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25화 (325/422)

325화 이제 누가 강팀이지? (2)

선수들을 둘러보던 위컴 감독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기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자 곧바로 당연하다는 듯한 시선이 돌아왔다. 사실 위컴은 이미 선덜랜드를 상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선덜랜드가 챔피언십에 머물던 시절의 일이었다.

당시 선덜랜드는 단 1시즌 만에 2부 리그를 씹어먹고 승격했으며, 심지어 그 시즌에 EFL컵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한 팀이다. 위컴에 비하면 압도적인 팀이다.

“감독님, 그때도 못 이겼는데 지금 어떻게 이깁니까?”

선수단의 반론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것처럼, 위컴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다 안다. 너희가 무슨 생각 하는지. 하지만··· 기억해라. 우리는 그 시즌, 선덜랜드에게 지지 않았던 팀이다.”

“네, 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땐 우리 홈에서 비겼죠. 그때 상대는 웸블리 갈 생각에 정신이 없었고요.”

“흠흠.”

팩트에 얻어맞은 위컴 감독의 얼굴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거, 너희들은 넷플릭스 축구 다큐멘터리도 안 보냐? 끝날 때까지 발을 멈추지 말라고 하는 대사도 있더구만.”

“봤죠··· 그거 선덜랜드 좌우명이잖아요.”

아무래도 선수단의 반응이 영 부정적이었다. 위컴 감독이 입맛을 다셨다.

“어떤 의미로는 그때보다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그때, 옆에서 수석 코치가 한마디 슬쩍 끼어들었다.

“축구의 신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로드리게스도 안 나오겠죠. 챔스 일정을 소화한 데다가, A매치 차출도 얽혀 있거든요.”

“코치님. 어차피 선덜랜드에는 국가대표급 선수가 드글드글한데요. 굳이 메시와 로드리게스만 빠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남미까지 다녀올 선수는 메시, 로드리게스, 브루노뿐이거든요. 그러니 우선 이 셋을 제외합시다. 그리고 주장 잭인데···.”

이야기하면서, 수석 코치는 언제 준비했는지 선덜랜드 스쿼드가 쭉 늘어선 자료에서, 얼굴 사진에 하나씩 X표를 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누가 남죠, 여러분?”

“···로테이션 멤버가 남는군요.”

위컴 선수들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원래 크리그에 대해서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중이었으며, 해리슨이나, 프랭크, 디아라 같은 어린 선수들 또한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었다.

“해리슨은 아직 안 무섭지. 아직 어리니까. 디아라는 거의 유스고.”

“안 무섭지. 암, 걔들 정도는 해볼 만해.”

잠시 후, 위컴 코칭스태프는 선덜랜드의 예상 라인업을 상당히 좁혔다. 아직 포메이션이나 선발 멤버까지는 불투명하지만, 주전 대부분이 이런저런 이유로 나오지 않을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위컴 감독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제 누가 강팀이지?”

“우리입니다.”

위컴 선수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 * *

경기를 앞두고, 우리는 위컴에 대한 분석을 거의 끝마친 상태였다. 그날 내보낼 선발 라인업은 물론, 예상되는 전술 흐름까지 전부.

샐리의 입술이 비틀렸다.

“아마 노골적인 무승부 정책으로 나올 것 같은데요.”

만일, 상대가 같은 빅클럽이었다면 재경기를 피하려 했을 것이다. 컵 대회에서 재경기로 소모되는 것도 죽을 맛인데, 하물며 경기장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로 바뀌는 거니까.

지금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5시즌간 공식전 무패를 자랑하는 원정 팀의 지옥이다. 솔직히 나라도, 여기 와서 재경기하느니 그냥 1차전을 내주고 떨어질 거다.

하지만 하부 리그 팀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들에게 컵 대회는 귀중한 수입원이고, 재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은 칠만 석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니까.

“티켓 수입을 나눠먹을 생각에 아주 꿈에 부풀어 있겠군.”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애덤스 파크의 일곱 배가 넘으니까요. 하부 리그 시절엔 감독님도 컵 대회 수익에 연연하지 않았었나요?”

“사실 브로가 아니었으면, 나도 그땐 재경기 엄청 노렸을걸.”

이야기를 주고받는 브라이언과 샐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 선발 라인업은 대충 정리했어?”

브라이언이 뭐라 말하려는 찰나, 옆에서 샐리가 재빨리 끼어든다.

“메시와 로드리게스, 브루노는 쉬게 해 주고. 나머지는 전부 주전 내죠. A매치 차출이 걸리긴 하지만,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같은 유럽이니까.”

샐리의 심리가 뻔히 보인다. EFL 컵에서 위컴 상대로 주전을 몇 명쯤 내서, 시원하게 초전박살 내버리자는 계산일 것이다. 올바른 의견이기도 하다.

수석코치라면 당연히 저렇게 생각해야 한다. 당장의 승리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고민하는 게 그들의 일이니까. 베스트 일레븐 전체를 내는 건 과투자지만, 그래도 상대를 확실히 찍어누르기 위해 필요한 만큼은 쓰고 싶겠지.

하지만, 감독에게 요구되는 판단 기준은 조금 다르다. 한두 경기의 승패보다, 시즌 전체의 성공이 훨씬 중요한 게 감독이라는 자리다.

브라이언을 슬쩍 바라보자, 마침 그의 입가엔 싸늘한 미소가 걸리려던 참이다.

“챔스와 클럽 월드컵까지 병행하는 마당에, EFL컵에 주전 내고 이겨서 뭐 하게?”

“으음···.”

“마침 올 시즌에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참이었어. 이번 위컴전은 절호의 찬스인 셈이지.”

샐리가 심드렁하게 받아쳤다.

“좋은 말씀인데요, 감독님. 우리 영건들 중엔 미드필더가 둘이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자칫하면 중원이 유치원이 된다니까요?”

“걱정 마 톰슨도 낼 거니까. 걔는 이제 국대 차출 안 되거든.”

너어는 정말.

한편, 샐리 또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유치원과 양로원 조합이군요. 거참 든든한데요?”

* * *

[EFL컵 3라운드, 위컴 대 선덜랜드]

킥오프를 준비하면서, 위컴의 미드필더, 아이작은 선덜랜드 진영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후보가 많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사실 선덜랜드의 수비진은 변함없이 든든했다. 특히 가장 뒤쪽에서 위컴 진영을 응시하는 리델의 압박감이 상당했다.

“챔스 결승에서 맹활약한 골키퍼는 역시 중량감이 다르긴 하네.”

무심코 중얼거리자, 옆에서 동료가 동조했다.

“뭐, 하퍼가 나왔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그리고 하퍼가 떠날 때쯤이면 짐 하워드가 콜업된단 말이지. 그 괴물이.”

선덜랜드의 괴물 유소년, 짐과 테오, 바르카는 이미 축구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존재가 되었다.

특히 일명 주니어 페르난데스, 혹은 ‘세인트’ 짐이라 불리는 소년 골키퍼는, 장차 삼사자 군단을 책임질 인재로 기대받고 있었다. 원래부터 우수한 유망주라는 평가였으나, 특히 지난 시즌 이후부터 아예 선수로서 급이 달라졌다.

덕분에 벌써 러브콜이 쇄도하는 중인데, 선수 본인의 의사가 워낙 강경하다.

[선덜랜드 주장은 타인위어 밖에서 뛰지 않아요.]

딱 잘라 말하자, 눈치 없는 기자 한 명이 ‘뉴캐슬 이적설’을 냈다가 두 구단 모두에서 출입 금지 통보를 받았다는 일화는 위컴 선수단에게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저 팀은 골키퍼 걱정은 없겠구만.”

“그리고 수비진도.”

아이작의 시선이 페널티 박스 앞에 선, 선덜랜드의 포백라인에 던져진다. 특히 에디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에디는 선덜랜드의 3주장으로, 잭과 요니가 빠진 오늘은 왼팔에 주장 완장을 차고 나왔다. 챔피언십 시절 그들을 진저리 나게 만들었던, 선덜랜드의 ‘공격하는 센터백’은, 막상 수비력 또한 철벽이다.

어떤 의미로는 선덜랜드에서 가장 영악하고 까다로운 상대다. 잭은 성격이 직선적이고 단순한 편이고, 요니는 영리하지만 의외로 올곧은 구석이 있는 반면··· 에디는 훨씬 능글맞다.

‘저 자식은 가리는 게 없으니까.’

한편, 미드필더의 중압감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시즌 초에는 거의 무적이라고 칭송받던 선덜랜드의 중원은, 오늘은 졸지에 양로원과 유치원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은퇴 앞둔 피터 톰슨, 어린 해리슨, 더 어린 디아라란 말이지.”

“공격진은 더 처참해. 축구의 신, 프라하의 악마, 이탈리아의 적이 모두 빠졌잖아.”

품평하는 위컴 선수들을 바라보던 크리그가 멀리서 툭 한마디를 던진다.

“다른 건 좋은데, 이탈리아의 적은 쓰지 말지? 같은 선수끼리.”

“그럼 무득점 스트라이커는 괜찮고?”

아이작이 슬쩍 야유로 받았더니, 크리그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베테랑답게 도발을 흘려 넘기는 모습인데, 옆에 선 어린 선수들의 눈에선 불꽃이 튄다.

쌍심지를 켜는 선덜랜드의 영건, 해리슨과 디아라를 바라보며 아이작은 내심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직 어리군.’

하프라인 너머, 자신의 어린 동료들을 추스르는 크리그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렸다.

“화내지 마. 축구선수라면 플레이로 갚아주는 거다.”

아이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긴 하지··· 갚아줄 능력이 있다면.’

지난겨울에 18세가 된 소년 미드필더 디아라는 물론,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인 해리슨조차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아이작이 올려다볼 까마득한 대선수로 성장할 재능임은 분명하지만, 지금은 이제 겨우 유소년 딱지를 뗀, 감정 컨트롤도 못하는 미숙한 애송이들일 뿐이다.

살살 긁으면 자멸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아이작은 천천히 센터서클에 서서 휘슬을 기다렸다.

* * *

경기를 지켜보던 희주가 유독 초조한 반응을 보였다.

“아 진짜!”

대놓고 짜증을 냈고, 신발 끝으로 익스클루시브 박스 난간을 툭툭 차거나, 음료수에 꽂힌 빨대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묻지는 않았지만, 원인은 뻔하다. 그날 경기가 시종일관 우리의 열세로 흘렀기 때문이다.

톰슨, 해리슨, 디아라 셋으로는 위컴 상대로 중원을 지켜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지금의 톰슨은 서른 중반의 노장이고, 해리슨과 디아라는 아직 어리다.

중원 싸움이 밀리자, 자연스럽게 점유율이 넘어갔고, 마침내 경기의 주도권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위컴 홈팬들의 기세가 아주 등등해졌다. 온 사방에서 함성이 터져 나온다 싶더니, 차츰차츰 언어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제 누가 강팀이지?]

“아오··· 이것들을 확 그냥!”

희주가 분함에 치를 떨었다.

“오빠, 이럴 거면 그냥 잭이나 요니 내자. 아니, 마르틴만 나가도 찍소리도 못 할 것들이, 뭐? 누가 강팀이냐고?”

“가만있어. 우리가 강팀 맞으니까.”

나는 냉정했다.

얼핏 보기엔 주도권을 내주고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굴욕적인 경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유효슈팅을 내주지는 않았다.

에디가 이끄는 포백라인 선에서 위컴의 공세를 통제했기 때문에, 리델은 아직 한 번도 몸을 날리지 않았다. 축구 팬들이 말하는, 끝나고 샤워할지를 고민해볼 상태인 것이다.

즉, 지금의 위컴은 기세만 좋지 실속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기세가 꺾이는 순간이 오면···.

그때 되물을 수 있겠지. 이제 누가 강팀인지를.

내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위컴의 측면 침투를, 디아라가 필사적으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톰슨과 해리슨이라는 다소 기동성 떨어지는 조합에서, 유일하게 활동량을 갖춘 디아라의 질주는, 오늘 결장한 우리 팀 주장 잭을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

가속이 붙은 채로 어깨싸움을 걸어 위컴의 드리블러를 휘청하게 만든 디아라가 공을 따냈고, 뒤이어 짧은 패스를 톰슨에게 건넸다.

“그놈의 롱 패스 카운터!? 누가 당해줄까봐?”

위컴 선수들이 재빨리 커버에 나섰다. 톰슨 특유의 큰 동작에서 출발하는 롱 패스를 견제하려는 것처럼 몸을 날린 것이다.

톰슨의 선택은 짧은 패스였다. 옆에서 기다리는 선덜랜드의 플레이메이커, 해리슨에게로.

잠시 후 해리슨의 발에 닿은 공이, 마치 사라진 것처럼 위컴 수비를 단숨에 베어버렸다. 한발 늦게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어느새 텅 빈 위컴의 뒷공간에 나타난 공과, 패스를 따라잡기 위해 달리는 크리그를 바라보며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느새 희주도, 짜증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환한 미소와 함께 익스클루시브 박스 난간에 매달렸다.

“가라!”

크리그의 슛은 빗나가지 않았다. 마크가 붙지 않았을 때의 그가, 늘 그랬던 것처럼. 단 한 번의 카운터, 첫 유효슈팅이 곧바로 위컴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위컴 0 - 1 선덜랜드]

어느새 조용해진 경기장에는, 우리 팬들의 함성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이제 누가 강팀인지’를 묻던 위컴 팬들에게 대답하는 것처럼.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