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35화 (335/422)

335화 지지하고 지탱하면서 (5)

“분석팀에 투자 많이 했다더니, 이 뻔한 걸 분석 안 했나 보네.”

베넷의 간결한 골 세레머니를 바라보며, 희주가 희희낙락하는 중이었다. 마치 ‘참기름을 깨소금에 버무려 드셔보세요.’ 같은 표정으로.

“뭐, 이번엔 의도적으로 분석 안 하고 나왔을 거야. 괜히 현혹되지 않으려고.”

“그치만 오빠, 세트피스 분석은 상식 아니야? 분석팀 업무 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초적인 거잖아?”

희주 말처럼 세트피스는 분석의 가장 기초긴 하다. 규칙 특성상 선수의 개인 기량보다 팀의 패턴이 훨씬 중요한 플레이기 때문이다. 팀의 조직력과 분석력을 보려면 세트피스 플레이만 보면 된다고 할 정도로.

조금 전의 뉴캐슬은 그 부분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오빠, 뉴캐슬 분석팀장 엄청 유명하다지 않았어? 월가 출신이고, 완전 데이터 전문가!”

“그래서 털린 거겠지. 데이터야 잘 다루긴 할 거야. 축구를 몰라서 그렇지.”

그러자 잠시 후 희주가 웃었다.

“아하, 다미 언니에게 데이터 분석 맡긴 셈이구나.”

“그렇지.”

사실 다미 분석관은 일단 수지 타산부터 안 맞는다. 걔 몸값이면 분석관이 몇 명인데. 하지만 그런 수지타산을 떠나서라도 다미에게 축구단 경기 분석을 맡기는 것은 바보짓이다. 다미는 어지간한 월가 데이터 전문가 못지않지만, 축구 자체는 잘 모르거든.

이번에 뉴캐슬이 바로 그런 실수를 했다.

그 팀 감독은 축구인으로서는 대단하지만, 감독으로서의 경력은 부족하다. 그리고 그 팀 분석팀장은 데이터는 잘 다루지만 아직 축구는 잘 모른다.

그 결과물이 바로 방금 장면으로 이어진 것이다. 상대의 수를 괜히 분석하지 말고 자기들 플레이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더니, 세트피스 분석도 빼먹는 결말이다.

희주가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음, 오빠가 괜히 선수 출신을 구단 곳곳에 앉혀두는 게 아니구나.”

“그럼 뭔 줄 알았는데?”

“복지인 줄 알았지. 이 팀에서 뛰면 은퇴 이후의 커리어를 보장해 드립니다!”

뭐, 그런 요소가 전혀 없다고는 말 못 하지만.

예컨대, 축구계의 쟁쟁한 레전드들 중에서, 하필이면 골키퍼 출신 페르난데스를 우리 팀 육성단장으로 데려온 이유는, 그가 우리 팀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워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르난데스가 없었더라도, 나는 선수 출신이 아닌 사람을 유소년 육성 책임자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카데미 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동료를 떠나보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유스 팀을 숫자로만 판단하게 될 테니까.

“그나저나··· 이제 경기 다 끝났네. 우리 상대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전반에 선제골 내준 팀은 아픈 꼴을 보는 게 국룰이잖아?”

“그런 국룰 없다.”

하물며 더비전은, 끝까지 모른단 말이지.

더비 라이벌은 그런 사이다. 골득실이나 승점 관리 같은 것을 도외시한 채, 그저 상대에게 패배를 안겨주기 위해서만 싸우는. 실점한 뉴캐슬로서는 당연히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테니, 경기는 더 뜨거워질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우리 벤치에 시선을 보냈다.

벤치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입술을 달싹거리며 뭔가를 계산하는 샐리와,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서 선수들을 독려하는 브라이언에게로.

그리고 그 옆에는, 브라이언 못지않은 기세로 자기 선수들 질타하는 뉴캐슬 감독 시어러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휘슬 안 울렸어! 고개 들어!”

문득, 그렇게 외치는 그의 모습이 내 은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치열한 상대, 더비 라이벌이기 때문일까.

실제로 경기가 그대로 끝나지는 않았다. 대대적 공세에 나선 뉴캐슬의 뒷공간을 노려 우리가 역습을 몇 번이나 감행했고, 뉴캐슬은 뒤를 털리든 말든 우직하게 맹공을 퍼부었다.

우리의 추가골, 뉴캐슬의 추격골··· 따라붙는 그 팀과 다시 뿌리치고 달아나는 우리.

어느새 경기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진눈깨비가 더욱 거세게 내리고 심지어 바람까지 불기 시작했는데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아주, 아주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악천후조차 식히지 못한 경기의 열기는 마침내 휘슬이 세 번 울릴 때까지 이어졌다.

[선덜랜드 3 - 2 뉴캐슬]

스코어보드에 표시된 숫자는, 비로소 타인위어 더비에 어울리는 점수가 되었다. 축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스코어로. 아,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가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

아무튼 정말 멋진 경기를 보여준 양 팀 선수들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어? 아무도 안 일어서네? 이런 명경기인데··· 솔직히 이건 기립박수 각 아니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희주에게, 슬쩍 설명했다.

“이런 명경기니까.”

아마 경기장을 빠져나가면 우리 프레스팀부터 신나게 상대를 놀려댈 것이다. 우리 팬들 역시 SNS에서 폭격을 퍼붓겠지.

그래도.

“이 날씨에, 이런 경기를 보여준 그 팀 선수들까지 놀리고 싶지는 않잖아.”

“그러니까 기립박수··· 아!”

우리가 뉴캐슬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가장 유명한 구호 두 가지를 떠올린 희주가 입을 다물었다.

Stand up if you hate Newcastle.

If you hate Newcastle clap yer hands.

경기가 끝난 다음에도 박수는 줄곧 끊어지지 않았지만, 양 팀 선수단 모두가 그라운드 위를 빠져나갈 때까지 일어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한편, SNS는 또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 2라운드 1-4, 20라운드 2-3, 규칙 딱 보이죠? 이제 내년에 딱 대라.

-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하리니. 이제 끊이지 않는 석유의 쇼미더머니가 타인위어를 지배할 것이다.

- Gap is closing!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경기력에 뉴캐슬 팬들이 애써 정신승리를 시도하는 모습에, 선덜랜드 팬들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 아니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그런 소릴 하세요 님들.

- 솔직히 경기 진 당일은 좀 아닥하자. 아직 자정 안 지났다.

- 세상에 5년간 더비 라이벌에게 한 번도 못 이긴 팀이 있다? 뿌슝빠슝!

ㄴ 야 승부차기는 솔직히 우리가 이긴 거지!

ㄴ 죄송한데 그건 6년 전임. ㄲㄲ

SNS상에서 어지럽게 오가는 바라보던 선덜랜드 프레스팀, ‘@축잘알’ 아벨이 한숨을 쉬었다.

“명작 농구만화 주인공들 같네요.”

“응? 무슨 소리야?”

“경기의 흥분과 스포츠의 감동이 남아 있는 동안은 라이벌을 존중하며 뜨겁게 하이파이브하지만, 끝나고 이성이 돌아오면 상대와 맞잡은 손을 박박 씻으러 가는 꼴이잖아요 이거.”

팀장 애니는 여전히 아벨의 비유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지원 나온 앨리스는 곧바로 알아차렸는지 미소를 지었다.

“하긴, 솔직히 이런 설전만 아니면 감동적이었을 텐데요.”

“뭐,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선덜랜드 관계자니까 감동적인 거지. 만일 스코어가 2-3이었으면 그렇게까지 감동적이진 않았을걸?”

“하긴, 그건 그래요.”

아벨의 이야기에 앨리스가 곧바로 수긍했다. 예전, 앨리스와 어울려 지내는 브라더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가장 이상적인 경기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치열한 경기를 치른 끝에, 마지막에는 응원 팀의 승리로 끝나는 거라는 게 브라더스의 철학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졌는데도 정신승리 쩌네요.”

“꼭 그렇지도 않아. 선수들 표정은 장난 아니었거든.”

애니의 지적처럼, 패배한 뉴캐슬 선수들의 표정은 2라운드 때와는 제법 달랐다. 예전엔 한 골 넣었다는 것만으로 기뻐했는데, 지금은 패배의 아쉬움에 입술을 깨물며 물러난다. 동기부여가 제대로 된 모양이다.

애니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덧붙였다.

“뭐, 명색이 구단 레전드가 감독 맡은 팀이니 동기부여는 사실 시간문제였지. 앞으로 돈도 우리와 비슷한 정도로는 쓸 거고.”

어쩌면 더 많이 쓸지도 모른다. 선덜랜드는 하부 리그 시절엔 FFP 때문에 꽤 절약하며 올라와야 했지만, 뉴캐슬은 인수된 시점부터 당당한 1부 리그 팀이다.

“앞으로 더비가, 다시 엄청 뜨거워지겠네요.”

‘그 팀’의 부활은 블랙캣츠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선덜랜드 구단 관계자로서는 꼭 나쁘지만은 일이었다. 앞으로의 흥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타인위어를, 노스웨스트나 런던 못지않은 축구의 성지로 만드는 건 구단주의 오랜 목표이기도 하다.

앨리스의 이야기에 애니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겠지. 이렇게 뜨거워진 분위기를 계속 달아오르게 만드는 게 우리 일이고.”

* * *

경기 후, 회견장에 선 시어러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더비전의 패배는 언제나 최악입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패배는, 조르디 여러분께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하긴, 어디 가서 부끄러워할 패배는 아니긴 하겠다. 그만큼 내용이 괜찮은 경기였으니.

물론 우리로서도 만족스럽다. 아무튼 승리라는 실리를 확실하게 챙겼고, 주전 일부에게 휴식을 주기까지 했거든. 이제 사흘 뒤, 새해맞이 경기까지만 치르면 나도, 선수단도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겠지.

“지난번 우리 홈에, 선덜랜드가 그 빌어먹을 버스를 굳이 끌고 와준 덕분에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우승을 다투는 팀이 된다면, 그때 스페셜 땡스 투 선덜랜드 호를 만들어서 보답하겠습니다.”

농담처럼 말하면서, 시어러가 내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고맙다는 감정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나 또한 살짝 눈을 마주쳐 답례했다.

선덜랜드 구단주에게 뉴캐슬은 숙적이지만, 그래도 그에 대해서는 나쁜 감정이 별로 없다. 이탈리아 피오렌티나와 얽힌 인종차별 이슈 때는 내 편을 들어주기도 했고.

어, 그나저나 다음은 내 차례인가? 카메라 각도가 슬슬 내 쪽으로 바뀌는 느낌이 드는데.

“그날을 아주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리미트리스 공항에 퍼레이드 버스 주차하시면 저야 이득이죠. 그런데 동선이 안 나오지 않습니까?”

반사적으로 묻자, 시어러가 껄껄 웃었다.

“어··· 지도를 보니 웸블리에서 버스 타고 올라오면 시티 오브 선덜랜드를 지날 수 있더라고요.”

고마워하는 것치고는 꽤 진심인 것 같은데.

[말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썬 리 구단주님. 브라이언 감독은 괜찮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나는 입술을 살짝 핥고 나서 대답했다.

“급체 증상이 있는데, 좀 쉬면 곧 나을 겁니다.”

오늘, 내가 ‘브라이언 대신 전해드립니다’ 신세가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브라이언 특유의 형편없는 마이크 워크는, 이번 더비전에서 믹스드존에 세우기는 좀 그렇다는 내부 분석 때문이다.

2라운드 때야 우리가 압살했으니 브라이언이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와도 상관없었지만, 오늘 같은 명승부 직후에는 좀 그렇다.

그렇다고 더비 라이벌전 직후 수석코치를 내보낼 수도 없어서, 소거법으로 내가 나왔다.

공식적으로 브라이언은 체했다. 뜨끈하게 열선 깔린 시트에 눕힌 다음 이마에 분무기를 뿌렸지. 개인적으로는 디테일을 높이기 위해 희주가 끓인 라면을 먹인 게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브라이언의 건강 이야기는 금방 넘어갔다.

[이번 박싱데이 승리로, 2위 맨시티와의 격차가 꽤 벌어졌습니다. 시즌 초부터 선덜랜드는 우승 후보로 꼽혔는데요. 우승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럴 때 선덜랜드 감독은 보통,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고 대답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눙치자 기자의 질문이 꽤 직설적으로 바뀌었다.

[은퇴한 로저스 감독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죠. 브라이언 감독님 멘트는 통역이 필요하고요. 그래서 구단주님께 더 기대가 큽니다. 이번에는 좀 다른 코멘트를 듣나 싶어서요.]

로저스 감독은 선수단이 풀어지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로저스 감독의 수제자이자 후계자인 브라이언 역시 같은 원칙을 가졌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멈추지 마라. 포기하지도, 방심하지도 말아라.]

그런데 내 원칙은 조금 다르다. 꼭 기자의 말에 휘둘리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하지만, 나는 감독이 아닌 구단주다.

화젯거리를 만들고, 선덜랜드 경기를 찾아오게 만들며, 굿즈에 지갑을 열게 해서, 그렇게 버는 돈으로 팀 시설을 개선하고 더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게 내 역할이다.

그게, 사이드라인 밖에서 팀을 지지하고 지탱하는 내 업무다. 그리고 오늘 브라이언을 대신해 이곳에 선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일부러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모범 답안을 또박또박 읊기 시작했다.

“그야, 모든 구단주의 대답은 똑같죠. 노리는 건 우승입니다. 참여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얼굴에 실망이 번졌다.

[그건 너무 교과서적인 답변 아닙니까? 구단 홍보팀 신입사원도 똑같이 대답할 것 같은데요.]

“네.”

차분하게 대답하며, 나는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런데 벌써 두 개는 우승했거든요. 슈퍼컵하고 클럽 월드컵.”

순간, 카메라가 살짝 흔들렸다고 생각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날 바라보는 시어러의 눈동자도.

잠시 후, 경악이 기자들 사이에 번져나갔다.

[설마, 6관왕이 목표라는 말씀입니까!?]

“몇 개까지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목표는 그렇습니다. 자, 이제 홍보팀 신입사원보다는 조금 영양가 있는 답변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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