고는, 희주가 덧붙였다.

“예전에는 솔직히 아이돌 그룹들 굿즈 파는 솜씨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했거든?”

“하긴, 그땐 너한테 많이 배웠지.”

“근데 이젠 아니야. 어지간한 아이돌 소속사보다 우리가 훨씬 굿즈 장사 잘하는 것 같아.”

내 생각에도 그런 거 같긴 하다. K팝 아이돌 드림스케이프 소속사가, 대놓고 우리 선덜랜드에 연수 좀 오면 안 되겠냐고 요청했을 정도니까.

“이번에 출시한 리터칭 피규어가 아주 악독함의 정점을 찍었지. 팬이라면 눈독 들일 퀄리티잖아? 근데 가격은 비싸. 그렇다고 안 살 수는 없지. 채색이 수작업이라고 하니까 명분도 확실하고.”

그렇긴 하다. 심지어 이번에 내놓는 리터칭 상품은 따지고 보면 일종의 재고였던 피규어에 도색만 새로 칠한 거니까··· 수익률을 따지면 아주 좋다.

“그런데 왜 내 피규어는 리터칭 제품이 안 나오는 거지? 혹시, 오빠가 방해하는 거 아니야?”

의심 섞인 시선이 돌아와서, 가슴을 탕탕 쳤다.

“아니 내가 그걸 왜 방해하겠어?”

물론 희주 피규어가 내 것보다 많이 팔리는 건 기분이 좀 그렇지만, 애초에 피규어 판매를 방해할 정도면 그냥 물건을 빼게 시켰을 것이다. 나는 구단주니까.

“오해야. 내 것도 안 내잖아.”

그저 리터칭 피규어의 특성 때문이다. 기존에 생산된 피규어의 위에 사람 손으로 채색을 고치는 특성상, 재고가 있는 상품부터 우선적으로 리터칭하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리터칭 피규어가 안 나오는 라인업은, 이미 충분히 잘 팔리는 제품이라는 뜻이다.

“흠, 인기 피규어라 재고가 달려서 그런가?”

진실을 거의 짚은 희주 덕분에 그만 뜨끔해서, 어쩐지 오늘따라 날카로운 여동생에게서 시선을 살짝 돌린다. 물론 희주가 올바른 결론을 내리는 일은 없었지만.

“에이, 아니겠네. 아무리 이 몸이 인기라도 잭이나 요니 선수보다 더 팔리진 않을 텐데.”

사실, 잭과 요니의 경우 피규어가 엄청 잘 팔리다 보니 제품 발주도 넉넉하게 하고 있다. 덕분에 이번에 리터칭 버전도 순조롭게 출시되었다.

그런 사연을 슬쩍 숨긴 채, 나는 딱 잡아뗐다.

“말했잖아. 네 피규어는 사실상 제사용품이라고. 챔스 조추첨 직전에만 판매량이 급증하는 제사용품! 그런 거에 누가 리터칭 버전을 사려고 하겠어.”

비서 피규어까지 사면서 힘을 모아준 팬들 덕분에 이번 챔스에서 꿀조를 뽑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래야만 해.

“···그렇단 말이지.”

희주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스마트폰 캘린더를 켜서 내게 내밀었다.

[FC 선덜랜드는, 이번 3라운드부터 EFL컵에 참여합니다!]

순간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이게 있었지.

챔스에 나가고, 리그 우승을 노리는 우리에게 있어, EFL컵은 예전만큼 절실한 트로피는 아니다. 만일 이제 와서 EFL컵에 주전을 내겠다고 하면 우리 팬들부터 반대 시위를 펼칠 게 뻔하다.

그래도 축구단의 목적은 승리다. 아무리 중요도가 예전보다 낮아진 대회라도, 내던지듯 할 수는 없다. 비록 스쿼드는 후보, 어린 선수, 로테이션 위주로 짜겠지만··· 그래도 이겨야 하는 게 축구단의 일이다.

그러니 대진운이 따라야겠지. 만만한 상대, 특히 하부 리그 팀 뽑으면 더욱 좋다.

“···제사용품 엄청 팔리겠네.”

실제로, EFL컵 3라운드 조추첨을 앞두고, 구단주 비서 피규어는 또다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그 덕분일까.

우리의 3라운드 상대는 위컴, 하부 리그 팀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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