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화 지지하고 지탱하면서 (1)
<기억해라. 클럽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포터다. 그들에게 방해가 될만한 것들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 위르겐 클롭>
선덜랜드의 라인업에서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비록 베스트 11 전부를 투입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주전을 아끼지도 않았던 것이다.
미드필더엔 톰슨과 해리슨, 로드리게스가 출전했고, 크리그, 바스티아노, 메시가 쓰리톱을 섰다.
수잔은 당연히 환호했고, 그 옆에선 크리스도 같이 환호했다. 모처럼 카타르까지 따라온 그들로서는, 선덜랜드의 화려한 공격진을 볼 수 있어서 기뻤던 것이다.
마일즈만 살짝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잭과 요니를 둘 다 뺀 모습을 보면, 아마도 클럽 월드컵 이후 찾아올 박싱데이 일정에 대비하려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그렇다면 메시를 빼는 게 맞지 않았을까?”
마일즈의 혼잣말에 수잔이 곧바로 반응했다.
“브라질 팀을 상대하는데, 아르헨티나 선수를 뺀다고요?”
“어, 그건 또 그렇네.”
마일즈는 곧바로 수긍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같은 축구 강국으로서, 남미 팀끼리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그리고 아무튼 메시는 대선수다. 비록 감독을 휘두르는 타입은 아니라지만, 출전 자체는 보장해 주어야 한다. 마침 4강전을 쉬었으니 선수 본인이 출전을 원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수잔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요, 선수들이 힘들까봐서요?”
“브렌든이 입방정을 떨어서···.”
불평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옆에서 크리스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으응워언!”
수잔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꼭 예전의 당신을 보는 것 같은데요? 우린 경기를 즐기러 온 게 아니라, 선수들과 같이 싸우러 온 거라고 말해 주던 당신이요. 아! 그땐 참 멋있었는데.”
아들과 아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마일즈도 배에 힘을 주지 않을 수 없다.
하긴, 연전의 피로함을 감수하고 뛰는 것은 선수들 본인이다. 그렇다면 서포터는, 무작정 함성을 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We are Sunderland. Say we are Sunderland.
목에 힘을 주며, 마일즈는 그라운드를 내려다보았다.
경기 초반부터 선덜랜드가 공격적으로 주도권을 쥐었다.
로드리게스가 중원을 지배했고, 해리슨은 몇 번이고 날카로운 패스를 공급했다. 그리고 축구의 신은 언제나처럼 축구의 신이었다.
상파울루 골키퍼의 결사적 방어 덕분에 스코어보드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지만, 상파울루 감독조차 상파울루가 운이 좋아서 아직 실점을 피하고 있다고 대답해야 할 정도의 경기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날 가장 눈에 띈 선수는 14번 로드리게스도. 7번 메시도. 99번 해리슨도 아니었다.
등에 6번을 짊어진 거구의 사내다.
“톰슨이 저렇게 뛰는 건 참 오랜만인걸.”
“요즘은요. 예전에는 박스 투 박스였다고 했었죠?”
“응,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플레이 스타일을 바꿨던 것 같은데···.”
톰슨이 오늘 보여주는 플레이는, 평소라면 잭이나 디아라가 맡았을 역할이었다. 누군가는 진공청소기라고, 누군가는 사냥개라고 부르는 역할. 적극적으로 압박에 참여하고, 공을 따내고, 상대와 경합하는 롤이었다.
거구의 미드필더가 보여준 헌신적인 활약 덕분에, 선덜랜드는 시종일관 공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반 21분. 마침내 교착 상태가 풀렸다. 크로스바에 맞고 흘러나온 공을 확보한 상파울루 미드필더가 측면을 돌아 침투하기 시작한 것이다.
크리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안으로! 안으로오오오!”
수잔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마일즈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축구 한정으로, 크리스는 벌써부터 어른 못지않은 안목을 자랑하는 중이었으니.
이미 타인위어 축구팬 사이에서 크리스는 영재 블랙캣츠로 유명했다. 이대로만 자라면 반드시 명감독이 될 것이고, 안목의 반만큼만 공을 차면 최소 국가대표는 확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 안으로 못 들어오게 막아야지.”
그러자 옆에서 크리스가 악을 썼다.
“들어가아!”
자신의 생각과 정반대의 이야기에 마일즈의 눈썹이 꿈틀거린 순간, 침투하는 상파울루 미드필더를 추격한 톰슨이 그대로 상대에게 어깨 경합을 시도했다.
휘슬은 울리지 않았지만, 상파울루 미드필더는 자세가 완전히 무너져 그대로 라인 밖까지 밀려났다. 센터백을 볼 수도 있는 거구에, 달려오는 가속도가 더해지자 위력이 상당했던 것이다.
곧바로 톰슨이 공을 그대로 오른발로 밟아 멈춰세웠고, 왼발로 타넘었다.
다음 순간, 마일즈도 같이 외칠 수 있었다.
“들어가! 카운터다!”
마일즈의 외침이 터져나왔을 때, 이미 선덜랜드의 7번은 측면에서 중앙 안쪽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채였다. 이윽고 완전히 몸을 돌린 톰슨이 특유의 다이나믹한 롱 패스를 쏘아 올렸다.
하프라인에서 어태킹 써드까지 한 번에 날아간 패스가 침투하는 메시의 발 앞에 도착한 순간, 다음은 학살쇼였다.
수비가 하나둘씩 제쳐지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브라질리언 축구선수가 자랑하는 징가의 리듬조차, 축구의 신이 보여주는 빠르고 세밀한 드리블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골키퍼가 달려나온 순간, 메시의 발에서 공이 옆으로 흘렀다. 바스티아노에게로.
잠시 후, 이탈리안 공격수의 파워풀한 슛이 골네트를 흔들었다.
[선덜랜드 1 - 0 상파울루]
* * *
같은 시각, 분석실에 집결한 채 클럽 월드컵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선덜랜드 유소년이 일제히 환호했다.
“넣었어!”
“우승이야, 우승!”
“멍청아! 아직 70분 남았잖아.”
“내기할래? 우리가 70분 안에 골 먹히나 안 먹히나.”
동료와 함께 까불거리던 바르카는 짐에게 한 대 쥐어박힌 다음에야 조용해졌다.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선덜랜드 U-15의 주장, 미드필더 월터는 천천히 화면에 시선을 옮겼다.
이기고 있기 때문인지, 바스티아노는 곧바로 응원 온 팬들을 향해 달려가 마음껏 세레머니를 했다.
꽤 멋들어진 돌려차기였다. 옆에서는 에디도 같이 돌려차기 세레머니를 따라 했는데, 동작이 살짝 어설퍼서 웃음을 주었다.
유소년 대부분이 세레머니에 폭소하고, 일부는 메시의 드리블이나 바스티아노의 마무리에 열광하는 사이, 월터는 조금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카메라 구석에 잡힌 피터 톰슨의 모습이었다. 결정적인 패스로 찬스를 만들어낸 톰슨은, 세레머니에 참여하는 대신 하프라인 부근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화면에 비친 톰슨은 아주 작았고, 때로는 세레머니하는 선덜랜드 선수들에게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미드필더이기에, 월터는 곧바로 톰슨이 뭘 하는 중인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센터서클 안에 발을 넣고 계시겠지.’
선덜랜드 선수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상파울루가 기습적으로 경기를 재개하지 못하도록,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세상에는 축구 천재가 참 많다. 중계를 보는 화면 안에도. 그리고 월터의 옆에도.
상파울루 수비진을 드리블 연습용 라바콘으로 바꿔 버린 축구의 신의 천재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득점 루트를 미리 지켜본 것처럼 톰슨이 공을 따낸 순간부터 세레머니까지의 그림을 전부 그려낸 테오도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리고 메시의 드리블 장면을 아주 작은 동작까지 똑같이 따라 플레이할 수 있는 바르카 역시 괴물이다.
월터는, 자신이 그런 천재가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플레이는 오직 헌신하는 것,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는 것뿐임도 알고 있었다.
잠시 후,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재개되었다.
“이기는 중인데도 라인을 크게 안 낮추네요?”
누군가의 질문에, 옆에서 육성단장 페르난데스가 자상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라인을 내리고 움츠러들게 되면 난전이 되어버린단다. 아무리 뛰어난 골키퍼도, 난전에서 계속 슛을 허용하면 결국 실점할 수밖에 없거든. 굳이 그런 리스크를 가질 필요는 없지 않겠니?”
“우리도 계속 공격할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거군요!”
“그래. 다만 상파울루도 적극적 공세를 펼칠 테니 이제부터 중요해지는 건···.”
“수비의 단단함.”
“그리고 역습의 퀄리티죠.”
냉큼 끼어든 테오와 바르카가 차례로 대답했다. 페르난데스 단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월터는 쓴웃음을 지었다.
유소년 경기는 원래 수비가 느슨한 경우가 많지만, 특히 테오와 바르카는 수비 가담 안 하기로 유명한 선수들이기 때문이었다.
수비는 늘 월터의 몫이었다. 역습으로 바꾸는 것도.
이후 펼쳐진 경기 양상은 페르난데스의 설명대로였다.
선덜랜드는 공격진을 전진 배치하며 언제든지 반격할 수 있다고 위협을 가해 상대 수비진의 오버래핑을 견제했고, 상파울루는 반드시 동점골을 따내겠다며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상파울루의 공세는 결국 중원을 넘지 못했다. 공이 가는 곳마다 선덜랜드의 6번 유니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톰슨 특유의 출중한 슬라이딩 태클, 터프한 몸싸움은 경합을 승리로 이끌기 충분했고, 그리고 공을 빼앗은 직후에는 언제나 롱 패스 카운터로 상대의 뒷공간을 유린했다.
덕분에, 추가골 또한 선덜랜드의 것이었다.
격렬한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따낸 톰슨이, 슬라이딩하던 기세 그대로 일어났다. 잠시 후 패스는 또다시 상파울루의 바이털 에어리어에 날아들었다.
톰슨의 패스는 측면으로 조금 빠져 있던 바스티아노에게 향했다. 바스티아노가 곧바로 다이렉트 크로스를 올렸고, 크리그가 마무리했다.
[선덜랜드 2 - 0 상파울루]
조용히 주먹을 불끈 쥐는 월터의 곁에서, 테오가 낮게 속삭였다.
“있잖아, 캡틴.”
평소 테오는 모든 주장을 캡틴으로 퉁쳐서 부르는 버릇이 있었지만, 억양은 구분해서 쓰고 있었다. 그래서 월터는 테오가 방금 말한 ‘캡틴’이 자신임을 깨달았다.
“톰슨 선수는 캡틴하고 닮았어.”
자랑스러움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끼며, 월터는 배에 힘을 주었다.
“그 반대겠지.”
“반대?”
“내가 저분을 닮고 싶은 거야.”
정말, 꼭 저런 선수가 되고 싶다. 닮고 싶다. 월터는 그렇게 생각하며 화면을 응시했다.
* * *
후반을 맞이한 우리는 곧바로 선수교체에 나섰다.
로드리게스 대신 잭이 출전했고, 전방에서는 축구의 신이 마르틴과 교체되었다. 그리고 마르틴에게 왼쪽을 내주기 위해 크리그가 오른쪽 윙포워드 자리로 옮겼다.
“브라이언 씨 머리 열심히 굴렸네! 45분씩 나눠서 쉬는 거구나.”
“뭐, 그렇지. 로드리게스도, 잭도 오늘 풀타임을 뛰긴 부담스러웠으니까.”
다른 포지션이면 모를까, 미드필더는 특히 활동량이 많다. 오늘 풀타임으로 뛰는 선수들은, 박싱데이에는 휴식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반쯤은, 우승 트로피를 주장에게 들게 하겠다는 목적도 있을 거야.”
내 부연설명에, 희주가 곧바로 수긍했다.
“아, 그러네.”
경기도 안 뛴 선수가 주장이라고 가장 먼저 트로피를 드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렇다고 다른 선수가 트로피를 드는 것도 좀 그렇다. 지금의 선덜랜드에서, 주장 잭에 대한 지지는 그만큼 드높았다.
이후, 브라이언은 축구 전술이 어떤 것인지의 묘미를 마음껏 뽐냈다.
로드리게스 대신 3선에 선 톰슨은 수시로 센터백 사이에 내려가며 쓰리백 대형을 취했다. 빌드업 때는 물론이지만, 가끔은 상대의 공세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위치를 옮겼다.
전반에 보여준 폭넓은 활동량과는 다른 느낌이다. 후반전에는 잭이 출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스 투 박스로 뛰는 역할은 잭이 더 어울린다.
후반전의 톰슨은, 마치 오늘은 원래부터 3선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출전했다는 것처럼. 왕성한 기량을 뽐냈다.
포백라인을 확실히 지켜냈고, 때로는 포켓 플레이를 시도했다. 그리고 우리 빌드업 상황에는 정해진 위치를 사수하며 아군이 공을 안심하고 돌릴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전반과는 대조적이지만, 또 톰슨다운 역할이다. 이렇게 경기 안에서 자기 역할을 곧바로 바꿀 수 있는 선수는 무척 희귀한 편인데··· 그만큼 톰슨이 영리하다는 뜻이겠지.
이후, 우리는 후반 내내 상파울루의 공격을 완벽하게 틀어막았고 추가골까지 뽑아냈다. 결과는 3-0, 완승이었다.
마침내 휘슬이 길게 세 번 울린 순간, 선덜랜드 팬들의 포효가 카타르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을 뒤흔들었다.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못 이길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방심하지 않기 위해, 공은 둥글다는 격언을 스스로 여러 차례 떠올려야 했을 정도로 전력 차이는 분명했다.
21세기를 맞아, 프로 축구는 고도로 자본화되었고, 뛰어난 선수와 명장은 이제 전부 유럽에서 뛴다. 유럽 챔피언이 남미나 아시아 챔피언에게 지는 모습은 이제 상상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도, 그래도.
6개 대륙의 챔피언이 모여, 세계 최강의 축구 클럽을 결정하는 대회, 클럽 월드컵의 의미는 역시 특별하다.
유럽의 왕이 된 지 반년.
우리는, 마침내 세계 최강의 축구팀을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