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67화 (367/422)

좋은 팀 (1)

<축구는 팀플레이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이다. - 펠레>

“어때요, 선덜랜드 참 좋은 도시죠?”

조카의 이야기에, ‘@이스탄불_이전부터’는 잠깐 망설인 다음 대답했다.

“조용하고 괜찮네.”

시티 오브 선덜랜드는 영국의 중소 도시였다. 번화하지도 않고, 관광지로 유명하지도 않았던 곳이다. 다만, 최근에는 리미트리스의 공격적인 투자로 발전하고 있기에 ‘있을 건 다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덕분에 ‘@이스탄불_이전부터’는 대체로 만족 상태였다. 공항에서 도시까지는 전용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빠르고 편하게 이동했는데, 심지어 공항버스는 개막전 티켓 소지자에게는 무료였다.

입구에 검은 고양이 인형이 놓여 있는 숙소도 아주 깨끗하고 좋았다. 여러모로, 조카 덕분에 호강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딱 한 가지만 제외하면.

“그런데, 있어야 할 게 없는 거 같은데.”

“뭐가요?”

“왜, 그런 거 있잖아. 구단주도 인정한 한식집이라든가, 최새벽이 애용하는 국밥집 같은 거. 전에 무슨 유튜브 보니까 구단에서 최새벽 도가니탕 챙겨 먹이고 그런다던데?”

“그거 그냥 어쩌다 먹은 거래요. 최새벽 선수 인터뷰 보니까, 어릴 때부터 해외 진출을 꿈꿔왔기 때문에 식성을 글로벌하게 맞췄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구단주 이희성이 어릴 때부터 선덜랜드에서 유소년 선수로 뛰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제 와서 새삼 한식 없이는 못 살 것 같지는 않다.

‘@이스탄불_이전부터’가 한숨을 내쉬자, ‘@선덜랜드_명예시민’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삼촌, 혹시 그거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죠? 설마하니 우리 삼촌이 해외여행 중 한식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타입이었다니··· 핵실망!”

“미안하지만 나는 전혀 그런 타입 아니야. 너희 아빠는 김치 없으면 못 살지만.”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린 다음 덧붙였다.

“여기가 영국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한식을 먹고 싶다기보다는 영국 음식을 피하고 싶다는 니즈를 간접적으로 전달하자, 그의 조카가 깔깔거렸다.

“삼촌! 의외로 이 동네 음식 괜찮아요. 저 여기서 반년 살았잖아요. 속는 셈 치고··· 네?”

“나는 이미 많이 속았는데.”

“하긴, 한국에서 20년간 콥으로 살았으니··· 우리 삼촌 진짜 많이 속긴 했다.”

“네 식성 이야기인데.”

조카의 선덜랜드 영업 빌드업을 슬쩍 흘리며 ‘@이스탄불_이전부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촌, 어디 가요?”

“속으러 간다.”

그렇게 두 사람은 따로따로 노점 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이 보이면 사오기로 약속하고서.

원래는 조카와 같이 움직일까도 했지만, 해외에서는 자기 취향대로 돌아다니는 게 여행의 참맛이라는 조카의 주장에 그도 동의했다.

‘쟤는 식성이 나랑은 참 안 맞으니까.’

조카가 환장하는 크림 파스타나 로제 떡볶이 같은 메뉴가, 그의 입에는 도무지 맞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게 노점 사이를 터덜터덜 돌아다니던 그의 눈에, 친숙한 한국어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슈퍼 핫도그 - 한국인 환영]

노점 처마에 주먹만 한 검은 고양이 인형이 매달렸고, 태극기 망토도 예쁘게 묶여 있다. 덩치 좋은 노점상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가 돌아왔다.

이어진 ‘알 유 코리안?’ 소리에 맹렬히 ‘예스, 예스’를 외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인은 곧바로 코팅된 종이를 들어 보였다.

보니까 영어와 한국어가 위아래로 써 있었다. 물론 그는 영어 독해는 문제없이 하기에 영어만으로도 의미를 파악하기엔 문제가 없었지만···.

잠시 후 한국에서 온 축구팬과 선덜랜드의 노점 주인이 종이 위 곳곳을 손가락으로 짚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추천 메뉴가 있습니까?]

[불고기 바게트-핫도그, 제로 콜라 콤보]

영 신뢰가 가지 않는 이름인데, 한국어로 써 있기는 틀림없이 ‘불고기’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속는 셈 치고 한 개 사 보기로 했다.

“먹을 만한데··· 아니, 맛있는데?”

분명히 서양 요리였다. 바게트 빵에 수제 소시지를 끼운 음식이기에. 하지만 입 안에 퍼지는 느낌은 틀림없이 친숙한 한국의 맛이다.

‘퓨전 요리인가?’

핫도그를 우물거리는 그를 살피던 노점 사장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시써요?”

“맛있어요.”

엄지를 치켜들자, 노점 사장도 마주 엄지로 응수했다.

“구단주님, 마시써요.”

선덜랜드 구단주도 좋아하는 음식점이라는 모양이다. 하긴, 이 정도로 맛있으면 자주 올 만도 하다. 조카 것 한 세트를 추가로 테이크아웃하면서, ‘@이스탄불_이전부터’가 미소를 지었다.

“잘 먹었습니다. 딜리셔스.”

그러자 노점 사장이 환하게 웃으며 종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감사합니다. 선덜랜드에 또 와주세요.]

* * *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을 앞두고, 어마어마한 한국인이 몰려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리미트리스 공항의 ‘한국인 전용 게이트’ 이용객이 더 늘어났습니다!"

“리미트리스 하이웨이 이용율이 12% 늘었습니다.”

“개막전을 관람하는 고객 중, 한국 국적자는 약 이천 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CS팀에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시즌 오픈 전부터 단단히 준비했기 때문에 환대에 소홀함은 없겠지만, 그래도 해외에서 새로운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는 사실 자체는 그들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천 명인가. 생각보다도 훨씬 많다. 해외 관람임을 감안하면, 그리고 우리 티켓이 정말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숫자다. 심지어 개막전 티켓은 정말 순삭인데.

그나마 올 시즌부터는 해외 팬들을 위해 제휴 호텔 숙박권과 경기 티켓을 세트로 판매하는 글로벌 호스피털리티 팩을 시범 운영하고 있지만, 듣자니 그쪽도 정확히 7분 만에 매진이라고 한다.

덕분에 희주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한국 팬은 아마 최새벽 데뷔전 보러 온 사람들 아닐까? 이쯤 되면 안 내보내면 큰일 날 것 같은데, 그치?”

“내보내겠지.”

꼭 팬 때문이 아니더라도 최새벽이 나오면 좋다. 커뮤니티 실드에 나갔던 선수들에게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침 최새벽은 선수로서 아주 훌륭하다. 아직 빅 리그 검증이 안 되었다는 약점은 있지만, 오시예크에서 엄격하게 단련한 덕분에 기량 자체는 젊은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앞서나가는 편이었다.

“그럼 브라이언 씨한테 곧바로 전하고···.”

뽀르르 달려나가는 희주를 제지했다.

“하지 마. 선수 선발은 전적으로 감독 권한이니까.”

최새벽을 내보내는 게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자칫하면 우리 감독과 코치의 손발을 묶는 꼴이 된다. 어떤 선수를 반드시 써야만 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전술에 제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딱 한 번인데?”

“한 번이 두 번 되고 세 번 되는 거야.”

그래서 지금까지 경기 라인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항상 같이 회의를 했고, ‘조언’이나 ‘의견’이라는 전제를 붙였다··· 적어도 구단주실에서 비서를 내려보내서 전달할 일은 절대 아니다.

그런 의사를 전달하자 희주가 곧바로 시무룩해졌고, 어깨는 축 늘어졌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초라해 보였다.

“대신, 브라이언에게 부탁해서, 선수 라인업이 나오면 알려달라고 해.”

“응, 그리고?”

“명단에 최새벽이 있는지 확인해서.”

“해서?”

나는 짧게 지시했고, 곧바로 희주의 입이 헤벌쭉하게 벌어졌다.

“최새벽 선수 되게 좋아하겠다!”

* * *

[프리미어리그 1라운드, 선덜랜드 대 빌라]

경기를 앞두고, 브라이언은 파격적인 선발 명단을 발표했다. 포백라인이 곤잘로와 최새벽, 프랭크, 그리고 브루노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레프트백에 윙어 출신 곤잘로를 투입하고, 라이트백엔 발재간이 뛰어난 브라질리언 브루노를 출전시키는 조합이었다. 좌우 풀백 모두 공격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당연히 센터백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인데, 심지어 개막전이라는 큰 무대이기까지 하다. 신인 센터백 두 명이 동시에 출전하기에는 짐이 너무 무겁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브라이언이 딱 잘라 말했다.

“빌라를 상대하는 마당에 굳이 수비를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빌라는 좋은 팀이고, 우리는 오늘 더 체계적인 수비를 해야만 한다. 다만, 우리는 올 시즌 트레블을 노리는 팀이다.”

선수단을 하나씩 차례로 훑은 감독의 시선이, 마침내 최새벽에게 닿았다.

“앞으로도 에디와 이고르 모두에게 휴식을 줘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출전하는 두 사람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내가 착각한 거라면, 자신 없으면 지금 이야기해라. 아직 선발 명단을 수정할 수 있다.”

최새벽은 순간 뱃속 어딘가가 아주 뜨거워진다고 생각했다. 배에 힘을 넣고, 목에 힘을 주어 선언했다.

“아닙니다.”

“좋다. 듣자니 오늘은 한국 팬 이천 명이 왔다고 한다. 그들 앞에서, 선수로서의 진가를 보여라··· 가라!”

그렇게 선발 출전한 최새벽은, 곧바로 빌라 공격진의 타깃이 되었다.

“좋겠네. 한국인이라.”

경기의 주도권과 점유율은 더 강팀이자 홈팀인 선덜랜드의 것이었다. 덕분에 한가해진 빌라 공격수는, 마찬가지로 한가한 선덜랜드의 신인 센터백 상대로 끊임없는 트래시 토킹을 시도했다.

“그렇잖아? 구단주가 같은 한국인이니까 우선적으로 기회를 받는 거겠지. 에디와 이고르를 제치고 개막전에 뛸 정도로.”

최새벽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너 유니폼 잘 팔리겠다! 오늘 한국인 엄청 왔다며?”

오히려 옆에서 듣던 프랭크가 이를 뿌득뿌득 갈기 시작할 정도의 도발이 이어졌지만, 최새벽은 오히려 속으로 웃었다.

‘미안하지만 도발 솜씨가 영 별로네.’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축구 내적으로도 늘 노력했지만, 축구 외적으로도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어릴 때부터 시도한 글로벌한 식성 관리는 물론, 강인한 멘탈을 위해 일부러 짬이 날 때마다 한국 서버에서 AOS게임을 돌렸던 것이다.

원래 최새벽은 게임 실력이 썩 뛰어나지도 않았고, 유럽에서 접속한 탓에 회선 문제도 있어서 게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 안부부터 아주 다양하게 욕을 퍼먹었고, 덕분에 이 정도 트래시 토킹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뭐, 열 올릴 필요는 없지. 우리가 이기는 중이니까.’

선덜랜드의 레프트백 곤잘로는 거의 윙어처럼 올라가서 빌라의 측면을 폭격했고, 라이트백 브루노는 미드필더처럼 뛰었다.

잭과 요니, 그리고 레이 브라운이 중원을 철통같이 장악하자, 빌라는 공격다운 공격조차 하지 못한 채 선제골과 추가골을 내주어야 했다.

[선덜랜드 2 - 0 빌라]

그리고 최새벽은 70분간 어떠한 빈틈도 내보이지 않았다. 슈팅도 허용하지 않았고,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이 변한 것은 70분, 전방에서 선덜랜드 공격진이 페널티킥을 따냈을 때의 일이었다. 팀의 PK 전담 키커 잭이, 최새벽을 큰 소리로 부른 것이다.

“올라와! 새벽, 네가 차!”

“···네?”

영문을 모를 지시였다. 아무리 오늘이 최새벽의 잉글랜드 데뷔전이라지만, 그렇다고 굳이 PK를 양보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물며 그는 공격수가 아닌 센터백이다.

도저히 영문을 모를 일에 어리둥절해하자, 이번엔 PK를 따낸 부주장 요니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네가 차. 오늘 한국에서 너희 부모님 오셨다며··· 표정 보니 전혀 몰랐나 보네?”

순간 가슴속 어딘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 최새벽은 대답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뭐라도 말을 꺼내면 통제하지 못한 감정이 마구 흘러나올 것 같아서.

가족을 부른 적은 없었다. 한국에서 영국은 꽤 멀고, 오늘이 데뷔전이 될 거라는 확신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동료들은 어째서인지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구단에서 초청했을 것이다.

“혹시 실축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점수를 내주지 않으면 이대로 우리 승리로 끝나니까. 부담 없이 차고 와."

리델의 격려에, 해리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도 PK는 엄청 잘 차잖아. 풋볼존 최고 득점자라면서.”

“그건···.”

바스티아노나 요니, 메시는 풋볼존에 가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찰나, 등이 떠밀렸다. 돌아보니 프랭크가 웃고 있었다.

“빨리 차고 와. 지연행위로 경고 먹겠다.”

최새벽은 흐릿해지려는 시야를 몇 번이나 깜빡이며, 전방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정확히 20초 후, 골대 오른쪽 상단에 공을 꽂아넣고 몸을 돌렸다.

[선덜랜드 3 - 0 빌라]

사방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함성 사이에서, 군데군데 한국어 음성이 들렸다. 그 사이에는 아마, 그리운 가족의 목소리도 섞여 있을 것이다.

이 경기장에 서기 위해 고국을 떠나온 지 2년이 지났다. 그사이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제는 당당한 선덜랜드의 축구 선수가 된 것 같아서···.

최새벽은 소매로 눈가를 한 번 문지른 다음, 자신의 포지션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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