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56화 (356/422)

충성의 가치 (3)

CS팀 스태프를 모아 놓은 앞에서, 에이미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올 시즌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챔스 결승전을 치르게 됩니다. 평소보다 더 많은 팬들이 와주실 예정이므로 접객에 소홀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합시다.”

프리시즌은 아무래도 CS팀이 상대적으로 한가한 시즌이다. 경기라고는 친선경기 몇 개가 고작이고, 경기장과 부대시설을 찾는 팬들도 평소보다 적다. 조만간 톰슨의 은퇴 경기가 추가되겠지만, 그래봤자 하루다.

그래서 이렇게 직원을 불러 모아 교육할 짬이 생기는 기간이고, 인원을 보강할 찬스이기도 하다. 에이미 말처럼 올 시즌에는 챔스 결승전을 치르는 만큼, CS 인력을 추가로 채용했다.

“특히 해외에서 팬들이 오신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도록 하세요. 영어를 못 하시는 고객도 불편을 겪지 않도록 어느 나라 분인지 빠르게 확인하고,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스태프를 호출해서 대응하도록 합니다.”

연수 중 마크가 가슴에 붙은 CS팀 신입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주로 지역 주민 위주로 채용하다 보니 대체로 팀에 대한 호감을 가진 직원들이지만, 채용 직후 해외 팬이나 외국어 응대 이야기를 들으니 긴장도 되는 모양이다.

“경기장 근처의 숙소는 물론, 스낵바, 레스토랑, 노점 음식의 재료를 숙지해, 다양한 문화권에서 오시는 분들께 불편함이 없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의 테스트를 해 보죠. 혹시 손님 역할을 맡아 주실···.”

“네.”

기쁜 마음으로 손을 들었더니, 에이미가 울상을 지었다.

“어··· 구단주님은 좀.”

“아니 내가 왜요.”

“교육받는 신입사원도 섞여 있는데, 고용주께서 손님 역할로 오시는 게 말이 되나요?”

그래서 나는 침착하게, 들어 올린 손을 그대로 움직여 CS팀 사이를 가리켰다.

“그럼 우리 주장단이 접객을 하는 건 말이 되고요?”

“어라?”

그제야 CS팀에 섞여 교육을 받으려던 잭과 요니를 찾아낸 에이미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3분 후.

나와 에이미, 잭과 요니가 사이좋게 로비 의자에 마주 앉았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내자, 요니가 먼저 대답했다.

“에이미 부팀장님 말씀처럼 해외 팬들이 많이 오신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혹시 응대 요령 같은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잭이 대답했다.

“올해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챔스 결승전이 열림다. 해외 팬도 많이 오실 검다. 대비해야 함다.”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프로라면 팬 서비스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잭과 요니에 한해서라면, 굳이 더 좋은 팬 서비스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에이미도 동감했는지, 옆에서 슬쩍 눈을 흘긴다.

“팬 서비스는 중요하지만, 모처럼 챔스 결승이 우리 홈에서 열리는 거니까 남의 잔치가 되지 않게 해야죠. 서비스는 저희에게 맡기시고 두 분은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 주세요.”

그러자 잭이 요니를 바라보았고, 요니가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동시에 왼쪽 손목을 내밀어 보였다.

“저희는 휴가 기간 동안 훈련 금지라는데요?”

”메디컬 팀이 이런 걸 채웠슴다.”

둘은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다. 팀에서 협찬받은 물건인지 액정엔 선덜랜드 엠블럼이 선명하다.

심박 측정 기능이 붙어 있는 모델이었다. 경기용 ETPS처럼 정밀하지는 않겠지만, 개인 훈련을 했는지 정도의 여부는 쉽게 파악할 수 있겠지.

마침 잭과 요니는 휴가 기간에 따로 여행도 가지 않고 줄곧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 머무르는 타입의 선수들이다. 혹시라도 무리하는 기색이 보이면 곧바로 메디컬 팀이 출동할 게 분명하다.

상황을 알아차린 에이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나는 무심코 웃어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올 시즌, 특히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오죽하면 코칭스태프가 당분간 그냥 쉬라고 요구하고, 메디컬 팀에선 몰래 개인 훈련하지 못하게 감시할 정도다.

그랬더니 쉬는 기간에 CS팀과 같은 교육을 받겠다고 하는 선덜랜드의 주장단은 확실히 팀의 자랑거리다.

무심코 둘의 이마에 시선이 갔다. 두 사람을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충성의 가치는 돈으로 측정이 안 되는 모양이다. 만일 팀에 대한 애정에도 가격이 매겨진다면, 둘의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아주 훨씬 비쌌을 테니.

잠시 잭과 요니를 응시하던 나는, 이번엔 에이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우리 주장단과 같이 교육을 받으면··· CS팀 신입들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요?”

“불편하긴요. 오히려 아마 좋아 죽으려고 할걸요? CS팀은 기본적으로 선덜랜드의 팬들만 채용하는 부서니까요.”

“그럼 며칠쯤은 둘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시죠.”

“구단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내 제의를 에이미가 수긍했고, 잭과 요니는 마치 골이라도 넣은 사람처럼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무심하게 덧붙였다.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 돌아가서, 교육 테스트 말인데요. 올해는 한국 선수도 들어오는 만큼 한국 손님이 늘어날 겁니다. 따라서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손님 역할이 필요해질 것 같은데요.”

“맞아요. 그래도 구단주님은 안 되지만요.”

에이미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잭과 요니가 내 쪽을 한번 흘끗 돌아본 다음 뒤를 따랐다.

그리고 홀로 남은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메모를 확인했다.

[v] CS팀 인력 확충

[ ] 스태프 추가 채용

[ ] 미드필더, 풀백 추가영입

[ ] 최새벽 워크퍼밋 확보

[ ] 톰슨 은퇴경기 개최

프리시즌에 처리할 업무를 확인하고 정리하며,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 좋은데, 이거 안 뛰는 방법 없나?”

왜 프리시즌만 되면 사람들이 나를 경기에 내보내려 안달이 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톰슨 역시 자기 은퇴경기에 내 출전을 요구했다··· 그리고 ‘CS팀 교육을 돕느라 바쁘다’는 핑계는 못 써먹을 게 확실해진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다른 업무를 검토했다.

* * *

최새벽은 마침내, 워크퍼밋 심사를 문제없이 통과했다. 지난 2년, 오시예크에서 맹활약을 펼친 덕분이었다.

다음 시즌부터는 선덜랜드에서 뛰게 될 테니, 휴가가 끝나면 영국으로 돌아오라는 안내에, 최새벽은 한술 더 떴다. 한국에 돌아가는 대신, 곧바로 선덜랜드에 이동해서 적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리미트리스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자리에서 기다려 주시고···.]

기내에 울리는 안내 방송에, 새삼 감회가 새로웠던 최새벽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처음에 임대를 떠났을 때는 뉴캐슬 국제공항이었는데요. 그새 이름이 바뀌었네요.”

그러자 옆좌석에 동승한 선덜랜드 스태프가 가슴을 폈다. 최새벽과 같이 오시예크에 파견되었고, 체류 내내 현지 적응을 도와준 인물이었다.

“네, 구단주님께서 공항 지분과 명명권을 사들이셨죠. 개인적으론 지금 이름이 훨씬 좋아요.”

“네, 저도 바뀐 이름이 마음에 듭니다.”

아직 1분도 선덜랜드에서 뛴 적은 없지만, 최새벽은 이미 2년 전부터 자신을 선덜랜드 선수로 간주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뉴캐슬’이라는 단어에 대한 반응 역시 선덜랜드 로컬과 별 차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복귀 소감은 어때요?”

스태프의 질문에, 최새벽은 미소를 지었다.

“그야 기분 좋죠. 오시예크 팬들도 친절하게 대해 주셨지만, 잠깐 머무는 사이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서 받았던 환영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몇 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을 머물렀을 뿐이고, 당시에는 선수로서 경쟁력을 갖추지도 못했다. 아니, 워크 퍼밋을 따지 못했기에 프로 선수를 자처하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이 도시는 한국인 축구 소년을 엄청나게 반겨 주었다.

이제 최새벽은 스무 살의 젊은 센터백으로서, 당당한 프로 축구 선수가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솔직히, 약간 기대도 됩니다. 물론 지금의 선덜랜드 팬들 눈에 제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공항에 몇 명쯤은 나와 있지 않을까 해서요.”

축구 선수는 기본적으로 공을 차는 사람을 널리 가리키는 용어지만, 프로 축구 선수에게는 약간의 수식어가 추가된다.

‘팬들 앞에서 돈을 받으며 공을 차는 사람’이라는 직업 특성상, 필연적으로 팬들의 응원과 관심을 힘으로 돌리는 멘탈이 필요하다.

다행히 최새벽은 주위의 관심을 즐기는 타입이라, 적어도 성격적으로는 스타 기질이 있는 셈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비행기에서 내려 이동하는 사이, 스태프의 표정이 변했다.

“미안합니다. 최새벽 선수, 아무래도 팬들 얼굴은 못 볼 것 같은데요?”

“아 네.”

최새벽은 잠시 시무룩했지만, 곧 표정을 고쳤다.

“괜찮습니다. 이제부터의 활약으로 팬들에게 어필할 생각이니까요.”

“아뇨, 그게 아니라···.”

공항 앞에 어째서인지 한국 팬들이 잔뜩 몰려왔다는, 그래서 VIP용 출구를 따로 이용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최새벽은, 아연한 표정으로 스태프와 마주 보게 되었다.

* * *

최새벽이 공항에서 진땀을 빼게 된 사건의 발단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 사는 선덜랜드 팬이자, 세상에 딱 두 대밖에 없는 선덜랜드 로드스터 한정판 모델의 주인 ‘@선덜랜드_명예시민’은 의욕에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올 시즌부터 최새벽 선수 구단 복귀였지?”

모처럼 한국인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게 된 것이니, 이번에야말로 한국에서 선덜랜드의 위상을 높이고, 팬덤을 크게 늘려 보려는 야심이 활활 타오른다.

사실 그녀는 예전부터 선덜랜드 영업질에 진심이었지만, 그동안은 이상하게 일이 자꾸 꼬였다.

우선 그녀가 야심 차게 제작했던 영상, [시티 오브 선덜랜드 갔다가 선덜랜드 명예시민 된 썰 푼다.] 가 처참하게 망하고 말았다.

ㄴ 응 다음 국뽕.

ㄴ 주작도 정도껏 좀···.

그래서 영업 방향을 바꿨다. 선덜랜드 구단주의 미담을 퍼나르는 식으로. 물론 처절하게 실패했다.

- 혹시 리미트리스 홍보팀이세요?

ㄴ 일 더럽게 못하네.

그런 아픈 과거를 겪은 @선덜랜드_명예시민에게, 최새벽 입단은 절호의 찬스인 셈이었다.

[투자의 신이 투자한 한국인 유망주 프리미어리그 데뷔? 앞으로 10년간 아시아를 지배할 재능에···.]

당연하게도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 혹시 선덜랜드 프레스팀이 알았다면 피눈물을 흘릴 역버프 제목 탓이다.

그런 상황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뒤집혔다. 축구 커뮤니티에서 선덜랜드 우승 경기에 등장한 조던 로스의 영상이 입소문을 탄 것이다.

- 이 할아버지, 한국전쟁 참전용사 다큐멘터리에서 본 거 같은데···.

@선덜랜드_명예시민이 재빨리 댓글을 달았다.

ㄴ 같은 분 맞음. 29여단 소속.

ㄴ 어··· 그러면 선덜랜드 구단주는 한국전 참전용사를 모셔다 VIP석을 내드린 거임?

ㄴ 정확히는 그냥 VIP석이 아니라 평소 자기가 쓰던 익스클루시브 박스임.

처음에 별 뜻 없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던 @선덜랜드_명예시민도, 머지않아 눈치채고 말았다. 탑승할 수밖에 없는 빅 웨이브가 찾아왔음을.

- 선덜랜드 구단주가 익스클루시브 박스에 안 들어가는 상황은 딱 두 가지임. 참전용사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날씨가 더럽게 나쁜 날.

@선덜랜드_명예시민의 증언을 시작으로, 한국의 선덜랜드 팬들이 결집했다. 덕분에 구단주 이희성의 미담, 그리고 선덜랜드라는 축구팀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게 되었다.

개중에는 리미트리스 홍보팀 열일한다, 드디어 담당자 바뀐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금방 진압되었다.

- 아니, 직장 생활 안 해봄? 사장한테 진눈깨비 맞으면서 축구 보라고 말하는 홍보팀 직원이 세상에 어딨겠음?

한국 커뮤니티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 걸 확인한 @선덜랜드_명예시민이 잇달아 정보를 풀어 놓았다.

- 그러고 보니 님들, 이번 시즌부터 한국인 센터백이 선덜랜드에서 데뷔하는 거 알고 있음?

- 참고로 선덜랜드는 프리시즌에도 이벤트 많이 하는 팀임. 재작년엔 프리시즌 컵 개최했고, 작년엔 레전드 매치 했음. 올해도 뭔가 이벤트 할 것 같다던데···.

- 시티 오브 선덜랜드 가서 한국에서 온 거 인증하면 사람들 친절도가 세 배 올라감.

* * *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확인차 묻자, 프레스팀의 애니와 아벨은 물론, CS팀 린다와 에이미, 조엘까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구단주님.”

최새벽의 복귀로 올 시즌, 한국인 관광객이 꽤 늘어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는 예상 밖이다.

공항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인 입국자는 전년 동기 대비 다섯 배 늘었다고 하고, 워낙 사람이 몰려서 리미트리스 국제공항과 인천공항 사이의 항공편 증편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희주에게 조사를 시켰더니, 최근 한국 커뮤니티에서 선덜랜드 이미지가 엄청 떡상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혹시 다미가 움직였나도 확인했지만, 전혀 짚이는 구석이 없다는 모양이다.

“원인은 나중에 찾기로 하고, 지금은 대책이 중요하겠군요.”

그러자 린다를 시작으로, 우리 스태프들이 믿음직한 대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다행히 구단주님께서 미리 인력을 충원해 주셔서, 응대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CS팀에서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스타디움 투어 코스를 새롭게 개발하고 있습니다.”

“노점에서는 해외 관광객들이 다양한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노점 샘플러 세트를 준비했습니다.”

“제휴 숙소와 연계해, 한국인 여행객의 다양한 편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편의성 인증이 완료된 숙소에는, 기존의 검은고양이 인형에 추가로 태극기 망토를 부착하였습니다.”

“좋습니다.”

마침 올 시즌에는 챔스 결승전 때문에 경기장을 찾는 해외 팬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 기회에 팀의 팬베이스를 글로벌로 늘리는 게 내 목표였고, 이번 프리시즌에는 그 기틀을 닦으려던 참이었다.

마침 한국 팬이 잔뜩 몰려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다.

믿음직스러운 스태프들과 함께, 우리는 글로벌 팬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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