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36화 (336/422)

336화 할 수 있으면 (1)

<축구는 감정이 아닌 머리로 하는 것이다 - 콜린 벨>

내 발언은, 계획대로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다.

- 6관왕? 과연?

- 선덜랜드가 요즘 엄청 센 건 알겠지만··· 그래도 경기 보면 꽤 위태위태하던데?

대충 보면, 그래도 우리 베스트 일레븐의 힘은 인정한다는 의견이 많다. 아무튼 우리는 챔스 디펜딩 챔피언이고, 심지어 베스트 일레븐에서 서른 넘은 선수는 메시 혼자다.

지난 시즌에 챔스를 차지한 스쿼드가 조금도 약해지지 않은 채 새로운 보강까지 했으니, 단판 승부에 한정하면 우리를 능가할 팀은 세계에 별로 없다.

하지만 리그는 언제나 단판이 아닌 장기 레이스고, 여러 대회를 석권하는 것은 그야말로 총력전이니, 팀 스쿼드 전체의 강함이 요구된다는 평가였다.

나는 그 점에서도 꽤 해볼 만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축구 관계자들 눈에는 여전히 우리 스쿼드 뎁스가 약하다는 모양이다.

- 마르틴, 바스티아노, 메시가 버티는 공격진은 과거 BBC나 MSN 외에는 대적하기 힘든 중량감을 자랑하지만, 백업이 크리그, 베리, 터너여서야···.

- 로드리게스와 JJ가 빠지는 시점에서, 유치원과 양로원으로 탈바꿈하는 중원도 불안 요소다.

한편, 6관왕이라는 단어 자체를 문제 삼는 케이스도 적지 않았다.

[이번에 선덜랜드 구단주가 6관왕을 거론했는데, 6관왕이라는 건 원래···.]

TV에서 떠들기 시작한 펀딧을 바라보며, 희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일본에서 유래한 건가요?”

희주는 비아냥거렸지만, 사실 나는 펀딧이 왜 ‘6관왕’이라는 단어를 문제 삼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현대 축구에서 6관왕을 해낸 팀은 지금까지 딱 두 팀뿐이다. 바르샤와 뮌헨. 그런데 그들은 모두 리그컵 우승 없이 6관왕을 달성했다. 애초에 리그컵이 없는 나라도 많으니까.

즉, 우리로 치면 EFL컵 대신 커뮤니티 실드를 우승해야 진정한 6관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올해 커뮤니티 실드 못 나간 우리는 남은 대회를 싹쓸이하더라도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커뮤니티 실드 없는 6관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별 관심은 없다. 나로서는 우리가 남은 대회 중 몇 개를 차지하느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다. 6관왕 인증 문서 같은 게 발급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지.

희주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지만.

“아니, 오빠. 커뮤니티 실드보다는 EFL컵이 훨씬 우승하기 힘든 대회 아니야? 커뮤니티 실드는 단판 경기잖아!?”

분통을 터트리는 희주를 달래듯, 부드럽게 말했다.

“대회 자체로는 그런데, 출전 자격을 갖추려면 전자가 더 힘드니까.”

예컨대, 순수하게 대회 자체의 난이도만 따지면 클럽 월드컵은 참 쉬운 대회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명백히 한 수 아래의 팀들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빡빡한 리그 일정 도중에 해외 원정을 떠나야 한다는 점, 그리고 ‘지난 시즌 챔스 우승팀’이어야만 참여할 수 있다는 조건이 더해지기 때문에, 클럽 월드컵은 우승하기 참 어려운 대회로 탈바꿈한다.

커뮤니티 실드도 그런 점에서 보면, EFL컵 이상으로 우승하기 어려운 대회다. 지난 시즌에 리그 우승, 혹은 FA컵을 우승하는 게 참가 조건이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희주가, 이대로 두면 원령이 될 것 같은 표정으로 TV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여동생의 성불을 위해 미리 준비한 군것질거리를 슬쩍 꺼내 놓으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브라이언의 집무실로 향했다.

* * *

내 친구에게서, 여동생의 표정이 엿보인다··· 그러니까, 원통해 죽겠다는 얼굴이다.

“아니, 내가 이러려고 드러누웠나··· 6관왕이라니, 인터뷰 한번 맡겼다가 이게 무슨 꼴이야.”

6관왕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이 우리 팀 감독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다. 반면, 상대적으로 샐리는 훨씬 침착했다.

“자신 없으면 그냥 코리안 핫 누들 더 드시고 쭉 누워 계시면 되는데요. 6관왕은 제가 해내도록 하죠!”

6관왕이라는 위업에 대한 야망인지, 감독 자리에 대한 야욕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샐리가 야심을 불태우기 시작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긴, 샐리는 예전부터 그렇게 말하긴 했다. 쩨쩨하게 6관왕이 다 뭐냐며, 선덜랜드 축구단의 목표는 오직 전관왕이라고 떠들었었다··· 올해는 6관왕이 전관왕인데 말이지.

아무래도 코칭스태프 사이에 오해가 번진 것 같아서,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별로 신경 쓸 필요 없는데.”

“응?”

눈을 깜빡이는 브라이언을 향해, 슬쩍 덧붙였다.

“나는 원래 예전부터, 어느 대회에 중점을 둘지는 비밀로 하고 다녔잖아. 언제 내가 우리 팀 목표가 뭔지 밖에서 말한 적 있어?”

샐리가 옆에서 대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구단주님 인터뷰는 가만 보면 우직할 정도로 원칙에 충실한 멘트죠. 참가하는 모든 대회가 똑같이 중요합니다. 전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라?”

아무래도 샐리가 먼저 깨달은 모양이다. 전술 지식이라면 거의 대등하지만, 사이드라인 밖의 일에는 브라이언보다 샐리가 좀 더 밝다.

“평소 발언하고 똑같네요?”

챔스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신분, 그리고 슈퍼컵과 클럽 월드컵을 이미 차지한 실적 때문에 ‘6관왕’이라는 키워드가 부각된 것이지, 사실 내 인터뷰는 꽤 원론적인 편이다.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최선을 다해 우승을 노리겠습니다.]

구단 경영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말한다.

“네. 사실 당연한 발언이 화제가 된 건, 우리 선덜랜드가 정말로 모든 대회에서 우승에 도전할만한 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지금의 그 팀 회장이 똑같이 발언했다면 무게감이 달랐겠죠.”

‘그 팀’도 돈을 퍼붓기 시작했으니 몇 년 안에 따라오겠지만, 그때 우리는 더 앞서가면 그만이다.

뒤늦게 브라이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나는 사실, 이번에 6관왕 못 하면 징계 먹는 줄 알았어.”

“설마 그러겠냐. 그리고 구단 내부 방침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 올 시즌 최우선 목표는 리그 우승이야. 나머지 대회는, 전부 덤 취급해도 괜찮아.”

그러자 브라이언과 샐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선수들에게는? 알려도 괜찮아?”

“그건 코칭스태프가 알아서 판단해야지.”

누군가는 팀이 6관왕을 노린다는 내 발언에 중압감과 부담을 느끼겠지만, 누군가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선수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를 테니, 판단은 코칭스태프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자 브라이언이 잠시 망설인 다음 대답했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6관왕을 노리는 걸로 하자. 다들 힘들겠지만, 모든 대회를 차지하기 위해 최대한 힘내보자고.”

* * *

한편, 선덜랜드 구단주의 인터뷰는 은퇴한 샘과 로저스에게도 전해졌다.

“썬이 힘든 길을 걷는군. 이렇게 공개적으로 선언하면 다른 팀들이 아주 난리가 날 텐데.”

샘의 발언처럼, 이번에 축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선덜랜드의 EFL컵 4강 상대, 레스터는 아주 칼을 갈고 있다는 모양이다. 마침 컵 대회에서 선덜랜드 상대로 줄곧 전적 좋지 못했기도 해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꺾어주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또한 챔스 16강 상대로 낙점된 나폴리 또한 위트 있는 멘트로 경고를 보냈다.

[선덜랜드의 패기는 같은 축구인으로서 응원을 보낸다. 그들이 5관왕으로도 만족할 수 있길 바란다.]

심지어 FA컵 3라운드 상대인 왓포드조차 전관왕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발끈했다. 선덜랜드를 상대하는 모든 팀들이, ‘전관왕?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같은 태도로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고난의 경기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로저스는 태연했다.

“구단주라면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해준 게 얼만데.”

“그거, 해준 게 얼만데는 보통 안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나?”

“알 게 뭔가.”

로저스의 이야기에, 샘은 내심 동의했다. 확실히 그동안 선덜랜드에 이희성이 투자한 돈을 생각하면, 한 번쯤 성적을 요구할 때도 되었다.

구단 자체에 투자한 돈도 그렇지만, 도시에 투자한 금액 자체가 어마어마하다. 이 정도 투자를 해줬으면, 전관왕을 요구해도 욕심은 아니리라.

옆에서 로저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보다 내 걱정은 브라이언일세. 썬이 왜 이런 타이밍에 일부러 6관왕을 운운하는 인터뷰를 했는지, 그 진의를 눈치채야 할 텐데.”

“진의?”

“내 추측이긴 하지만, 아마 정확할 거야. 알다시피 썬은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이거든.”

“합리적이지 않으면 투자자로 그만큼 크게 성공하진 못했을 테니까··· 그럼, 나도 추측 좀 해봄세.”

잠시 생각에 잠긴 샘 노인이 빠르게 덧붙였다.

“팬들은 좋아하겠군. 그러니 굿즈와 입장료 수입이 늘 게야. 응원도 거세질 테지. 어쩌면 원정까지 따라와 줄지도 몰라.”

“입장료 수입은 이미 만석인데 뭘 그러나.”

“그럼, 로저스 자네가 보기엔 수익 문제는 아니란 말이지?”

“그건 덤이겠지. 썬이 바라는 건 언제나 팀의 성적이었고, 운영 수익은 어디까지나 팀을 강하게 만들 수단이었어.”

“으음.”

침음하는 샘을 향해, 로저스가 빙긋 웃어 보였다.

“이보게 샘. 우리가 올 시즌에 가장 갖고 싶은 트로피를 딱 하나만 고르라면 어떻게 되겠나?”

샘은 별 고민도 없이 즉답했다.

“그야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이지.”

선덜랜드 관계자 누구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다른 트로피는 구단주가 바뀐 이래 최소 한 번씩은 차지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한 경험은 아직 없다.

사실, 선덜랜드의 1부 리그 우승은 로저스나 샘조차 직접 겪지 못한 이벤트였다. 마지막 우승까지는 19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 정도면 샘과 로저스조차 태어나기 전이었다.

1부 리그 우승은 선덜랜드의 오랜 염원이자 꿈이었다. 챔스 우승 트로피, ‘빅 이어’와도 쉽게 바꾸지 못할 만큼. 간절함을 따지면, 이미 한 번 차지해 본 빅 이어보다도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나?”

“아니, 샘 이 친구야. 생각이라는 걸 좀 해 봐. 설마 뇌세포까지 리지에게 맡겨두고 온 겐가? 우리가 전관왕을 노린다고 대놓고 선언하면, 상대가 어떻게 나오겠느냐고.”

“그야 전력으로 저지하려고 하겠지. 지금 벼르는 것처럼. 컵 대회 하나라도 스크래치를 내고 싶을···.”

샘도 비로소 깨달았다.

이번 이희성의 ‘6관왕’ 발언 덕분에, EFL컵이나 FA컵에서 선덜랜드를 마주하는 상대 팀은 로테이션을 돌릴 수 없게 되었다. 구단 관계자들의 자존심 때문에, 그리고 팬들의 요구 때문에라도.

그런데 컵 대회에 힘을 쏟는 팀은, 리그 우승 레이스에서는 그만큼 타격을 받게 된다.

샘이 입을 쩍 벌린 사이, 로저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걱정이야. 브라이언이 이 상황을 잘 이용해야 할 텐데···.”

“왜, 아직도 브라이언이 미덥지 못한가?”

놀리듯 묻는 샘에게, 로저스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썬의 속내를 읽어내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사실 나도 밖에서 보니까 상황이 보였던 거지, 감독을 맡는 중이었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커.”

“걱정 말게, 로저스. 브라이언은 자네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으니까.”

“그 친구의 자질이 나보다 훨씬 낫다는 건 진작에 인정하고 있었지만, 자네가 그렇게 대놓고 말하니 기분이 좀 그렇군.”

“감독으로서의 역량 이야기는 아닐세. 그보다는 커리어의 유리함이지.”

“커리어?”

이번엔 샘이 미소를 지을 차례였다.

“로저스 자네는 썬의 스승이었지만, 브라이언은 썬과 친구지. 그러니 썬은 그냥 편하게 통보하면 그만이야. 6관왕이라는 단어에 휘둘리지 말고, 그냥 리그 우승을 최우선으로 두라고.”

* * *

[EFL컵 4강, 선덜랜드 대 레스터]

여전히 쌀쌀하지만, 모처럼 날씨가 맑았다. 덕분에 오늘 경기는 오랜만에 익스클루시브 박스다.

“우리만 힘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서 희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브라이언 씨나 샐리 씨만 악당인 줄 알았는데, 오빠가 제일 악당이네.”

오늘 레스터의 라인업은, 명백하게도 그들의 베스트 일레븐이었다.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선택이다. 레스터에게 EFL컵은 그렇게까지 절실한 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원래 리그에서 챔스권에 진입하는 게 더 중요했던 팀이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우리의 전관왕을 저지하겠다는 일념으로,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EFL컵에 나왔다. 박싱데이에서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도.

레스터는 오늘의 대가를, 조만간 리그에서 꽤 비싸게 치르게 될 것이다.

“악당 오라버님. 그런데 레스터엔 오빠의 못된 꾀를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이유가 뭘까?”

“눈치야 누군가는 챘겠지.”

일단 레스터 감독부터 표정이 썩 밝지 않다. 등 떠밀려 베스트 일레븐을 꺼냈다는 느낌이 팍팍 전해져 온다. 즉, 최소한 레스터 감독 본인은 이미 내 속셈을 눈치챘다는 뜻이다.

“그럼 왜 순진하게 오빠 계산대로 움직여준 건데?”

“내 계산이라기보다는··· 팬들의 바람대로 움직인 거겠지.”

프리미어리그 로컬 팬 중에서, 자기 팀에 대한 자긍심이 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내가 인수하기 전까지, 선덜랜드는 암흑기를 겪고 있었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고, 불과 5, 6년 전 일이다. 레스터 팬들은 그 시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우리가 그들보다 강해졌다는 걸 알겠지만, 감정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몇 년 전까지 3부 리그에서 구르던 우리가, 자기네를 상대하기 전에 전관왕을 운운하는 모양을 참아넘길 정도로 얌전한 사람들은···.”

“···축구 안 보겠네. 이해했어.”

희주가 쓴웃음을 짓는 사이, 휘슬이 울렸다.

그날, 우리는 무척이나 힘든 경기를 치러야 했다. 선수단의 소모도 상당했고, 로테이션 멤버를 내보낸 상태로 상대의 베스트 일레븐을 꺾어야 한다는 조건도 퍽 가혹했다.

경기 양상은 퍽 일방적이었다. 과정만 보면 우리의 패배로 끝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경기 내용이었다.

그래도, 이곳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다.

[고오오올! 크리그의 결승골입니다! 레스터 킬러가, 마침내 팀을 EFL컵 결승으로 데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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