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43화 (343/422)

343화 열두 번째 플레이어 (4)

휘슬이 세 번 울린 순간, 마침내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의 대권은 우리 손에 거의 넘어왔다.

쇼핑 중독자 희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정도면 상품명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이라고 적힌 택배 박스가 문 앞에 놓인 상태야. 뜯어보고 이상 없는지 확인하는 단계가 남았겠네.”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대업을 해낸 선수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하다. 몸은 다들 축축 늘어질 텐데.

“체력적으로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오늘 의외로 괜찮았나 봐? 경기 끝났는데 요니 안 드러눕네. 잭은 아주 멀쩡해 보이고.”

희주의 의문에 곧바로 대답했다.

“아직 한 경기 남았으니까··· 맨시티하고.”

다들 내색은 안 하지만, EPTS로 측정한 값에 따르면 슬슬 선수들의 피로도가 위험한 수준까지 쌓였다는 모양이다.

특히 잭과 요니가 심각하다. 잭은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했고, 요니는 잭보다는 덜 뛰었지만 대신 타고난 지구력 차이가 상당하다.

당장이라도 잔디에 드러눕고 싶은 몸을 이끌고,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반쯤은 고양감 때문이리라. 승리의 기쁨이 뿜어내는 엔돌핀에 취해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팀에 대한 의무감이겠지. 아직 맨시티와의 3연전이 끝나지 않았으니, 주장단으로서는 절대로 지친 기색을 드러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잠시 후 우리 스태프들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디컬 팀은 마사지와 쿨링다운을 위해 뛰어 들어갔고, 프레스팀은 믹스드존에서 펼쳐질 인터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CS팀에게는,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어려운 업무가 할당되었다. 열광하는 팬들의 흥을 꺼트리지 않으면서,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 * *

경기 종료 후, 믹스드존에 선 양 팀 감독을 향해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이로써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이 끝났다는 의견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직설적인 질문에, 펩은 얼마간 카메라를 빤히 지켜봤지만, 시간을 오래 끌지는 않았다.

“네, 마지막 기회를 날렸죠. 이제 다음 찬스는 오지 않을 겁니다.”

[아직 산술적으로는 결과가 뒤바뀔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만···.]

“오늘 이런 경기를 펼친 팀이 앞으로 다섯 경기를 전부 진다고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모욕적인 일이 될 것 같군요. 미리 축하합니다. 대략 백 년 만의 우승이던가요?”

[정확히는 팔십 년 전이라고 합니다. 반올림은 좋지만 너무 올려치지는 말아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흘 뒤 에티하드에서 뵙겠습니다.”

펩은 신사적인 미소로 인터뷰를 마쳤고, 브라이언 또한 오늘은 비교적 깔끔한 인터뷰를 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만 답하자, 언론은 이야기를 더 끌지는 않았다.

브라이언답지 않은 깔끔한 인터뷰의 비결은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들이 쓴다는 대본용 장비, 프롬프터의 힘이었다.

[제발, 믹스드존에서 뭐 하려고 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프레스팀에서 대본을 제공하기도 했었다. 모처럼 프롬프터가 있으니 브라이언도 멋진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헛된 꿈이었고, 참혹한 국어책 읽기를 확인했을 뿐이다.

사실, 드레싱룸에서는 브라이언도 선수들을 나쁘지 않게 독려하는 편이다. 팀을 맡은 초창기에는 연설 실력도 참혹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그러니 추세로 보면 인터뷰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좀 나아지겠지.

대신 선덜랜드는 선수와 구단주를 믹스드존에 아낌없이 투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주장 요니를 세웠다.

우승을 축하한다는 기자의 질문에, 요니는 차분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저희 감독님이 뭐라고 하셨죠? 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리그에서는 아직 다섯 경기가 남았고, 챔스와 FA컵도 남았다고, 덕분에 다들 힘들어 죽겠다고 너스레를 떨어 보인 요니가, 표정을 고쳤다.

“오늘 상대는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맨시티는 아주, 아주 강한 팀이니까요. 몇 번이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죠. 그때마다 들린 함성이 있기에, 저희는 멈추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늠름하게 대답하는 요니의 태도에서, 관록이 느껴졌다.

하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큰 대회에서의 경험은 사람을 키우는 법이니까. 요니는 월드컵 본선을 경험했고, 챔스를 우승했다. 그리고 이제 리그 우승 또한 목전에 두고 있다.

유럽에서 뛰는 축구선수 평균보다 작고 왜소한 선수는, 이제 선덜랜드의 보물이라 불리며, 팀을 대표하는 스타가 되었다.

자신이 이방인이 아닐까 고민하던, 그래서 소심함에 며칠씩 틀어박히기도 했던 어리고 나약한 모습은 이제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요니를 바라보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한편,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애들··· JJ 듀오는 가치가 너무 박하게 매겨진 것 같다는 의문도 떠오른다.

그 순간, 내 시야가 흐려졌다. 피곤할 때 순간적으로 시야가 떨려 보이는 것처럼.

“마지막까지 싸우겠습니다. 휘슬이 울릴 때까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시야가 돌아왔을 때 나는 살짝, 아주 살짝 기대했지만, 요니 이마의 숫자 270은 조금의 변화도 없이 선명했다.

* * *

잔여경기 5경기, 2위와의 승점 차이는 12점, 잔여경기 중에는 중하위권 팀 다수 포진. 누가 봐도 사실상 우승을 확정한 상황이다.

덕분에 시티 오브 선덜랜드는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팬들은 곧바로 폭죽을 터트렸고 풋볼 스퀘어에서는 축제가 벌어졌으며, 축구 펍에는 샴페인 반입 요청이 쇄도했다.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조르디 놈들 마지막 우승이 언제더라?”

“몰라. 대충 백 년쯤 전 아닐까?”

“백 년? 우리 우승은 그래도 여왕 폐하가 보셨지만, 걔들 건 못 보셨겠네.”

실제로는 90여 년 전으로, 선덜랜드의 마지막 우승과는 딱 9년 차이가 난다. 둘 다 까마득한 옛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큰 차이도 아니었다. 그리고 영국 여왕은 뉴캐슬의 마지막 우승을 목격했다··· 태어난 해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물론,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팬들로서는 그런 디테일을 따질 이유가 없었다.

If you hate Newcastle clap yer hands.

정작 CS팀, 스퀘어관리팀, 시설관리팀은 하나같이 엄숙했다.

“부팀장님, 이번엔 팬서비스 안 하나요? 모처럼의 우승인데.”

신입 직원의 순진한 질문에, 에이미가 고개를 저었다.

“팬들이 즐기는 건 괜찮지만 우리가 부추기는 건 안 돼. 아직 공식적으로는 우승한 게 아니니까. 그리고 아직 다른 대회도 남아 있어.”

내부적으로는 리그 우승이 최우선이라고 정했지만, 외부에 표명한 입장은 조금 다르다. 구단주가 직접 6관왕을 노리겠다고 선언한 상황, 선덜랜드는 아직 목표의 절반밖에 이루지 못했다.

트로피 세 개는 아직 진행 중이다. 리그 우승은 사실상 거의 가져왔지만, 챔스와 FA컵은 한참 멀었다.

“앞으로도 힘든 경기가 될 거야. 선수들이 끝까지 집중할 수 있도록, 팀에서 설레발치지는 말아야지. 맨시티는 우리보다 스쿼드 뎁스가 두꺼운 팀이거든.”

오늘 경기에서 맨시티는 쿨하게 로테이션을 돌렸다. 따라잡을 가망이 희박한 리그 대신 챔스에 집중하겠다는 의도겠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반면 선덜랜드의 벤치 멤버는, 맨시티를 꺾어버리기엔 조금 부족하다. 그래서 오늘 선덜랜드는, JJ 듀오는 물론, 주전 공격수 바스티아노와 마르틴까지 출전시켜야 했다.

신입이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이해했나 싶어서 에이미가 미소를 지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신입이 손을 들어,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유독 열광적인 지점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팬들 사이에 섞여, 잭이 날뛰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인터뷰를 마친 요니의 모습도 보인다. 선덜랜드 유스 출신 총집합령이라도 떨어졌는지, 오늘은 해리슨도 합류했다.

[선수들이 집중할 수 있게, 설레발치지 말아야 한다면서요?]

손짓의 의미를 파악한 에이미가 인상을 썼다.

“저 사람들은 저래야 집중이 된대. 특히 우리 주장은 저래야 피로가 풀린다나 봐. 참 신기하지?”

스태프에게는 가끔 골칫덩어리가 된다. 극한의 경기를 치른 만큼, 이제 자기 몸도 좀 챙겼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선덜랜드의 팬이라면 저런 선수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입이 키득거렸다.

“부팀장님하고 똑같네요.”

“나하고?”

“팬들이 몰려들면 아주 날아다니시잖아요.”

“그건···.”

에이미는 물끄러미 팬들의 축제를 응시했다. 보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풍경과, 가슴을 뛰게 만드는 노랫소리를. 아마 그녀 또한 시티 오브 선덜랜드 토박이이고, 구단의 오랜 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CS팀 부팀장이라는 지위만 아니었다면, 그녀 또한 응원용 레플리카로 갈아입고 저 물결 속에 몸을 맡겼을 것이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외쳤겠지.’

우리가 맨시티에 이겼다고. 우리는 올 시즌, 리그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6시즌째 무패의 경기장이라고.

하지만, 선덜랜드 CS팀 부팀장으로서는 다른 행동을 해야만 한다.

“나는 이제 업무에 익숙하기 때문일 거야.”

에이미는 메디컬 팀에 민원을 넣어, 1군 선수 세 명을 모조리 회수했다. 그 와중에 선수들이 축제를 즐길 약간의 여유 시간을 허용한 것은···

We're Black Cats supporters.

···그녀 또한 블랙캣츠이기 때문이리라.

* * *

그리고 시간은 무섭게 지나갔다. 나흘이라는 간격은, 연전의 피로를 씻어내기에는 너무 짧았다.

3연전의 마지막, 챔스 8강 2차전을 앞둔 브라이언의 얼굴은 우울했다.

“리그에 너무 올인했나··· 사실 그 경기 내줬어도 뭐, 나머지 잔여경기 전부 다 잡으면 리그 우승은 확정이었는데 말야.”

가벼운 자책 중인 브라이언을 위로했다.

“승점만 보면 그렇지만, 기세의 문제도 있으니까. 리그에서 무패 우승에 근접했던 팀들을 보면, 무패 기록이 깨진 직후 고전하는 경우가 많잖아?”

옆에서는 샐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기부여에 문제가 생기고 사기가 꺾이기 때문이겠죠. 구단주님 말씀이 맞아요. 만일 33라운드를 맨시티에 내줬으면, 34라운드도 장담하기 어려워요··· 그랬을 경우, 맨시티와 승점은 3점 차로 좁혀졌겠죠.”

“보통 그 정도로 맹추격하는 팀은 기세가 오르는 법이니까··· 리그 우승도 장담 못 했겠죠. 브라이언, 너는 올바른 판단을 한 거야.”

“그런가.”

아주 살짝 웃음기가 돌아온 브라이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부담을 덜어줄 겸 덧붙였다.

“네 판단 덕분에 리그 우승은 이제 사실상 거의 확정이야. 올 시즌 목적은 이뤘어··· 그러니까 선수들 앞에서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런 표정?”

브라이언의 의문에 뭐라고 대답해줄지 고민하는 사이, 샐리와 희주가 차례로 응답했다.

“파이용 고기처럼 뭉개진 표정이요.”

“어··· 오빠 카드 빌렸다가 한도 계산을 잘못했을 때의 표정?"

그러자 브라이언이 피식 웃었다.

“레이디, 그 카드는 사실상 한도가 없지 않습니까?”

“···네, 그러니까 큰일이죠.”

사실, 희주가 정말로 내 카드에 한도를 띄워버릴 정도로 흥청망청 써댄 건 아니었다··· 희주 대학 새내기 때 경제관념 키워준다고 한번 한도를 확 줄였던 건데,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면 효과가 좋았나 보다.

잠시 후 브라이언의 얼굴에도 평소의 여유가 돌아왔다.

“자, 그러면 3연전 마지막, 잘 싸우고 올게.”

“그래.”

* * *

[챔스 8강 2차전, 맨시티 대 선덜랜드]

에티하드 스타디움엔 맨시티의 상징, 하늘색 유니폼의 물결이 가득 넘실거렸다. 간절하게 4강 진출을 바라는 맨시티 홈팬들이 그야말로 만원사례를 이룬 것이다.

오늘 경기의 양상은 지난 경기와는 조금 달랐다.

홈 팬들의 성원을 등에 얻은 맨시티는 게임의 주도권을 곧바로 가져갔고, 우리는 자랑하던 기동력을 잃은 상태였다. 자연히 우리가 내려앉았고, 가드를 세운 채 계속해서 얻어맞아야 했다.

전반 30분, 선제골을 내준 우리는 후반 시작 직후 추가골을 허용했다. 덕분에 맨시티 홈 팬들의 목소리는 한층 더 커졌다.

[ (2) 맨시티 2 - 0 선덜랜드 (1) ]

“지난주에 당한 대로, 똑같이 갚아 줘!”

맨시티 타임을 외치는 목소리, 심장까지 울리는 발구름 소리가 온 사방에서 퍼진다. 덕분에, 이곳이 적진임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래도.

We're Black Cats supporters.

이곳에도, 함성이 들린다. 과반수를 넘긴 맨시티 서포터의 외침 사이로 새어나오는,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그렇게 우리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지친 미드필더진이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텼고, 평소 활동량이 약점이라던 축구의 신조차 수비에 가담하는 헌신을 보였다. 그리고 우리 포백라인은 육탄 방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확인시켰다.

그렇게 90분이 경과되었을 무렵, 우리는 마침내 총합 스코어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4) 맨시티 4 - 3 선덜랜드 (4) ]

선수들이 연장전을 준비하는 사이, 옆에서 숨죽인 흐느낌이 들렸다. 쳐다볼 필요도 없이 희주일 것이다. 이곳, 익스클루시브 박스에서 내 옆에 앉는 사람은 한 명뿐이니까.

나 또한 아무 말도 않은 채, 우리 벤치를 내려다보았다.

교체 카드 세 장을 다 쓰면서 악착같이 시합을 원점으로 되돌린 브라이언과 샐리를, 그 옆에서 피가 나게 입술을 깨문 주장과, 쥐가 난 다리를 바늘로 찌르는 요니를.

[(5) 맨시티 5 - 3 선덜랜드 (4) ]

그날, 선덜랜드는 챔스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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