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27화 (327/422)

327화 발을 멈추지 않는 팀 (2)

경기 당일도 아침부터 눈이 쏟아졌다. 창밖을 흘끔거리던 희주가 한숨을 쉬었다.

“어휴, 진짜 날씨 장난 아니네.”

온 사방이 눈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미들즈브러까지 향하는 길은 어제부터 제설차가 10분 간격으로 계속 출동해, 눈이 쌓일 틈 없게 관리하고는 있지만···.

그나마 서로 거리가 가까워서 다행이다. 미리 이동할 필요 없이, 시간 맞춰 움직이면 될 테니까.

하지만, 아까부터 뭔가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오빠, 조엘 씨 연락 왔어. 이번 미들즈브러 원정에 스페셜 땡스 투 뉴캐슬 호를 쓰고 싶다는데···?”

미들즈브러를 상대하는 길에, 뉴캐슬 놀리려고 만든 원정 버스를 끌고 가겠다고? ‘보로는 안중에도 없다’는 확고한 의사 표명이 되겠네. 혹시 악마세요?

머릿속에 조엘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마귀 놈들을 상대하려다 보니 저도 악마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덜랜드에서 오래 일했던, 그래서 우리가 뉴캐슬과 미들즈브러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그 암흑기를 경험했던 우리 시설관리팀장은, 더비 라이벌 상대로는 가차 없다.

“그러라고 해. 혹시 모르니 스노타이어로 갈아 끼우라고 전하고.”

대충 대답하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따라 아침부터 뭔가가 신경 쓰이는데, 그게 뭔지 시원하게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조금 걸으면 떠오르려나.

“오케이··· 오빠, 어디 가?”

“그냥.”

잠시 후, 나는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의 16번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아래 바스러지는 잔디가 평소보다 힘이 없었다. 눈이 녹아 그라운드가 축축하게 젖었는데도, 미묘하게 푸석한 느낌이 든다. 아주 작은 차이이지만, 분명히 평소와 다른 잔디다.

그렇다고 관리 소홀일 리는 없다. 리지의 성격을 고려하면, 아마 이것이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의 잔디 상태일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우리 잔디는 몇 년 전부터 맨시티의 에티하드보다도 좋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영국의 다른 어떤 경기장의 잔디도, 우리 팀에 비하면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 정도다.

다만,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의 그라운드는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도 나쁜 느낌이 들었다. 느닷없는 폭설은 분명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자본력의 차이도 한몫했을 것이다.

경기장의 수용인원만 봐도 뻔하다.

오만 삼천석 경기장을 쓰는 뉴캐슬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 선덜랜드 또한 내가 인수하기 전부터 사만 구천 석 경기장을 썼다.

반면 미들즈브러의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은 삼만 사천 석, 연고지의 티켓파워나 구단의 재정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그에 더해 오랜 하부 리그 생활을 했으니···.

“우리와 똑같은 수준으로 잔디를 관리할 수는 없었겠지. 돈 때문에라도.”

그렇게 혼잣말하는 사이, 저 멀리서 리지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썬!? 이 날씨에 거기서 뭐 하는 건가요!?”

숨을 몰아쉴 만큼 급히 달려온 리지가 아직 펴지도 않은 커다란 장우산을 내밀었지만, 나는 부드럽게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비도 아니고 눈인데요 뭐. 게다가, 그러는 리지도 우산 안 썼잖아요?”

“썬 말처럼 비도 아니고 눈인데요. 그리고 저는 이게 직업이고요. 그나저나··· 어쩐 일이세요, 이 날씨에? 설마 공 차러 나온 건 아니시죠?”

리지의 시선이 내 발치에 향했다. 축구화에 시선이 닿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해서,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이런 날씨는 풋볼존이 낫죠. 공도 안 가져왔잖아요.”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의 관리인으로서 무척 마음 아픈 말씀이지만, 동의해요. 그래서 공 차러 오신 건 아니고···.”

“보로 잔디가 신경 쓰여서요.”

그러자 리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거 확인하려고 이 날씨에 나온 건가요?”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자, 리지는 묵묵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나는 한참 동안 그라운드 곳곳을 체크했다. 관리가 소홀한 부분까지 리지가 완벽하게 재현했을··· 가상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의 잔디를.

그리고 체크가 끝나자마자, 나는 리지에게 붙들렸다.

“어휴, 아주 눈사람 다 되셨네. 몸 좀 녹이고 가세요. 그대로 돌아가면 감기 걸려요.”

“괜찮습니다.”

“제가 안 괜찮아요. 저를, 고용주를 감기 걸리게 만드는 무능한 관리인으로 만들 셈은 아니죠?”

그렇게 우기며, 리지는 나를 관리인실로 끌고 들어갔다.

“재닛 양, 미안한데 온장고에서 음료 좀 꺼내 줄래요?”

“네? 네.”

재닛이라고 불린, 아르바이트 소녀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알바 장소에 느닷없이 눈사람··· 아니, 구단주가 나타났으니.

그런데 사실은 나도 당황스럽다. 재닛은, 지난번 공채에 입사원서를 냈던 소녀였으니.

노동법만 아니었으면 고용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후보였다. 재닛은 그날 서류를 낸 사람 중, 두 번째로 높은 몸값··· 20의 가치를 자랑하는 인재였기 때문이다.

가장 몸값이 높았던 인물이 ‘최라미’ 씨, 그러니까 다미였음을 고려하면··· 재닛은 내가 뽑고 싶은 사람 중에선 가장 비싼 인재였다. 나이가 어려서 못 뽑았지만.

어른이 된 다음에도 마음이 변치 않으면 우리 선덜랜드에 다시 지원해 달라고 했더니, 벌써 여기서 알바하고 있었구나.

잠시 후 재닛이 온장고에서 캔 음료를 종류별로 몇 개 꺼내 왔다. 그 와중에 제로콜라 캔이 보이길래, 재빨리 치워 버렸다. 아니, 데운 콜라라니.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

아무리 내가 콜라 광고 모델까지 했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눈을 깜빡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재닛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머뭇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습니까, 재닛 양?”

“제 이름을 기억하시는군요!”

반색하던 재닛의 기세가 곧바로 수그러든다.

“아니지, 리지 관리인님이 방금 내 이름을 부르셨으니까···.”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상황 같은데.

그렇게 혼자서 일희일비하던 재닛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구단주님. 실은 저, 이번에 선덜랜드에 입사 지원서를 냈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내드렸죠.”

“정말 기억하시는군요!”

사실 이마의 숫자가 아니었으면 기억 못 했을 것 같지만··· 이건 재닛도 눈치 못 채겠지.

나는 친절한 미소로 재닛에게 몇 마디 덕담을 건넸다. 옆에서 리지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벌써 침 발라 두시는 걸 보니 조금은 샘날 것 같은데요.”

“샘은 다른 팀 구단주들이 내야겠죠. 세계 최고의 잔디 관리인을 가졌으니까요.”

빈말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천하의 맨시티조차 원정 도중 폭설로 고립되었던 날, 그날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잔디 컨디션은 평소와 완벽하게 똑같았다.

프로 클럽의 관리인이라면 누구나 잔디 컨디션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지만, 실력 차이는 이런 악조건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리지가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는 잠시 후, 관리인실을 떠났다.

“수중전이 되겠네.”

눈이 녹은 물이 피치를 가득 적셔, 패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그런 경기가 예상된다. 필연적으로 서로 많이 뛰는 러닝 게임이 되겠지.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 속에서.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메디컬 팀장 버드에게 연락했다.

“알고 있겠지만, 이번 경기는 선수들에게 특히 가혹할 겁니다.”

[네, 구단주님. 경기 전의 관리는 물론, 종료 후의 쿨링 다운까지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몇 번이나 지시를 내리고도 마음이 편치 않다. 여전히 머릿속 한구석이 찜찜하다. 왜일까?

이유는, 구단주실에 돌아간 직후 밝혀졌다.

“오빠, 방금 리버사이드 익스클루시브 박스에 열선 시트 설치 끝냈다고 연락받았어. 날씨가 날씨니까, 미리 대비해야지?”

아, 이거였구나.

내 스태프들이 이 폭설 아래 눈을 맞는데, 내 선수들이 이 날씨에 수중전을 치르는데, 나 혼자 지붕 아래에 열선 깔고 축구 보라고? 심지어, 더비 경기에서?

“수고했는데··· 혹시 일반석 쪽에, 자리 하나 더 구할 수 있어?”

“그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왜, 손님 와?”

“내가 쓰려고.”

그러자 희주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마치 내 정신 상태에 커다란 불신이 쌓인 것 같은 얼굴이다.

“···익스클루시브 박스 안 쓰고? 날씨가 이런데?”

“그래서 그런 건데.”

누군가는 자기만족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쇼라며 질색하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이번에는, 지붕이 없는 곳에서··· 내 선수들과, 내 스태프들과 같은 곳에서 경기를 보고 싶었다.

그래야 할 것 같은 날이다.

* * *

[프리미어리그 15R, 미들즈브러 대 선덜랜드]

교통체증에 대비해 경기장에 조금 일찍 도착한 선덜랜드 선수들은, 드레싱룸 안에서 가볍게 몸을 풀면서 곧 시작할 원정 경기를 대비했다.

“보로 애들 기세가 좋아 보이네요.”

“뭐, 타인티스 더비에서 한 방 먹여서 그런 거겠지.”

13라운드에서, 뉴캐슬을 홈으로 불러들인 미들즈브러는 접전 끝에 무승부를 기록했다. 상대적 열세로 평가받던 보로에게는 쾌거나 마찬가지인 사건이었다.

“갓 승격팀이 프리미어리그 토박이와 비겼으니 얼마나 기쁘겠어.”

“어··· 우리는 바로 그 뉴캐슬을 시원하게 꺾었잖아요.”

“별로 안 시원했어.”

“4 대 1인데도요?”

“한 골 내줬잖아.”

이야기를 나누는 선덜랜드 선수들의 몸은 평소보다 조금 무거워 보였는데, 특히, 신예 디아라가 가장 힘들어하는 중이었다.

아직 몸이 덜 만들어진 어린 선수이기도 하지만, 출신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태어난 디아라에게, 이런 폭설과 한파는 평생 처음 겪는 이벤트일 테니.

“춥냐?”

“···조금요. 뛰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만.”

괜히 어깨를 돌리면서, 디아라가 혼잣말로 덧붙였다.

“날씨 한번 진짜 끝내주네요.”

그러자 주장 잭이 무뚝뚝하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끝내주지. 이런 날씨에도 여기까지 와주신 팬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뛰어야···.”

어느새 잭은 스마트폰을 꺼내 중계를 보는 중이었다. 캐스터가 사전 예상이나 분석을 떠들었지만, 관심도 없는지 볼륨을 줄였다.

그런 잭의 관심은 오로지 관중석에 쏠려 있었다.

“이야··· 오늘도 엄청 많이 따라오셨네.”

폭설에도 굴하지 않고, 선덜랜드 레플리카를 입고 따라온 팬들을 잭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이, 화면이 바뀌었다.

잠시 후 중계 카메라가 익스클루시브 박스를 비춘다. 그런데, 그곳에 구단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구단주 비서만 코트로 꽁꽁 싸맨 채 경기장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어··· 구단주님은 날씨 안 좋아서 안 오셨나?”

그러자 옆에서 요니가 끼어들었다.

“설마, 그러실 분은 아닌데···.”

그때, 다시 중계 화면이 전환되었다. 선덜랜드 팬들 사이에 섞인 구단주 이희성의 모습이 잭의 스마트폰에 비췄다. 내리는 눈을 그대로 맞으며, 팬들 사이에 섞여서 응원하는 모습이.

We're Black Cats supporters.

Loyal through and through.

Over and over, We will follow you.

스마트폰 볼륨을 줄였는데도, 응원가가 선명하게 들린다. 드레싱룸 밖에서, 관중석에서 새어 들어오는 소리임을 깨달은 선덜랜드 선수들이 조용해졌다.

“아직도 추워?”

어디선가 불쑥 쏟아진 질문에, 디아라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아뇨, 안 춥습니다. 이거 봤는데도 열이 안 오르면, 그냥 물건 떼 버려야죠.”

* * *

그날 경기의 흐름은 사실, 순탄하지는 않았다.

경기장 상태 때문에 우리 선덜랜드가 자랑하는 패스 게임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가혹한 연전으로 로테이션까지 돌려야 했다.

요니가 못 나왔고, 바스티아노와 메시도 쉬었다. 공격진의 득점력은 마르틴과 베리, 스티븐에게 온전히 맡겨졌다.

그 와중에 마침 미들즈브러의 반격까지 거셌다. 우리가 끌고 온 ‘스페셜 땡스 투 뉴캐슬’ 호가 제대로 불을 지핀 모양이다.

악천후와 나쁜 그라운드 컨디션은, 우리 선수들이 가진 기술적 우위마저 빼앗았다.

그렇기에 오늘, 그라운드 위에서 펼쳐지는 경기는 속된 말로 하면 개싸움, 가장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축구로 돌아가 있었다.

스티븐이 오른쪽 측면을 위아래로 질주했고, 디아라와 잭은 그야말로 개처럼 뛰었으며, 하퍼는 필사적으로 몸을 날리며 여러 차례 팀을 위기에서 구했다.

줄곧 팽팽하던 경기에, 변화가 생긴 건 후반 70분 즈음의 일이었다.

박스 바깥에서 잭이 시원하게 휘갈긴 중거리 슛을 보로 골키퍼가 선방했지만, 군데군데 물이 고인 경기장 때문에 세컨볼이 멀리 흐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일제히 공을 향해 뒤엉키는 양 팀 선수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누군가의 발 옆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를 들이미는 선수가.

다이브 헤더.

“잭?”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우리 주장은 박스 밖에 있었으니까. 주저 없이 달려드는 모습이 비슷했고, 등에서도 숫자 8이 보였지만, 왼팔에 주장 완장이 없는 저 선수는 잭이 아니다.

그럼, 대체 누구지?

[미들즈브러 0 - 1 선덜랜드]

누군지 알아보기도 전에, 미들즈브러의 골네트가 흔들렸다. 잠시 후, 득점에 성공한 선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등번호 8, 우리 선덜랜드의 영건 디아라다.

꼭 우리 주장처럼 열정적인 플레이로 데뷔골을 뽑아낸 열아홉 살 미드필더가, 원정 스탠드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온다.

덕분에 우리 팬들도 난리가 났다.

“이쪽으로 온다!”

“이게 데뷔골이지?”

“디아라! 사랑한다!”

스탠드 앞으로 미끄러지는 디아라와 눈이 마주쳤다. 평소와 다른 곳에서 경기를 바라보던 내 위치를 미리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날의 결승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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