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45화 (345/422)

345화 80년이 지난 뒤에도 (1)

<축구를 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쉽게 축구하는 것은 가장 어렵다 - 요한 크루이프>

뉴캐슬어폰타인, 세인트 제임스 파크.

회장 집무실 문을, 시어러가 박차고 들어왔다.

“분석팀장이 안 보여, 이 중요한 시기에!”

뉴캐슬 회장 나지프로서는 일상적인 상황이었기에,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중요한 시기요?”

“그렇지. 눈물을 머금고 선덜랜드에게 5관왕을 허용하는지, 아니면 4관왕에서 막아버리는지가 달린 시기 아닌가?”

“FA컵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모처럼 우리가 4강까지 올라갔으니까.”

4강에서 그 맨시티를 상대하는 뉴캐슬 감독으로서는 패기 넘치는 발언이었지만,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선덜랜드와의 3연전 덕분에 맨시티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FA컵보다는 챔스에 힘을 줄 거라는 예상이었다.

“아무튼 도슨이 안 보여. 전화도 안 받고! 지금은 업무 중이라 통화가 안 된다는데··· 감독이 모르는 분석팀장 업무가 어디 있나?”

으르렁거리는 시어러를 향해, 나지프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도슨은 파견 갔습니다.”

“파견?”

“미들즈브러에요. 앞으로 2라운드 정도 그쪽을 도와줄 겁니다.”

시어러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선덜랜드에게는 뉴캐슬이, 뉴캐슬에게는 선덜랜드가 최고의 숙적이지만, 미들즈브러는 두 팀 모두에게 두 번째로 싫은 팀으로 꼽힌다. 여담으로 미들즈브러는 선덜랜드를 가장 싫어하고 뉴캐슬을 그다음으로 꼽는다.

뉴캐슬 토박이인 시어러 입장에서, 미들즈브러는 선덜랜드보다는 조금 낫지만 아무튼 앙숙임에는 변함없는 상대다.

“아니, 보로 놈들을 우리가 왜···.

시어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비서 사만다가 재빨리 리그 전체의 일정표를 내밀었다.

“35라운드··· 선덜랜드 대 미들즈브러?”

이제 상황을 파악한 시어러의 얼굴이 조금씩 펴졌다.

“선덜랜드가 34라운드에 우승을 확정할지, 아니면 35라운드에 할지 어떨지는 모릅니다. 그건 맨시티에게 달렸죠. 다만 35라운드의 미들즈브러는···.”

“죽기 살기로 싸우겠군. 그래서 분석팀을 지원한 거고.”

“그렇습니다. 혹시 감독님이 원하시면, 지금이라도 도슨을 다시 복귀시킬 수 있는데요.”

“복귀는 무슨, 팍팍 밀어줘야지. 축구판에 오래 살다 보니 내가 보로 응원하는 날이 다 오는군.”

뼛속까지 조르디인 시어러의 대답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에게 총알 두 방을 준다면, 그는 당연히 맥켐즈를 두 발 쏠 것이기에. 보로와 독사는 그다음 문제다.

나지프가 미소를 지었다.

“네, 사실 선덜랜드가 이제 와서 리그를 놓치진 않겠지만, 마지막까지 힘 빼게 만들어야죠. 고생하도록요. 그래야 FA컵에서 해볼 만한 상태가 될 테니까요.”

“챔스 탈락한 직후 보로에게 발목 잡히기라도 하면 아주 볼만할 거야.”

뉴캐슬의 회장과 감독이 마주 보며 웃었다.

“선덜랜드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요?”

“글쎄. 선수단을 모아 놓고 연설을 하고 있지 않을까? 패배를 딛고 일어나야 한다는 식으로.”

* * *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 브리핑 룸.

선덜랜드 축구단의 모든 공간이 대체로 그렇듯, 이곳 브리핑 룸도 최첨단 설비와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는, 크고 아름다운 시설물이었다.

하지만 브리핑 룸에 1군 선수 스물네 명과 주요 스태프들이 모이자 썩 넓은 느낌은 아니었다.

“자, 모두 모였습니까?”

브리핑 룸 연단에 서서, 톰슨이 중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여러분을 불러모은 이유는···.”

톰슨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해리슨이 미소를 지었다.

“저, 알 것 같은데요.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한 거죠?”

“독려?”

잠시 후, 해리슨은 퍽 멋들어진 동작과 열정적인 목소리로 시범을 보였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잘 들어. 이 경기는 지나갔어. 그리고 우리는 노리치···.”

톰슨이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선덜랜드에 오기 전, 첼시와 노리치에서 뛴 적 있는 그의 표정이 퍽 볼만해졌다.

“아니, 그거 아니야. 노리치 가지 마. 노리치는 물론 아주 괜찮은 곳이지만, 가지 마.”

“안 되나요?”

“안 되지. 그거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소린데.”

벌써 십 년쯤 지난 과거, 맨시티를 맞대결에서 잡아내고 자력우승의 찬스를 맞이한 리버풀 주장 제라드의 명연설이었다. 우승에 성공했다면 축구계의 전설로 남았을 멘트인데, 이후 본인이 미끄러지며 우승을 놓치는 바람에 그만 밈으로 남고 말았다.

톰슨의 지적에 해리슨은 불만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맨시티에게 리그 우승을 뺏는 팀은 원래 그렇게 하는 거라던데요?”

그러자 스태프들이 아우성을 쳤다.

“해리슨 선수. 혹시 그 이야기 어디서 들었어요?”

“블로그에서 봤어요. 제목이 타인위어 뭐였는데···.”

톰슨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타인’ 위어겠지. 조르디 놈들한테 당할 뻔했네.”

사연을 확인한 해리슨은 곧바로 그 블로그를 차단했고, 스태프 자격으로 참여한 앨리스는 곧바로 ‘선덜랜드 유소년이 접속하면 안 되는 사이트’ 명단을 업데이트했다.

그사이 톰슨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제 와서 새삼 무슨 그런 독려가 필요하겠어. 너희들 중, 챔스 놓쳤다고 풀어질 사람이 있긴 하냐?”

선수단은 물론, 스태프들까지 일제히 동의했다.

이번 맨체스터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팬들이 보여준 모습에 선덜랜드 선수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영화에 악역으로 나와야 할 것 같은 외모와 달리 의외로 감성적인 이고르는 눈시울을 붉혔고, 마르틴은 무뚝뚝하게 창밖을 응시하며 [나, 이 사람들 위해 뛴다] 고 선언했다.

일부 언론의 반응처럼, 챔스 탈락의 충격 때문에 리그에서도 악영향을 받을 거라는 예상과는 대조적으로, 선덜랜드 선수들은 사기가 최고로 끓어오른 상태였다. 그러니 톰슨의 이야기처럼, 굳이 독려는 필요 없는 상황이다.

에디가 미소를 지었다.

“이해합니다. 쿠데타 시도군요.”

“쿠데타?”

“캡틴을··· 잭을 부르지 않았잖아요. 따라서 주장을 갈아치우려는 쿠데타겠죠.”

조금도 진지하지 않은 태도로 빙글거리는 에디를 향해, 톰슨이 인상을 썼다.

“이제 와서 내가 새삼 주장 자리를 탐내겠냐? 앞으로 몇 달이나 해먹는다고.”

톰슨이 무뚝뚝하게 선언하자, 에디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얼마간 입술을 깨물던 에디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농담을 꺼냈다.

“··· 저를 주장으로 추대하려는 거 아니었습니까? 포백라인의 중심이자 팀의 핵심, 저 에디 레이놀드를.”

“그랬으면 애초에 부주장도 부르지 않았겠지? 사실은 주장도 곧 올 거지만.”

선덜랜드의 주장은 정확히 그 타이밍에 도착했다. 브리핑 룸 앞문을 열고 들어오며, 잭이 머쓱한 얼굴로 인사했다.

“죄송함다. 구단주님하고 면담 좀 하느라고 좀 늦었슴다.”

“면담?”

“네, 하지만 사유는 말씀드릴 수 없슴다.”

단호하게 대답하는 잭을 향해, 톰슨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냈다.

“괜찮아.”

베테랑 톰슨은 곧바로 면담 사유를 짐작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구단주가 굳이 주장만 따로 불러내 이야기한 의도가 무색해진다.

대신 톰슨은, 모두를 불러모은 이유를 설명했다.

“방금 에디 드립 때문에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여러분과 함께 뛸 경기가 앞으로 여섯 경기다. 어쩌면 너무 늦게 이야기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동안은 다들 바빴고, 팀이 계속 달려나가는 중이라 기회를 자꾸 놓쳤어.”

주위가 숙연해졌다.

톰슨은 구단주 이희성이 팀을 인수한 시즌에 선덜랜드에 합류했고, 이후 누구보다 프로답게, 베테랑으로서 헌신해왔다.

이대로 이번 시즌에 리그 우승을 확정한다면, 톰슨은 선덜랜드가 트로피를 차지한 모든 대회에서 뛰어본 선수가 된다. 이적생이 세울 수 있는 최고의 대기록인 셈이다.

“그동안 고마웠고, 마지막까지 좋았던 기억만 남기고 싶다.”

그러자 옆에서 해리슨이 불쑥 대답했다.

“여섯 경기가 아닌데요. FA컵 4강전을 이기면 일곱 경기잖아요?”

“그렇게 되나.”

“좋은 기억 남기려면, 당연히 이겨야겠죠.”

“그래야지.”

톰슨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주장 잭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건 역시 주장에게 어울리는 멘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눈이 마주치자, 잭이 곧바로 힘차게 선언했다.

“앞으로 일곱 경기 동안, 단 한 게임도 내주지 말자.”

* * *

브라이언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오늘, 톰슨이 은퇴 선언하는 날이었지?”

“맞아.”

본인의 강력한 희망 때문이었다. 이번 맨시티와의 3연전 일정이 끝나면 동료들에게 은퇴를 발표하겠다고.

[3연전을 모두 따낸다고 해서 우리 선수 중 누구도 풀어지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해. 반대로 타격을 좀 입었다 해서 무너지지도 않을 거고··· 그래도 항상 보험은 필요하잖아?]

[자기 은퇴 발표를 보험으로 쓰는 놈이 세상에 어딨냐?]

브라이언의 불만에도, 톰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게 제일 쉽잖아. 주장에게 선수단을 추스르는 부담까지 얹느니, 내 은퇴를 써먹어야지. 잭은 가뜩이나 이것저것 짊어진 게 너무 많은데.]

그렇게 톰슨은 동료들과 스태프를 불러모은 상태로 은퇴 발표를 강행했고, 그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었던 브라이언은 코치진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그랬다가 나한테 잡혔지만.

그때 노크 소리가 났다. 루벤이었다.

“재미있는 보고가 있어서 급히 달려왔습니다. 구단주님, 감독님. 뉴캐슬 분석팀장이 미들즈브러에서 목격되었다는 소식인데요.”

“음? 이직하려고 그러나?”

브라이언의 반사적인 질문에, 내가 대신 대답했다.

“이직은 아닐 거야. 미들즈브러는 뉴캐슬 분석팀장 몸값 절대 못 맞추니까.”

뉴캐슬 분석팀장 도슨은, 월가에서 이름을 날린 데이터 전문가였다. 월가에서 받던 대우가 있으니, 뉴캐슬 또한 그에 준하는 수준의 몸값을 지불하고 있을 것이다··· 미들즈브러 입장에서는 맞춰줄 수 없는 금액이다.

“브로, 그럼 뉴캐슬 팀장이 왜 미들즈브러에서 목격된 건데?”

“파견이겠지.”

“뉴캐슬이 보로에 파견을 보낸다고?”

“보로가 상대하는 팀이 우리라면, 당연히 보로를 밀어주고 싶지 않겠어? 하물며 우리는 리그 우승이 걸렸으니까.”

내 예상에, 코치진의 얼굴이 변했다.

“더비 라이벌 둘을 한 경기에서 박살 낼 찬스라고? 오히려 좋아.”

“그러네요? 이건 귀한데요.”

브라이언과 샐리는 오히려 기뻐 보였지만, 루벤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괜찮으시면 저도 브라이튼에 파견 좀 보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브라이튼에?”

“뉴캐슬과 똑같은 짓을 하자는 거죠. 34라운드에서 맨시티는 브라이튼하고 붙잖습니까? 브라이튼은 전에 봤을 때 아주 재미있는 축구를 했었고, 맨시티는 우리와의 3연전으로 잔뜩 소진되었으니, 어쩌면 승점을 잃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꽤 솔깃한 제안이기는 하다. 우리가 34라운드를 이기고 맨시티가 지거나 비기면, 35라운드 미들즈브러전까지 갈 것도 없이 우승을 확정하니까.

그 경우, 35라운드는 우승을 확정한 후 처음 치르는 홈 경기가 된다··· 더비 라이벌 앞에서 트로피를 수여받을 찬스이며, 미들즈브러는 우리에게 가드 오브 아너를 해야 한다.

그리고 분석팀을 파견한 뉴캐슬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거고. 마지막이 제일 솔깃하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어째서냐고 묻는 듯한 루벤의 시선에, 나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무리 우리 상대로 힘 뺀 직후라지만, 브라이튼에게 지는 맨시티를 보고 싶지는 않군요. 챔스에서 우리를 꺾은 직후라면 더욱.”

루벤이 침묵하는 사이, 나는 브라이언에게 시선을 보냈다.

“혹시 노리치 원정, 자신 없어?”

“그럴 리가.”

이번엔 샐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홈에서 보로를 잡을 자신은?”

“자신 없다고 대답할 거면, 수석 코치 자리 반납해야죠.”

기대했던 답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노리치 대 선덜랜드]

경기는 초반부터 아주 뜨거웠다. 우리의 일방적인 공세라는 의미에서.

전반 12분, 마르틴의 선제골로 앞서 나간 우리는, 20분에는 크리그, 39분에는 요니가 추가골을 뽑으며 전반부터 크게 앞섰다.

[노리치 0 - 3 선덜랜드]

희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거, 나중에 노리치에서 항의 들어오는 거 아냐? 맨시티한테 뺨 맞고 왜 자기네한테 화풀이하냐고.”

나도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우리로서도 힘 뺄 수 없는 경기였다. 80년 만의 리그 우승을 확정 짓기 위해, 우리는 승점이 더 필요했으니.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 챔스 탈락이라는 악재에도, 우리는 아직 건재하다는 걸 리그의 다른 팀에게 과시해야 했다. 그리고 한결같이 지지해준 팬들에게도, 우리는 괜찮다고 알려줘야 했다.

그날, 우리는 노리치를 4점 차로 대파하며 프리미어리그 선두를 질주했다.

같은 날 맨시티가 승리하며, 2위와의 승점 차이는 여전히 12점으로 유지되었다. 우승을 확정할 경기가 한 라운드 밀렸지만, 오히려 기분은 더 좋았다.

80년 만의 우승까지 필요한 승점은 이제 단 1점, 그 승점을 더비 라이벌을 꺾고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니까.

우리는 그렇게, 위어티스 더비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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