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발을 멈추지 않는 팀 (5)
4강전을 압승하고 결승에 나선 우리의 상대는, 예상했던 대로 남미 챔피언 상파울루였다.
상파울루는 축구 강국 브라질 최대의 도시를 홈으로 쓰는 명문 구단이라, 위상과 역사가 대단한 팀이었다.
“역시 프로 스포츠는 수도 연고지 팀이 강하더라.”
희주가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말한다··· 내 여동생의 지리 상식,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거기 수도 아니야.”
그러자 희주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것처럼 새침한 표정으로 외면한다. 일단 표정이나 동작만 보면 제법 샐리 닮았다. 생긴 게 차이가 커서 그렇지.
한편, 이번 클럽 월드컵은 사흘 만에 경기를 치르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4강전에 뛰었던 선수들에게 휴식이 필요했는데, 코칭스태프나 메디컬 팀의 의견으로는 특히 잭과 톰슨의 휴식이 가장 절실하다는 모양이다.
그 외에도 4강전에 출전한 로테이션 멤버들에게 휴식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덜컥 풀 주전을 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당장 영국에 돌아간 다음 큰일이 난다.
돌아가면 곧바로 EFL컵을 치르게 될 것이며, 리그에서는 순조롭게 박싱데이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가뜩이나 이번 박싱데이에서는 더비 라이벌을 상대한다. 지금의 우리는 뉴캐슬보다 확실히 우세하지만, 연전으로 체력 문제가 생긴 상태로 ‘그 팀’을 상대하고 싶지는 않다.
아, 더비전은 이겨야 제맛이지.
그래서 클럽 월드컵 결승을 앞두고, 버드 팀장과 포터 부팀장을 비롯, 메디컬 팀 전원이 선수단 관리에 매달려야 했다.
* * *
메디컬 팀이 가장 집중적으로 관리한 선수는, 주장 잭이었다.
잭의 출전 횟수는 선덜랜드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많았고, 경기당 활동량도 압도적이다. 덕분에 올 시즌에 뛴 거리를 따지면, 혼자서 툭 튀어나와 있다.
체력 자체가 출중하고, 선수 본인의 뛰겠다는 의욕도 남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연전이 강요되는 빡빡한 일정에서는 더욱 주위의 걱정을 샀다.
정작 잭 본인의 반응은 냉담했다.
“뛸 수 있슴다. 호들갑 떠실 필요 없슴다.”
“아니··· 잭 선수, 캡틴은 타인위어 더비에서 뛰어야 하잖아요.”
“그건 당연한 검다. 설마 저를 더비에서 빼려고 하신 검까?”
“그건 아니지만··· 더비에서 맘껏 뛰려면 클월 결승전은 쉬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둘 다 뛸 수 있슴다.”
출전은 당연히 감독 권한이지만, 선수 몸 상태는 메디컬 팀이 보고한다. 그리고 만일, 메디컬 팀이 ‘쓰지 말라’는 권고를 내리면 감독 브라이언은 철석같이 지킬 것이다.
그래서 잭은, 평소보다 훨씬 강하게 메디컬 팀 스태프에게 어필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톰슨이 슬쩍 끼어들었다.
“하긴, 결승은 뛰는 게 좋지.”
“물론임다.”
잭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열렬히 상하로 끄덕였고, 그 옆에서는 메디컬 팀 직원이 고개를 열렬히 좌우로 흔든다.
열망 섞인 잭의 눈동자 옆에, 항의 섞인 시선이 함께 전해졌다. 지금 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냐는.
톰슨이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풀타임 뛰란 소린 아니고, 결장은 하지 말란 거야. 후반전이라도 뛰어야지.”
풀타임 출전 권유가 아니라는 이야기에 메디컬 스태프의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지만, 이번엔 잭의 얼굴이 굳었다.
“후반만 뛰면 의미가 있슴까?”
“있지. 예전 생각 안 나? EFL컵 먹었을 때 말야.”
당시 주장이던 페르난데스는 컵 대회를 하퍼에게 맡겼다. 결승까지도. 그리고 우승 트로피를 드는 역할을 톰슨에게 양보했었다.
그 이야기를 꺼내자, 잭의 눈이 반짝거렸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슴다. 뛸 수 있슴다. 풀타임에, 연장까지 뛸 수 있슴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포터 부팀장이 항의했다.
“아니, 톰슨 선수? 주장을 부추기면 어쩝니까? 그리고 사실 톰슨 선수도 쉬어야 하는데요.”
“저도 쉬라고요?”
톰슨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그는 지난 경기, 클럽 월드컵 4강전에서 센터백을 맡았었다.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평소보다 활동량이 훨씬 적었기 때문에, 스스로는 체력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톰슨 정도 되는 베테랑이라면, 자기 몸 상태는 메디컬 팀보다 훨씬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법이다. 자신의 체력 상태를 오판하기에는, 그는 너무 노련했다.
체력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도 메디컬 팀은 휴식을 권유한다. 두 가지 사실이, 톰슨의 뇌리에서 새로운 단어를 조합해 낸다.
“혹시 제 무릎이 그렇게 문제입니까?”
톰슨의 심각한 질문에, 포터 부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건강합니다. 하지만 무리하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부위라.”
“무리라···.”
톰슨은 입안으로 무리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곱씹었다.
사흘 간격으로 경기를 치르는 일정은 분명히 가혹하지만, 잉글랜드에서 뛰는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매년 한두 번쯤 경험해 보는 일정이기도 하다.
월드컵에서 뛰는 선수들은 훨씬 가혹한 스케줄을 소화한다. 16강부터 결승까지는 계속 3, 4일 간격으로 경기가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비록 쉬운 일정은 아니지만, 선수로서 불가능한 일정도 아니었다··· 아니어야 한다.
톰슨의 입술이 비틀렸다.
“톰슨 선수?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포터가 톰슨을 빤히 올려다보며,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톰슨 선수도 좀 쉬어야 할 텐데요.”
“걱정 마시죠. 저는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요.”
톰슨의 대답에 포터 부팀장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선덜랜드는 선수의 컨디션 관리에 아주 민감한 팀이고, 브라이언 역시 선수를 혹사시키지 않는 감독이기 때문일 것이다.
톰슨은 빙긋 웃으며 메디컬 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구단주의 방문을 노크했다.
* * *
카타르의 호텔 객실에 머무르는 중에, 톰슨이 면담을 요청했다. 호텔 바에라도 가자는 이야기인가 싶어서 확인해 보니, 톰슨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호텔 바는 보는 눈이 너무 많잖아.”
“그러면 아예 밖으로 나갈까? 아, 이슬람은 술 안 파나?”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내국인 상대로는 장사 안 할걸? 그보다, 애초에 사흘 간격으로 경기 뛰는 선수에게 술 권하는 구단주가 어딨냐?”
“무알콜··· 은 없겠네. 그럼 안에서 이야기하자.”
일반 칵테일과 맛이 똑같은 무알콜 칵테일은, 우리 바 블랙캣츠의 자랑이지만, 이런 데서는 안 팔겠지.
방에 들어온 톰슨이 두리번거렸다.
“스위트룸 같은 걸 쓸 줄 알았는데?”
“객실은 너희 거랑 차이 없어. 내가 여기 놀러 온 것도 아니고.”
“그래도 너 정도 재력이면 스위트룸도 별 차이 없을 줄 알았지.”
사실 체감상 차이는 별로 없긴 한데, 내가 스위트룸을 잡으면 희주도 똑같이 스위트룸을 잡겠다고 까불 것 같았다.
나는 구단주니까 그렇다 쳐도, 희주한테 스위트룸을 배정해 주면 감독, 수석코치, 그리고 팀장들 방도 등급을 올려 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엔··· 스위트룸 개수가 부족하단 말이지. 다시 말하지만 돈은 부족하지 않다.
사정을 짐작한 톰슨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지만, 그는 이내 본론으로 돌아왔다.
“나를 결승에서 쉬게 하려는 것 같다던데, 맞아?”
“맞아. 쉬게 해야지. 널 사흘 간격으로 올려보내는 건 너무하잖아.”
가볍게 대꾸하자, 톰슨이 정색을 했다.
“그럼 대체 날 뭐 하러 데리고 있는 거야. 그리고 내가 쉬면, 중원은? 해리슨이나 디아라를 갈아넣을 셈이냐? 아니면 잭이나 요니에게?”
나는 대답 대신 톰슨의 무릎을 흘끗거렸다. 그러자 톰슨이 쓴웃음을 지었다.
“상관없어. 혹시 문제가 있으면 우리 메디컬 팀이 가만있었겠냐?”
“그건 그렇지.”
실제로 메디컬 팀으로부터, 톰슨의 무릎 컨디션에 대해서는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고 있다.
무리하지 않고, 지금 정도 페이스를 유지하면, 앞으로 몇 년은 문제없이 선수로 더 뛸 수 있을 것 같다는 브리핑을 받았다.
즉, 톰슨의 무릎 건강에 큰 문제는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널 무리시키고 싶진 않아. 앞으로도 계속 선수로···."
“앞으로? 그런 건 몰라.”
톰슨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시선은 진지했고, 특유의 외골수적인 기운이 가득했다. 충동적으로 하는 이야기 같지는 않았고, 예전처럼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런 눈빛을 한 톰슨은 사람의 말을 듣는 법이 없긴 하지만, 일단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미드필더가 좀 그러면, 혹시 센터백으로 계속 뛰는 건 어떠냐고 물어볼 생각인데···.”
“그럼, 초이는 어쩌려고?”
초이? 그게 누군지 한참 고민하던 나는, 약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톰슨이 최새벽을 지칭했음을 깨달았다.
“예전에 썬, 네가 그랬지. 선덜랜드 선수들에게, 프리미어리그 미드필더가 어떻게 뛰는지 보여 달라고.”
“···그랬지.”
아직도 나는, 톰슨은 그런 역할을 맡기 충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톰슨 자신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프리미어리그 미드필더는, 팀이 필요로 할 때 뛰는 선수를 말하는 거야. 그런데 이번에 쉬어 버리면, 나는 그 조건을 채우지 못할 것 같군.”
“너는···.”
“난 이제 충분해. 챔스 결승에도 다시 설 수 있었고. 이제 곧 클럽 월드컵 트로피도 가져올 수 있겠지. 그리고 올해는 리그도 가져올 테니까···.”
톰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후련한, 더 이상 여한도 미련도 없다는 표정이다.
내가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톰슨이 먼저 일어났다. 그의 거구가 곧바로 돌아선다. 자기 마음은 이미 정해졌으니, 설득할 생각 말라는 것처럼.
몸을 돌려 떠나는 그의 커다랗고 탄탄한 등은, 내 말 몇 마디로 붙잡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워 보인다.
문을 열기 전, 톰슨이 살짝 멈춰 섰다. 그리고 나를 돌아봤다.
“브라이언에게 이야기 잘 해줘.”
“···감독의 인사권에, 구단주는 관여 안 해. 그러면 월권이지.”
내 궁색한 변명에, 톰슨의 입술이 비뚜름해졌다.
“아니. 너는 할 수 있어.”
재미있다는 것처럼 웃고 나서, 톰슨이 나직이 덧붙였다.
“올 시즌이 끝나면 피터 톰슨은 구단의 계획에서 빠질 거라고 브라이언에게 통보해. 은퇴할 거라고. 그건 감독이 아니라 구단주의 영역이지···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잖아?”
맞다. 처음은 아니었다. 몇 년 전, 나는 그렇게 페르난데스를 보냈었다. 그리고 이제 반년이 지나면, 유소년 시절부터 마주했던 동갑내기 선수 또한 떠나보내게 되겠지.
나는 눈을 감았다.
“썬, 그런 표정 하지 마. 내가 지금 당장 무릎 깨먹고 은퇴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지막 시즌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뛰기만 하고 싶을 뿐이야. 뒷일 생각도, 무릎 걱정도 없이. 팀이 나를 부를 때마다.”
'til I die.
잠시 후, 객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 * *
[클럽 월드컵 결승, 선덜랜드 대 상파울루]
경기장은 그야말로 붉게 물들었다. 결승전을 맞이한 우리 로컬 팬들이 전용기로 도착했고, 카타르 현지 팬들의 참여도 상당했다.
원래부터 카타르 팬들이 우리 선덜랜드에 호의적인 편이긴 했는데, 마침 이번에 우리가 이란의 페르세폴리스를 꺾은 것도 카타르 축구인들에게는 어필 포인트였다는 모양이다.
그에 더해 일 잘하는 우리 원정지원팀, 스퀘어관리팀은 미리 선덜랜드 레플리카를 곳곳에 살포했다. 덕분에 오늘은 선덜랜드 팬이 7할이 넘는다.
홈을 연상시킬 만큼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 희주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빠, 이란하고 카타르는 사이좋은 나라 아니었어?”
“축구에 그런 게 어딨냐. 자기 나라 팀 꺾었으면 숙적이지.”
외교적으로는 사이가 좋을지 몰라도, 축구에서는 그렇지도 않을 거다. 이란과 카타르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경쟁하는 사이니까. 따라서, 이란 팀이 클럽 월드컵에 나왔다는 건, 카타르 팀은 아챔에서 탈락했다는 뜻이 된다.
4강에서 페르세폴리스를 잡아 준 우리에게 열광하기 충분한 조건이다.
희주가 웃었다.
“거, 우승하기 딱 좋은 날이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온통 붉게 물든 경기장. 확실히 우승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나는 찬찬히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우리 진영에서 가볍게 몸을 푸는 톰슨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일부러, 브라이언에게는 아직 아무 말도 전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톰슨이 내 이름을 팔아 멋대로 출전하려 들까 봐.
그런데도 오늘 모습을 드러낸 걸 보면, 기어이 브라이언과 메디컬 팀을 모두 구워삶은 모양이다.
“남자가 그 정도 결의를 했으면, 한번 맘대로 뛰어 봐야지.”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톰슨이 우리 팀에 온 지도 벌써 5년 반이다. 그동안 무릎 관리를 꼼꼼하게 받았으니, 겨우 반년 만에 다시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이제 톰슨은 무릎의 건강보다, 떨어지기 시작한 기량이 더 신경 쓰일 나이가 되었다. 그가 왕년의 대선수로서, 프리미어리그 미드필더답게 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까···.
“보여 줘.”
잠시 후 휘슬이 울렸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이 선덜랜드의 챈트를 외치기 시작했다.
Sunderland 'til I die. I'm Sunderland 'til I die.
마치 내 이야기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피터 톰슨이 전력으로 돌격했다. 그 모습은 꼭, 예전 전성기 때의 그를 보는 것만 같아서.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til I 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