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77화 (377/422)

Heart to heart (2)

한국에서의 신규 채용은, CS팀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렀다.

“응대가··· 밀리지 않는다고?”

“역시 한국에서의 고객 상담은 한국에서 전담 처리한다는 정책이 효과적이었던 걸까요?”

“그것도 그런데, ‘명예시민’ 씨가 일을 참 잘해. 구단주님이 직접 채용하신 사람이 일을 못할 리야 없었지만···.”

“네, 사람 한 명 뽑았다고 우리 팀 업무가 확 줄어들 줄은 몰랐죠.”

“화상 회의 때 잠깐 봤는데 타이핑 속도도 어마어마하던데요? 아마 SNS에서 활약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벨 씨와 앨리스도 타이핑 빠르잖아요.”

“앨리스는 좀 다르죠. 걔는 키보드 잡으면 기껏해야 평균 속도잖아요. 스마트폰 잡을 때만 빠른 거지.”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엄지를 빛의 속도로 움직이던 앨리스를 떠올리며 CS팀원들이 부드럽게 웃었다.

CS팀에서 연수받던 시절엔 절망적인 손재주로 사고도 많이 쳤지만, 기본적으로 싹싹한 성격에 매사 열심히 하는 앨리스는 지금도 예쁨 받는 중이었다.

단, CS 업무에는 소질이 없으니 지금처럼 다른 부서에서 계속 힘내줬으면 좋겠다는 게 CS팀원들의 공통된 소망이었다.

“앨리스에 비하면 ‘명예시민’ 씨는 소질이 있는 것 같죠?”

“본인이 선덜랜드 광팬이라 그런지, 팬심의 기본을 잘 아는 것 같아. CS일을 따로 해본 적은 없다는데도, 일 처리가 굉장히 능숙하더라고.”

“그건 다 좋은데, 타자 좀 빠르게 친다고 업무가 그렇게 빨라지나요?”

누군가 떠올린 순수한 의문에, CS팀 간부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게, 보니까··· 우리하고는 영어로 말하면서 채팅으로는 고객 상담 계속하더라.”

단 한 명의 가세였지만, 그래도 업무 부담이 눈에 띄게 줄어든 CS팀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 팀원들을 바라보던 팀장 린다가 미안함이 섞인 웃음을 지었다.

“여러분, 다들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 워낙 바쁜 12월이라 크게 한가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쯤은 숨을 돌릴 수 있을 거야. 재충전하게 워라밸도 좀 챙기고··· 이제 곧 크리스마스잖아?”

그러자 CS팀원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이윽고, 다들 저마다의 계획을 떠들기 시작했다.

“저는 안필드에 다녀오고 싶어요. 원조 원정 지옥에서 우리 팬들을 보호해야 하니까요.”

“가게를 좀 돌아보고 싶어요. 한국어 할 줄 안다는 이유로 그동안 너무 온라인 스토어 관리에만 매달렸습니다. 이제 명예시민 씨도 합류했으니, 저는 제휴 펍 관리에 더욱 힘을···.”

팀원들의 반응에, 린다가 살짝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워라밸 좀 챙기라고 하지 않았나?”

옆에서 에이미가 키들키들 웃기 시작했다.

“그래서겠죠. 우리 팀원들은 축구가 취미고, 관심사는 선덜랜드이며, 팬하고 친구잖아요. 이런 걸 한국말로 뭐라고 하더라? 명예시민 씨에게 배웠는데.”

고개를 예쁘게 갸웃거리는 에이미를 향해, 린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우리 부팀장은 워라밸을 뭘로 챙길 계획이지?”

“저요? 저는 병원 좀 다녀오려고요.”

“병원? 왜, 어디 아픈 데 있어?”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졌고, 린다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하지만 에이미는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그게, 7년 차 시즌권 홀더 분께서 입원하셨거든요. 문병 좀 다녀오려고요. 곧 크리스마스잖아요? 물론 저만 가면 덜 좋아하실 테니 주장단과 같이 움직이기로 했어요.”

“주장단과 같이 말이지.”

린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주위에서는 팀원들이 하나둘씩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 * *

희주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빠는 덕업일치하는 사람을 잘 뽑는 것 같아.”

“응?”

“그렇잖아. 새로 뽑은 미정 씨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CS팀원들도 대체로 다 그렇잖아?”

난 그냥 이마의 숫자를 보고 뽑는 거긴 한데··· 듣고 보니 희주 말에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확실히 재능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더욱 잘 발현되기 마련이고, 사람의 능력을 숫자로 알 수 있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당장의 스펙보다는 일을 대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코칭스태프도 덕업일치 중이고.”

희주가 부드러운 시선을 돌려, 눈앞에서 열렬히 토론 중인 브라이언과 샐리를 바라보았다.

요즘, 우리 팀 분위기는 모든 면에서 최상이었다. 스태프들의 만족도가 올랐고, 팬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해주고 있으며, 성적도 뒷받침되고 있다.

챔스 조별리그는 압도적인 격차로 통과했고, 리그에서는 12월까지 무패 행진을 이어가면서, 또다시 우승을 가시권에 두었다. 그래서 브라이언과 샐리도 더욱 기운이 나는 모양이다.

“마침 올해는 일정마저 도와주는 것 같죠? 이번 박싱데이는 주말이라, 일정이 꽤 느슨해졌잖아요?”

“크리스마스 직전에 잡힌 EFL컵이 살짝 압박이긴 한데, 못 견딜 정도 일정은 아니야. 작년에 비하면 선녀 같지.”

“네, 올해는 클럽 월드컵이 빠지니까요.”

“그렇지. 지난 시즌 챔스를 놓쳤으니까.”

자폭 스위치를 누른 샐리와 브라이언이 동시에 시무룩해졌다가, 잠시 후 다시 동시에 부활했다.

“흠흠, 아무튼 박싱데이 일정에는 여유가 있지만··· 이럴수록 경기를 더 깔끔하게 준비해야 해.”

“두 경기 모두 인연 있는 상대니까요.”

크리스마스이브에는 EFL컵에서 리버풀을 상대하고, 박싱데이 상대는 뉴캐슬이다.

우리 코칭스태프가 이글이글 타오르며 전술 토론에 매진하는 사이, 희주가 내게 슬쩍 물었다.

“오빠, ‘그 팀’ 상대로 질 수 없다는 건 알겠는데, 우리하고 리버풀은 딱히 라이벌리티 없지 않아?”

“있지. 특히 브라이언에게는 절대로 질 수 없는 이유가 있어··· 크리스마스이브에 헨도에게 지면 열받잖아.”

거창한 이유를 기대했을 희주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별거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게 친구라는 거지. 친하면 친할수록 절대로 이럴 때 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남자들의 우정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다. 아마도 우리 프레스팀이 좋아할 이유가.

예전에 우리는 EFL컵 결승에서, 대회 최다우승팀이던 리버풀을 꺾고 우승한 적이 있다. 선덜랜드가 한 번도 갖지 못했던 트로피, 첫 번째 EFL컵을 따냈을 때의 일이다.

또한, 리버풀에게는 그때가 마지막 EFL컵 결승이었다. 우리에게 발목을 잡힌 리버풀이 멈춰 선 사이, EFL컵 최다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은 맨시티의 손에 넘어갔다.

당연히 리버풀로서는 우리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은 심정일 텐데, 그렇다고 우리도 호락호락 물러날 이유가 없단 말이지.

아마 우리 선수들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이다.

* * *

EFL컵 8강전을 앞두고, 선덜랜드 선수들은 브리핑 룸에 모여들었다. 3주장 에디의 호출 때문이었다.

모여든 선수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의문 섞인 시선을 교환했다.

“혹시 쿠데타 시도 아닐까요? 마침 캡틴이 없는데요.”

“그러게? 보니까 부주장도 없는데?”

농담을 주고받는 동료들 앞에서, 에디는 거침없는 손길로 화이트보드에 큼직한 글씨를 갈겨썼다.

[트레블의 정의]

“자, 이고르 학생이 대답해 볼까?”

그러자 의외로 에디와 죽이 아주 잘 맞는 센터백 듀오, 이고르가 미소를 지었다.

“리그, FA컵, 그리고 챔스입니다. 선생님.”

화이트보드에 [리그, FA컵, 챔스]라고 받아 적은 에디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맞습니다. 그러니까 EFL컵은 안 들어간다 이 말씀이야. 그런데 우리 시즌 목표는 트레블이지. 어때, EFL컵을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마르틴 학생?”

마르틴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유 있다. 나온다. 우승 수당.”

“젠장, 학생을 잘못 골랐어··· 최새벽 학생?”

입맛을 다시면서 타겟을 전환하는 에디에게, 최새벽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FC 선덜랜드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노리는 팀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 너 모범생이다.”

에디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지우개를 들어 거칠게 화이트보드를 문질렀다.

“그래. 사실 나도 그 소리를 하려고 모이라고 한 거야. 혹시 EFL컵 트로피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면, 이 자리에서 지우개처럼 싹싹 지워버려, 날려버려. 무엇보다, 우리 캡틴을 위해서라도.”

에디의 눈짓에, CS팀 스태프가 곧바로 브리핑 스크린에 자료 영상을 띄웠다.

처음 영상은 선덜랜드 관계자라면 다 아는 우드 부부의 프러포즈 장면이었고, 다음 컷은 챔스 우승 직후 도로시에게 고백하는 니콜라스의 모습이었다.

“자, 이것이 선덜랜드의 국룰이지. 이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겠지?”

“캡틴과 에이미 씨를 이어주려는 거군요.”

“그렇지, 마침 EFL컵은 남은 대회 중 가장 이른 대회거든··· 자, 질문 있는 사람?”

그러자 이번엔 해리슨이 손을 들었다.

“3주장님 본인은 괜찮으신가요?”

“나? 나야 눈이 너무 높아서.”

어깨를 으쓱하는 에디의 곁에서, 이고르가 재빨리 해설을 시작했다.

“예전에 들은 적이 있지. 자기보다 축구를 더 잘 아는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그러자 옆에선 하퍼가 키득거렸다.

“그래? 우리 3주장은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양심이 없는 건지 모르겠네. 어느 쪽이야?”

하퍼의 암시를 알아들은 선덜랜드 선수들이 일제히 폭소했지만, 정작 에디 본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들 저래? 뭔데?”

이고르가 냉큼 해설했다.

“에디 너보다 축구 잘 아는 여자는 우리 팀에선 수석코치님 아니면 앨리스밖에 없잖아. 전자면 겁이 없는 거고, 후자면 도둑놈이겠지.”

에디가 곧바로 두 손을 들었다.

“내 걱정은 안 해줘도 괜찮으니까 캡틴 생각만 하자고. 마침 EFL컵 8강전은 크리스마스이브잖아. 최고의 분위기로 만들어 주는 거야. 할 수 있지?”

그러자 곧바로 브리핑 룸이 끓어올랐다.

* * *

[EFL컵 8강전, 리버풀 대 선덜랜드]

안필드의 익스클루시브 박스에서, 나는 킥오프를 준비하는 선수들을 내려다보았다.

선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환했고, 무엇보다 의욕적이었다. 대체 브라이언이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동기부여가 아주 제대로 들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동안 브라이언의 전술 능력은 최고로 평가했지만, 동기부여에는 딱히 능통한 감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내 친구를 너무 과소평가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잔뜩 기세가 오른 선덜랜드 선수들 사이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역시 우리 주장단, 잭과 요니였다.

내가 구단을 인수한 이래 단 한 경기도 대충 뛴 적 없는 선수들, JJ 듀오의 얼굴은 차분하면서도 투지가 엿보였다.

그리고, 오늘은 자신감 또한 전해졌다.

예전 EFL컵 결승에서 처음 만났을 때, 잭과 요니의 숫자를 합쳐도 헨도를 넘지는 못했다. 그리고 시장에서의 평가는 훨씬 더 냉혹했다. 한때 선덜랜드의 10번이었던 리버풀의 주장은, 페르난데스와 톰슨을 뺀 나머지 선수단 전체에 필적하는 몸값을 자랑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잭과 요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비싼 주장단으로 불린다. 당연한 평가다. 챔스 우승에 이어 리그 무패우승을 이룬 주장과 부주장인데도, 나이는 아직 스물일곱밖에 먹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이마의 숫자도···.

잭의 숫자는 언제부터인지 완전히 까맣게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변해버렸고, 요니의 숫자도 눈에 띄게 흐릿해졌다.

잭과 요니의 재능이 헨도 못지않음을 확신하고 있다. 바뀐 숫자를 보지 않아도,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충성에 가치가 매겨진다면, 저들의 몸값은 지금보다도 훨씬 비쌌어야 하기에.

오늘, 잭과 요니는 내 믿음을 또 한 번 증명해줄 것이다. 그들의 발과 심장으로.

어린 시절,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것처럼 보였던 내 오랜 친구를 꺾음으로써.

잠시 후 휘슬이 울렸다.

리버풀 팬들의 함성이 안필드를 메웠고, 원정 온 우리 선덜랜드 팬들이 뒤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새 희주도 옆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We are Sunderland. Say we are Sunderland.

그 함성 속에서, 우리 선수들이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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