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88화 (388/422)

철의 라인 (3)

이후에도 우리의 경기력은 줄곧 완벽했다.

바스티아노는 경기 내내 문전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고, 잭과 요니는 중원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마르틴과 스티븐이 수시로 좌우 측면을 노리고, 베넷과 브루노가 끊임없이 오버래핑을 시도했다.

견디다 못한 미들즈브러가 점차 내려앉기 시작했다. 더비 라이벌 상대로, 그것도 자기들 홈에서.

그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풍경이었지만, 축구는 그래도 역시 골이 터져야 승부가 갈리는 종목이다.

잔뜩 가드를 올리고 버티는 미들즈브러 상대로, 마무리를 날리는 역할이 필요했다. 팀에게 창조성을 불어넣고, 결정적인 찬스를 만드는 선수가.

오늘은 해리슨이 맡은 역할이다.

전반 30분, 해리슨이 왼쪽 측면으로 패스를 쏘아 보냈다.

얼핏 보기엔 조금 부정확한 느낌도 드는 패스였다. 마르틴이 제자리에서 패스를 기다리는 대신, 공을 받으러 아래로 내려와야 했을 정도로. 미들즈브러 홈 팬들이 곧바로 환호했고, 우리 팬들이 아쉬움에 탄식했다.

“턴오버 머신 또 시작이구나! 패스미스 고맙다!”

보로 팬들이야 당연히 신나겠지만··· 그런데, 저게 패스미스인가?

패스의 궤적을 지켜보던 내가 미묘한 의문을 떠올린 사이, 내려오던 마르틴과 해리슨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마르틴은 공을 받지 않았다. 패스를 아예 건드리지 않은 채 그대로 뒤로 흘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 10번의 몸이 180도 돌아 전방을 향했다.

예상 밖의 움직임에 수비의 대응이 한발 늦었다. 몸을 돌린 마르틴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패스미스가 아니었던 거야!?”

희주가 경악하는 사이,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음 순간 마르틴 텅 빈 왼쪽 측면을 질주했고, 우리 중원이 일제히 공격에 가담했다. 패스를 보낸 해리슨 본인은 물론, 잭과 요니까지도.

코너 플래그 앞까지 깊숙이 파고든 마르틴이, 빠른 땅볼 크로스를 문전으로 보냈다. 기다리던 바스티아노에게로.

수비를 등진 채, 골대와 비스듬히 좌측면을 바라보고 선 바스티아노의 왼발이, 공을 끌듯이 전방으로 보냈다. 동시에, 그의 거구가 돌아섰다.

에버튼전에서 스티븐이 보여준 턴과는 느낌이 또 다르다.

바스티아노의 턴에는 힘이 실려 있지는 않았고, 수비를 밀어낼 의도도 없어 보였다. 실제로 미들즈브러 수비 또한 밀려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지독하게 우아하며 소름 돋게 깔끔한 그 회전이 끝났을 때는 수비와의 거리가 벌어진 상태였다. 비록 딱 한 걸음이지만. 그리고 미들즈브러 수비는 그 한 걸음을 다시 좁히지 못했다.

수비가 첫발을 내딛기도 전, 바스티아노의 발이 끝까지 휘둘러졌기 때문이다.

[미들즈브러 0 - 2 선덜랜드]

“전반에만 두 골 차야!”

환호하는 희주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아주 잘 들린다. 선명하고 또렷하다. 선제골 때는 홈 팬들의 탄식과 한숨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던 소리였는데.

어느새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은 아주 조용해졌다.

“꼭 도서관 같아.”

“도서관으로 만든 거지.”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었다.

등에 전해지는 감촉이 아주 푹신하지는 않았다. 익스클루시브 박스의 최고급 자리라고는 하지만, 평소 내가 쓰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좌석과 비교하면 조금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꼭 최고급 침대에 누운 것처럼 편안하다. 자꾸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날, 우리는 더비 라이벌 미들즈브러를 또다시 격침하며 프리미어리그 선두 자리를 굳게 다졌다.

[미들즈브러 0 - 3 선덜랜드]

* * *

시티 오브 선덜랜드로 돌아오는 유소년팀 원정 버스 안에서, 앨리스가 슬쩍 물었다.

“오늘 경기 어땠어?”

그러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소년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재밌었어요!”

“혹시 시끄럽거나 불편하진 않았고?”

앨리스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하지만 조심스럽게 확인에 나섰다.

유소년 선수는 원래 야유에 대한 내성이 없다. 아무리 축구에 진심인 유럽이라도, 아이들 상대로는 행동을 조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대 선수라도 야유나 폭언을 퍼붓지는 않는다.

유스 선수들끼리 신경전을 벌일 수는 있더라도, 관중석에서 야유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애초에 관중석이라고 해 봐야 선수 가족 아니면 축구단 관계자들만 앉는 자리고.

조용한 박수 속에서만 공을 차던 유소년들은, 보통 프로 콜업 직후 1군 경기장의 열기에 바로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서 퍼부어지는 다양한 야유와 폭언은, 성인 선수들조차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때로는 현역 프로들조차 분노조절에 실패해 상대 팀 팬과 난투를 벌일 때가 있다. 칸토나의 쿵푸킥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그래서 오늘 선덜랜드 육성단에서는 굳이 유소년들을 1군 경기에 동행시키기로 했다. 더비 라이벌 상대로 원정을 나선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소년들에게 간접적으로 체험시키기 위해서.

물론 약간의 배려도 있었다.

아무리 야유에 익숙해져야 한다지만, 그래도 시작부터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던지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행위다.

앨리스의 질문에 아이들이 잠시 생각한 다음 차례로 대답했다.

“음, 소음이 조금 신경 쓰였어요. 제가 피치 위에서 뛴다고 상상하면, 실수할 것 같았어요.”

“야유는 싫었지만, 전체적으로 현장감이 있어서 좋았어요. 빨리 뛰고 싶어요.”

그런 상식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독특한 의견도 있었다. 장차 거물이 될 게 틀림없는 소년들, 테오와 짐이었다.

“싫긴 한데, 음소거 스위치 누르면 된다고 생각해요. 플레이로 찍어눌러서 도서관으로 만드는 거죠. 우리 1군이 오늘 보여준 것처럼요.”

“신경이 아예 안 쓰이진 않겠지만, 경기력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리 훈련하고 싶은데, 관리인님께 부탁해서, 유소년 훈련장에도 야유 소리를 재현할 수는 없을까요?”

그러자 월터와 바르카가 재빨리 끼어든다.

“저도 솔직히 크게 거슬리진 않았어요. 프로 선수들은 매주 겪는 일이잖아요?”

“나도 도서관 만들어 버릴 거야.”

앨리스는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마냥 어리게 봤는데, 이제는 다들 제법 듬직해졌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게, 이 소년들은 3년째 잉글랜드의 유스 대회를 지배한 선수들이다. 관록이 적지 않게 붙었고, 요즘은 별명도 붙었다. 선덜랜드 제너레이션, 일명 ‘썬의 아이들’ 이다.

‘이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거나,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겠지?’

그리고 아마 다음 시즌부터는 조금 다른 별명도 붙게 될 것이다.

앨리스는 원정 버스 기사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야기가 미리 되어 있었기에, 기사가 곧바로 버스 핸들을 돌렸다.

“어? 아카데미 가는 길이 아닌데요?”

가장 먼저 경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선수는 로컬 출신이라 지리를 잘 아는 짐이었고, 그다음은 테오였다. 물론 테오의 경우 지리를 잘 안다기보다는 짐의 반응에서 유추한 거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금방 어딘지 알게 될 테니까.”

앨리스의 이야기에, 바르카가 호들갑을 떨었다.

“앗. 설마 우릴 어디로 유괴하려고! 인턴 누나가 유괴··· 악!”

까불거리던 바르카는 짐과 월터에게 한 대씩 쥐어박힌 다음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약 10분 후, 버스가 멈췄다.

창밖을 내다보는 소년들의 눈이 일제히 동그랗게 떠졌다. 역사책의 흑백 사진, 아니면 피규어로나 보던 축구장이 어느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크고 아름답게 지어진 새 경기장, 실물 크기다.

“로커··· 파크네요?”

“응. 외장 공사가 며칠 전에 끝났어!”

소년들이 눈을 빛냈다.

“혹시··· 내려서 구경해도 괜찮아요?”

“아직 인테리어가 덜 끝났으니까 밖에서만.”

그러자 일부 소년들이 환호하며 버스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앨리스가 웃었다.

“너희는 다음 시즌부터 매주 이곳에서 뛰게 될 거야. 2만 명의 관중 앞에서.”

여러 차례 증축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지만, 유소년 경기장으로서는 압도적인 수용 인원이다.

창문 너머로 로커 파크를 응시하던 짐이 멍하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말로··· 관중들이 와 줄까요? 저희 경기를 보러?”

“그럼!”

대답하는 앨리스의 옆에서, 필이 심드렁하게 덧붙였다. 대형 식료품 가게 사장 아들인 필은, 나이치고 장삿속에 밝은 편이었다.

“유스 경기는 입장료 무료니까 오긴 하겠지. 근데 보좌관님, 이러면 구단은 뭐가 남긴 할까요?”

앨리스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팀에 채용되기 전 그녀가 CS팀에 여러 차례 묻던 질문이었기에. 그때 CS팀 직원들은, 팬이 남는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래서 육성 보좌 앨리스 또한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희가 남잖아.”

다른 것들도 남을 것이다. 선덜랜드 아카데미의 전통이, 그리고 최고의 지원을 받으며 자라는 선수들의 긍지가.

이 아이들은 1군 선수들의 프로다움을, 마음가짐을, 그리고 기술과 경기력을 본받으며 자란다. 그리고 몇 년 후 이들은 프로가 되어, 다시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것이다.

축구가 언제나 그렇게 이어져 온 것처럼, 강철의 선으로 남아 영원히 이어질 거라고.

“그런 팀을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어.”

* * *

같은 시각, 로커 파크 근처의 카페에서는 런던 튜브의 엘렌과 선덜랜드 데일리의 리타가 마주앉아 커피잔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멀리 온 보람이 있네요. 참 멋진 경기장인데요?”

외장 공사가 끝난 로커 파크를 바라보며, 엘렌이 감탄하자 리타가 곧바로 대답했다.

“고풍스럽죠?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도 참 아름다운 경기장이지만, 저 같은 올드 팬에게는 역시 로커 파크에 정이 가요.”

리타의 얼굴엔 미처 감추지 못한 웃음이 피었다. 기본적으로는 꽤 공정한 기사를 쓰는 언론인이지만, 리타 본인은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 거주하는 선덜랜드 토박이다.

“저렇게 멋진 경기장이, 유소년 전용이라고요?”

“네. 다만, 그렇게만 쓰긴 아까우니까 구단에서는 유소년 경기 없을 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계획이래요.”

리타는 커피를 한 모금 호로록 들이켠 다음 덧붙였다.

“예를 들면 선덜랜드 시민들 대상으로 아마추어 축구대회를 열 수도 있고, 우리의 좋은 이웃 더스턴이 컵 대회에 나갈 때 도와줄 수도 있고요. 더스턴은 6부 리그라, 아직 프로급 스타디움을 갖추지 못했거든요.”

“더스턴은 8부 아니었나요? 아, 승격했나 보네요.”

“네, 베리와 터너를 선덜랜드에 팔았으니까요. 선덜랜드 입장에서는 아주 저렴한 딜이지만 8부 리그 팀에겐 어마어마한 이적료였죠. 팀의 운명을 바꿔놓을 만한.”

“그랬겠네요.”

맞장구치면서, 엘렌은 로커 파크 외벽을 응시했다. 내걸린 플래카드에 오픈 예정일이 선명했다.

5월 30일.

별것 아닌 날짜였지만, 축구계 관계자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숫자다. 엘렌이 미소를 지었다.

“챔스 결승전과 같은 날 오픈하는군요. 단호한 의지가 느껴지는데요.”

챔스 결승전 당일, 시티 오브 선덜랜드를 찾는 축구팬들 앞에서 클래식 선덜랜드의 홈이었던 경기장, 로커 파크의 부활을 선언하는 그림이 된다. 그 로커 파크는 유소년을 위한 경기장이니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완벽하게 잇는 구상이죠. 우리가 무사히 챔스 결승에 나갈 때의 이야기겠지만.”

“어머, 우리라고 하시네요?”

“저도 선덜랜드 사니까요. 문제 있나요? 취재 중도 아닌데.”

태연하게 대답하며, 리타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엘렌이 미묘하게 웃었다.

“문제없어요. 그나저나, 다들 기대가 엄청 크시나 보네요.”

“온 도시가 난리죠. 아는 사람이 술집을 하는데, 5월 한 달간 일할 사람을 벌써부터 찾고 있어요. 가게들끼리 경쟁이 붙어서 구하기 힘들대요.”

“와우.”

“이런 건 선덜랜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거라 딱히 기삿거리도 안 되는데··· 관심 있으면 엘렌 씨가 다뤄 볼래요? 그쪽은 런던이니까 재밌어할 것도 같은데.”

그러자 엘렌의 눈빛이 변했다.

축구 보는 눈으로는 기자들 중 손꼽힌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아직 경력이 부족한 젊은 기자에 불과하다. 경기장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노련한 리타에 비해 아무래도 감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엘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혹시, 선덜랜드가 챔스 결승에 못 나가면··· 어떻게 되는 거죠? 다소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그러자 리타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뭐, 술집들이야 그래도 잘되지 않을까요. 떨어진 날은 홧술 마실 거고. 결승전이 남의 잔치가 되는 만큼 외부 관광객도 늘어날 테니 매출에는 영향이 없을 것 같아요. 숙박업소나 식당은 오히려 이득이겠네요.”

“······.”

“그리고 저는 우승팀을 축하하는 기사를 써야 하겠죠. 입맛은 조금 쓰겠지만, 티는 내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프로니까.”

물끄러미 로커 파크를 응시하며, 리타가 대꾸했다.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도시는 그래도 돌아갈 거예요. 축구팀이 3부 리그에 처박혔을 때도 그랬거든요. 축구는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 중에서만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안첼로티의 명언이군요.”

“네, 여기까지가 같은 언론인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

“그럼 선덜랜드 거주자로서는요?”

그러자 리타가 씩 웃었다.

“우리 팀이 질 거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아서, 떨어진다는 가정도 못 하겠어요. 트레블까지는 모르겠지만, 빅 이어는 무조건 차지할걸요?”

“어··· 하지만 그건 다른 팀 팬들도 똑같이 믿고 있지 않나요?”

엘렌의 질문에, 리타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에겐 조금 다른 근거가 있죠. 우리 선수들은 이 도시 사람들에게 팀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요.”

담담하게 대답하면서, 리타는 손가락을 들어 로커 파크를 가리켰다.

“저기도 근거가 있네요. 저 준공 예정일은 선덜랜드 구단주 썬이 직접 정한 날짜거든요. 썬에게는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죠?”

리타의 답변에 엘렌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마우면 커피 사고요.”

물론 엘렌은, 아주 기쁜 마음으로 커피 값을 지불했다. 그리고 런던에 돌아가자마자, 특집 기사를 업로드했다.

[시티 오브 선덜랜드가, 챔스 결승전에 대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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