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76화 (376/422)

Heart to heart (1)

<축구의 위대함은 피치 위의 선수들에게 있는 게 아니다. 이 자그마한 축구공에 담겨 있다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바르샤 원정을 위해 스페인행 전용기에 몸을 실은 상태로, 나는 묵묵히 스크린을 응시했다.

화면에는 평소 가장 즐겨 보는 방송, 축구 펀딧 네빌과 캐러거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두 사람은 마침 이번 조별리그 5경기를 앞두고 신나게 썰을 푸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경기 프리뷰를.

[바르샤에게는 무척 절박한 경기가 될 것 같지? 아약스와는 현재 1승 1무 2패로 동률이고, 밀란과의 승점 차이도 겨우 1점이니까.]

[맞아. 바르샤는 오늘 선덜랜드를 간절히 잡아내고 싶을 거야. 그래야 16강을 바라볼 수 있거든.]

[그에 비하면 선덜랜드의 동기부여는 다소 약해 보이는데? 이미 승점 12점으로 조 1위 확정이잖아. 당연히 로테이션을 돌릴 테니, 바르샤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네빌의 이야기에 캐러거가 고개를 흔들었다.

[선덜랜드가 아마 로테이션을 돌리긴 할 텐데··· 그게 바르샤에게 희망적일지는 모르겠군.]

그러자 이번엔 네빌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봐 제이미, 아무리 요즘 선덜랜드가 잘나가고 바르샤가 어렵다지만, 그래도 천하의 바르샤가 선덜랜드의 로테이션조차 잡아내지 못한다고 보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

[아니지, 게리. 팀끼리 상성이라는 게 있잖나.]

[상성?]

[들어봐. 실제로 바르샤는 올 시즌 선덜랜드의 베스트 일레븐 상대로 세 골을 넣은 유일한 팀이야. 비록 본인들도 뒷공간을 탈탈 털려서 참패했지만, 득점력은 고무적이라고.]

그 뒤로도 캐러거는, 바르샤 입장에서는 우리 로테이션 멤버들보다 오히려 베스트 일레븐이 편하다는 논리를 열심히 내세웠다. 근거는 주로 지난번 맞대결에서 바르샤가 3득점을 해냈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어느 팀이, 올 시즌 선덜랜드 베스트 상대로 세 골을 뽑아내냔 말이야. 맨시티조차 무득점으로 짐 쌌는데!]

[그게 상성 문제다? 그리고 상성만 따지면 오히려 로테이션 멤버들이 나을 수도 있다··· 이 소리지?]

[맞아. 예컨대 베리, 터너, 스티븐으로 쓰리톱을 꾸리면 공격력은 평소보다 떨어져도, 최전방부터 수비 조직력이 아주 단단해지지. 선덜랜드가 그렇게 나서면 지금의 바르샤는 1점도 내기 힘들걸?]

“···라고 하는데?”

옆자리에서 같이 화면을 응시하던 희주가, 실성한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는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알면서 뭘 물어.”

캐러거와 네빌은 그래도 현역 시절 영국에서 손꼽히는 플레이어였고, 전술에 대한 안목도 훌륭하다. 저들이 짚어낸 것처럼, 바르샤 상대로는 우리 로테이션 멤버가 좀 더 ‘편하게’ 축구할 것이다.

다만 ‘선덜랜드를 보는 눈’이 좋지는 않다.

선덜랜드의 베스트 일레븐이 바르샤 상대로 상성이 나쁘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마당에, 그냥 넘어갈 이유는 없다. 브라이언과 샐리는 그런 코칭스태프가 아니다.

“그치? 선덜랜드는 친정팀을 상대하는 선수를 벤치에 계속 앉혀두는 팀이 아닌데··· 저 아저씨들, 축구 보는 눈 좀 키우셔야겠네.”

“그러게.”

나는 조금 유쾌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희주가 누군가에게 축구 보는 눈 좀 키우라고 말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후 비행기가 바르셀로나 엘 프라트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 * *

실제로 우리 감독과 코치는, 홈에서 바르샤를 상대했던 그 라인업을 원정에서도 최대한 똑같이 기용했다. 유일한 차이는, 축구의 신이 시작부터 스타팅으로 뛰었다는 것이었다.

브라이언의 입장은 강경했다.

[메시 선수가 중간에 불려 나오는 걸 아주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오늘은 굳이 그렇게 쓰겠습니다. 선발로 투입하고, 중간에 뺄 겁니다.]

그런 통보에, 메시는 오히려 감사를 표했다. 브라이언의 기용은, 당연하게도 메시가 가장 오래 몸담았던 캄 노우의 팬들 앞에서, 박수를 받으며 나오라는 배려에 가까웠으니.

SNS의 반응도 뜨거웠다.

- 그냥 전술 짜는 기계인 줄 알았던 브라이언-샐리에게도 감정이 있긴 한 듯?

ㄴ 그러게. 굳이 홈에서 3실점한 조합을 또 꺼내야 하나?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 그런 소리 하고 싶은 거 아닐까?

ㄴ 기왕 인간미 있는 김에 저희 16강도 좀.

ㄴ 꾸레 여러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결론적으로 브라이언과 샐리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은 딱 거기까지였다.

- 으악. 선덜랜드 이 악랄한 놈들!

ㄴ 이상하다? 라인업이 그날하고 똑같은데 어떻게 전술이 완전히 달라진 거임?

왜냐면 브라이언 쟤는 전술 깎는 기계가 맞기 때문이죠. 샐리는 약점 파헤치는 데는 도사고.

전반 30분, 요니의 선제골로 캄 노우를 도서관으로 바꾼 우리는 후반 70분에 JJ 듀오의 멋진 연계로 페널티 킥을 따냈다.

우리 페널티 킥 전담 키커 잭이, 팔을 크게 흔들어 킥을 축구의 신에게 양보했다. 처음에는 몇 번이나 사양하던 메시도, 거듭되는 권유를 이기지는 못했다.

잠시 후, 축구의 신이 바르샤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바르샤 0 - 2 선덜랜드]

“오늘은 세레머니 안 하네.”

“그야, 여기는 캄 노우니까.”

굳이 친정 팬 앞에서 세레머니하고 싶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오늘의 패배로, 바르샤의 16강 진출에는 적신호가 켜졌기에.

또한, 존중의 문제이기도 하다. 축구의 신은 이제 선덜랜드 선수이지만, 그를 축구의 신으로 키워준 것은 틀림없이 바르샤이기에.

세레머니는 할 수 없다. 적어도 캄 노우에서는.

이윽고 교체를 알리는 팻말이 올라왔다. 어느새 소리가 사라진 캄 노우에서, 스탠드의 관중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박수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 자신들의 레전드였던 선수를 전별했다.

* * *

승리는 언제나 달콤하다. 이번처럼 얻어 갈 게 많은 승리는 더욱 그렇다.

챔스에서의 활약은 전 세계에 알려진다. 인기팀과의 매치는 언제나 시청률이 폭발하니까.

전통의 강자 바르샤를 캄 노우에서 완봉하면서, 우리는 글로벌 축구팬 앞에서 다시 한번 강팀의 면모를 과시했다.

굿즈 판매량도 폭증했다. 듣자니 특히 한국에서 주문이 밀려온다는 모양이다. 덕분에 신상품기획팀장 아드리안은 요즘 아주 얼굴이 하회탈 상으로 바뀌었다.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신상 굿즈도 야심 차게, 조금은 야욕적으로 찍어낸다.

아드리안은, 이번 바르샤 원정에서 최새벽이 교체 투입되면서 한국 커뮤니티가 폭발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기획서를 들고 구단주실에 올라왔다.

어디 보자··· 태극기 대량 생산을 요청한다고? 안 되면 한국에서 수입이라도 해 달라고?

“용도는요?”

“한국으로 보낼 겁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 태극기를 팔겠다고요···?”

행복회로를 너무 돌려서 어딘가 고장 난 건가? 그런데도 아드리안은 매우, 매우 단호하다.

“구단주님, 미심쩍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 번만 믿어 주십시오.”

일을 맡겼으면 믿고 쓰는 게 내 방침이긴 한데··· 마침 옆에서 희주는 아주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지난번 칵테일도 잘 팔렸잖아? 국뽕 마케팅이 최고라니까?”

놀랍게도 팔렸다. 정확히는 ‘태극기’가 팔린 게 아니라, ‘최새벽 마킹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린 거지만.

배송지를 한국으로 지정하고, 최새벽 관련 굿즈를 주문하면 상자에 태극기를 함께 넣어 보내는 프로모션의 성과였는데, 절묘한 타이밍에 풀어놓은 최새벽 숏클립 영상도 한몫했을 것이다.

[숙소엔 태극기를 걸어 뒀어요. 영국에서 뛰어도, 저는 한국인이니까요.]

덕분에 한국에서 주문이 쏟아져서 아주 난리다. 축구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이름 높은 우리 선덜랜드 CS팀조차 SOS 신호를 보낼 정도로.

덕분에 희주까지 급히 차출되어야 했다.

“아이참, 이런 건 다미 언니가 나보다 훨씬 잘할 텐데··· 지금이라도 호출하는 게 어떨까? 오빠가 부르면 기쁘게 날아올 거야.”

“···그래서 다미 대신 널 시키는 건데.”

“응? 어째서!?”

그야 리미트리스 부사장을 유니폼 판매 담당으로 쓰겠다는 형편없는 경제관념 때문이지. 다미가 희주를 대신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희주가 다미를 대체할 수 없다는 건 아주 분명하거든.

물론, 희주도 썩 우수한 CS 요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일단은 급하니까 지원은 보냈지만, 언제까지 CS 업무를 맡겨둘 수는 없다.

무엇보다, 구단주 비서 자리를 마냥 비워두기도 좀 그렇고.

“사람 하나 뽑아야겠네.”

선덜랜드에 대한 팬심이 넘치고, 한국어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그런 인재가 필요하다.

* * *

‘@선덜랜드_명예시민’으로 더 잘 알려진 여성, 박미정은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제가··· 이런 데 들어와도 되는 건가요?”

여기까지 들어오기 위해, 보안 게이트를 대체 몇 번 통과했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게이트 주변과 통로 곳곳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졸지에 철통보안의 한가운데에 던져진 셈이 되어버린 미정이 움츠러들자, 테이블 맞은편에서 부드러운 시선이 돌아왔다.

리미트리스 부사장 최다미가 미정을 향해 환한 미소를 보냈다.

“불편하셨겠지만, 이해해 주시기 바랄게요. 우리가 어느 기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어느 스타트업과 접촉 중인지, 그런 사소한 정보만으로도 월가에서 막대한 돈이 움직여 버리거든요.”

“네, 네, 물론 이해해요. 그런데 저는 리미트리스가 아니라 선덜랜드에 면접을 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선덜랜드로부터 채용 제안 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 미정은 아주 기뻐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고도 생각했다.

선덜랜드 굿즈를 구매하는 한국 팬에게 대응하고, 구단의 한국어 SNS 계정을 운영하며, 영상 컨텐츠에 한글 자막을 붙이는 일, 그리고 장차 한국 팬들을 위한 선덜랜드 투어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업무까지.

전부 잘할 수 있는 업무였고, 이미 일부는 지금도 팬심으로 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불러다가 돈까지 주겠다니 거절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문제는 면접이었다.

아무튼 직원을 뽑는 것이니, 구단으로서는 면접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선덜랜드 축구단 입장에서는 해외에서 재택근무를 시키는 것이니, 구단주 면접을 봐야 한다는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어째서 면접장이 리미트리스 부사장실인데!?’

눈앞의 여성, 최다미에 대해서는 미정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신의 오른팔, 리미트리스의 넘버 투···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거물이다.

예전에 대학 동기의 친구 지인이 리미트리스 원서를 냈다가 부사장 면접에서 멘붕하고 오열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분명 연예인 뺨치는 미인인데도 꼭 맹수처럼 보인다.

정작 최다미의 반응은 아주 태연했다.

“그야 사장님께서 직접 면접을 보실 거니까요. 저희 사장님 얼굴을 직접 보면서 대화할 수 있는 설비는 세계에서 오직 한 곳, 부사장실에만 비치되어 있거든요.”

최다미는 미리 준비한 것처럼 매끄럽게 덧붙였다.

“물론 요즘은 화상회의 설비가 많아요. 하지만 사장님께서 그런 외부 솔루션을 쓰시게 할 수는 없죠. 사장님 말씀에는 막대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요.”

“그렇군요. 하긴, 혹시 업체에서 감청을 시도할 수도 있겠네요. 귀한 정보일 테니까요.”

“이해해 주시는군요!”

최다미는 어째서인지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부사장실에 들어올 때 이미 자신이 설명했던 내용인데도.

‘마치 완벽하게 일코하던 여덕이 우연히 같은 취향을 만나 덕밍아웃할 때 짓는 표정 같은데.’

그런 실례되는 생각을 애써 감추며, 미정은 면접을 위해 카메라 앞에 앉았다. 잠시 후 화면에 선덜랜드 구단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짧게 심호흡하며, 미정은 머릿속으로 준비한 멘트를 떠올렸다.

‘우선 인사를 정중하게 하는 거야. 그리고 준비된 인재 박미정이라고 멘트를 치는 거지. 다음은 선덜랜드 챌린지 대상 수상자임을 강조하자!’

미정에게는 아쉽게도, 그녀의 노력이 빛을 보지는 못했다. 화면에 떠오른 선덜랜드 구단주와의 면접은 아주 짧았기 때문이다.

[합격입니다.]

미정은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직원을 이렇게 뽑으셔도 되는 건가요?”

생각보다 훨씬 단순한 채용 프로세스다. 그런데도 맞은편의 최다미는 별다른 의문조차 없어 보인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최다미는 어디까지나 호의로 면접장소를 제공한 것으로, 선덜랜드 구단 직원 채용 자체에는 관여할 수 없긴 하겠지만···.

화면 속의 구단주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업무 특성상 팬심이 가장 중요한데, 그건 선덜랜드 챌린지 때 검증했죠. 한국어는 당연히 문제없고, 영어도 문제가 없고요. 그럼 채용을 서둘러야죠. 축구단의 연말은 아주 바쁘니까요.]

“하긴, 그야 12월은 축구단 관계자들에게 중요한 시기긴 하네요. EFL컵 있고, 박싱데이 있고, 챔스 16강 조추첨도 들어가고··· FA컵도 준비해야 하죠?”

[잘 알고 계시네요. 그리고 크리스마스도 있습니다. 굿즈 판매에 탄력이 붙는 시기죠.]

어째서인지 건너편에서 줄곧 완벽한 영업용 미소를 유지하던 최다미가 처음으로 움찔한 것처럼 보였지만, 미정은 기분 탓으로 넘기기로 했다.

‘천하의 리미트리스 부사장이, 축구단 굿즈에 반응할 리가 없잖아?’

[업무는 우리 CS팀, 그리고 프레스팀과 지금처럼 화상으로 소통하면서 진행하게 될 겁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답하면서, 미정은 사소한 고민에 빠졌다.

‘고맙긴 한데, 이럴 거면 굳이 화상 면접을 볼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화상 면접이야말로 이번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세스였다는 사실을,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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