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40화 (340/422)

340화 열두 번째 플레이어 (1)

<공은 하나뿐이다. 그러니 공을 가져야 한다 - 요한 크루이프>

프리미어리그 정점에 선 두 팀의 격돌, 그것도 3연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언론에게도 호재였다. 각지에서 언론사가 몰려들었고, 덕분에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프레스석은 자연스레 만석이 되었다.

런던 튜브의 촉망받는 신인 기자, 엘렌도 몰려든 언론인 중 하나였다.

최근 그녀가 작성한 선덜랜드 관련 기사가 계속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이번 3연전은 아예 현장에서 취재하라는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명승부가 될 테니까, 현장감 있는 기사 부탁해!]

편집장의 간곡한 지시를 떠올리며 경기를 지켜보는 엘렌의 귀에, 거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과연 명승부가 되려나? 내가 보기엔 어림도 없어 보이는데.”

경기장 프레스석에 어울리지 않는 큰 목소리의 주인공은, 배 나온 중년의 남성이었다. 나이로 보면 어디서 편집장쯤은 하고 있을 급으로 보이는데, 풍기는 관록부터 상당하다.

그래서 엘렌은 대꾸를 포기했다.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는지 말 대신 가볍게 인상을 쓰면서 불쾌감을 표시하거나, 아예 고개를 돌려 무시하는 식으로 응수했다.

정작 상대는 주위의 그런 반응을 암묵적 동의로 받아들인 것처럼 더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야 맨시티는 결사적이겠지. 선덜랜드는 그렇지 않아. 선덜랜드가 가장 갖고 싶은 승리는 다음 경기, 프리미어리그잖아? 그런데도 명승부가 되겠어?”

어이가 없어졌는지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엘렌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말대로라면, 대체 저 아래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붉은 유니폼은 도대체 어떻게 뭐란 말인가?

사내의 말은 반만 맞았다. 선덜랜드에게는 오늘보다는 사흘 뒤의 경기가 더욱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홈팬들 앞에서 대충 싸우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프로 스포츠 구단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하물며 이렇게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팬들 앞에서는 더더욱.

엘렌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축알못.”

굳이 싸움을 걸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목소리 볼륨을 낮추는 정도의 미덕은 발휘했지만, 축알못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생각보다 의외로 크게 울렸다.

순간적으로 프레스 관계자석의 시선이 쏠린다고 생각한 찰나, 엘렌의 옆자리에서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조지. 선덜랜드에 감정 있는 건 아는데, 추하니까 그쯤 하지?”

엘렌의 시선이 옆자리의 언론인에게, 정확히는 그 앞에 놓인 명패에 향했다.

[선덜랜드 데일리 대표이사, 리타]

비록 선덜랜드 데일리는 중소 언론이지만, 업계에서는 좋은 기사를 쓰는 곳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리미트리스와의 사이도 좋아서 함부로 볼 회사는 아니다.

조지라고 불린 중년 사내가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물러섰고, 리타는 엘렌에게 미소를 보냈다.

“이해하세요. 저 남자, 타인위어 스포츠 출신이거든요.”

“아··· 선덜랜드 건드렸다가 망했다는 곳.”

“리미트리스 사장과 부사장 열애설 정도로 그쳤으면 신문사까지 망하진 않았을 텐데··· 솔직히 구단주와 비서 염문설은 선 넘었죠. 친남매인데.”

어깨를 으쓱하는 리타의 맞은편에서, 삼십 대 남성이 움찔한다. 명패를 보아하니 노스이스트 저널 소속 기자로, 스캔들 기사 잘못 썼다가 리미트리스 부사장 최다미에게 방문 참교육을 당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리타가 웃었다.

“그러고 보니 런던 튜브에 좋은 기자가 들어왔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말씀 감사하지만, 과찬이세요. 오히려 선덜랜드 데일리의 기사에서 매일 배우고 있습니다.”

의례적인 인삿말을 주고받은 직후, 리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서 우리 업계 기대의 유망주 엘렌 씨는, 오늘 경기 어떻게 보고 있어요?”

“네?”

“아까 조지 헛소리를 곧바로 축알못이라고 일축할 정도면 나름의 견해가 있을 것 아니에요? 뭐, 내가 보기엔 홈 무패 기록 때문에라도 선덜랜드가 엄청 칼을 갈고 나왔을 거라 명경기는 확정일 것 같지만.”

“제 견해는···.”

대답하기 전, 엘렌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잉글랜드 축구단 전체에서도 최고급으로 꼽히는 호화로운 프레스석 너머, 일반 관중석에서는 흔들리는 깃발과 가슴속까지 울리는 굉음이 끊이질 않는다.

“예를 들면, 오늘 선덜랜드는 롱 스로인을 많이 쓰고 있잖아요?”

엘렌이 꺼낸 롱 스로인이라는 화두에, 리타가 곧바로 대답했다.

“현역 시절 인간 투석기라고 불린, 선덜랜드 델랍 코치의 작품이죠. 마침 맨시티는 이런 종류의 세트피스에는 약한 팀이니까 안 쓸 이유가···.”

리타의 이야기에, 엘렌이 고개를 저었다.

“제 이야기는, 지난번 맨시티 원정에선 롱 스로인을 쓰지 못했다는 거예요. 에티하드에서는 절대로, 롱 스로인을 위해 도움닫기 할 공간을 주지 않으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에티하드의 광고판이 유독 선덜랜드 상대로만 전진 배치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오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광고판은 평소보다 훨씬 더 뒤로 물러난 상태다. 규정과 시설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그때 공이 사이드라인 밖으로 나갔다. 맨시티의 터치아웃, 선덜랜드의 스로인이다. 빠릿하게 움직이는 볼보이가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명승부가 되긴 하겠죠. 두 팀 모두 영국 최고, 유럽 최강을 다투는 강팀이고, 경기의 중요성만 봐도 물러설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공을 건네기 전 자신의 상의로 물기를 닦아내는 선덜랜드 볼보이를 바라보며, 엘렌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경기장에서, 누군가 선덜랜드를 꺾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 * *

이번 3연전에서, 1차전은 챔스 규정에 따라 치러진다. 덕분에 평소 리그 경기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맨시티의 펩이 주목한 요소는 바로, 좌석의 배정이었다. 컵 대회 특성상 원정팀 좌석 배정이 평소보다 늘어나고, 중립 티켓도 풀리기 때문이다.

홈팬들의 함성이 주장 잭에게 힘을 준다는 객관적 분석 데이터까지 확보한 이상, 맨시티는 최대한 많은 팬들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데려오려 애썼다.

프리미어리그의 원조 갑부 구단답게 각종 혜택을 풀로 동원해 원정 배정 좌석을 가득 채웠고, 그리고 중립 티켓 상당수를 확보하는 노력을 했다.

덕분에 오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는 진기록이 수립되었다. 리모델링 이후 가장 많은 수의 원정 팬이 입장했다는 기록이다.

그런데도 맨시티 팬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파묻혔다. 오늘도 이 경기장에는 오직 붉은 함성, 선덜랜드를 외치는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억누르기 쉽지 않군.”

펩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옆에서 스태프가 쓴웃음을 지으며 수긍했다.

“원정 좌석을 꽉꽉 채우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겠는데요. 선덜랜드엔 풋볼 스퀘어가 있으니까요.”

“으음··· 거긴, 특성상 원정 팬은 쓸 수 없는 공간이었지?”

“풋볼 스퀘어에서 맨시티 응원하려면 꽤 용기가··· 아니, 차라리 무기가 필요할 겁니다. 선덜랜드 팬으로 가득한 장소니까요.”

스태프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만일 풋볼 스퀘어에서 경기를 봐야 한다면 당장 선덜랜드 유니폼부터 사입을 겁니다. 맨시티 유니폼 입고는 거기 못 들어가요.”

도시 전체가 축구에 미쳐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열기, 유럽 어디에서도 축구에 진심인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정도로 열정적인 서포터는 선덜랜드 이외의 지역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는 절대로 돈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펩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적 시장에선 강경하게 자기 선수를 지켜내고, 로컬 보이를 프랜차이즈 스타로 만들고, 품질 좋은 굿즈를 계속 개발하고, 소통하고···.’

“···그리고 새벽마다 훈련장에 나가서 공을 차는 건가. 그 구단주는.”

“네, 선덜랜드 출신이라면, 이 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죠.”

“굳이 수식어나 조건은 필요 없을 것 같군.”

펩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피치 위에서 자신의 선수들을 몰아붙이는, 선덜랜드의 붉고 흰 유니폼을 응시했다.

축구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팀을.

‘그래도, 이번에는 이겨야 한다.’

준비한 모든 자료를 머릿속에서 냉정하게 검토하면서, 펩은 섬세하게 자신의 전술을 변경했다.

* * *

스코어보드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지만, 경기 내용은 치열하고 공격적이었다. 아마 오늘 경기를 찾은 축구팬들은 만족스러운 경기력을 즐겼으리라.

두 팀 모두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고 경기 준비도 잘 해왔다. 우선 맨시티는 좌우 풀백이 번갈아 올라가며 4-3-3과 3-4-3을 오가는 형태로 중원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으며···.

“맨시티 후방 움직임이 수상한데. 가만 보면 꼭 사람을 꼬시는 것 같아.”

희주의 혼잣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축구 보는 눈이 많이 늘었네.”

이 정도면 어디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떠들 실력은 될 것이다. 마침 이번에 앨리스가 입증한 것처럼, 예쁘고 축구 잘 아는 여자 방송은 확실한 수요가 존재한다. 그러니 최근 축구 보는 눈이 더 좋아진 희주도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 그 전에 성형은 시키고. 얘가 방송 나가려면 화장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뭔가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아니야.”

시치미를 떼며, 나는 경기장에 시선을 돌렸다.

희주의 말처럼, 맨시티는 후방 빌드업을 통해 우리 쓰리톱을 끌어내려 애썼다. 쓰리톱이 끌려나가면 필연적으로 미드필더가 전진하고, 수비와의 간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맨시티 정도로 기술 좋고 패스워크 뛰어난 팀 상대로, 수비와 미드필더 사이 공간을 내주는 건 자살행위에 가까운 선택이다. 그렇다고 포백라인까지 따라 올라가면···.

“뒷공간 털리기 딱 좋은 상황이 온다, 맞지?”

“그래. 이제 시험 봐도 B급 라이센스 정도는 나오겠네.”

나름대로 칭찬이라고 생각했는데 희주는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A급은?”

“대책까지 말할 수 있어야겠지.”

지금 브라이언과 샐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맨시티가 들고나온 전술에 대한 우리 선덜랜드의 대응은, 더욱 타이트한 압박이었다. 센터백에게서 공을 넘겨받는 맨시티 미드필더가 쉽게 돌아서지 못할 정도로 압박했다.

비록 공을 쉽게 빼앗지는 못했지만, 맨시티의 공세 자체는 간단히 무력화했다. 몸을 돌리지 못한 맨시티 선수들은 결국 백 패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하. 저렇게 막는 거구나. 이러면 유효슛은 안 주겠네··· 그치만, 이렇게 얻어맞기만 해도 괜찮아?”

얻어맞는다는 표현은 좀 걸린다. 우리는 맨시티의 공세를 능숙하게 막아내는 중이고, 아직까지 단 한 번의 유효타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희주 말에도 일리는 있다. 이곳은 우리 홈이고, 오늘은 이겨야 할 경기다.

반격이 필요하다. 점수를 가져올 날카로운 한 방이.

그리고 나는 브라이언과 샐리가 언제 반격할지도 알고 있다. 몇 분 뒤라고 예언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떤 상황에서 반격할지는 뻔하다.

언젠가 크루이프가 말한 적이 있다. 축구에서, 공은 하나라고.

그러니 반격은 일단 공부터 가져온 다음에 하는 거다.

* * *

경기 내내 잭에게 시달린 맨시티 미드필더 사이에서 농담 섞인 불만이 터져 나왔다.

“네 친구는 리트리버냐.”

경기 중이기 때문에, 요니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붙임성 좋은 잭 본인이라면 곧바로 응답했겠지만, 요니는 그렇게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다.

“테니스 안 봐? 아, 혹시 독일은 테니스가 인기가 없나?”

물론 요니는 상대의 의도에 대해서도, 테니스에 대해서도 잘 안다. 리트리버는 테니스 판에서, 상대가 치는 공을 끊임없이 받아내는 타입의 선수를 지칭하는 용어다.

주인에게 공을 끊임없이 물어다 주는 리트리버 같다는 의미에서.

공을 받는 맨시티 선수의 등에 찰싹 붙어 빌드업을 방해하고, 처음부터 다시 후방 빌드업을 시작하게 만드는 잭의 모습에서, 리트리버를 연상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이상한 발상까지는 아니다.

다만 요니의 기준으로는, 리그 우승과 챔스 4강 진출을 겨루는 상대 팀 선수를, 심지어 주장을 겨우 개에 비유한다는 것이 아웃이었다.

“끈질기네 정말.”

또다시 맨시티 포백라인이 공을 미드필더에게 패스했다. 곧바로 잭이 따라붙어, 공을 받는 상대 미드필더가 몸을 돌리지 못하게 방해했다.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맨시티 미드필더가 오늘 경기에서 벌써 몇 번인지 모를 백패스를 반복하려는 찰나···.

요니가 가속했다.

줄곧 공세가 가로막힌 짜증 때문인지, 맨시티의 백패스는 느슨했다. 어쩌면 끊임없이 계속된 선덜랜드 팬들의 함성에 묻혀, 벤치의 지시나 동료의 외침이 전해지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느슨한 패스다. 미리 가속한 요니가 가로채기 충분할 정도로. 맨시티 선수들 사이에서 절규와 비명, 외침이 마구 섞였다.

“라인 올려! 오프사이드 만들어야지!”

“멍청아! 그냥 바로 돌아가! 오프사이드 성립 안 해!”

요니 입장에서는 상대의 패스를 끊은 것이지 동료에게 패스를 받은 게 아니므로, 오프사이드는 당연히 성립할 리가 없다.

친숙한 잔디 위를 가로지르며, 요니는 맨시티 수비진을 완전히 돌파한 다음 옆으로 패스를 날렸다.

“나이스 패스!”

어느새 달려 나온 잭에게 공이 전해졌다. 맨시티 수비라인 뒤쪽에서의 일이었지만,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다. 전진 패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준족의 잭이 노마크 상태로 공과 함께 뒷공간에 파고든 시점에서, 득점까지는 이미 결정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의 플레이는 전부 확정된 운명을 확인하는 절차나 마찬가지였다.

치고 달리는 잭, 필사적으로 추격해도 따라잡지 못하는 맨시티 수비진, 달려 나오는 골키퍼와 그 옆을 절묘하게 스치는 슛까지.

[선덜랜드 1 - 0 맨시티]

마침내 맨시티의 네트가 흔들린 순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가, 풋볼 스탠드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니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쟤는 리트리버가 아니라, 클러치 플레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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