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80화 (380/422)

Heart to heart (5)

눈에 핏발이 서도록 영상을 돌려 본 분석팀원들이, 하나둘씩 소파와 안마의자에 늘어졌다.

“데이터 나왔습니다. 우리 캡틴의 플레이에서, 볼을 쫓아 달리는 게 아니라, 먼저 기다리는 케이스의 횟수를 정리했습니다.”

“이 중 전술적 이유로 포스트플레이를 시도했던 경우를 제외한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표 2-3을 보시면···.”

축 늘어진 몸에도 불구하고, 보고하는 목소리만은 활기차다. 아마 원하는 결과를 찾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루벤이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처음에 샐리 이 인간이 대체 무슨 히스테리를 부리는 건가 싶었습니다. 포스트플레이를 하는 스트라이커도 아니고, 공간을 노리는 2선 프리롤도 아닌 선수의 ‘공간 선점 횟수’를 체크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거든요.”

“히스테리··· 요?”

조심스럽게 묻는 분석실 신입을 무시한 채, 루벤이 주저 없이 덧붙였다.

“에이미 씨가 잘 풀렸다고 히스테리 부리는 줄 알았지. 크리스마스인데, 자기는 솔로잖아? 그래서 우릴 긁는 건가 싶어서.”

루벤의 퉁명스러운 발언에, 분석팀 전원이 사색이 되었다. 원인은 분명하다. 지금 분석실에는 샐리 본인도 와 있기 때문이다.

모든 팀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우리 팀에서는 수석코치의 서열이 분석팀장보다 높다. 특히 샐리의 경우 (전) 분석팀장이라는 이력이 있다 보니, 분석팀원들에게는 명백히 상사라는 인식이 있다.

단, 샐리는 루벤의 발언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무뚝뚝하게 되물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지?”

“잭이 먼저 뛰어들어가고 공이 나중에 도착하는 경우가 명백히 자주 생겼어. 나는 데이터를 뽑아본 다음에야 알겠는데, 이걸 벤치에서 보자마자 알았으면 넌 정말 천재야.”

루벤이 깔끔하게 두 손을 들자 샐리의 얼굴에 특유의 도도한 미소가 번졌다.

“드디어 항복 선언이야, 루벤?”

“그럴 리가. 목표는 대단할수록 좋은 거지. P급 라이센스 때는 꼭 역전할 거야.”

샐리는 대답 대신 자신만만한 미소로 응수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브라이언 쪽을 바라보았다.

“예상대로 잭이 선수로서 나아졌다는 것은 명백해졌어요. 그렇다면, 코칭스태프의 할 일은 하나뿐이죠?”

브라이언이 곧바로 대답했다.

“나아진 선수를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해야지. 내일은 ‘그 팀’과의 맞대결이니까.”

“지금의 잭이라면 연결고리 역할을 맡길 수 있죠. 점유율을 완벽하게 가져올 수 있어요. 원래 우리는 그 팀보다 중원이 강하니까요.”

“굳이 ‘중원’이라고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어. 축알··· 아니, 수석코치. 아무튼 아이디어는 괜찮군. 그 팀 상대로는 아무것도 내주지 말자고.”

“네. 틀림없이 축알··· 아니, 감독님도 동의할 거라 생각했어요.”

박싱데이 경기 준비 이야기를 한창 진행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무심코 혼잣말도 나왔다.

“그럼 난 구단주 역할만 고민하면 되나?”

그러자 이어지던 이야기가 뚝 멈췄다.

“브로, 혹시나 해서 말인데 잭을 팔려는 건 아니겠지?”

“으음··· 팔면 비싸긴 하겠죠. 만일 잭을 지금 팔면, 어쩌면 영국에서 가장 비싼 이적료로 팔릴지도 몰라요.”

홈그로운 조건 채운 스물일곱 살 영국산 미드필더는 아주 비싸고, 겨울에는 더 비싸진다··· 그러니 영국 최고 이적료는 사실상 확정이다. 내게 잭을 팔 생각이 있을 때 이야기지만.

“확실히 보드진 역할엔 선수를 언제 팔지도 포함되어 있긴 하네.”

일부러 그렇게 운을 뗐더니, 브라이언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처음 말을 꺼낸 건 본인이면서.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안 팔아. 세 가지 이유에서. 일단 홈그로운 프리미엄을 붙여 준다면 같은 영국 내 이적일 텐데, 만족스러운 값을 치를 만한 재력이 있는 팀은 드물잖아?”

그러자 샐리가 냉큼 끼어든다.

“맨시티나 뉴캐슬, 첼시 정도죠.”

“맞습니다. 그런데 뉴캐슬 이적은 선수 본인부터가 거부할 테고, 맨시티나 첼시 상대로는 우리 선수를 보내줄 이유가 없죠. 우승 경쟁자니까요. 혹시 잭을 안 파는 다른 이유도 듣고 싶어, 브라이언?”

그러자 브라이언과 샐리가 열렬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안 판다는 대답이면 충분하지. 사실 나는 원래 브로를 믿고 있었어.”

“저도 구단주님 믿고 있었어요. 구단주님은 원래 선수를 파는 분이 아니죠··· 피규어는 팔지만요.”

사실 피규어를 비롯한 각종 굿즈는 꽤 악독하게 팔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드리안 작품인데.

“근데 오빠, 궁금하지 않아? 잭은 어떻게 강한 선수가··· 읍.”

에라이, 희주 얘는 입만 열면 부두술이야 아주. 마침 분석실 테이블 위에 브레드스틱이 있길래 잽싸게 희주 입에 밀어넣었다.

옆에서 루벤이 부드럽게 웃었다.

“역시 요니와의 라이벌리티가 한몫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자극하는 선의의 라이벌이니까요. 마침 영리함과 절묘한 위치선정은 원래 요니의 대명사기도 하고요.”

그러자 브레드스틱을 한 입 깨물어 삼킨 희주가, 배시시 웃었다.

“팀장님, 혹시 그건 본인 이야기 아닌가요?”

루벤은 대답 대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 * *

동료의 성장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역시 같은 선수들이었다. 연습과 실전에서 잭에게 패스를 보내는 역할을 맡은 선수들, 로드리게스나 해리슨, 그리고 에디와 최새벽은 어렴풋하게 잭의 성장을 눈치챈 상태였다.

“기분 탓인진 모르겠는데, 캡틴에게 공을 보내기 엄청 편해. 슬슬 나도 캡틴과 호흡이 잘 맞기 시작한 건가?”

“공을 저절로 끌어들이는 느낌이 있는 것 같죠?”

팀의 패서 역할을 담당하는 빌드업 리더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단, 에디의 반응은 살짝 삐딱하다.

“지는 이제 솔로 아니라 이거겠지. 하긴 나라도 에이미 씨 같은 미인이 애인이면 공을 끌어당기는 오라쯤은 뿜뿜 뿜어냈을 거야.”

물론, 잭의 성장을 가장 민감하게 깨달은 선수는 당연하게도 요니였다.

‘움직임이 엄청 좋아졌는데···?’

기본적으로 잭은 요니보다 주력과 체력이 모두 좋은 선수였다. 단, 그동안은 경기의 흐름을 읽는 안목에서 요니가 앞서 있었고, 언제나 요니가 먼저 움직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거의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연히, 발이 더 빠른 잭이 앞서나가는 빈도도 늘어났다.

‘까딱하면 뒤처지겠는데.’

요니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친구의 성장은 기쁜 일이다. 하물며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십수 년간 한 팀에서 한솥밥을 먹어온 동갑내기 절친의 성장엔, 당연히 박수를 보낼 수 있다.

그와는 별개로, 같은 선수로서 지고 싶지 않다는 경쟁심도 당연히 존재한다. 단, 지금의 요니는 예전과 달리, 경쟁심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다.

‘나도 더 강해져야지.’

그리고 이 팀에는 마침 성장을 위한 재료가 아주 많다.

전성기의 운동능력은 잃었지만, 여전히 역대급 센스와 섬세한 볼 컨트롤을 자랑하는 축구의 신부터 수비 한두 명은 단숨에 베어버리는 마르틴까지.

문전에서 바스티아노가 발하는 위압감과, 해리슨의 기묘한 패스 또한, 요니가 항상 닮고 싶은 플레이었다.

그리고 선덜랜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단 한 순간도 이방인이 아니었던 예전의 9번까지··· 그들의 플레이가 전부 기억에 남아 있었다.

선덜랜드의 19번, 요나스 뮐러는 그렇게 박싱데이 출전을 준비했다.

* * *

[프리미어리그 20라운드. 선덜랜드 대 뉴캐슬]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프레스 관계자석에서는, 언제나처럼 경기를 앞둔 기자들의 대화가 한창이었다.

타인위어 더비는 항상 흥행의 보증수표고, 박싱데이에 열린다면 더욱 뜨겁다. 오늘 경기는 취재하는 것만으로도 호외거리가 가득할 거라는 기대감에 다들 불타고 있었다.

다만, 일부 기자들은 아주 약간의 아쉬움을 표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더비는 좀 더 늦게 열렸으면 했어요. 한 23라운드 정도면 더 재밌었을걸요.”

“하긴, 뉴캐슬은 틀림없이 1월에도 분노의 영입을 할 게 뻔하죠.”

지난 시즌 FA컵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올린 뉴캐슬은, 올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돈을 퍼부으며 이적 시장의 생태계 교란종으로 등극했지만, 아직 퍼부은 돈값만큼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오랜 라이벌 선덜랜드에 순위가 밀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맨시티, 첼시, 리버풀이라는 전통의 강자를 뛰어넘지도 못했다. 현재는 아스널, 토트넘, 레스터와 사이좋게 경쟁 중으로, 챔스 진출은 한없이 불투명한 처지였다.

자연히 겨울 이적시장에서도 공격적으로 나설 게 뻔했으니, 기왕이면 스쿼드를 강화한 상태로 선덜랜드와 맞붙었으면 훨씬 치열한 경기가 되었을 거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은 또 다른 생각을 했다.

“오히려 오늘 붙는 게 나아요. 여름에 이렇게 돈 쓰고도 선덜랜드에 또 지면, 이번 1월에는 대체 얼마나 빡세게 지르겠어요?”

꽤 노골적인 표현이었지만, 일단 특종만 생각하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런던 튜브의 앨렌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도 뉴캐슬이 이길 거라고는 생각 안 하는 모양이네요.”

언제나처럼 엘렌의 옆자리에서는 선덜랜드 데일리의 리타가 응수했다.

“그야 당연하죠. 전력이 비등한 팀끼리 붙을 때도 홈팀이면 먹고 들어가는데, 하물며 오늘은 리그 1위와 6위의 대결인걸요? 당연히 선덜랜드 승리라고 보는데··· 혹시 엘렌 씨는 뉴캐슬이 이길 것 같아요?”

순간 주위의 대화가 조용해졌고, 시선이 옴팡지게 쏠렸다. 소형 언론사였던 런던 튜브를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린 장본인, 엘렌의 축구 보는 눈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꽤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대부분 선덜랜드의 완승을 예상했지만, 만일 엘렌이 뉴캐슬 승리를 점치면 갈아탈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그 가능성은 엘렌 본인이 깔끔하게 부정해 버렸다.

“그럴 리가요. 아직은 백 번 싸우면 아흔다섯 번은 선덜랜드가 이길걸요. 네 번쯤은 무승부고요.”

“즉, 이제 백 번 싸우면 한 번쯤은 뉴캐슬이 이길 수도 있다?”

리타의 짓궂은 질문을, 엘렌은 깔끔하게 부정했다.

“아뇨. 겨울철 폭설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는 경우가 1%죠. 뉴캐슬은 아직 선덜랜드 못 이겨요. 아직은.”

너무나 깔끔한 부정에, 기자들의 관심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다만 저는, 궁금할 뿐이에요. 이적료는 뉴캐슬이 훨씬 많이 썼잖아요? 물론 팀의 위상 차이 때문에 오버페이도 했지만··· 이제 스쿼드의 네임밸류 자체로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아요.”

아직 선수들이 들어오지 않은 그라운드를 내려다보며, 엘렌이 독백했다.

“대체 선덜랜드는 다른 팀과 뭐가 다른 걸까요?”

리타가 웃었다.

“그야 구단주가 다르죠.”

“물론 선덜랜드 구단주가 특별한 건 알아요. 그 사람 선수 보는 눈은 워낙 유명하니까요. 오버페이는 절대 안 하고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은데요.”

“맞아요. 그게 전부는 아니죠. 특히 지금의 선덜랜드와 뉴캐슬처럼 압도적인 자금력을 가진 팀끼리의 경쟁에서는, 오버페이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차분히 대답하며, 리타 역시 선수들이 들어오지 않은, 텅 빈 그라운드 위에 시선을 옮겼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잔디는 멀리서 보기에도 완벽한 상태였다. 이 경기장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선덜랜드 잔디관리인은 영국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고 해요. 그리고 최고의 대우는, 단순히 급료만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엘렌과 함께 경기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리타가 차분하게 계속 말했다.

“네, 들었어요. 자기 할아버지가 팀에서 27년간 일했다는 이유로 채용되었다고요.”

“그리고 그녀의 할아버지는 3년간 고문으로 남았죠. 팬들 앞에서 박수를 받으며 은퇴했고, 그리고 선수들은 그녀의 할아버지를 위해 커뮤니티 실드 트로피를 가져왔어요.”

“그렇다면, 리지 윌리엄슨은 절대 선덜랜드 이외의 팀에서 일하지 않겠네요.”

“그렇겠죠. 사실 나는, 썬과 직접 만나본 적이 있어요. 그날 편집장을 빼앗겼죠. 지금 그 친구는 선덜랜드 프레스팀장으로 일해요.”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랐던 엘렌은 잠시 침묵했다. 정작 리타의 반응은 태연했지만.

“다시 말해 선덜랜드는 스태프를 데려오기 위해서 구단주가 직접 나서는 팀이라는 뜻이죠··· 사람의 마음은 돈만 가지고는 살 수 없어요. 마음으로, 진심으로 대해야 하죠.”

엘렌이 침묵하는 사이, 리타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지금의 선덜랜드는 선덜랜드라는 팀을 좋아하고, 도시를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아 놓은 팀이 되었죠. 이런 팀이 약할 리 없잖아요?”

엘렌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 사회에서, 자본이 중요하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다. 축구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슈퍼팀을 만들기만 하면 성적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다.

선덜랜드 역시 적지 않은 돈을 썼다. 스태프들은 업계 최고 대우를 받으며, 선수들의 주급과 보너스 또한 다른 팀에게 떨어지지 않는 수준을 맞췄다.

애초에 투자의 신이 운영하는 축구단이, 돈 싸움에서 질 리 없다는 것은 아주 명백한 이야기였다.

‘막대한 자본력에, 마음까지 더해졌으니 강력한 팀이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겠네.’

그때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지역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레드 앤 화이트 유니폼의 선수들에게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영국에서,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함성이 심장에서 심장으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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