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68화 (368/422)

좋은 팀 (2)

[부모님이 보고 계신다.]

갓 데뷔한 축구 선수로서는 무척이나 가슴 뛰는 멘트다. 아마 최새벽 또한 심장이 거칠게 뛰었을 것이 분명했다.

데뷔를 앞둔 선수의 부모님은 여러모로 걱정이 많은 법이다. 프로가 되는 문이 얼마나 좁은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최새벽은 자신이 어엿한 선수가 되었음을 보여 드릴 기회를 잡았다. 특히 우리 팀 같은 곳에서는 자신이 팬들로부터 얼마나 사랑받는 선수인지를 함께 보여 드릴 수 있다.

옆에서 희주도 감개무량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잘됐다. 최새벽 선수 부모님도 그동안 걱정 많이 하셨을 텐데.”

희주는 최새벽이 꽤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같은 한국인이기도 하고, 구단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직접 안내하며 적응을 도왔기 때문에 정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정이 많이 가는 선수니까.

성인이 되기도 전에 프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혼자 유럽에 건너온 선수다. 그것만으로도 어릴 때의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감정이입이 안 될 수가 없는데, 마침 최새벽은 어린 나이에도 무척 프로답게 노력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구단주로서는 예뻐하지 않을 수 없는 선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자랑스러우시겠지. 정말로.”

그래서일까. 최새벽의 경기력은 경기 종료까지도 줄곧 완벽했다. 상대의 도발은 끝까지 태연하게 웃어넘겼고, 침투 시도는 빠른 발로 따라잡아 강렬한 태클을 먹였으며, 경합 상황의 몸싸움은 능숙하게 흘려냈다.

다른 선수들의 텐션도 훌륭하다. 각자 최고의 경기력을 뽐내는 한편, 대서양을 건너온 가족 앞에서 데뷔전을 치르는 동료가 빛날 수 있도록 최고의 팀플레이를 보였다.

진짜 좋은 팀이다.

그날, 우리는 개막전을 깔끔하게 3-0으로 완승하며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 * *

그날, 한국인 팬들은 가벼운 흥분 상태였다.

한국인 구단주가 운영하는 팀에서, 한국인 유망주가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했다는 것만으로도 축구팬들의 행복도가 높을 상황이었는데···.

“심지어 그 데뷔전 경기가 개막전이라고? 크으.”

“데뷔전에서 득점한 센터백이 있다? 주모!”

비록 페널티킥을 양보받긴 했지만, 그래도 득점을 성공시켰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덕분에 경기장 곳곳에는 태극기가 펄럭였고,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찾은 한국인들은 넘쳐흐르는 국뽕을 이기지 못해 가까운 펍을 찾아 달렸다.

‘@선덜랜드_명예시민’과 ‘@이스탄불_이전부터’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발길이 저절로 경기장 근처의 축구 펍, [죽어도 맥켐즈]에 향했다.

펍은 선객들로 가득했고, 가게 곳곳에서 한국어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건너편 테이블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둘은 눈을 마주치고 깔깔 웃었다.

“삼촌, 여기 꼭 한국 같아요.”

“그러게, 오늘 진짜 엄청 왔나 보네.”

웃으며 자리에 앉던 두 사람은, 그만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건너편 테이블에, 아무리 봐도 막걸리처럼 보이는 하얀 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알고 주문한 건 아니었는지 건너편 테이블의 한국인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서빙하는 덩치 좋은 사내가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주문하신 ‘Kuk-pong’ 나왔습니다.”

“어··· 여기 맥주 전문 아니었어요?”

“이번에 선덜랜드 구단에서 특별 개발한 레시피를 공유받았습니다. 저희는 선덜랜드 제휴 펍이니까요!”

사실 건너편 테이블 손님은 단순히 국뽕 드립을 치려던 것일 테니, 어쩌면 난감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손님들의 눈동자에는 흥미와 호기심이 가득했다.

마침내 건너편 테이블 사람들이 하얀 술을 받아들었다.

“막걸리···? 아니, 조금 다른데? 아무튼 맛있어요!”

만족하는 옆 테이블을 흘끔거리던 ‘@선덜랜드_명예시민’과 ‘@이스탄불_이전부터’가 동시에 외쳤다.

“여기도 국뽕 한 사발!”

그러자 주모라기엔 덩치가 많이 큰 주인장이 기쁘게 술을 내왔다.

* * *

막걸리에 과일과 리큐어를 이것저것 섞어서 만들었다는 칵테일, ‘국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원래 달달한 술을 좋아하는 ‘@선덜랜드_명예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 먹거리에 불신이 가득하던 ‘@이스탄불_이전부터’도 무척이나 호평이었다.

“삼촌, 영국 건데도 맛있게 드시네요?”

‘@선덜랜드_명예시민’이 슬쩍 놀리자, 그녀의 삼촌이 눈동자를 살살 옆으로 굴렸다.

“이 술은 한국 거잖아. 한국 거, 국산품. 메이드 인 코리아.”

“에이, 솔직히 국산은 아니지.”

“국뽕인데 어떻게 국산이 아니야.”

삼촌의 꽤 날카로운 반격을, ‘@선덜랜드_명예시민’이 곧바로 받아쳤다.

“삼촌, 국뽕은 국산일 수가 없어요. 지금처럼 외국 나왔을 때 생겨나는 감정이잖아요.”

“그건 그러네.”

수긍했지만, 그래도 순순히 지기는 싫었는지 그녀의 삼촌이 슬쩍 몇 마디를 덧붙였다. 술은 원래 영국 술이 유명하다며.

그때였다.

“혹시··· 로드스터 아닙니까?”

반갑다는 듯 말을 거는 거구의 백인 사내를 바라보며, ‘@선덜랜드_명예시민’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저 아세요?”

사내의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이 동네에서 로드스터 씨 모르면 완전 뉴비지! 선덜랜드 챌린지 챔피언이잖아요! 반갑습니다. 귀국했다고 들었는데, 영국에 돌아왔나 보군요.”

“그럼요. 마침 시즌 개막전이잖아요? 그래서 큰맘 먹고 다시 날아왔어요.”

“환영합니다. 올 시즌은 마침 챔스 결승전도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서 열리니까 오래오래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빠르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옆자리의 삼촌 표정이 점점 굳어간다. 영어 회화에 약한 그녀의 삼촌으로서는, 느닷없이 덩치 좋은 외국인 남자가 다가오는 상황 자체를 경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눈치를 살피던 그녀가 재빨리 소개했다.

“이분도 선덜랜드 팬인데요. 아는 분이에요.”

“팬? 아는 사람이라고?”

삼촌을 안심시킨 그녀는, 이번에는 유창한 영어로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맥켐즈 브라더스, 맞죠?”

“절 아신다고요? 챌린지 챔피언이?”

“선덜랜드 챌린지 시상식 날 봤잖아요.”

‘맥켐즈 브라더스’나 ‘선덜랜드 챌린지’라는 단어 덕분에, ‘@이스탄불_이전부터’도 슬슬 상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장식장에 인형들이 낯이 익더라니. 너 시상식 때 본 사람들이네.”

“어휴 삼촌, 인형이 아니라 피규어!”

“그게 그거 아닌가··· 아무튼, 앉으시라고 해. 이것도 인연인데 술 한잔 같이해야지.”

그렇게 브라더스의 일원, 핫도그 사내가 합류했고, 머지않아 브렌든과 마일즈, 수잔까지 합석하면서 어느새 테이블이 무척 시끌벅적해졌다.

핫도그라면 일가견이 있는 수잔과 핫도그 사내가 ‘@선덜랜드_명예시민’에게 추천 노점 리스트를 건넸고, 옆자리의 유아용 시트에선 크리스가 선물받은 한국 과자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의외로 가장 죽이 잘 맞았던 것은, ‘@이스탄불_이전부터’와 브렌든이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번역기를 돌려 가면서 신나게 떠드는 중이었다.

“콥이시라고? 마음고생 많으셨겠어.”

보통 다른 팀 팬이 축구 펍에 들어왔다가 들키면 배척을 당하는 게 국룰이지만, 브렌든은 ‘@이스탄불_이전부터’에게 무척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선 자신부터가 조르디 출신 전향자이기도 하고, 현재 리버풀과 선덜랜드는 그렇게 나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_이전부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막걸리 칵테일을 원샷했다.

“그래도 전직 조르디보다는 낫지··· 뭐, 형씨 전향하는 영상은 나도 봤는데, 눈물 나더라.”

브렌든은 의외로 담담하게 반응했다.

“괜찮아. 사실 이미 마음이 많이 떠났었으니까. 그래도 선덜랜드로 갈아탄 덕분에 요즘은 축구 보는 맛도 나고 그래.”

“그거 부러운데.”

“가장 좋은 건 친구들과 같은 팀을 응원할 수 있다는 거야. 마침 자네 조카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블랙캣츠 아닌가?”

“본인보다는 로드스터가 더 유명한 것 같긴 한데···.”

“뭐, 당장 옮기라고 강요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팀, 응원할 가치가 있는 팀 아닌가?”

“그러게. 참 좋은 팀이긴 해··· 조카는 나처럼 고생할 일은 없겠어.”

두런두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은 막걸리 칵테일을 기울였다.

* * *

“보고드립니다, 구단주님. 바 블랙캣츠의 전략 칵테일, Kuk-Pong 매출이 하루 만에···.”

에이미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예상을 한참 벗어난 금액을 읊었다. 덕분에 나는 살짝 볼 안쪽을 깨물어야 했다.

꿈이라면 깨기 위해서, 현실이라면 표정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팬들이 많이 올 거니까 막걸리를 들여다 팔자고? 그리고 막걸리 칵테일 이름은 국뽕이라고? 처음 기획을 들었을 때 소감은, 솔직히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미가 귀국하자마자 이희주 이 인간이 기어이 사고를 치는구나 싶었고, 선덜랜드 로열 병원 정신과에 상담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게 팔렸단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뭐, 어제는 최새벽 덕분에 다들 국뽕 한 사발씩 들이킬 상황 같긴 했다만.

“이게 다 선덜랜드 행운의 여신님 덕분 아니겠어? 에이미 씨. 이제부터 절 기획의 신이라고 불러 주시겠어요?”

옆에서 희주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정작 에이미는 내 쪽을 향해 놀랍다는 시선을 보냈다.

“투자의 신은 여동생도 비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제가 비범한 건 맞지만, 오빠는 갑자기 왜 나오나요?”

“그야, 비서님 아이디어에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신 분은 구단주님이니까··· 겠죠?”

대답하는 에이미의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래서 나도 곧바로 참전했다.

“바 블랙캣츠 바텐더의 실력이 좋은 거죠. 며칠 사이에 정말 훌륭한 레시피를 만들어 냈으니까요. 그리고 블랙캣츠에서만 팔지 말고 제휴 펍을 통해 많은 팬들에게 공급하자는 CS팀의 아이디어도 참 멋졌습니다.”

“별말씀을요. 막걸리와 부재료를 차질 없이 공급한 리미트리스 SM&C 영국지사도 훌륭했죠."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는 살짝 토라진 듯한 희주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희주 너도 참 잘했고.”

“그치?”

“앞으로 너한테 공물 바칠 때 막걸리 칵테일 애용하라고 홍보할게.”

“으으··· 그럼 진짜 제사상 같을 텐데.”

“가장 빠른 추첨은 EFL컵 3라운드겠네요, 비서님.”

구단주실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만큼 분위기가 훌륭했기 때문에.

정말로 최고의 시즌이 될 것 같았다.

* * *

실제로 시즌 초반의 기세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이어진 리그 2라운드, 팰리스 원정에서 당연하다는 것처럼 승리한 우리는 3라운드에서는 홈으로 아스널을 불러들여, 멀티골을 뽑으며 시원한 승리를 따냈다.

구단 역사상 가장 강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년의 선덜랜드보다도 훨씬 대단한 팀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리그에서 승승장구를 이어 나가는 사이, 컵 대회 일정도 속속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우선 EFL컵 3라운드 일정은, 레스터 원정으로 정해졌다. 그러자 두 팀 팬들의 반응이 곧바로 뜨거워졌다.

- 왜 하필 3라운드부터 레스터 원정임? 추첨운 더럽게 없네.

ㄴ 구단주 비서 피규어에 공물 안 바친 놈들 반성해라.

물론 분위기는 우리보다 레스터가 훨씬 험악했다.

- 왜 하필 선덜랜드임. 추첨운 더럽게 없네.

ㄴ 제발 크리그만이라도 안 나오게 해 주세요. 레스터 킬러는 이제 그만!

ㄴ 진짜 크리그 없어도 괜찮겠음? 그럼 메시, 바스티아노, 마르틴이 선발이라는 소린데?

그 아래엔 댓글이 달리지 않았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레스터 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이어진 챔스 조별리그 추첨에서, 우리는 당당한 1포트 명단에 올랐다. 추첨 순서는 세 번째로, 챔스 디펜딩 챔피언, 유로파 챔피언 다음의···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이었다.

챔스 조추첨을 지켜보는 브리핑 룸의 분위기는 평온했다. 언제나처럼 주요 스태프들이 모여들긴 했지만, 예전처럼 희주에게 각종 간식을 바치며 제발 입 좀 다물게 하려는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뭐,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선덜랜드 행운의 여신이니까! 그래도 공물은 이제 없는 건가···.”

살짝 아쉽다는 것처럼 입맛을 다시는 희주를 향해, 샐리가 웃어 보였다.

“뭐, 지금의 우리가 굳이 조별리그부터 비서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1포트가 괜히 1포트겠어요?”

조별리그 정도는, 이제 누구를 만나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물론, 나도 동감이었다.

“맞아. 굳이 조별리그부터 네 입단속을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한 8강쯤 올라가면 모를까.”

옆에서 브라이언이 흐뭇하게 덧붙였다.

“브로 말대로입니다, 레이디. 지금의 우리는 2포트에 아틀레티코, 3포트 아약스, 4포트에 볼프스부르크를 뽑아도 불만 없을 정도죠.”

“어머, 감독님? 2포트 바르샤, 3포트 라이프치히, 4포트 밀란이 더 빡세지 않을까요? 그래도 16강은 문제없겠지만요.”

브라이언과 샐리의 표정은 밝았다.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조추첨을 거리낌 없이 입에 올리면서도 조금도 기죽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 조추첨은 어떻게 나와도 브라이언 씨랑 샐리 씨가 책임져주는 거죠?”

“그럼요. 맡겨주세요. 요즘은 도저히 질 자신이 없어서···.”

그때, 화면에 대진표가 차차 완성되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우리 감독과 수석코치를 돌아보았다.

“아주 든든하네요. 믿고 있겠습니다.”

[챔피언스리그 C조 : 선덜랜드, 바르샤, 아약스,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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